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
언제나와 같이 퀭한 눈을 하고 의욕없는 모습으로 터덜터덜. 하루가 멀다하고 죽자사자 차나 커피만 홀짝이며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으니 몸은 축날대로 축나버렸다. 언젠가 이렇게 살다가 생이 끝나버려도 괜찮을거같다는 모습을 하고 코메이지 사토리는 오늘도 차를 우린다. 차를 마시고 있는 와중에도 머리속은 온통 그녀의 여동생의 생각으로 가득차있다.
코메이지 코이시. 언젠가 자신의 눈을 닫고 무의식이 되어버렸다. 존재 자체가 무의식이 되어 사라져버린 동생은 자신의 능력으로도 동생의 마음을 읽을 수도 인지할 수도 없다. 오로지 동생이 원할때만 어느틈엔가 자신의 앞에 나타나서 용건만 간단히 해결한 후 다시 뿅 하고 사라지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가끔은 코이시도 눈을 활짝 뜨고 조금은 귀엽게 행동하는게 좋을텐데. 붙임성 있고...언제나 눈에 잘 띄고...예전처럼 말이야'
하지만 이뤄질리 없지 않은가. 동생은 지금 상황에 매우 만족을 하고 있고 아마 그 이후로 원래대로 돌아올 일 또한 없을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아려오기 시작한다. 어쩌면 자신과 동생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였을지도 모른다는 씁쓸한 생각이 온 몸을 타고 흘러 내린다.
타르처럼 끈덕지게 온 몸에 늘러붙은 검은 생각을 간신히 떼어내고서야 사토리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오랜 시간동안 앉아있던 의자라는것을 알려주듯 의자의 시트는 솜이 꺼져 푹 눌려 앉은 상태였다. 사토리가 찻잔을 들어 커피를 마시려던 찰나.
서재의 문이 활짝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언니! 다녀왔습니다!"
코이시였다. 언제나와 변함없는 복장이였다.
검은 챙의 모자와 노란 리본...자신이 츠지쿠모에게 특별히 부탁해서 만들어낸 예쁜 옷, 그리고 자신을 또렷하게 바라보고 있는 코이시의 제 3의 눈까지...
'...음?'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매한가지였다. 눈이 활짝 뜨여져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토리의 입 안 가득 머금어져 있던 커피가 입 밖으로 주르륵 새어나와 다시 잔 안으로 퐁당퐁당 떨어졌다.
어느날. 동생이 자신의 생각대로 되게 되었다.
==================================================================================================================
"아니 그래도 이상하다고"
사토리가 말했다. 코이시는 변함이 없다. 눈이 떠진것과, 평소의 행동이 예전에 비해 상당히 귀엽게 바뀌고, 예의가 바르게 되고 말 그대로 높은 집안의 아가씨같은 느낌이 들었달까. 마치 예전의 코이시가 그대로 돌아온듯한 느낌이였다.
물론 오쿠와 오린도 좋아했다. 예전의 코이시라면 무의식적으로 오린의 꼬리를 잡고 빙빙 돌리거나, 오쿠의 날개의 깃털을 한개씩 뽑아가는등 상식선 이상의 행동을 하여 뭇 애완동물의 공포의 대상이였기 때문에 이러한 코이시의 모습에 신선한 충격을 받고 다시금 코이시를 따르게 된 애완동물들도 많다.
"언니! 오린이 나를 이렇게 잘 따를줄 몰랐어!"
"그러게. 평소처럼 대하지 않고 잘 대해주니까 좋아하는거겠지?"
사토리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물론 눈이 떠진 만큼 사토리와 코이시는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코이시는 언니가 자신이 원래대로 돌아왔다는것에 대해서 매우 기뻐하고 있었고, 자신 ㄷ한 언니가 기뻐한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기뻐했다. 정말로 행복한 나날이 계속 되었다.
====================================================================================================================
코이시가 눈을 뜬지 일주일이 넘었다. 코이시는 허물 없는 성격으로 지령전의 애완동물이며, 지저의 요괴들까지 아껴주는 존재가 되었다. 이를테면 인기인이랄까? 하지만 사토리는 반대로 집 밖을 나서지 않았다. 물론 지저의 업무가 빡빡한 까닭도 있었고, 코이시가 돌아오면 해줄 저녁밥도 준비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코이시가 외향적으로 갈수록 사토리는 점점 집 밖을 나서는걸 꺼려하게 되었다.
물론 좋은 점도 있었다. 코이시와 함께 밥상에서 밥을 먹다보니 자연스럽게 만성 피로가 사라졌고, 혈색도 좋아졌다. 몇몇 머리가 나쁜 애완동물은 사토리를 못알아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왜 기분이 예전처럼 좋지 않을까? 코이시가 집 안으로 돌아오는 빈도가 적어져서? 자신과 함께 있는 시간이 적어져서? 어째서일까? 기분이 썩 좋지가 않다.
=====================================================================================================================
어느날 하시히메가 찾아왔다. 키득거리며 자신이 강한 질투심에 이끌려 왔다고 했다. 물론 그냥 외롭고 심심해서 가끔은 사람이 많은 장소에 오고 싶었겠거니 해서 온것이라고 사토리는 넘겨짚었다. 하지만 하시히메가 하는 말에 기분을 잡치고 말았다.
"그 강한 질투심. 너에게서 느껴지는걸. 아주 진해. 너무 진한 녹색이야. 마치 독극물처럼 말이야...아아. 아름다워라...부디 그 독같이 진한 녹색빛 질투심에 빠져 죽지 않길 바랄게"
하시히메는 이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
자신이 어째서 기분이 나쁜건지 깨닿는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질투심. 간단한 이유였다. 코이시가 자신보다 애완동물들과 더 많은 시간을 가졌을때, 가끔 지저에서 만난 친구들과 외박을 하고 돌아올때, 미리 저녁밥을 먹고 와서 자신이 만든 밥이 천천히 식어갈때. 이때 느꼈던 모든 감정이 단 하나로 설명된다.
자신은 분명히 코이시를 질투하고 있었다. 점점 지저 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코이시. 그와는 반대로 아직까지 미움을 사며 모든 인요의 공포의 존재가 된 사토리. 하지만 어째서? 코이시도 눈을 떴는데? 왜 자신만? 왜 나만 지저에 틀어박혀서 생활해야해? 어째서? 나는 잘못된거 없는데 나도 친해지고 싶은데 나도 다른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 하고 싶은데 나도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싶은데 나도 친구의 집에서 하룻밤정도 자고 돌아오고 싶은데 나도 가끔은 부모님이 해주신 밥보다 친구의 집에서 밥을 먹고 들어가고 싶을때가 있는데 어째서 자신만? 코이시가 아닌 자신만?
미웠다.
질투났다.
증오한다.
이런 마음을 가질줄 알았다면...
코이시의 눈따위 닫혀버렸으면 좋겠는데.
====================================================================================================================
멀리서 들려오는 강한 원념에 코이시는 머리가 아팠다. 지상에서 언니가 좋아할거같은 비녀를 한쌍 구매후 자신과 언니가 함께 쌍으로 차고 다닐 어여쁜 비녀였다. 집에 돌아와 활기차게 문을 열자마자 집 안 가득 들어찬 무거운 공기와 강한 원념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언니의 목소리였다.
"...언니?"
코이시는 천천히 복도를 걸어 언니가 있을 서재로 향했다.
=====================================================================================================================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한걸까. 사랑스러운 동생인데.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동생인데 당연히 기쁘고 경사스러운 일이 아닌가. 눈따위 닫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 취소다 취소!
"...그랬구나"
사토리의 행동은 거기서 모조리 멈춰버렸다. 생각도, 시간도 모든것이 멈췄다. 코이시가 간신히 떨리는 마음을 붙잡고 입을 열었을때에는 이미 모든것이 멈춘 뒤였다. 그 흔한 지저의 요란한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사토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코이시를 바라보았다.
더 없는 절망감이 코이시를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코이시는 말 없이 서재를 뛰쳐나가 어디론가 달려갔다.
"안돼!"
사토리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코이시를 뒤쫒아갔다.
"안돼! 그런게 아니야! 제발! 언니 말좀 들어줘! 코이시!!"
코이시가 복도끝에 방 하나로 들어갔을때 사토리는 머리속의 불안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제발...제발...제발...부탁드립니다...제발...!"
그렇게 사토리는 방문을 열었다.
===========================================================================================================
"아. 언니! 오랫만이야!"
코이시가 인사했다. 코이시는 변함이 없었다. 옷에 약간의 피가 묻고, 제 3의 눈에 한쌍의 어여쁜 비녀가 꾸깃꾸깃 박혀있어 굳게 닫혀있다는 점만 빼면 예전의 코이시와 전혀 다를게 없었다.
사토리는 그대로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어느날. 동생이 자신의 생각대로 되게 되었다.
----------------------------------------------------------------------------------------------------------------------
질투심이라는게 참 무섭지 않나요.
멀쩡한 사람도 멀쩡하지 못하게 만드는게 질투심이라니깐요.
(IP보기클릭)61.78.***.***
(IP보기클릭)121.64.***.***
연휴라서 연등함 헤헿 | 17.01.27 23:14 | |
(IP보기클릭)14.63.***.***
(IP보기클릭)11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