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넋을 놓고 내 앞에 있는 여인을 쳐다보았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흑발을 머리 뒷쪽으로 단아하게 묶고 정갈한 차림으로 서있었다. 머리를 묶고 있는 끈은 머리에 끈자국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천을 끈의 아래에 덧대어 놓았다. 옷은 약간 개조된듯한 기모노. 흰색과 연보라빛이 잘 어울리게 배색이 된 현대식 기모노였다.
"일어나셨네요. 나흘동안 일어나시지 않길래 동행자가 많이 걱정하고 계셨답니다"
여인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한동안 드센 여자 텐구들 사이에 부대끼어 있다가 간만에 들어보는 청초한 여성의 목소리였다. 조금은 감동스러운 기분도 들었다.
"나흘...? 젠장...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분명 나는 카라스 텐구들에게서 도망을 치다가 갑자기 넘어졌는데..."
"화살이 어깨에 박혔었어요. 독화살은 아니라 치료하는데 문제는 없었지만, 한동안 의식이 없으시길래 무슨 문제가 있는건 아닐까 싶었죠"
그제야 몸에 둘둘 감아진 붕대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이제와서 느끼는거지만 온 몸의 근육이 조금만 움직일때마다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비단 화살이 꽃힌 등근육뿐만 아니라 온 몸의 근육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려 할때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며 괴로운 신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눈물이 배어나올정도로 찡한 아픔에 얼굴을 찌푸리자 여인이 안절부절 못하며 내 몸을 붙잡았다. 생각보다 꽉 부여잡은터라 가뜩이나 예민한 내 근육을 조여버리는 결과가 되었다. 알이 배긴 부위를 있는 힘껏 누르면 꽤나 아프다는걸 여러분들도 잘 알것이다. 물론 나도 그랬고, 있는 힘껏 비명을 지른후 그대로 침상 위로 엎어져 버렸다.
"일어난것인가? 다행이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누바시리가 안으로 들어왔다. 얼굴이나 팔에 생긴 몇몇 상처를 제외하고는 별 문제가 없어보이는듯한 외모였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예전에 봤을때보다 몇배는 어두워져있었다.
"무슨...얼굴이 왜그래...? 무슨 일이야...?"
좋지 않은 예감을 느끼고 나는 이누바시리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물어보았다.
"카라스 텐구들이 본격적으로 백랑 텐구의 마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미 두개의 마을이 잿더미가 되고 마을의 주민들이 모두 참살당했어...살아 돌아온 백랑 텐구는...없었지..."
눈 앞이 아득해졌다. 옆에 있던 여인또한 입을 가린채 충격에 빠진 눈으로 이누바시리를 쳐다보았다.
"지금 당장은 중심부의 조원들과 연합해서 카라스 텐구들을 막고있지만...녀석들의 공격이 매우 매섭다..."
"그럼 어서 도와줘야지! 이렇게 앉아있을수만은 없는 노릇이라고!"
내가 몸을 일으키려 했을때 근육이 갑작스런 움직임에 비명을 질렀다. '억'하는 작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몸이 무너져 내리자 이누바시리가 고개를 가로젓고는 말을 했다.
"아니. 너는 이제 돌아가. 네가 휘염조로서 할수 있는 일은 다 해주었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말 그대로다. 여긴 백랑 텐구와 인간 마을의 접경지다. 텐구들에게 우호적인 인간들이 모여 만들어진 마을이지. 지금이라면 아마 무사히 인간 마을로 돌아갈수 있을거야...마을로 돌아가서 하쿠레이의 무녀를 찾아. 아마 네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걸 도와줄..."
"헛소리 지껄이지마!"
내가 소리를 지르자 이누바시리가 움찔했다. 머리 위에 달린 두 귀가 쫑긋 치솟고 꼬리가 움찔거렸다.
"원래 네가 살던 세계로 돌려보내주겠다고 했다! 네가 맨 처음 요구하던 조건이 그것이였는데 어째서....이제와서 거부하는것이냐...네 원래 세계가 그립지 않은것이냐!"
"그립지! 물론 그립고 말고! 너무 그리워서 처음으로 놈들을 베고 며칠동안은 원래 세계에 대한 그리움으로 미쳐 쓰러질 지경이였어! 하지만...내가 약속했다고...너를 도와서 네가 이루려는 목표를 이룰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말이야!"
이누바시리가 뒷걸음질 쳤다. 무언가 말을 하려고 입을 달싹거리긴 했지만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가 않았다. 감정이 폭발한 상태였다. 마치 이누바시리와 내가 처음 대면했을때처럼. 하지만 그때와는 달리 머리속의 모든 말들이 또렷히 정리가 되었다. 생각없이 말을 내뱉을수 없었다. 정리가 되지 않더라도 필사적으로 하고 싶은 말의 의미를 또렷하게 전달해야만 한다.
"이제 와서 돌아가라고? 그러면 내가 만든 약속은 뭔데...천랑과 함께 너를 도와서 네 목표를 이룰수 있게 도와주겠다는...내 약속은!"
"...네가 죽을수도 있어서 하는 말이다...애시당초 너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세계의 일이다. 그런 네가 휘말리길 원치 않는단 말이다!"
"휘말린건 이미 카라스 텐구의 발목을 날려버렸을때부터였어! 이미 늦었어! 이젠 관계가 없어지고 싶어도 관계가 없을수가 없게 됬단말이야! 그러니...죽더라도 상관없어! 아니...안죽어! 내가 왜? 너의 목표를 달성 시키고...살아서 내가 살던 세계로 돌아갈거야! 반드시!"
"..."
이누바시리는 말이 없었다. 젠장. 너무 흥분해서 다시 생각없이 말을 내뱉었나?
"...참으로 어쩔수 없는 고집이다..."
이누바시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러고는 어딘가로 잠시 다녀오더니 내 앞으로 무언가를 내던졌다. 내가 쓰던 검과 의복이였다.
"전에 쓰던것보다 한층 더 좋게 개량시켜놓았다. 이도 쉽게 안빠질뿐더러 부러지는 일도 극히 드물테지. 관리만 잘한다면 말이야"
"...그 말인 즉슨..."
"내가 예전에 했던 말...기억하나? 거대한 늑대와 싸우기 전에 했던 말..."
"..."
"살고 싶다면...쟁취하라...그리고 살아남아라!"
이쯤되면 반쯤 허가받은거로 쳐도 되겠지.
이누바시리의 얼굴을 보니 입가에 미소가 가득 지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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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힘들다 힘들어.
점점 원하던 대로 이야기가 흘러가네요.
조만간 8개월전부터 구상해왔던 장면이 써지겠네요!
그렇게 기다리던 장면이 눈 앞에...!
실망시키지 않게 계속 노력해야겠습니다.
근데 대사 너무 오글거려.
이런 대사 내용은 역시 저랑 안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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