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아틀러스다운 판타지 RPG, 메타포: 리판타지오
명품은 명장의 손끝에서 탄생한다. 소설이든 영화든 게임이든 그 창작자가 누구냐가 기대치를 가늠하는 첫 번째 척도다. JRPG 명가 아틀러스의 간판도 무시할 수 없겠으나 신작 ‘메타포: 리판타지오’로 쏠리는 뜨거운 관심은 하시노 카츠라, 소에지마 시게노리, 메구로 쇼지 세 사람의 명성이 주효했다. 오늘날 아틀러스를 상징하는 기획, 미술, 음악의 거장들이 재결성한 완전 신규 IP. 그것도 현대극이 아닌 정통 판타지 RPG로의 도전이니 주목받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워낙 오랫동안 공들인 대작이고 화제성이 큰 만큼 아틀러스도 게임을 띄우는 데 진심이다. 자사 브랜드 35주년을 기하여 히라오카 나오토 전무이사 등 핵심 관계자가 직접 일본, 중국, 한국 오프라인 이벤트에 참석해 뭇 게이머와 만났다. 현장 시연 역시 성황이었는데, 설문 결과 ‘재미있다’ 97%와 ‘구매하고 싶다’ 96%라는 압도적 호평이 나왔다. 본지는 좀 더 많은 분량을 즐길 기회가 닿아 확인 가능한 시스템 및 콘텐츠 소개는 물론, 초반부서 받은 인상을 전하는 바다.
[대담] 아틀러스 브랜드 35주년 그리고 ‘메타포: 리판타지오’의 미래
아틀러스가 선보이는 완전 신작 IP ‘메타포: 리판타지오’
일찍부터 세 거장의 재결성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국왕 시해와 선거 마법, 그리고 환상 소설이란
게임을 시작하면 왕도로 향하는 주인공과 요정 갈리카가 도적 무리에 습격 당하며 꽤 빠르게 조작이 넘어온다. 입학 수속 등으로 도입부가 상당히 긴 ‘페르소나’나 ‘진 여신전생’과 비교되는 부분. 아무래도 배경 설정부터 모든 게 새로운 독자 세계관이라 구구절절 설명하긴 정보량이 너무 많기 때문이 아닐까. 그 대신 주인공이 어째서 왕도로 왔는가, 무엇을 위해 누구와 만나야 하는가 처럼 꼭 알아야 할 내용은 갈리카와 대화나 과거 회상을 통해 조금씩 풀어내는 식이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메인 스토리를 소개하자면 이러하다. 작중 무대는 여덟 종족과 세 나라가 모여 형성된 유크로니아 연합 왕국. 얼마 전 국왕 유트로다이우스 5세가 서거하여 민심이 흉흉한 가운데 일부 충성파는 군부의 실력자 루이가 범인이라 의심한다. 그는 이미 수년 전 왕자 암살을 획책했다는 혐의가 있기 때문. 다만 왕자는 치명적인 저주에 걸린 채 아직 살아있으며 치료 방법은 술자를 제거하는 것뿐이다. 이것이 왕자의 친우인 주인공이 왕도로 온 이유다.
국왕 시해라는 대사건으로 혼란스러운 왕도 그랑 트라드
설정을 쏟아내기 보다 대화 등으로 자연스레 전달한다
물론 평범한 소년 혼자서 강력한 검사이자 마도사 루이의 상대가 될 리 없다. 주인공이 맡은 역할은 또다른 동지에게 계획을 설명할 전령. 다만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사건이 터져 인간이라 불리는 이형의 존재와 싸우고 마음속 영웅상 아키타이프가 각성하기도 한다. 결국 당초 접선하려던 동지 그라이어스뿐 아니라 위장 입대 시 친구가 된 젊은 귀족 스트롤까지 함께 왕도로 돌아온다. 그리고 국왕 장례식서 이미 트레일러 등으로 잘 알려진 선거 마법이 발동하게 되는 흐름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미심장한 요소는 왕자가 쓰러지기 전 주인공에게 남긴 환상 소설이다. 왕족이니 귀족이니 계급제나 종족간 차별이 존재치 않는, 마법의 도움 없이도 웅장한 도시를 건설한 어느 세계에 관한 내용. 주인공이 보기에 허무맹랑한 판타지일 뿐이지만 그 묘사는 어딘지 우리가 사는 현대와 닮았다. 즉 우리에게 ‘메타포: 리판타지오’가 환상이듯 작중에서 보는 현대도 환상적이란 설정이다. 과연 아틀러스는 ‘메타포: 리판타지오’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픈 걸까.
머리에 총 쏘고 가면을 뜯더니 이제 심장까지 뽑는구나
우리에게는 그들이 환상, 역으로 그들에게는 우리가 환상
바쁜 여행길, 후원자를 모으고 왕의 자질을 길러라
누구라도 하시노 카츠라, 소에지마 시게노리, 메구로 쇼지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페르소나’ 시리즈일 터다. 필자 역시 세 거장이 자신들의 대표작을 얼마나 의식할지, 되려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고자 전혀 새로운 기획에 도전할지 궁금했다. 그러다 시연을 마치고 든 감상은 당초 예상보다 더 전작들의 향취가 짙다는 것. 다만 지난 성공의 답습처럼 부정적인 느낌이 아니라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보완하는 영리한 변주라 평하고 싶다.
일례로 올해 초 만난 아틀러스 와다 카즈히사P가 ‘페르소나’의 특징으로 꼽은 캘린더 시스템이 ‘메타포: 리판타지오’도 있다. 전자가 한 학기 즉 일년간 생활을 그린다면 후자는 선거 결과가 발표되는 영웅의 날까지 한정된 유세 기간이 주어진다. 선거 마법이 막 발동했을 때 주인공의 후보 순위는 8121등에 불과하지만 장갑 전차를 타고 왕국 각지서 어려운 이들을 도울수록 영향력이 커진다. 그 과정에서 마을간 이동은 물론 다양한 활동이 모두 하루하루 시간을 흐르게 한다.
유세 기간과 왕자의 병세 악화로 인한 바쁜 여행길이다
메인 스토리 외에 활동은 자유이나 소요 시간을 고려하자
따라서 어떻게 해야 시간을 알차게 쓸지는 오롯이 본인 선택에 달렸다. 메인 스토리와 맞물려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일정도 있으나 그사이 비는 시간은 대부분 자유다. 하루는 낮과 밤으로 구분되며 동료나 후원자와 시간을 보낼지, 서브 퀘스트를 완수할지, 마을이나 장갑 전차서 가능한 부가 활동을 할지 직접 결정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곧 동료, 후원자와 유대 강화나 왕의 자질인 담력, 견식, 포용력, 설득력, 상상력 성장으로 이어진다. 마찬가지로 ‘페르소나’가 떠오르는 지점이다.
다만 과정이 비슷하더라도 거기서 누리는 경험과 즐거움은 퍽 다르다. ‘페르소나’가 학교와 주변 상점가, 지하철 등 일상적인 장소들로 쥬브나일 판타지를 실현한다면 ‘메타포: 리판타지오’는 마치 한 편의 로드무비처럼 연출된다. 장갑 전차에 올라타 드넓은 세상을 여행하고 새로운 마을, 사람과 접하는 와중에 자못 놀라운 비경을 발견키도 한다. 즉 ‘페르소나’가 누구나 겪은 학창 시절의 향수, 친숙함을 주는 반면 ‘메타포: 리판타지오’는 생경함에서 오는 경의로움을 선사한다.
각종 활동으로 자질을 길러, 천재 카리스마 사나이 왕이 되자
그 와중에 놀라운 풍경을 마주하는 것 또한 여행의 묘미
익숙한 듯 새로운, 패스트 & 스쿼드로 발전된 전투
주인공은 동료, 후원자와 교감함으로써 그가 품은 영웅상 즉 아키타이프를 얻는다. 기술 발동 시 멋지게 소환되는 모습이 ‘페르소나’스러워도 실제로는 클래스 체인지 시스템에 가깝다. 아키타이프 자체야 마을 등 안전 지역서 자유롭게 교체되지만 서로 성장치까지 공유하진 않으므로 너무 자주 바꾸다 망하는 수가 있다. 적절한 시점에 상위직으로 올라가려면 육성을 게을리하지 말자. 유대가 깊어져 아키타이프를 해금하더라도 요구 랭크에 못 맞추면 이수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하지만 아키타이프는 여느 RPG의 클래스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아키타이프를 이수했는지에 따라 필드 액션, 장비, 스킬셋, 파티서 맡는 역할이 모두 바뀐다. 캐릭터의 전투력 역시 본인과 아키타이프 능력치를 합산한 값이다. 원한다면 우락부락한 그라이어스를 매지션으로, 여리여리한 주나를 나이트로 쓰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예 파티 전원을 거너나 몽크로 채우는 극단적인 조합이 특정 상황에서 공략의 열쇠가 될 수 있는 자유도 높은 시스템이다.
아키타이프는 여느 RPG의 클래스 개념으로 이해하면 좋다
교체는 자유롭지만 상위직을 위한 꾸준한 육성도 중요하다
전투 방식은 ‘진 여신전생’과 ‘페르소나’로 익숙한 프레스턴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여러 속성이 존재하고 저마다 강점, 약점을 지녀 이를 찌르거나 찔리는 일진일퇴가 반복된다. 여기서 행동 횟수는 화면 좌측 상단에 결정 모양 UI로 표시되는데, 약점 찌르기에 성공하면 차례가 한 번 더 돌아온다. 대신 공격이 상대에게 가드되거나 흡수 당하면 결정을 잃고 반대로 약점이 찔릴 경우 적들 역시 추가 행동하므로 순식간에 전황이 위태로워진다. 노멀 난이도조차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처럼 긴장감 넘치는 공방이야말로 프레스턴의 묘미지만 그렇다고 자잘한 싸움까지 매번 전력하긴 힘들다. 아군이 우세하더라도 자칫 약점을 찔리면 소모전으로 흐르니 게이머나 주인공 일행이나 피로가 누적된다. 그래서 ‘메타포: 리판타지오’는 적과의 전력차를 세 단계로 나눠 손쉬운 상대는 필드 액션만으로 처치 가능토록 했다. 대등하거나 버거운 상대는 커맨드 배틀에 앞서 약화시키는 정도가 한계인데, 괜히 무리하다 얻어맞으면 선수를 뺏긴 채 맞붙게 되니 주의하자.
기존 아틀러스 작품을 즐겼다면 익숙할 프레스턴 시스템
전력이 훨씬 우세하다면 필드 액션만으로 처치 가능하다
안팎의 거장이 함께 만든, 눈과 귀가 즐거운 게임
끝으로 ‘메타포: 리판타지오’를 대체 불가능한 경험으로 만들어주는 소에지마 시게노리의 미학과 메구로 쇼지의 음악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소위 중세풍 판타지도 여러 갈래가 있을 텐데, 그 가운데 ‘메타포: 리판타지오’는 상당히 음울한 편에 속한다. 초장부터 국왕 시해가 벌어지고 계급, 종족간 반목이 격화되는데 심지어 주인공은 가장 핍박 받는 처지니까. 전체적인 풍광도 화사함과 거리가 멀지만 다행히 소에지마 시게노리의 고풍스러운 디자인이 균형을 잡아준다.
아무래도 ‘페르소나’ 같은 현대극은 너무 튀는 의상을 넣기 힘들다. 지나치게 화려한 디자인 탓에 해당 캐릭터가 괴짜로 비칠 우려가 있기 때문. 그래서일까, 현대극의 한계에서 벗어난 소에지마 시게노리는 ‘메타포: 리판타지오’서 정말 다채롭고 매력적인 디자인을 잔뜩 쏟아냈다. 1960년대 패션 시류였던 스윙잉 런던서 따온 의상, 문양, 장식이 자못 현대적이게도 환상적이게도 느껴진다. 과연 아틀러스다운 판타지 RPG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그 나름의 대답인 셈이다.
무척 화려하고 감각적인 디자인, 과연 소에지마 시게노리
장갑 전차도 확실히 야마시타 이쿠토의 손길이 느껴진다
여기에 게스트 아티스트도 호화롭기 그지없다. 뒤집힌 피라미드 형태의 독특한 구조물로 대표되는 배경 컨셉은 ‘니어: 오토마타’로 유명한 코다 카즈마 솜씨다. 여행길의 또다른 동반자 장갑 전차를 그려낸 이는 다름아닌 ‘신세기 에반게리온’ 메카닉 디자이너 야마시타 이쿠토. 더불어 아틀러스 한 지붕 식구로 ‘세계수의 미궁’ 캐릭터 디자인을 책임지는 히무카이 유지가 몇몇 아키타이프를 디자인했다. 뿐만 아니라 이 모든 창작물이 고품질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하여 곳곳에 삽입됐다.
음악 역시 상상 이상이다. 종종 게임 개발사이자 음반사라는 농담을 듣는 아틀러스지만 이번에는 특히 공들인 기색이 역력하다. 메구로 쇼지로선 여러모로 도전적인 작업이었을 듯한데, 그간 명성을 쌓은 ‘Burn My Dread’나 ‘Wake Up, Get Up, Get Out There’ 등과 확연히 다른 작풍이기 때문이다. 기존 곡들이 빠르고 통통 뛰는 박자로 감각적인 선율을 들려줬다면 ‘메타포: 리판타지오’ OST는 극적이고 종교적인 바로크 음악에 가깝다. 가벼운 곡도 없지 않으나 대체로 장중하다.
참고로 BGM은 실제로 그때그때 마법으로 틀어준다는 설정
스토리상 중요한 대목마다 고품질 애니메이션이 삽입됐다
아틀러스다운 판타지 RPG, 새로운 대표작 될까
앞서 언급했듯 ‘메타포: 리판타지오’는 변주라는 표현이 퍽 적절한 작품이다. 세계관도 세부 설정도 인물도 음악도 모든 게 새롭지만 어딘지 ‘진 여신전생’과 ‘페르소나’가 잔상마냥 겹쳐 보인다. 경우는 조금 달라도 소싯적 ‘진 여신전생’서 ‘페르소나’, ‘스트레인지 저니’, ‘아바탈 튜너’, ‘데빌 서바이버’, ‘데빌 서머너’가 파생되고 다시 ‘소울 해커즈’, ‘쿠즈노하 라오도우’로 이어진 일련의 계보와 닮았다. 실제로 디아, 리캄, 카자, 운다 같은 특유의 마법 체계 역시 본작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러 의미로 ‘오늘날 아틀러스를 상징하는 세 거장이 도전하는 판타지 RPG'란 기대치에 부합한달까. 필자도 서울 팝콘 시연보다 몇 시간 더 플레이했을 뿐이라 단언하기 조심스러우나 일단 첫인상은 그렇다. 물론 큰 골조는 공유하더라도 ‘페르소나’ 학교 생활, ‘진 여신전생’ 악마 회화 및 합체처럼 ‘메타포: 리판타지오’만의 대체 불가능한 매력이 존재한다. 본작이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둔다면 장차 ‘진 여신전생’, ‘페르소나’와 함께 아틀러스를 이끌 트로이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여러 의미로 ‘페르소나’ 제작진의 판타지 RPG다운 결과물
‘진 여신전생’, ‘페르소나’와 아틀러스의 트로이카가 될까
|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