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렇게 된건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애를 써도 머리가 이해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왜 이 사람들은 내 목에 칼을 겨누고 뭐라고 떠들어 대는걸까. 애당초 집에서 편히 쉬고 있어야할 내가 왜 이런 산속에 있는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 투성이였다. 누군가 내가 잠든 사이에 몰래 이곳으로 나를 옮겨놓은걸까?
아니 불가능한 일이다. 잠귀가 예민한 나로서는 현관문이 달칵 거리는 소리만으로도 잠이 깨버리기 때문에 나를 깨우지 않고 내 집 안으로 들어오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뒤덮혀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던 도중 내 목에 칼을 겨눈 여자가 나에게 뭐라 소리를 쳤다.
"대체 누구냐? 카라스텐구들의 끄나풀이냐?"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모르겠다. 무언가 대답을 하려던 찰나 목을 찌를듯 가깝게 겨눠져있던 칼이 위로 올라갔다. 안도의 한숨을 쉬려던 찰나 칼끝이 점점 멈추지 않고 하늘 위로 올라가 머리위로 쳐들어 올려졌다.
"자...잠깐...!"
내가 뭐라 말도 하기 전에 칼이 번쩍 하며 눈 앞으로 매섭게 내려쳐졌다. 그리고 나는 의식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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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잘나가는 소설가로 어제도 별반 다를바 없이 하루에 정해진 분량을 채우기 위해 컴퓨터를 켜고 숨쉴틈 없이 머리속과 노트속을 꽉꽉 채우고 있던 이야기들을 A4용지 분량의 페이지에다가 쉼 없이 써내려 갔다. 위에서 아래로 히라가나에서 한자로 또는 가타카나로 바뀌며 서서히 이야기를 채워나가는 내 새끼와도 같은 소설들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뿌듯해지는 느낌이 든다. 마치 주린 배를 채워 나가듯 쉼 없이 글자가 채워진다.
어느정도 할당량의 절반쯤 채웠을즘, 느긋하게 해도 시간이 남을거같아 잠시 스트레칭을 할 겸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로 다가갔다. 한동안 일에 너무 치어산것을 증명 하기라도 하는듯 냉장고 안에는 먹다 남은 반찬들이 곰팡내를 피우며 썩어가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한동안 편의점에서 도시락만 사서 먹었었지'
편의점까지 거리는 집과 왕복 15분정도 거리로 조금은 번거롭지만 다녀온 직후 곧바로 전자레인지 안에 넣어서 데워먹을수 있다는 장점 하나때문에 도시락을 자주 먹는다. 아. 하나 더 이야기 하자면 다른 요리들처럼 반찬이 타지 않게 수시로 지켜봐야 하는 한편 냉동 요리나 도시락들은 전자레인지에 넣어두고 뜨끈하게 데워질 동안 나는 느긋하게 의자 위에 앉아 소설을 쓰기만 하면 되니까 시간적으로도 이득이 있다.
곰팡이가 피어난 반찬들을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몰아넣으며 한동안 반찬들에게 무관심 했던 내 자신에게 반성 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게을렀던 내 자신에 대한 한심함(그렇게 심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썩어버린 반찬에 대한 아까움이 교차하며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킬 무렵 책상 위에 놓여져 있던 휴대 전화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였다. 쉬려는 타이밍에 전화라니 마치 내 마음을 읽고 있기라도 한듯한 녀석이였다.
잠깐의 휴식동안 적적함을 달래줄수 있는 한 통의 전화가 이렇게 반갑기가 그지 없다. 게다가 핸드폰에는 담당자나 편집부가 아닌 새 소설을 쓰느라 통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친구 녀석이였다. 반가운 마음에 친구 녀석의 이름을 확인 하자 마자 전화를 받았다.
"왠일이야? 이 시간에 전화를 다 받고"
야마구치 녀석은 언제나 가느다란 목소리로 나에게 이런식의 인사를 건넨다. 우리 둘의 사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평소에 자주 통화를 못받는 사이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야마구치식의 인사이기 떄문에 그렇게 신경이 쓰이지는 않는다.
"그래. 잘 지내고 있지. 그런데 무슨 일로?"
"심심해서 전화했지" 야마구치가 말한다. "안그래도 너네 집으로 놀러가려던 생각이였는데 원고는 다 끝난거야?"
"뭐...일단은 말이지. 아직 이른 낮인데 신기하게 할당량의 절반이 끝나버렸어. 신기하지 않아?"
"네가 분량을 적게 정한거 아니냐?" 야마구치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아니야. 항상 분량은 똑같다고. 매일 150 페이지 이상의 분량을 채우지 않으면 자지도 왠만해서는 먹지도 않는다고"
"150 페이지? 진짜 대단하네. 내가 회사에서 빽빽하게 써서 내는 리포트도 하루 종일 걸려서 30페이지를 넘길까 말까 한데"
야마구치가 대단하다는 어투로 이야기 한다.
"별거 아니야. 이야기를 쓰기전에는 항상 몇달간 이야기를 생각해놓으니까. 쓰는건 별거 아니지"
"그런건가...알았다. 어쨌거나 지금 네 집 앞이야. 만날수 있어?"
"뭐...잠깐 짬내는거라면 괜찮을까? 바람도 쐴겸"
"그럼 역 앞에 술집 알지? 거기로 와"
야마구치 답다. 대낮부터 술집이라니. 목도 조금 칼칼하니 간만에 술을 마시는것도 나쁘지는 않을것 같았다.
"알았어. 그럼 지금 내려갈게"
나는 옷걸이에 아무렇게나 걸려있는 코트를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겨울 기운이 잔뜩 죽은 4월이라 해도 그냥 면티에 츄리닝 바지만 입고 밖으로 나가기에는 쌀쌀한 날씨다. 궁여지책으로 손에 잡히는 옷중 아무거나 입고 나온것 치고는 꽤나 따뜻했다. 현관문을 열고 1층으로 내려가니 말끔하게 옷을 입은 야마구치가 이쪽을 바라보고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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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취기를 안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야마구치의 말에 의하면 잠깐 바이어를 만나고 오는 길에 생각이 나서 들렀다고 한다. 아직 작업이 남아있기에 적당히 마시고 나오려 했지만 분위기에 휩쓸리는 성격상 조금 과하게 마신듯 했다. 술기운 때문인지 잠이 몰려왔다. 아무래도 밤을 세워가며 철야작업을 한데다 술까지 마셨으니 잠이 오는것은 당연한듯 싶다.
시계를 보니 시간은 막 5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두시간쯤 자고 나서도 할당량을 채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였다. 나는 쇼파에 드러누워 핸드폰에 알람을 2시간뒤로 맞춰두고 잠에 빠져 들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찬바람이 볼을 스치고 지나가서 잠이 깼다. 은은한 풀냄새와 나무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주변에서는 웅성거리는 말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창문이 열려있나 싶어서 창문을 닫기 위해 눈을 떴다. 몸을 일으키고 주변을 바라봤을때 나는 당혹감을 감출수 없었다. 분명히 쇼파에서 자고 있어야 할 나는 숲 한가운데에서 이상한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상태에서 잠에서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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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연재할 소설. 물론 전에 연재하던 소설과 병행해서 쓸 예정입니다. 하나를 쉰다거나 때려친다는 일은 전혀 없으니까 걱정 하지 말아!
그냥 불침번이나 근무 나가서 가끔 잡생각 하던중 텐구 이야기도 괜찮을거 같아서 한번 써보기 시작한건데. 정말 충동적으로 쓰기 시작한 소설이라서 연중을 할 가능성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뭐...지금 쓰고 있는 소설 전부 연재가 중단 되지 않게 노력 해야겠죠!
아무쪼록 새 소설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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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