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함의 리얼리즘,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 중간평
※ 본 기사는 SIEK 리뷰 코드로 작성하였습니다. 게임을 하기 전에 읽을 수 있도록 스포일러를 배제하였으나, 평가를 위한 최소한의 내용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영상 및 스크린샷은 제공 받은 것입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전세계 게이머가 기다려온 너티독 신작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The Last of Us Part 2)’가 전작으로부터 7년여만인, 오는 6월 19일 정식 발매된다. 전작이 PS3 황혼기를 상징하는 작품이라면 이번에는 PS4 세대 끝자락에서 그간의 정수를 살뜰히 담았다.
12일 오후 4시, 글로벌 리뷰 엠바고가 해제되며 국내외에서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에 대한 평가가 쏟아지는 중이다. 본지 역시 SIEK로부터 받은 리뷰 코드로 게임을 즐기고 분석하였으나, 여기서는 일단 정식 리뷰가 아닌 중간평으로 갈음하고자 한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대단히 정서적인 작품으로, TPS로서 높은 완성도만큼이나 서사의 비중이 매우 크다. 따라서 (향후 게임을 즐기는데 악영향을 끼칠)스포일러를 피하는 동시에 깊이 있는 비평을 적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이에 중간평은 대략적인 감상 위주로 작성하고, 게임 출시 후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고 정식 리뷰를 추가 발행할 예정이다.
리얼리즘을 추구하다
그러면 전작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더 라스트 오브 어스’를 관통하는 하나의 중심축을 꼽으라면 역시 ‘리얼리즘’일 것이다. 기생균이 창궐하여 문명이 쇠락한 세계에서, 플레이어는 위대한 전사나 영웅이 아닌 한 명의 생존자로서 힘겹게 난관을 헤쳐간다.
도처에 도사린 감염자들은 일격에 플레이어를 죽일 수 있으며 약탈자의 흉탄 한 방이면 뒤로 거꾸러져 반격조차 쉽지 않다. 총알과 붕대를 비롯한 보급품은 만성적으로 부족하고 급한데로 주워 든 각목이나 파이프도 두어 번 휘두르면 쓸모 없는 폐품 쪼가리로 변한다.
게임의 모든 요소는 이러한 리얼리즘의 기반 위에 세워졌다. 가령 교전 와중에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가방을 열고 무기를 바꾼다든가 소모품 제작에 꽤나 시간이 드는 부분이 그러하다. 난해하다면 난해하고 번거롭다면 번거로운 특유의 십자키 UI가 바로 여기서 나왔다.
만약 ‘더 라스트 오브 어스’가 여느 최신 TPS처럼 가볍고 편리한 플레이를 지원했다면 제아무리 치열한 서사가 깔려도 플레이어가 그걸 피부로 느끼기 어려웠을 터이다. 치열한 게임 플레이와 치열한 서사가 만났을 때 비로소 ‘더 라스트 오브 어스’의 진가가 드러난다.
전작의 계승과 발전
이러한 치열함의 리얼리즘은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에 이르러 더욱 만개했다. 인물의 성격과 행동거지부터 배경 묘사, UI, 시스템 등 게임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리얼리즘이란 기반 위에 견고하게 쌓아올려졌다. 작은 부분 하나에도 ‘그럴싸하다’는 생각이 들도록.
기본적인 조작 체계나 게임 방식은 전작과 별반 다르지 않다. 새로이 근접 회피(L1)와 엎드리기(○ 길게 누르기)가 추가되었으나, 게임 플레이의 궤를 바꾸기보다는 기존 방식에 깊이를 더한 것에 가깝다. 한편으로 전작의 조엘보다 체구가 작고 기민하게 대처하는 엘리의 특성을 강조해주는 액션들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할 액션은 단연 근접 회피다. 회피 자체는 타이밍에 맞춰 버튼을 누를 뿐인 간단한 방식이지만 다소 밋밋하던 근접 공방을 크게 개선해줬다. 마치 권투에서의 위빙(Weaving)처럼 순간적으로 상체를 틀어 공격을 흘리는데, 주위 환경과 상호작용이 매우 정밀하여 그때그때 자연스러운 대처를 보여준다. 적의 무기를 빼앗는 것도 그중 하나다.
이외에 각종 콘텐츠도 후속작에 걸맞은 업그레이드를 거쳤다. 훈련 교범이란 형태로 구현된 스킬 트리는 캐릭터당 5개로 늘었고, 각각 첫 번째 스킬부터 순차적으로 획득하도록 바뀌었다. 몇 개인가 총기가 추가되었으며 특히 근접 무기가 다양해졌다. 전반적으로 큰 호평을 받은 전작의 핵심 게임 플레이를 굳이 비틀기보다 향상시키는데 집중한 모습이다.
철근 콘크리트의 정글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의 발전상을 제대로 느끼려면 엘리보다 그녀를 둘러싼 세계, 즉 레벨 디자인을 봐야 한다. 무성한 초목에 뒤덮인 시애틀은 그야말로 철근 콘크리트의 정글이다. 일견 처연한 아름다움이 느껴지지만 그 속에는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게임에 구현된 시애틀은 대단히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여기서 현실성이란 두 가지 의미다. 첫째, 포토 리얼리즘에 근접한 엄청난 수준의 그래픽이다. 이미 많은 영상과 스크린샷이 공개되었으니 무슨 말을 더 보탤까,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PS4 사상 최대치의 그래픽을 뽑아냈다. 그러면서도 게임 내내 고른 품질과 안정적인 프레임까지 유지한다.
둘째, 치밀하게 설계된 구조 덕분에 게임 맵이라는 작위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전작처럼 선형적인 구조를 택하면서도 각 구간의 맵 크기를 확장하여 세미 오픈월드 같은 느낌을 준다. 이를 통해 게이머는 진행 경로를 어느정도 선택할 수 있으며,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불필요한 교전을 피하거나 추가 보급품을 획득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게임이 게임으로 성립하기 위한 맵 구조와 현실적인 지형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막혔거나 말도 안되게 이어진 부분이 나올 수 있다. 심지어 본작은 그 흔한 미니맵조차 없지 않나. 사실 미니맵은 게이머뿐 아니라 개발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명확히 알려주는 편이 레벨 디자인에 수월하니까.
그런데 너티독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게임 속 시애틀은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그곳에 존재할 뿐 아니라 밀도 높은 레벨 디자인까지 갖췄다. 맵 구석구석 영리하게 숨겨진 수집품과 간단한 퍼즐 요소는 탐험욕을 부추기고, 적당히 털고 적당히 가다 보면 어느새 다음 구간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감탄을 자아낸다. 혹시 모를 길치를 위해 동료를 통한 힌트도 제공한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자. 슈터로서 완성도가 훌륭하고 레벨 디자인이 치밀하다…는 정도로는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에 대한 정당한 평가라 할 수 없다. AAA급 게임의 때깔이 상향 평준화되어가는 작금에도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여타 경쟁작과 확연히 다른 인상을 남긴다. 결코 그래픽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더 와닿는 건 디테일의 차이다.
이걸 어떻게 적어야 좋을까. 엘리가 걷고 달리고 서고 앉고 엎드리고, 이따금씩 어깨를 떨고 손목을 주무르고, 입수하고 헤엄치고, 말을 타고 밧줄을 던지고 사다리를 오르는 모든 동작과 그 연결이 극도로 자연스럽다. 하다못해 수집품을 들었을 때 손전등 불빛과 손톱에 낀 때까지. 카메라가 등 뒤에 달렸음에도 상황에 따른 엘리의 표정 변화를 일일이 다 구현하기도 했다.
어디 엘리뿐이랴. 동료가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누고 어느정도 속도로 따라와서 어디에 서있을지 모두 계산된 것처럼 부자연스러움이 단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흔히 게임에서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특정 지역에 들어서며 다른 음성으로 앞선 대화가 잘리는, 그런 실수조차 여기선 찾아볼 수 없다. 마치 그것까지 고려한 듯 대화의 시작 시점과 길이가 참 적절하다.
게임을 하다 보면 지나가던 바닥이 무너진다든가 화면 밖에서 갑작스레 감염체가 덮쳐오는 등, 미리 짜여진 컷신으로 넘어가는 지점이 종종 나온다. 이때도 게임 플레이에서 컷신으로 넘어가고 다시금 컷신에서 게임 플레이로 복귀하는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어디까지가 컷신이고 어디서부터 플레이인지 모르겠다’는 오글거리는 미사여구가 여기선 실화인 셈이다.
상술한 전투의 리얼리즘, 레벨 디자인의 리얼리즘, 그리고 놀라운 디테일이 합쳐져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를 여타 AAA급 게임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린다. 중요한 것은 강박적인 ‘리얼리즘을 위한 리얼리즘’이 아니라, 이 리얼리즘이 실제로 특유의 게임성을 창출하는 원동력이란 점이다. 게임이란 결국 재미있어야 하고, 틀림없이 본작은 무척 재미있다.
증오와 복수의 연쇄
앞서 언급했듯 치열한 게임 플레이와 치열한 서사가 만나야 비로소 ‘더 라스트 오브 어스’다. 리얼리즘의 기반 위에 쌓아올린 견고한 게임 플레이는 그 어떤 무겁고 처절한 이야기라도 감당할만한 저력을 갖췄다. 물론 여기에는 서사의 리얼리즘도 필수적이다.
본 중간평은 스포일러를 배제해야 하므로 구체적인 내용은 일절 소개할 수 없다. 다만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가 시사하는 점, 그리고 두 달 전 컷신 및 영상 유출로 불거진 논란에 대하여 조심스레 짧은 소견을 보태고자 한다. 완전히 백지 상태로 게임을 접하길 원한다면 이 부분에서 읽기를 그만두어도 좋다. 서사를 제외한 평가는 위에서 적은 바와 같다.
자, 훌륭한 창작물이란 무엇일까. 물론 창작자의 의도에 따라 다르겠으나 보통은 추체험(追體驗)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 즉 보는 이(또는 듣는 이, 하는 이)가 작중 인물과 상황에 몰입하면 몰입할수록 훌륭한 창작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직접 겪는 일이 아님에도 감동을 느끼거나 심장이 쫄깃해지고 흥분하여 발을 동동구르는 그런 것들 말이다.
이걸 게임에 대입해보자. 게임에서 복수귀를 자처하는 주인공은 하고많지만 그에 이입하는 게이머는 별로 없다. 주인공의 상실은 그저 배경 설정일뿐 우리의 상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게임이 게이머를 진짜 복수귀로 만들 수 있다면, 진심으로 분노하고 증오하며 격정적으로 원수를 추격하게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그 몰입감은 정말이지 엄청날 것이다.
본작에서 엘리는 어떠한 상실을 겪고 기나긴 복수의 여정을 떠난다. 그리고 (전작을 즐긴)게이머 역시 심적으로 그 복수에 가담하도록 종용한다. 부정한 폭력과 있어선 안 될 살인이 벌어졌고 이제 죽어 마땅한 악당들을 처단해야만 한다고. 사실 이것은 개인적인 복수심의 발로지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여기에 더 큰 정당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화가 날지도 모른다
다행히 필자는 어떠한 스포일러도 당하지 않고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를 접했다. 그래서 엔딩을 보고서야 문제의 유출 관련 내용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 이미 여러 게시물과 댓글이 삭제된 터라 당시 정황을 100% 파악하진 못했다. 다만 자연스레 지나가는 장면을 콕 집어 부각하거나 잘못된 추론으로 오해를 빚은 부분이 적잖이 보였다.
냉정히 말해서 전작의 팬덤이 분노할 지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의 결말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여운을 남겼던가. 누구라도 그렇게 조엘과 엘리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They lived happily ever after)…라는 끝맺음을 원했을 터이다. 그런데 이제 엘리는 크나큰 고통과 상실감 속에서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그것만으로도 팬덤의 기대에 반하는 일이다.
이것이 너티독이 게이머의 마음 속 불씨를 당기는 비법이다. 필자가 전작을 즐기지 않았다면 엘리의 복수심 또한 그저 뻔한 배경 설정으로 다가왔으리라. 그러나 그렇지 않았기에, 전작의 결말을 너무 아끼고 사랑했기에 필자는 크게 화가 났고 예약 구매한 엘리 에디션을 거의 환불할 뻔했다. 아마도 팬덤 대다수가 이 지점에서 게임에, 너티독에 화가 날 것이다.
해피 엔딩을 바란 이들에게는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가 나온 것 자체가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과연 그런 전개가 필요했는지,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은 개연성을 갖췄는지, 결말은 얼마나 만족스러운지 따져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작의 발단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결말에 이르렀을 즈음엔 더 없이 강렬한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끝으로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 요소를 짚고 넘어가겠다. 일단 동성애를 보는 것만으로 견딜 수 없는 사람은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를 하면 안된다. 그야 동성애가 묘사되니까.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여기에는 어떠한 부자연스러운 강조나 미화 혹은 고압적인 가르침이 없다. 그저 두 사람이 등장하여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평범히 사랑한다.
가끔 창작자는 우격다짐으로 줄기차게 PC함을 강조하는데 정작 그 결과물은 특정 인종이나 성적지향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으로 범벅이 된 경우를 본다. 가령 동성애자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그들을 뭔가 더 교태롭고 거북하게 묘사하는 식이다. 그러나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전혀 그렇지 않다. 다시금 장담하건데, 우리가 보는 것은 평범한 연인일 뿐이다.
게임은 해봐야 안다
하고픈 이야기가 많지만 이미 중간평치고 너무 길어진 듯하다. 정식 리뷰가 또 남았으니 나머지는 게이머 여러분이 직접 즐기고 판단할 몫으로 남겨두겠다. 어쨌든 게임은 해봐야 아는 것이다. 최근에는 보는 것, 듣는 것만으로 게임 플레이를 대체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보고 듣는 것은 결코 하는 것과 동치가 될 수 없다. 그건 그냥 보고 들었을 뿐이다.
특히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게이머 스스로가 주인공을 조작하며 일체화한다는, 게임이 소설이나 영화보다 앞설 수 있는 지점을 적극 활용한 작품이다. 복수극 자체는 엄밀히 말해서 전혀 신선할 것 없는 내용이다. 그러나 양측 입장을 모두 추체험(追體驗)했을 때의 복잡다단한 감정은 다른 어떤 창작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본작의 큰 성취라 하겠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가 역대 최고의 게임일까? 글쎄, 아마도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 어쨌든 기술적으로 현격히 진일보했으며 서사적으로도 엄청나게 야심 찬 작품임은 틀림 없다. 너티독이 던지는 화두는 매우 뜨겁고, 팬덤의 일부는 이에 납득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게임 완성도와는 별개의 문제다. 그렇기에 필자도 본작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유동식 기자 press@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