[36화]
말을 하면서도 어느새 녀석은 콘플레이크를 다 먹은 후였다.
그릇을 들어 올려 우유 까지 남김없이 마신 그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그릇을 내려놓는다.
"역시 아침은 이렇게 가볍게 먹는 게 좋구만.
집에서 통근하다보니 어머니가 밥을 차려주시는 데 안 먹을 수도 없고…."
"배부른 소리 좀 작작해라. 이것도 가끔씩 먹어야 맛있지. 맨날 이것만 먹으면 설탕 맛밖에 안 나."
"시리얼 종류도 많잖아? 여러 가지 번갈아가며 먹으면 되지."
"그런 문제가 아니야. 너도 토, 일요일까지 계속 콘플레이크만 먹어봐라.
씹는 촉감부터가 불쾌하게 느껴질 걸?"
"우와! 너 설마 이것만 먹고 사는 거냐?"
"아침은 대부분 이거라고 해야지."
"…그렇다면 확실히 끔찍하겠군."
그는 자기 몫의 그릇을 들고 싱크대에 갖다 놓는다.
"설거지는 좀 부탁할게."
"아. 거기다 놔 둬."
그리고 녀석은 곧바로 화장실로 들어가서 간단하게 씻고 나온다.
나오자마자 옷을 입고 출근 준비를 한다. 새삼 녀석이 직장인이고 나는 백수라는 실감이 든다.
그가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어제꿨었던 꿈 이야기를 간단하게 한다.
묵묵히 이야기를 듣던 그는 퀴즈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관심을 보여 온다.
"그 여자, 상당히 믿음직한데? 퍼즐류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야."
"그래. 어제까지만 해도 조용하게 있어서 존재감을 잘 못 느꼈는데, 오늘은 완전히 에이스였어."
"네가 말한 그 자동차 선택 문제는 '몬티홀 문제'라고 해서 꽤 유명한 문제야.
그 놈도 제법 수수께끼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군."
"너도 그런 거 좋아하냐?"
"물론. 내가 수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퍼즐 때문이었으니까."
그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정석 책을 지긋이 바라보며 말한다.
"너, 오늘부턴 수학 공부보단 퍼즐 공부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말이다. 서점에서 퍼즐 책이라도 사와야 할지도 모르겠어.
물론, 문제 패턴이 어제와 비슷할 거라는 가정이 성립해야겠지만."
"그래. 더 듣고는 싶지만 난 이만 출근해야겠다. 나머지 이야기는 퇴근하고 나서 듣자고."
그렇다는 건 오늘도 와주겠다는 건가?
어제 새벽 3시까지 작업을 했다고 하니
오늘도 와달라고 부탁하기가 미안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고맙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오늘 정상 출근을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늦은 시간까지 나를 위해 묵묵히 일 해줬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사실 눈을 떴을 때 실패했다는 말을 듣고 내심 실망을 했었으니…이기적인 생각이었다.
구두를 신고 나갈 준비를 하는 그에게 말을 건다.
"괜찮겠냐? 피곤하지 않겠어?"
"문제없어. 그것보다, 방이나 잘 찾아봐. 수상하게 생긴 물건을 찾게 되면 문자 보내. 사진 찍어서 메일로 보내도 좋고."
녀석이 출근하고 난 후, 나는 퍼즐 책을 먼저 사러 갈지, 방을 수색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잠시 생각하던 나는 방을 먼저 수색하기로 결정했다.
이 방에서 물건을 숨길만한 장소는 세 군데다.
책장, 이불장 겸 옷장, 책상. 그 외에는 숨길만한 가구 같은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가장 쉬워 보이는 책상부터 살펴본다.
책상이라고 해도 상 위에는 자질구레한 물건밖에 없었기 때문에 의심되는 건 서랍정도밖에 없다.
3층으로 된 서랍을 맨 위에 것부터 하나씩 열어봤지만 의심될 만한 물건은 눈에 띄지 않았다.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이 많았던 것도 아니라 금방 금방 다 볼 수 있었다.
다음은 옷장과 책장인데. 책상과는 달리 둘 다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
책장은 책을 하나하나 다 빼봐야 하기 때문이고, 옷장은 더 심하다.
옷을 하나하나 꺼내 주머니까지 뒤져본 다음에 다시 집어넣어야 한다.
둘 다 시작하기도 전부터 의욕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귀찮아서 방 정리도 잘 안하고 사는데….
하기 싫은 마음을 치워버리고 책장부터 먼저 살펴보기로 했다.
지루한 작업이 될 것 같아 컴퓨터를 키고 음악 플레이어를 실행해 무작위 반복 재생을 해놓는다.
그리고 나는 맨 윗칸부터 하나하나 책을 살펴본다.
아무래도 대학 시절 사용했던 자취방이다 보니 꽂혀 있는 것들의 대부분이 전공 도서, 노트, 파일 철과 프린트 묶음들이다.
일단 책이나 파일 철을 5권 정도씩 한 번에 뽑아, 책장 사이의 뒤 공간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을 확인 후,
책을 대충 넘겨가며 혹시라도 책 사이에 이상한 물체가 들어있는지를 확인한다.
그런 방식으로 한 권 한 권 살펴보던 나는 책장의 1/3정도를 뒤졌을 때
두꺼운 전공 서적 안에 무언가 끼어있어서 불룩해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책 사이에 있던 것은 못처럼 길쭉하게 생긴 10cm정도 되어 보이는 투박한 디자인의 은색 물체였고,
마치 끝이 잘린 원뿔처럼 생겼다.
옆에서 보면 사다리꼴 모양이다.
가장 얇은 폭이 5mm정도. 가장 두꺼운 면의 지름이 8~9mm정도로, 무게도 가벼웠다.
얼핏 봐도 '별것 아닌 것 같이 생긴' 그 물체는…만약 오늘 아침 녀석에게 그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우연히 발견을 하고 나서도 '뭐야, 이게?' 하고 생각하고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언젠가는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 하고 생각하고 서랍 속에 넣어뒀을지도 모르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선 아무래도 수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우선 녀석에게 이상한 물건을 발견했다는 문자를 보내고 사진을 찍어둔다.
녀석에게선 곧바로 답장이 돌아온다.
[좋아. 내가 가서 확인을 해볼 테니까, 혹시라도 부수거나 억지로 열어보려고 하진 마.]
어차피 열어보고 싶어도 나사못 같은 것으로 결합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내 힘으로는 열어볼 수도 없다.
[하나가 아닐지도 모르니까 좀 더 찾아봐]
다음 메시지가 도착한다. 하기야, 생각해보면 너무 쉽게 찾은 면이 있었다.
젠장. 그러고보니 이렇게 작다면 거실이나 화장실에도 충분히 숨길 수 있겠군.
아무래도 집 전체를 다 뒤져야 할 모양이다.
그 후 나는 책 한 권 한 권과 옷 한 벌 한 벌을 모조리 뒤져서 비슷한 물체를 3개 더 찾았다.
물론 나는 샅샅이 뒤진다고 뒤졌으나 내가 못 보고 넘어간 사각 지대가
존재할 가능성은 남아 있기에…실제로는 더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래봤자 1~2개 정도일 뿐이겠지.
4개의 물체는 크기는 비슷했지만 외형은 조금씩 다르게 생겼고,
색깔도 조금씩 달라 서로 다른 도구처럼 여겨졌다.
어쩌면 이들 중 한두 개는 단순히 컴퓨터 같은 기계에서 빠진 부품일지도 모르는데
내가 완전히 착각하고 있는 것뿐인지도 모른다.
거실이나 화장실에선 한 개도 나오지 않았다. 개놓았던 수건 안까지 다 살펴봤으나 눈에 띄지 않았다.
결과적으론 귀중한 시간만 쓸데없이 소비한 셈이다.
샅샅이 뒤져보면 1~2개정도는 더 나올지도 모르지만…할 일이 이것만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이쯤에서 멈추고 다음에 할 일을 해야 했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이제 서점에 가서 퍼즐 책을 구입하려고 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막상 서점까지 가기 위해선 버스를 타고 꽤 먼 길을 가야 되는데,
집을 뒤지느라 시간을 많이 소요한 터라 그럴 시간도 아까웠고, 귀찮았기도 했다.
게다가 퍼즐 쪽에 완전히 문외한인 나로서는 막상 서점에 가도 우왕좌왕할 뿐
제대로 고르지도 못할 것 같아 그냥 인터넷으로 퍼즐 문제나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또한 첫 날과 둘째 날의 문제 유형이 상당히 달랐던 것을 감안하면
오늘도 퍼즐을 낼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 의욕을 더욱 떨어트렸다.
그런데 문제는. 인터넷을 찾아보면 퍼즐 사이트라던가, 관련 카페 같은 게 많을 줄 알았는데,
대부분이 입시를 위한 수학 사이트라던지 어린이를 위한 산수 사이트뿐이었고,
제대로 된 퍼즐을 다루고 있는 사이트는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거 맞춰 볼 사람' 하고
누군가가 올려놓은 문제들을 찾아보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는데.
서로서로 퍼온 문제들이라 대부분 중복되었고, 무엇보다 문제만 적당히 퍼올 뿐
제대로 된 해답을 올리지 않은 곳이 많았기 때문에 생각만큼 다양한 문제를 볼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검색하기에 굉장히 불편하긴 했지만,
그렇다곤 해도 남은 제한 시간에 비해선 넘칠 만큼 많이 찾을 수 있었다.
내 머리가 굳은 건지, 퍼오는 과정에서 왜곡이 생긴 건지
문제 하나하나를 이해하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