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N엔터 바둑 AI ‘한돌’, 프로 기사 TOP 5 모두 꺾어
전세계가 주목한 인간과 AI(인공지능) 한판 승부, 3년 전 펼쳐진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는 AI 기술과 바둑 양쪽에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평소 바둑이란 고루한 종목이라 외면하던 젊은이들이 이세돌 九단의 매 수마다 가슴 졸였고, 알파고를 다가올 AI 시대의 상징처럼 받아들였다. 정부와 IT 업계 또한 AI를 차세대 먹거리로 크게 주목하여 여러 연구조직 및 관련 시설에 투자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국내에서도 알파고와 비견할만한 바둑 AI가 나왔다. NHN엔터테인먼트가 자체 개발한 ‘한돌’은 1999년부터 서비스해온 ‘한게임 바둑’을 통해 딥러닝에 필요한 방대한 데이터를 확보한 것이 특징이다. 약 10개월간 학습을 거친 한돌은 2017년 12월 업데이트로 ‘한게임 바둑’에 적용된 상태로, 일반인이 상시 대국이 가능한 바둑 AI로는 전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이기도 하다. 즉 게임에서 탄생한 AI가 다시금 게임으로 돌아간 셈이다.
이에 NHN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말부터 ‘한돌’ 출시 1주년을 맞아 국내 프로 바둑기사 5인과 특별 대국을 진행 중이다. 12월 28일 신민준 九단을 시작으로 1월 2일 이동훈 九단, 1월 9일 김지석 九단, 1월 11일 현 세계 랭킹 1위인 박정환 九단이 한돌에게 패배했으며, 마지막으로 23일(수) 판교 NHN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기자 간담회와 함께 신진서 九과의 최종 승부가 치러졌다. 현장에는 한돌 프로젝트를 진두 지휘한 박근한 이사와 이창율, 송은영 팀장이 참석해 바둑 AI 기술에 대해 설명했다.
이창율 개발 팀장에 따르면 한돌 주요 알고리즘은 알파고와 같은 두 개의 신경망으로 이루어졌다. ‘한게임 바둑’ 기보 데이터를 통해 최적의 후보수를 탐색하는 정책망과 수를 뒀을 때 승률을 예측하는 가치망이 그것. 여기에 특정 상황에서 미리 입력된 수를 두는 롤아웃(Rollout) 패턴이 적용된 것이 바로 초창기 한돌 1.0이었다. 현재는 여기서 사람의 기보 데이터와 롤아웃 패턴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자가 대국만으로 무한히 반복 학습하는 한돌 2.0에 도달한 상태이다.
그렇다면 한돌의 기력은 어느 정도일까? 바둑 기사의 실력을 나타내는 Elo 수치로 볼 때 한돌 1.0의 기력은 약 2,500 정도로 추정된다. 프로 九단은 3,500 정도이며 이세돌 九단을 꺾을 당시 알파고는 3,700 전후. 참고로 Elo가 400 가량 차이면 승패를 뒤집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최신 버전인 한돌 2.1의 Elo는 4,700 정도로 이론적으로는 실존하는 모든 프로 기사는 물론 이세돌과 겨뤘던 알파고조차 상대가 되지 않는다.
상술했듯 바둑 AI 한돌은 ‘한게임 바둑’을 통해 누구나 상대해볼 수 있다. 게임 내에는 최고 수준인 한돌 九단 외에도 실력 맞춤식 한돌이 제공되며, 대국 중 다음 수를 물어보는 한돌 찬스와 기보 분석에도 폭넓게 활용되는 중. NHN엔터테인먼트의 다음 목표는 특정 프로 기사의 기풍을 그대로 흉내내는 것과 입문자를 위한 교육용 한돌 개발이라고 한다. 다음은 한돌 개발 및 서비스에 대한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한돌과 같은 뛰어난 AI를 어뷰징에 악용할 가능성도 있다
: 어뷰징 유저의 플레이 형태를 패턴화하여 걸러내는 방법을 생각해 봄직하다. AI 개발과 병행하여 어뷰징 방지에도 힘쓰겠다.
● 최신 버전인 알파고 제로와 한돌 2.1를 비교하면 어느 쪽이 우위인가
: 아직은 알파고 제로와 실력차가 나는 실정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업그레이드를 진행 중이고, 알파고도 어느 순간 정체가 올 수밖에 없기에 언젠가는 평준화될 것이라 본다.
● 한돌로 바둑 대회에 나갈 의향이나, 방법이 있나
: 딱히 대회 참가를 고려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그것이 바둑 산업에 기여하는 일이고 또 그럴 기회가 닿는다면 참가할 의향도 있다.
● 승자 인터뷰를 하듯 한돌 스스로가 자신의 승리 이유를 분석해줄 수도 있나
: AI이니만큼 자연스로운 인터뷰는 어렵겠지만 자신이 왜 그때 그 수를 뒀는지 판단 근거를 가시화하는 것은 될 법하다.
● 앞서 Elo 자료에서 예시로 든 프로 九단은 누가 모델이었나
: 특별히 모델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 대국할 신진서 九단이 딱 3,600 정도인걸로 안다.
● 한돌 2.0과 최신 버전인 2.1간의 차이는 무엇인가
: 바둑 AI의 기력이 높아지려면 그만큼 짧은 시간에 시뮬레이션을 많이 해야 한다. 그런 속도 관점에서 엔지니어링 개선이 이루어졌다.
● 알파고는 대국 시 AI를 돌리는 PC 사양을 공개하는데 한돌도 가능할까
: 이 자리에서 구체적인 사양을 밝히긴 어렵지만 당연히 구글 딥마인드에 비하면 훨씬 작은 서버를 쓰고 있다. 그래서 주요 개발 방향 중 하나도 적은 자원에서 잘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 한돌이란 AI를 바둑 외에 다른 게임 장르, 혹은 아예 타 산업에 활용할 방안이 있나
: 게임으로 국한한다면 각종 퍼즐 장르에 응용이 가능할 것이다. 게임 외에 분야로 진출하는 것은 더 큰 목표인데, 딥마인드가 신약 개발에 활용되듯 한돌의 확장성에 대해 고민 중이다.
● 지난 1~3국은 불계승을 거둔 반면 박정환 九단과 4국은 2.5집으로 간신히 승리했다. 오늘 승부는 어떻게 보고 있나
: 최근에도 프로 기사가 AI에게 승리한 사례가 있어 많이 긴장하고 있다. 직접 개발한 개발자 입장에서는 제발 버그만 안 났으면 싶은데(웃음)… 한돌의 2.5집 승리를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기자간담회가 마무리되고 곧이어 한돌 2.1과 신진서 九단의 자존심을 건 대국이 진행됐다. 2000년생인 신진서 九단은 2012년 영재 선발을 통해 프로 등단했으며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활약, 현재는 박정환 九단과 세계 랭킹 1, 2위를 다투는 젊은 천재다. 본 대국에 돌입하기에 앞서 신진서 九단은 “AI는 의중을 파악하기 힘들지만 기력은 두말할 나위 없이 강력하다. 힘든 대국이 되겠지만 최대한 멋진 승부를 보여드리겠다”는 임전 소감을 밝혔다.
이날 대국은 NHN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는 김효정 프로와 황현돈 홍보팀장이, 유튜브 중계에는 문도원 프로와 강남바둑센터TV가 해설을 맡았다. 검은돌을 잡은 신진서 九단은 견조한 출발과 함께 계속해서 한돌 2.1과 비등한 승부를 이어갔으나 160수 즈음 우측 하단에서 크게 패하며 그만 승기를 놓치고 말았다. 이후에도 양측은 190수 가까이 접전을 벌였으며, 최종적으로 반(0.5)집 차이로 신진서 九단이 돌을 던지며 금번 빅매치 이벤트는 한돌의 5:0 전승으로 마무리되었다. 다음은 대국 종료 후 신진서 九단과의 일문일답이다.
● 오늘 대국에서 위기를 느끼고, 승세가 기울었다고 느낀 시점은 언제인가
: 첫 수를 둘 때부터 위기라고 생각했다(웃음). 가장 불리하다고 느꼈을 때는 아무래도 중앙에서 돌이 몰리면서. 이후 한돌이 점차 견고히 집을 지키며 승세가 기울고 말았다.
● 한돌이 분석하기로는 스스로 42수를 승착점으로 봤다는데
: 내가 보기에는 크게 형세 변화가 있는 시점은 아니었는데 의아하다.
● 대국할 떄 실제 프로 기사와 바둑 AI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인지
: 사람은 대국 도중에 언제든 실수가 나올 수 있어 그걸 간파하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AI는 기본적으로 실수가 거의 없기 때문에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다. 또한 형세 판단에서 상당한 차이가 난다. 수읽기를 비슷하게 가더라도 형세를 보는 데서 밀리는 듯하다.
● 오늘 승부한 한돌 2.1과 알파고의 기력을 비교한다면
: 이세돌 九단과 겨루던 시절의 알파고보다는 확실히 강하다. 아마도 커제 九단과 대국한 알파고 마스터 버전 정도의 기력이 아닐까 싶다.
● 알파고 쇼크 전후로 바둑계의 분위기가 궁금하다
: 알파고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다들 당연히 사람이 승리할거란 분위기였다. 그래서 이세돌 九단이 패배했을 때 충격이 더 컸던 것 같다. 이제는 AI의 존재에 많이 적응한 덕분에 아무리 기력이 강해도 그만큼 놀라지는 않는다.
● 이처럼 바둑 AI 시대를 맞이하여 후배 기사들에게 조언한다면
: 내가 조언을 할 정도의 위치인지는 모르겠다. 바둑 AI가 제시하는 독창적인 수를 많이 배우고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다만 너무 AI에 휘둘리거나 맹신하지는 말고 본인의 생각을 우선하여 바둑을 둘 필요도 있다.
● 언젠가 다시금 인간 프로 기사가 바둑 AI를 넘어설 날이 올까
: 우리 세대는 어지간히 노력해도 AI를 이기기는 무리이지 않을까. 그보다 처음 바둑을 접할 때부터 AI 대국을 바라보며 자라난 다음 세대라면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