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감성 충만한 ‘페르소나5: 더 팬텀 X’, 모바일 유저 마음도 훔칠까
낮에는 학생, 밤에는 괴도. 누구나 한 번쯤 꿈꿀법한 도발적인 설정과 각양각색 등장인물 그리고 시리즈 전통의 탄탄한 콘텐츠로 사랑받은 ‘페르소나 5’. 과연 그 독보적인 매력을 아틀러스 아닌 다른 게임사가, 그것도 모바일로 오롯이 구현할 수 있을까. 앞서 퍼펙트월드서 ‘페르소나 5: 더 팬텀 X’를 만든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설렘보다 걱정이 컸던 게 비단 필자만은 아니리라. 라이브 서비스를 전제한 모바일 게임이 업계 주류가 되고부터 유명 IP에 기대어 한탕 벌려는 얄팍한 시도가 숱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페르소나 5: 더 팬텀 X’가 여타 졸속 기획과 궤를 달리하는 까닭은 두 가지다. 먼저 개발을 담당한 블랙윙즈 스튜디오의 모체가 중국 정상급 게임사 퍼펙트월드라는 것. 큰 몸집이 언제나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겠으나 대작에 필요한 자금 및 기술력이 받쳐줘 나쁠 게 없다. 다음으로 아틀러스의 IP 관리가 아주 철저하기로 악명(?) 높다는 것. 본지 인터뷰서 언급하기로 작은 요소 하나까지 전부 검수한다고. 주인공과 페르소나를 저 소에지마 시게노리가 디자인해줄 정도로 본가의 손을 많이 탔다.
'P5' IP 기반으로 제작한 멀티 플랫폼 RPG '페르소나 5: 더 팬텀 X'
여러모로 본가에 버금가는 콘텐츠 규모와 감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평행세계의 괴도단, 빼앗긴 욕망을 되찾아라
‘페르소나 5: 더 팬텀 X’의 첫인상은 놀라우리만치 원작과 겹쳐 보인다. 북미 코믹스처럼 음영이 강조되고 강렬한 붉은색이 도드라진 UI는 누가 봐도 꼭 ‘페르소나 5’스럽다. 뿐만 아니라 각종 모델링과 텍스처 등 그래픽 전반에서 원작 느낌을 살리려 무진 공들인 티가 난다. 앞서 소에지마 시게노리의 주인공 및 페르소나 디자인을 언급했는데, 그가 관여하지 않은 그 외 등장인물 모두 비슷한 화풍으로 그려졌다. 이러한 ‘원작바라기’ 기조는 애니메이션, BGM, 심지어 성우 연기의 톤까지 일관되게 유지된다.
이는 ‘낮에는 학생, 밤에는 괴도’라는 핵심 컨셉과 거기서 뻗어가는 메인 스토리 역시 마찬가지다. 주인공이 다니는 학교부터 사는 지역 등 배경 설정에 주위 동료들까지 대부분 오리지널이지만 부러 원작의 궤를 벗어나지 않는다. 가령 괴도 활동을 권유하는 존재가 동물이라든지, 주인공은 시크한 미남자고 가까운 여학생이 모종의 사건을 계기로 동료가 되는 등등. 첫 팰리스의 보스 어깨빵남 역시 너도나도 카모시다를 운운할 정도로 비슷한 구석이 많다. 물론 이 모두가 다분히 의도된 유사성이라 보여진다.
특히 도입부는 '페르소나 5'를 다시 즐기는 듯한 착각이 일어날 정도
조커와 비슷한듯 대비되는 새로운 주인공, 이 역시 하나의 재미겠다
원작과 비슷한 듯 다른 설정에 대해 ‘페르소나 5: 더 팬텀 X’는 평행세계란 식으로 유연히 풀어간다. ‘거악에 맞서지 않는 무기력한 대중’이란 공통된 문제의식서 반역의 의지 대신 욕망의 직시를 고른 점도 퍽 영리하다. 실제로 국내 N포 세대를 비롯해 일본 사토리 세대, 중국 탕핑족까지 작금의 동아시아가 통감하는 사회문제니까. 그래서인지 보호관찰 신세로 떠돌던 조커와 달리 본작의 주인공 원더는 오모테산도 2층 저택에 거주하는 부유층이다. 어쩌면 일상의 권태로움이 독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원더와 루페르의 신생 괴도단이 내세운 모토는 ‘RETAKE YOuR dESIRE(당신의 욕망을 탈환하겠다)’. 뒤틀린 욕망을 휘두르는 몇몇 악당 탓에 대중의 건전한 의욕조차 꺾이고 빼앗기니 괴도단이 나서서 되찾겠다는 것. 뭔가 동기가 살짝 난해하지만 해결 방식은 원작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인지세계 팰리스로 잠입하여 보물을 탈취, 개심한 악당 스스로 죄를 자백하도록 만드는 수법이다. 물론 쥬브나일 판타지의 대명사 ‘페르소나’답게 학생으로서 일상과 인간관계도 팰리스 공략만큼이나 중요히 다뤄진다.
원작의 평행세계라 제시하는 사회문제도 살짝 다르다. 핵심은 욕망
그래도 문제 인물의 팰리스를 공략 → 개심이란 흐름 자체는 동일하다
일상도 비일상도 ‘페르소나 5’ 감성 충만하게
소싯적 ‘여신전생’서 ‘여신이문록 페르소나’가 파생될 때 꼽은 컨셉이 악마, 청춘, RPG였다. 시리즈가 30년간 확장을 거듭하면서도 줄곧 지켜진 저 세 키워드는 ‘페르소나 5: 더 팬텀 X’ 역시 마찬가지. 여기서 악마로 상징되는 비일상 즉 이세계는 메인 스토리의 무대 팰리스를 비롯하여 재화 수급 던전 억압의 공간, 고난도 도전인 벨벳 시련, Lv40 이후에 열리는 흉몽의 문, 그리고 이들 사이에 사상을 잃은 길이 존재한다. 전투 콘텐츠 일체를 포함하여 괴도단 및 페르소나 육성에 목적이자 원동력인 셈이다.
반면 청춘으로 상징되는 일상을 영위하는 공간은 도시다. 하루는 크게 오전, 방과 후, 저녁, 밤으로 나뉘며 아르바이트부터 운동, 독서, 청소까지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알바비 같은 소소한 보상이 따르지만 보다 큰 목적은 인간 파라미터를 높이려는 것. 지식, 친절, 배짱 등 파라미터 상승 시 새로운 상품이 해금되거나 협력자-원작의 CO-OP- 관계가 깊어지는 효과를 준다. 뿐만 아니라 방과 후 활동 가운데 르블랑에서 휴식의 경우, 평행세계일 터인 마음의 괴도단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인지세계 메멘토스에서의 여느 수집형 RPG와 크게 다르지 않은 편
열심히 수업 듣고 방과 후 활동에 매진하는 게 역시 '페르소나'스럽다
다시 비일상으로 돌아가자. 괴도단은 전투원 넷과 보조 한 명의 총 5인조로 움직인다. 주인공 원더와 루페르 등은 자연스레 합류하지만 나머지는 컨시어지 메로페와의 계약, 요는 뽑기(ガチャ) 대상이다. 다만 이렇게 얻은 동료는 본인이 아니라 인지존재에 불과하다는 설정. 아무래도 페르소나 구사자가 무한정 늘어나면 곤란하니 적당히 선을 그은 듯하다. 그 외에 평범한 페르소나는 무과금 플레이로 획득 및 육성, 합체까지 가능하다. 물론 시리즈 전통에 따라 주인공은 와일드 즉 페르소나 다중 보유자다.
전투는 원작처럼 상대와 차례를 주고받는 턴제 커맨드 배틀로 치른다. 화염, 빙결, 전격, 질풍 등 여러 속성과 내성, 약점에 따라 유불리가 갈리는 전략성도 동일하다. 원작을 해봤다면 속성기로 약점을 찔러 1MORE를 따내고 적 전원이 기절했을 때 일망타진하는 흐름이 퍽 익숙할 터다. 역으로 아군의 약점이 찔려 낭패를 보는 상황도 자주 발생한다. 원작과 다른 점이라면 1MORE와 배턴터치가 단순한 추가 공격이 됐다는 것. 그리고 일종의 필살기인 하이라이트 스킬을 자주 쓸 수 있다는 것 정도다.
전투는 원작의 커맨드 배틀 및 프레스턴 등을 거진 그대로 가져왔다
주인공 역시 와일드 능력자로서 다수의 페르소나를 지닐 수 있다
IP 기반 모바일 게임의 새 기준점이 될만하다
여기까지 보면 마치 ‘페르소나 5’를 고스란히 이식한 모양새인데, 엄밀히 따져서 비슷한 만큼이나 다른 점도 적잖다. 일례로 1년이란 한정된 시간에 다양한 활동을 적절히 배분하는 캘린더 시스템이 빠졌다. 과거 아틀러스 와다 카즈히사P가 이를 ‘페르소나’의 뼈대라 공언했음에도 말이다. 또한 전투의 큰 틀은 계승했으나 아무래도 괴도 아이돌과 전용 무기 수집 및 육성이 상성 관계보다 윗길이다. 즉 대치한 상대에 맞춰 능동적으로 페르소나를 모으고 조합하는 원작의 참맛을 온전히 느끼기 힘들다.
바꿔 말하여, 사실 ‘페르소나 5: 더 팬텀 X’도 원작이 있는 모바일 게임 대다수가 그렇듯 이미 존재하는 틀에 IP를 입힌 결과다. 근래 라이브 서비스 중인 게임을 꾸준히 챙겼다면 레퍼런스가 무엇인지 쉬이 알아챌 터다. 그럼에도 필자를 비롯한 수많은 유저가 이 작품이야말로 ‘페르소나 5’의 충실한 변주라 느끼는 건 나름대로 시사하는 바가 있다. 굳이 거금 들여 타사 IP를 빌리는 게 원작의 후광을 업으려는 속셈임은 물론이다. 그런데 왜 바로 그 원작 팬덤이 앞장서 욕하는 유감스런 게임이 나오곤 할까.
라이브 서비스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어제 오늘 내일만 존재
확률형 상품이 적용된 만큼 원작 같은 밸런스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결국 중요한 건 원작에 대한, 그리고 원작 팬덤에 대한 존중이며 그건 다분히 감성의 영역이다. ‘페르소나 5: 더 팬텀 X’가 정말 칭찬받아야 할 지점은 원작 게임성이 아니라 감성의 재현이란 이야기다. 어차피 콘솔과 모바일은 아예 성질이 다른 플랫폼이다. 무조건 원작의 단순 이식이 답이라는 사람도 없지 않겠으나 모바일이면 모바일답게, 라이브 서비스에 맞춰 재해석된 결과를 원하는 게 보통이리라. 대신 UI, 음악, 서사, 인물, 연기와 연출 구도까지 감성적인 부분서 ‘페르소나 5’다움을 채워주면 충분하다.
되려 원작과 같냐 다르냐의 잣대가 아니라 ‘페르소나 5: 더 팬텀 X’ 자체에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페르소나 5’ 감성 충만하더라도 재미가 없어서야 금세 외면받을 뿐이다. 작금의 모바일 게임 시장서 턴제 커맨드 배틀을 내세운 수집형 RPG 가운데 이만치 만듦새와 분량을 갖춘 작품은 드물다. 각양각색 매력 넘치는 괴도 아이돌 역시 뭇 유저의 지갑을 열어젖힐만하다. 굳이 약점을 하나 꼽는다면 워낙 ‘페르소나 5’ 감성 그대로라 원작에 불호를 표한 이들은 본작도 품기 어렵다는 정도겠다.
퍼즐 위주로 재해석된 팰리스, 방식은 달라도 공략의 재미는 잘 살렸다
결국 '페르소나'다움이란 감성의 영역이다. 마치 비 내리는 시부야처럼
앞으로 더욱 풍성한 크로스오버를 기대하며
‘페르소나’ 특유의 쥬브나일 판타지가 일본 현지서 어떻게 향유되나 잘 모르겠지만, 외국인 입장에선 평범한 등하굣길과 아르바이트조차 흥미롭기 마련. 괴도로서 팰리스를 털지 않더라도 시부야 교차로를 건너고 크고 작은 간판이 번뜩이는 밤거리를 걷는 순간이 이미 비일상이다. ‘페르소나 5: 더 팬텀 X’의 경우, 본가 검수야 어쨌든 개발 주체가 우리와 같은 외국인인지라 그 소위 ‘뽕’맛을 제대로 살렸다. 팬데믹이 잦아든 후 아직까지 비행기표가 금값인데, 게임으로라도 디지털 도쿄 관광을 떠나보면 어떨까.
끝으로 ‘페르소나 5: 더 팬텀 X’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는 평행세계 특성상 다른 작품과 연계하기 쉽다는 거다. 당장 론칭 기념으로 마음의 괴도단과 함께 원작 초반부를 경험하는 크로스오버 이벤트가 진행 중이다. 첫 픽업으로 조커, 아마미야 렌이 선정되기도 했다. 비록 아틀러스와 계약한 IP가 오리지널 ‘페르소나 5’라 ‘더 로열’의 요시자와 카스미는 빠졌지만 본지 인터뷰서 이에 대한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았다. 나중에라도 ‘더 로열’ 업데이트가 성사된다면 더 나아가 1~4편 콜라보 역시 꿈은 아니다.
현재 첫 크로스오버 및 픽업 이벤트로 마음의 괴도단과 얽히는 중이다
언젠가 카페 르블랑에 역대 시리즈 주역들이 다 모이는 날이 올지도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