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스타] 키타세 & 하마구치, 시대를 초월하기 위한 ‘리메이크’란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는 그야말로 전세계 JRPG 팬의 오랜 염원이 실현된 작품이다. 각진 폴리곤 덩어리서 환골탈태한 클라우드 일행은 물론이고 전통의 커맨드 배틀과 리얼타임 액션을 아우르는 최신 ATB 시스템까지. 더불어 원작과 비슷한 듯 다른 아리송한 스토리 전개가 뭇 게이머를 연신 들었다 놨다 한다. 너무 과감한 변주에 불호를 표하는 경우도 있으나 어쨌든 이만치 야심 찬 리메이크가 달리 없는 건 사실이다.
무려 30년 가까이 묵은 고전, 그것도 ‘FF7’처럼 상징적인 명작에 손대기란 그 누구라도 부담스러울 법하다. 키타세 요시노리, 노무라 테츠야 등 원작자가 여태 스퀘어에닉스 현역이 아니었다면 애당초 프로젝트 발족조차 쉽지 않았을 터. 다만 원작자끼리 똑같은 걸 만들 뿐이라면 모처럼 리메이크의 의미가 퇴색되니 비교적 젊은 하마구치 나오키 디렉터가 실무를 넘겨받았다. 원작자의 감수와 신진의 감각이 한데 어우러진 것이다.
'FF7' 리메이크의 키타세 요시노리 프로듀서와 하마구치 나오키 디렉터
스퀘어에닉스 키타세 프로듀서와 하마구치 디렉터의 좌담회로 진행된 'G-CON 2024' 강연은 ‘FF7’ 리메이크서 신, 구를 담당하는 두 사람의 관점을 비교할 좋은 기회였다. 주제는 ‘시대를 초월한 게임 제작의 도전’. 물론 여기서 시대를 초월한 게임은 리메이크 프로젝트가 한창인 ‘FF7’를 가리킨다. 먼저 키타세 프로듀서가 90년대 당시 원작의 기획 의도를 밝히면 하마구치 디렉터가 리메이크서 어떻게 재해석했는지 부연하는 식이었다.
‘FF7’ 원작이 기획될 즈음 舊스퀘어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FF’ 시리즈의 주력 플랫폼이 슈퍼 패미컴서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바뀌며 3D 게임 개발이 요구됐기 때문. 본래 플래너, 프로그래머, 테크니컬, 캐릭터, 사운드까지 5개 섹션에 5~10명씩 근무하는 형태였으나 여기에 3D 디자이너, CG 엔지니어가 속속 합류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조차 오늘날 리메이크 프로젝트 참여 인원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아담한 규모지만 말이다.
'FF7'부터 3D 전환하며 개발 규모가 커졌고 그 흐름이 리메이크까지 이어졌다
리메이크 프로젝트가 커져가며 키타세, 노무라 같은 원작자와 하마구치가 이끄는 신진 개발자들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원작자가 리메이크의 의의를 제시하면 신진은 그 의의를 실제 게임으로 구현하기로 결정했다. 신진 중 대다수가 원작을 즐기며 자란 게이머라 ‘왜 이 시점에 리메이크가 필요한지, 리메이크로 전하고픈 게 뭔지’까지 맡겨버리면 일종의 팬메이드 감성으로 전락할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이외에 원작자들이 하마구치를 비롯한 신진에게 당부한 두 가지 지침이 있다. 첫째는 3D 애니메이션 OVA ‘어드벤트 칠드런’ 수준의 그래픽을 구현할 것. 둘째는 원작을 아는 게이머라도 다음 전개를 예측할 수 없도록 새로운 서사를 추가할 것. 다만 하마구치 디렉터로서도 스토리에 손을 대기는 부담스러워 원작 시나리오 라이터 노지마 카즈시게에게 재차 부탁했고, 거기에 키타세와 노무라가 관여하는 식으로 재해석이 이루어졌다.
원작자가 리메이크가 지닌 의의를 명확히 정하면 신진이 그것을 실제 게임으로
‘FF7’ 원작의 테마는 ‘생명’이다. 당시 프로듀서였던 사카구치 히로노부는 가이아 이론에 심취했는데, 요컨대 인간이나 동식물처럼 행성 자체가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발상이다. 또한 우리가 죽더라도 생명력까지 소멸하는 게 아니라 별의 중심에 모여들어 언젠가 또다른 형태로 재생된다는 ‘생명의 순환’을 믿는다. 가이아 이론에 착안한 사카구치의 두 작품이 바로 게임 ‘FF7’과 그보다 몇 년 후 개봉한 영화 ‘더 스피릿 위딘’인 것.
에어리스의 운명이야말로 이 세계관 내지 생명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서사적 장치다. 결국 에어리스는 예정된 비극을 피하지 못했으나 그녀가 남긴 강한 의지와 용기는 클라우드 일행에게 이어져, 별을 구하려는 절실한 바람이 동료들 손에 이루어진다. 즉 그야말로 에어리스를 통해 ‘생명의 순환’이 실현된 것이다. 이외에 라이프스트림, 마테리아, 마황, 세트라, 제노바 등 ‘FF7’ 주요 설정 여럿이 가이아 이론과 긴밀히 맞닿아 있다.
당시 사카구치P가 심취했던 가이아 이론으로부터 '생명'이란 테마가 나왔다
하마구치 디렉터는 이를 리메이크하며 새롭게 ‘재회’란 테마를 떠올렸다. ‘FF7’ 스토리는 주인공 클라우드와 소꿉친구 티파 그리고 악역인 세피로스가 재회하며 본격화된다. 또한 ‘FF7’이란 게임 자체가 원작으로부터 20년 만에 뭇 게이머와 재회한다는 의미도 있다. 재회는 첫 만남과 다르므로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느낌을 주고자 애썼다. 그래서 서사도 전투도 완전히 바꾸기보다 원작의 요소를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까 고민했다.
비주얼 역시 마찬가지다. 가령 원작서 2층 구조였던 미드가르를 3층으로 늘리는 식의 무리한 변화보다 당시 기술력으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부분을 섬세히 묘사하는 데 집중했다. 한번은 키타세로부터 이참에 마황로를 좀 더 강렬하게 꾸미면 어떻겠냐는 제안이 왔는데, 하마구치가 차라리 기존 모습에 현실성을 강화하자며 만류했다고. 이날 강연서 실제 쓰인 적은 없는 그 ‘강렬한 마황로’의 예시를 만들어와 큰 웃음을 줬다.
의외로 이런 에피소드를 들어보면 대부분 원작자가 급진적이고 신진이 보수적
이처럼 ‘FF7’ 원작 테마가 사랑, ‘FF7 리메이크’ 테마가 재회라면 ‘FF7 리버스’ 테마는 인연이다. 미드가르를 탈출하는 시점에 이미 클라우드 일행이 어느 정도 모였고 함께 세계를 여행하며 점점 더 관계가 깊어진다. 그렇게 반복된 교류가 최종적으로 골드 소서의 데이트 이벤트로 이어지는 등 여러모로 관계성에 집중한 스토리라 느껴졌다고. 그래서 시스템 측면서도 연계 액션, 연계 어빌리티로 ‘인연’이란 테마가 부각되도록 설계했다.
리메이크 프로젝트의 대단원을 장식할 세 번째 작품은 벌써 노지마 카즈시게가 대본 작성을 마쳤고 하마구치 디렉터 역시 거기서 하나의 테마를 뽑아냈다고. 즉 재회 → 인연 → ?가 될 텐데 아쉽지만 금번 강연서 그 답을 공개하진 않았다. 대신 원작 스토리를 알고 있는 팬이라면 남는 분량에 비추어 마지막 편의 테마가 무엇일지 추측하라는 단서를 덧붙였다. 이 테마가 다음 스토리는 물론 새로운 게임 시스템과도 연결될 공산이 크다.
마지막 편의 플롯과 스크립트가 이미 완성됐고 테마도 정했지만 비밀이라고
미드가르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하자면 그 특유의 복층 구조는 당시 캐릭터 디자이너였던 노무라가 고안하고 아트 디렉터 나오라 유스케가 실현시켰다. 빈민가 위로 시가지가 뻗어나가고 그 중앙에 위압적인 신라 본사가 자리잡은 풍광. 이것을 도입부터 강렬히 내보임으로써 플레이스테이션의 성능을 전시하자는 계획이었다. 퇴락한 미래 도시를 상공에서 조감하는 구도는 ‘블레이드 러너’, ‘아키라’ 같은 훌륭한 작품서 영감을 얻었다.
이 도입부가 워낙 유명해서 PS3 시절 일종의 테크 데모로 제작된 바 있다. 그것만으로 PS1 원작보다 괄목할 발전이었으나 실제 ‘FF7 리메이크’ 도입부는 거기서 몇 단계 더 개선된 사양이다. 특히 도시 전체를 비추던 카메라가 달리는 열차로 줌인되다 클라우드 한 명에게 집중되고 거기서 자연스레 게임 플레이까지 이어지는 흐름에 무척 공들였다고. 게이머가 직접 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야말로 게임만이 지닌 큰 장점이기 때문이다.
'FF7' 도입부야말로 리메이크 프로젝트의 방향성과 발전상을 잘 보여준다
‘FF7’의 또다른 명장면이라면 역시 미드가르를 탈출하며 처음으로 월드맵이 펼쳐질 때다. 이전까지 갈등의 주무대였던 미드가르 바깥에 이렇게 큰 세계가 존재한다는 경탄과 설렘, 개방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1, 2편만 해도 작고 단순하던 월드맵이 ‘FF3’서 중요한 장치로 쓰이고 ‘FF4’부터 지하나 달나라 등 다중 구조가 정착했다. 과거에는 월드맵을 그리는 게 디렉터의 특권이라 키타세 프로듀서도 ‘FF7’에 이르러서야 그려볼 수 있었다고.
다만 그래픽 기술의 발전과 함께 점점 더 현실적인 비율과 묘사가 요구되며 기존 월드맵은 사장되고 만다. 대신 지도를 보여주고 거기서 원하는 지역을 선택해 이동하는 간략한 방식이 도입됐다. 월드맵 시절의 추억을 지닌 키타세 프로듀서로선 이 변화가 못마땅했는데, 오랜 세월이 흘러 ‘FF7 리메이크’가 그보다 더 발전된 형태로 월드맵을 부활시켜 무척 기뻤다고. 개인적으로 하마구치 디렉터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부분이라 한다.
최적의 월드맵 크기와 콘텐츠 밀도를 결정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하마구치 디렉터는 ‘FF7 리메이크’ 프로토타입 영상을 보여주며 월드맵 시제품을 만드는 데 꼬박 1년이 걸렸다고 회상했다. ‘넓다고 느껴지는 한계치’를 찾아 헤맸는데, 흔히 맵이 넓으면 무조건 좋다고 여기기 쉽지만 실은 그만한 분량의 콘텐츠가 필수적이다. 너무 좁아서 답답하거나 넓긴 한데 텅 비어서는 곤란하니까. 일단 크기를 결정한 다음에는 지역마다 다른 초코보, 미니게임을 넣는 식으로 매번 새로운 경험을 주고자 애썼다.
충분히 넓고도 콘텐츠로 가득 찬 월드맵을 선보인다. 이 기조는 다가올 세 번째 작품도 마찬가지다. 앞서 ‘FF7 리메이크’는 두 발로 뛰어다녔고 ‘FF7 리버스’서 초코보가 등장했다. 과연 그 다음은 무엇일까? 하마구치 디렉터는 원작서 나머지 분량에 비공정 하이윈드가 등장하는 만큼 이를 직접 몰아 날아다닐 수 있도록 개발 중이라고 확인해줬다. 어느 정도 예측 가능했던 부분이지만 본인이 확실히 밝히는 건 금번 강연이 처음이라고.
마지막 편에선 직접 하이윈드를 몰아 'FF7' 세계를 조감할 수 있을 전망
|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