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GS] 스타 오션 더 세컨드 스토리 R, 명작을 되새기는 또다른 방법
흔히들, 명작의 가치는 세월 앞에 퇴색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제아무리 뛰어난 작품이라도 케케묵은 외형 탓에 다가서는 이가 드물다면 무슨 소용일까. 혹은 방식이나 기술의 변화로 고전을 접하고 싶어도 더는 접할 방법이 없다면 말이다. 그리하여 게임 업계는 적게는 수 년에서 이십 년 이상 묵은 옛 명작을 되살려내고자 크게 두 가지 방법을 취한다. 얼마 전 발매된 ‘바텐 카이토스’나 ‘사가’ 시리즈가 그러하듯 현세대기에 맞춰 HD 리마스터를 내놓거나, ‘파이널 판타지 7 리버스’처럼 게임의 모든 측면을 일신하여 최신작으로 재탄생시키거나.
리마스터와 리메이크는 방향성이 다르므로 칼로 베듯 뭐가 더 낫다고 평하기 어렵다. 리마스터가 소싯적 원작의 감동을 고스란히 느끼긴 좋지만 자칫 무성의한 돈벌이로 전락하기 쉽다. 반면 리메이크는 제작비와 시간이 훨씬 많이 드는데다 최악의 경우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너무 게으르거나 너무 위험천만한 셈. 그렇다면 제3의 길은 없을까. 오는 11월 2일 발매되는 ‘스타 오션 더 세컨드 스토리 R’은 이 문제에 대해 퍽 괜찮은 절충안처럼 보인다. 국제게임쇼 TGS 2023을 앞두고 무료 배포된 체험판을 통해 본작의 면면을 살펴봤다.
고전 명작의 두 번째 리메이크 '스타 오션 더 세컨드 스토리 R'
지난 15일 배포된 체험판을 통해 일신된 게임성에 대해 살펴봤다
구년묵이가 아닌 감성으로 다가오는 그래픽
금번 리메이크의 원형, 그러니까 ‘스타 오션 더 세컨드 스토리’는 1998년작이다. 게임 그래픽이 점차 Full 3D로 넘어가던 과도기라(저 유명한 ‘FF7’이 97년에 나왔다) 도트 캐릭터가 프리렌더링 필드를 뛰어다닌다. 배경만 3D지 실은 2D 게임에 가까워 화면 구도나 시점을 조정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3D 특유의 심도를 활용한 작품이 여럿 나왔고 ‘스타 오션 더 세컨드 스토리’ 역시 전투 시 그러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토세 소프트웨어가 2008년 ‘세컨드 에볼루션’으로 리메이크했는데, 밸런스만 손봤을 뿐 그래픽은 거의 그대로 뒀다.
토세야 PSP 이식하며 겸사 겸사였으니 그렇다 치고, 다시금 15년이 흐른 시점에 두 번째 리메이크는 어떨까. 당연히 Full 3D일 듯하지만 본작을 개발한 젬드롭스는 이번에도 2D 캐릭터, 3D 필드를 고수했다. 배경 자체는 완전히 새롭게 만들었고 광원을 비롯한 시각효과의 발전도 눈부시다. 그럼에도 월드맵을 제외한 대다수 필드서 시점 고정이라니. 최대한 잘 봐줘도 ‘파이널 판타지 7’처럼 환골탈태는 아닌데, 딱히 옛날 게임으로 적당히 우려냈다는 인상도 들지 않아 흥미롭다. 심미적 만족도는 ‘옥토패스 트래블러’ 같은 HD-2D 신작과 견줘도 좋을 정도다.
2D 캐릭터, 3D 필드를 고수하면서 만족스러운 비주얼 뽑아냈다
여전히 고정 시점이지만 화면 구도와 비율이 원작보다 자연스럽다
과거 프리렌더링 필드가 인물과 배경의 비율을 따질 세 없이 그저 오밀조밀했다면, ‘스타 오션 더 세컨드 스토리 R’은 원작 감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오브젝트 크기를 키우고 세밀한 묘사까지 보탰다. 특히 빛 표현이 훌륭하여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쬐는 햇볕과 시냇물에 비친 월광이 무척 아름답다. 배경만 따로 노는 게 아니고 도트 캐릭터에도 셰이딩이 적용되어 부드럽게 섞인다. 건물 내에서 층을 오갈 때 곧장 배경이 바뀌는(현 시점에선 당연한 기능이지만서도) 등 편의성도 향상됐다. 여기에 사쿠라바 모토이가 직접 어레인지한 BGM이 은은히 흐른다.
물론 세상 모든 고전이 ‘파이널 판타지 7’ 수준으로 리메이크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만한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는 건 스퀘어에닉스뿐이고, 거기서도 ‘파이널 판타지 7’이기에 가까스로 승인됐지 싶다. 무엇보다 중소 규모 외주사가 섣불리 Full 3D 리메이크를 시도하다 벌어진 대참사를 이미 몇 차례나 목도한 터라. 제작비든 시간이든 감당 가능한 범위에서 썩 괜찮게 뽑힌 ‘스타 오션 더 세컨드 스토리 R’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다가온다. 90년대 중반을 풍미했던 여러 2D 캐릭터, 3D 필드 게임이 여기서 부활의 단초를 찾기 바란다.
캐릭터는 도트일지 몰라도 스킬 이펙트가 화려해 보는 맛이 있다
월드맵에선 또 시점 회전이 된다. 여행의 설렘이 배가되는 느낌
갈아엎는 대신 새로운 요소로 더욱 호쾌하게
우선 눈길이 가는 그래픽부터 짚긴 했으나 사실 ‘스타 오션 더 세컨드 스토리 R’서 그보다 높이 평가하고픈 지점은 향상된 전투 시스템이다. 대대로 ‘스타 오션’ 시리즈는 간단한 조작으로 상쾌하고 화려한 액션을 즐길 수 있음을 강조해왔다. 당시 개발사 트라이에이스의 중핵이 ‘테일즈 오브 판타지아’를 만든 울프팀 출신이라, 적과 인카운터 시 실시간 액션으로 이행하는 특유의 전투 시스템을 이들도 똑같이 계승 및 발전시켰다. RPG는 곧 턴제로 통하던 시절에 ‘테일즈 오브’와 ‘스타 오션’이 선보인 날랜 액션은 어느 쪽이건 경쟁력을 갖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적잖은 세월이 흘러 작금의 게임 업계서 RPG와 실시간 액션이란 더는 참신할 게 없는 뻔한 조합이 됐다는 것. ‘스타 오션 더 세컨드 스토리’를 시리즈 최고작으로 추켜세울 때 반드시 언급되는 훌륭한 스토리와 상쾌한 액션 가운데 하나가 무의미해진 셈이다. 이에 젬드롭스는 쉬이 포기하거나 무리하게 원작을 갈아엎는 대신 오래된 건물에 골조를 보강하듯 전투를 위한 몇몇 신규 요소를 추가했다. 대표적으로 브레이크 시스템의 경우, HP 상단에 표시된 실드가 전부 깎이면 잠시간 기절하며 피해량이 증가하는 식으로 공방에 새로운 목표를 주었다.
단순히 공격을 퍼붓는 게 아니라 효과적으로 실드를 깎는 게 핵심
손맛 좋은 저스트 카운터, 그야말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뿐만 아니라 달려드는 적을 완벽한 타이밍에 회피 시 저스트 카운터가 발동, 상대 뒤를 잡음과 동시에 실드 하나를 즉시 파괴하므로 컨트롤의 필요성이 훨씬 커졌다. 적의 몸이 붉게 빛나면 곧 회피하라는 신호인데, 실패하면 역으로 자신이 브레이크되므로 허투루 남발할 수 없다. 이외에도 필살기 타입이 HP 특화, 밸런스, 브레이크 특화로 세분화되고 같은 버튼을 연타하면 강력한 연속 공격을 구사하는 링크 콤보가 생겼다. 끝으로 어설트 액션은 격투 게임 장르의 어시스트 캐릭터와 비슷한 요소로, 레티시아 공주처럼 타 시리즈 주인공이 찬조 출연한다.
본래 ‘스타 오션 더 세컨드 스토리’는 소싯적 RPG가 대저 그러하듯 지난한 노가다를 요했다. 특히 초반부가 불합리할 만치 어려워 3D 필드의 허점을 활용한 비기 아닌 비기가 나돌 정도였다. 그걸 토세가 ‘세컨드 에볼루션’을 통해 한 차례 조정한 바 있는데, 이번 작품은 98년 원작이나 2008년 리메이크 중 어느 쪽과도 확연히 다르다. 레벨 자체는 메인 스토리를 따라가며 겪는 전투만으로(억지로 심볼 인카운터를 죄 피하지 않는 한) 수월히 오르되, 상술한 컨트롤 요소로 난이도를 적절히 유지한다. 신세대 게이머에게 추천해도 좋을 세련된 성장 곡선이다.
더는 괜한 노가다 없이, 메인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으로 충분하다
어설트 액션을 통한 타 시리즈 주인공의 참전도 퍽 반가운 신요소
그 시절 ‘스타 오션’을 느끼는 최고의 방법
필자가 흠모하는 고전의 매력 중 하나는, 이제와선 채산 때문이든 규모 때문이든 더는 나오기 힘들 법한 기획이 당시만해도 가능했다는 거다. ‘스타 오션 더 세컨드 스토리’는 클로드뿐 아니라 레나도 주인공으로(이른바 더블 히어로 시스템) 누구로 플레이하느냐에 따라 시나리오가 미묘하게 다르다. 여기에 파티원과 떨어져 행동하는 프라이빗 액션, 이를 통해 분기하는 멀티 엔딩까지 1회차 플레이만으로 모든 이벤트를 보는 게 어려울 정도로 풍성한 볼륨을 자랑한다. 셀린, 애슈턴, 프리시스 등 동료도 여럿이고 누굴 영입할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스타 오션 더 세컨드 스토리 R’은 원작의 가치를 온전히 간직하며 낡고 불편한 부분만 적절히 최신화한 훌륭한 리메이크다. 감성으로 용인할 수준까진 끌어올린 그래픽과 여느 액션 RPG와 견주어도 꿇리지 않는 전투 시스템 덕분에 꼭 레트로 마니아가 아니라도 충분히 권할 만하다. 패스트 트러블 등 편의 기능 역시 이 마을에서 저 마을이 아니라 각 상점 앞까지 보내줄 만큼 신경을 썼다. 이번에 배포된 체험판은 게임의 첫인상을 가늠하기에 무리 없을 약 3시간 분량이며 향후 제품판으로 연동도 가능하다. 모쪼록 가벼운 마음으로 즐겨보길 추천한다.
클로드와 레나의 시나리오가 다르니 모쪼록 양쪽 다 플레이하길
체험판 데이터가 제품판으로 연동되니 주저 없이 내려받으시라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