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먹고 있는 거다."
"아니 사람 잘 먹고 있는데 무슨 밥맛떨어지는 소리예요!"
"그런가...! 이 예리하게 썰어낸 엄격한 차슈와
순식간에 빨려드는 탄력있는 수타면발의 조화...
이것이 대장의 맛!?"
"뭘 이해하고 있어! 이해 못했잖아요!"
"왕. 너라면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뭘. 나도 가끔 마물한테 먹힌다면 마물 입맛에 내가 맞을까 하는 공상을 하곤 했거든.
직접 먹었을 때는 쇠랑 가죽맛이 심해서 원재료의 식감을 못 느꼈지만. 아쉬워."
"장담컨대 댁들은 서로의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어.
아무튼 미스룬, 미스룬을 먹는단 게 무슨 뜻인가요?"
"알다시피 이건 내가 직접 뽑은 수타면이다.
....놈이 사라진 이후, 잠시 여왕의 명으로 외교관 노릇도 했다만,
내면에서는 아무것도 생기지 않았지.
여왕의 제국이 어떻게 되든,
멜리니가 어떻게 되든."
"마음은 십분 이해하지만, 일단 당신 눈앞에 있는 게 멜리니의 왕과 장관이니까요?!"
"그러다 부하들의 흰소리가 어쩐지 머리에 남아서,
왕의 벗인 드워프에게 찾아가 수타면을 배우기 시작했지....
의외로, 충실한 시간이었다.
면 뽑기를 배우며 알게 됐지.
....나는 지금까지 의외로,
팔을 그다지 움직이지 않고 살았다는 걸.
반죽을 휘둘러 움직임을 가하지 않으면 탄력과 유연성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까지 의지해온 전이술로는 제대로된 면을 만들 수 없었지.
고작 이 밀가루 반죽 하나를 늘이기 위해,
살면서 가장 격동적으로 팔을 움직이게 된 거다.
그건 내가 생전 처음 경험하는 쾌감이었지."
"미스룬...."
"그뿐 아니라 드래곤의 뼈로 육수를 우리는 것도,
드래곤의 고기를 썰어 차슈로 만드는 것도,
코카트리스알을 삶아 얹는 것도
그럴듯한 맛이 나올 때면 나 자신도 놀라울 정도로
'잘 됐다'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귀족으로 살아온 나에겐 지금까지
'남을 위해서 요리하려는 욕구' 자체가 없었으니
놈에게 빼앗기지 않은 거겠지."
"그렇죠? 말씀드린대로 살다보면 반드ㅅ...."
"이거 마물식?!?!!"
"역시 이 농후한 육질은 드래곤이었구나.
그럼 이 고명은... 연료 주머니를 튀긴 건가?
우리가 조리했을 때는 이렇게 부드럽게 씹히지 않았는데.
용육을 부드럽게 만드는 비결은 소스야?
역시 엘프 향토요리라 본고장의 비법이 있구나."
"향토요리?"
"그건 나중에 묻고!
하던 얘기나 우선 마저 해주세요!
그래서, 그런 새로운 체험과 욕구를 선물해준 이 면 요리가
어떤 의미에서는 미스룬, 당신의 삶 그 자체란 뜻인가요?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폐하께서도 늘 말씀하셨다시피, 식(食)은 생(生).
누군가에게 먹을 것을 만들어준다는 것은,
생명을 나누어준다는 뜻도 되는 게 아니겠어요?
그건 아마 미스룬, 당신의 생에서 가장 고귀한 욕구 중 하나일 거예요.
당신은 언젠가 자신을 잔반이라고 했지만,
제가 볼 땐 악마 녀석은 전채요리만 먹고 도망친 미각치 도둑에 불과해요.
이 고귀함을 맛보지 못한 이상, 놈은 당신의 절반도 다 먹지 못한 겁니다."
"....고맙군.
헌데 면만 먹고 국물과 차슈는 먹지 않았군.
너무 기름지다면 곁들여먹을 호밀빵을 주마."
"아~~~!! 적셔먹을 호밀빵! 진작 말해주지."
"둘이 얘기하는 사이에 다 먹었거든.
카블루는 소식파였지?
남은 건 내가 먹을까?"
"빨라! 아니 아무튼,
그럼 폐하께서 제 것도 드시죠!
전 먹는 양이 적어서 그런 거니 신경ㅆ....."
".... 아니.
황송하지만 이건 제게 나온 몫이니 제가 다 먹겠습니다.
폐하처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시금 고맙다.
네 반응을 보니 신메뉴 '파린면'은 대성황이겠군."
"메뉴명은 바꿔!
불경죄로 체포령 내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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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었습니다 미스룬.
맛있는 요리, 감사합니다."
"맛있었어! 대장도 가끔 멜리니 궁에 와줘.
마르실하고도 오래 말동무가 되어줬으면 하거든."
"'맛있었다'라....."
(국물까지 싹 먹어 텅 빈 그릇 두 개)
".....변변찮았습니다."
(라멘집 중에는 그릇 바닥에 완식 감사 인사가
써있기도 하다는 얘기가 떠올라 써본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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