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스타] 무카이토게 PD, '엔드 오브 이터니티'를 되살리다
PS3 시절만해도 플랫폼 홀더 및 퍼블리셔를 통한 게임 한국어화가 지금처럼 왕성하지 않았다. 이에 굴하지 않고 패드 옆에 사전을 펼치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언어의 장벽에 막혀 플레이를 포기하기 일쑤였다. 오는 12월 5일 아크시스템웍스 아시아 지점이 국내 정식 발매하는 ‘엔드 오브 이터니티(End of Eternity)’ 역시 그렇게 국내 게이머에게 소개되지 못한 숨은 진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트라이에이스의 2010년작 ‘엔드 오브 이너티니’는 인류가 쇠퇴한 암울한 근미래를 배경으로 린벨을 위시한 매력적인 캐릭터, 참신하고 깊이 있는 전투 시스템, 그리고 당시로선 혁신적인 그래픽을 선보였다. 총격 다중주 RPG란 장르에서 보듯 총기를 개조하고 사용하는 일련의 과정도 본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요소. OST 역시 ‘스타오션’과 ‘발키리 프로파일’의 사쿠라바 모토이와 ‘사쿠라 대전’의 타나카 코헤이가 담당하여 큰 호평을 받았다.
그로부터 거의 10년이 지나, 이제 ‘엔드 오브 이터니티’가 4K/HD 에디션으로 한국어화 정식 발매를 앞두고 있다. 과거 사전을 펼치고 즐겼던 이들에게는 추억을 되살리고, 본작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새로움을 줄 만한 독특한 작품이다. 이에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 2019가 한창인 부산 벡스코에서 ‘엔드 오브 이터니티 4K/HD 에디션’ 개발을 총괄한 트라이에이스 무카이토게 신고(向峠慎吾) 프로듀서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 그간 한국에 여러 차례 방문한 것으로 안다. 지스타는 처음인가
: 그렇다. 지스타는 올해 처음 와봤다.
●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게임전시회를 둘러보니 어떤가, 도쿄게임쇼와 어떤 점이 다르던가
: 일본과 상황이 매우 달라서 놀랐다. e스포츠가 굉장히 힘이 넘친다는 것이 쇼 전체에서 느껴졌다. 일본의 경우도 최근 e스포츠에 집중하고 있지만 아직은 대회 규모 면에서 한국보다 많이 부족한 편이다. 그 외에 온라인 및 모바일이 강세라는 점도 도쿄게임쇼와 비교했을 때 방향성이 많이 다른 부분이다.
● 원작이 출시된 지 거의 10년이 되어간다. 이 시점에서 리마스터를 결정한 이유가 있다면
: 트라이에이스는 자체적으로 아스카 엔진이란 툴을 쭉 사용해왔다. 그런데 아직까지 아스카 엔진으로 PS4 게임을 만든 적이 없기 때문에 현세대기에 맞춘 테스트 차원에서 ‘엔드 오브 이터니티’ 리마스터를 진행했다. 처음에는 순전히 그런 의도였는데 만들다 보니 충분히 선보일 만한 품질이 나왔고, 세가에서도 독자적으로 재출시할 계획은 없었기에 흔쾌히 허락해줬다.
● 아크시스템웍스 아시아 지점을 통해 한국에 정식 발매하게 된 경위도 궁금하다
: 지난해 도쿄게임쇼에서 다른 분의 소개로 아크시스템웍스 백수현 아시아 지점장을 만났다. 때마침 ‘엔드 오브 이터니티’를 출시하려던 참이었기에 한국 발매는 맡겨주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아 그거 좋네요 하고 이야기했던 것이 점차 현실화되었다.
● 아크시스템웍스 아시아 지점에게 현지화와 관련하여 특별히 주문한 것이 있나
: 로컬라이제이션은 모두 아크시스템웍스 아시아 지점에 일임하고 있다. 우리 게임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그만큼 현지화에 신경을 써준다는 좋은 인상을 받았다.
● 원작은 다른 개발자의 작품인데, 게이머로서 ‘엔드 오브 이터니티’에 대한 감상은 어떤가
: 원작의 디렉터는 스구로 타카유키(勝呂隆之)씨인데, 시스템이 매우 어려운 게임을 만들기로 정평이 난 분이다. 나 역시 ‘엔드 오브 이터니티’를 처음 접했을 때 이건 정말 스구로씨 게임 답다고 느꼈다. 처음에는 어렵고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점차 시스템을 이하면 할수록 게임 플레이에 빠져드는 수작이라 생각한다.
● 확실히 전투 시스템이 참 독특한 작품이다. 그 시절 다른 일본 RPG들과는 많이 달랐다
: 일본 RPG에서는 캐릭터 세 명이 위치에 따라 공격 방식이 바뀌거나 하는 시스템이 드무니까. 그런데 이걸 자세히 보니 오하지키(おはじき, 일본의 알까기)를 세 명의 캐릭터에게 그대로 도입시킨 것이더라. 그야말로 일본의 게임 개발자기에 가능한 발상이 아니었나 싶다.
● 참신한 것은 좋지만 그만큼 낯설고 어렵다는 의미도 된다. 특별한 공략이 있다면
: 아무래도 처음 접했을 때 쉽사리 이해하기 힘든 배틀 시스템이긴 하다. 일단은 오하지키의 기본적인 규칙과 레조넌스 어택을 계속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점만 숙지하라. 게임 자체가 이해가 되면 될수록 점점 더 재미있어지는 구조다.
● ‘엔드 오브 이터니티’하면 역시 총을 빼놓을 수 없다. 커스터마이징도 매우 방대하다
: 총의 커스터마이징이 엄청나긴 하다. 다만 ‘엔드 오브 이터니티’에서 말하는 총 커스터마이징은 현실과는 꽤나 동떨어져 있다. 퍼즐 같은 구성이라 특정 파츠만 연속해서 붙일 수도 있기 때문에, 총의 외견을 꾸민다기 보다는 RPG식 장비 강화에 가깝다고 이해하면 된다. 덕분에 일본에서는 흔히 변태총이라고도 불린다(웃음).
● 린벨, 제퍼, 바쉬론 등 매력적인 캐릭터도 기억에 남는다. 린벨 보려고 어떻게든 엔딩까지 달렸다는 사람도 있더라
: 확실히 린벨은 귀엽지. 하지만 나라면 남자 주인공 하나에 여자 주인공 둘로 만들었을 것이다(웃음). 린벨과 제퍼, 바쉬론의 관계는 일견 여성향 애니메이션에서 많이 나오는 삼각관계를 연상시키지만 정작 스구로씨는 그런 것은 전혀 몰랐다고 한다. 그저 이런 세 캐릭터를 조합했을 때 케미스트리가 재미있을 것 같았다고. 어떤 정형화된 구도를 의식하지 않고 그런 관계에 집중했기에 ‘엔드 오브 이터니티’ 특유의 독창적인 캐릭터성이 나올 수 있었다고 본다.
● 암울한 세계관을 반영한 약간 우중충한 색감이 특징인데, 해상도가 개선되면서 혹여 그런 분위기를 헤치진 않았을까
: ‘엔드 오브 이터니티’는 예나 지금이나 아스카 엔진에 기반하고 있고, 원작의 감성을 충실히 살린다는 원칙으로 개발했기에 그러한 걱정은 접어 두어도 좋다.
● 10년이 지나서도 볼만한 그래픽이라니 대단한다. 인게임 영상 같은 경우는 어떻게 재작업했나
: 우리가 직접 재작업한 것이 아니라, 10년 전 인게임 영상을 머신러닝 기술을 통해 4K 해상도로 끌어올렸다. 그것만으로도 큰 화면에서 보았을 때 전혀 손색이 없는 멋진 화면이 만들어지다니 굉장하지 않나.
● 머신러닝이라면 AI(인공지능) 기술을 얘기하는 건가
: 프리렌더링된 영상을 그대로 4K로 늘려버리면 당연히 역으로 화질은 떨어지는데, 그걸 AI가 다시금 고화질로 개선해준다. 트라이에이스의 고탄다 대표가 최근 R&D한 것으로 처음 들었을 때는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웃음). 알고 보니 우리의 독자 기술이라고 한다.
● 사쿠라바 모토이와 타나카 코헤이가 담당한 OST도 리마스터링 작업을 거쳤나
: 사운드에 있어선 추가로 손을 댄 부분이 없다.
● 시간도 많이 흘렀고 기종도 바뀌었다. 뭔가 신규 기능이나 콘텐츠를 넣을 수도 있었을 텐데
: 기본적으로 리마스터는 원작에 충실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다. 조작 방식을 바꿔보자는 논의는 있었지만 결국은 원작 개발자의 의도가 훼손되지 않도록 그대로 두기로 했다.
● 본작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엔드 오브 이터니티’를 추천한다면
: 역시 ‘엔드 오브 이터니티’라면 트라이에이스다운 RPG, 트라이에이스의 특징이 묻어나오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또한 10년 전에 이런 게임이 있었다니 하는 감각으로 즐겨도 좋을 듯하다. 정말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10년 전 시스템이라고 하기엔 너무 잘 만들었다(웃음).
● 금번 프로젝트가 아스카 엔진을 현세대기에 적응시키기 위한 밑작업이라면, 이후 무카이토게 프로듀서의 행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 아무래도 말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은 입장이라. 여러 퍼블리셔와 작업하고 있고 몇 가지 프로젝트가 움직이고 있다고만 해두겠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