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신함과 진부함 사이, 얼리 액세스로 만난 ‘어센던트 원’
13일, 국산 MOBA ‘어센던트 원’이 얼리 액세스에 돌입했다. 넥슨 개발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데브캣 스튜디오 신작으로 우월한 자(Acendant One)라는 제목에서 보듯 고대 그리스 신화를 SF풍으로 재구성한 세계관이 눈길을 끈다. 앞서 NDC 2016에서 ‘프로젝트 A1’으로 첫 공개될 당시 2년 이상 개발 중이었으니 거진 4년을 공들인 야심작. 그사이 MOBA 장르 자체에 대한 열기가 조금 식은 감도 있지만, 여전히 PC 온라인 시장을 중시하는 넥슨과 ‘마비노기 영웅전’ 이후 이렇다 할 흥행작이 없는 데브캣 스튜디오 양쪽에게 중요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일반적인 기간제 테스트가 아니라 얼리 액세스를 택한 것만 봐도 그만큼 완성이 임박했음을 시사한다. 이미 모두 앞에 선보일 수준은 되었으니 보다 대단위 유저 베이스를 대상으로 지속적인 플레이 데이터를 모으겠다는 것. 실제로 베일을 벗은 ‘어센던트 원’은 첫 시연답지 않은 깔끔한 마감을 갖췄으며, 하루만에 크고 작은 피드백을 반영하는 등 얼리 액세스다운 발 빠른 대처도 보여주고 있다. 어쨌든 여기서는 스스로 ‘미완의 상태’라 내걸고 있음을 감안하며 ‘어센던트 원’이 지닌 매력과 아쉬움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상술했듯 ‘어센던트 원’은 MOBA다. 두 패로 나뉜 영웅들이 대칭형 전장에 출전하여 자동으로 진격하는 부하들과 함께 공격로를 제압하고, 최종적으로 적의 본진을 파괴하여 승리하는 복합 장르 게임. 글로 설명하려니 복잡하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의 대대적인 성공으로 게이머라면 누구나 아는 장르기도 하다. 2010년 전후로 MOBA가 큰 인기를 끌면서 국내외에서 비슷한 게임이 쏟아졌는데, 대부분 기존 흥행작이 만든 틀을 넘어서지 못하고 그저 그런 수준에 머물고 말았다. 새롭지 않다는 것은 곧 선점된 유저를 빼앗을 경쟁력이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어센던트 원’에게서 조금쯤, 참신함에 대한 강박이 느껴졌다.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전장이 구 형태라는 것이다. 신비의 소행성이라는 엑시스피어를 통째로 구현하여 전장을 팽그르르 돌리며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따라서 공격로도 여느 MOBA에 2배인 여섯 갈래이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밤의 장막이 내린 영역은 접근이 차단된다. 영웅들은 계속해서 낮인 쪽으로 움직이며 자연스레 여섯 갈래 공격로를 모두 활용하게 된다. 어느 한 공격로가 쭉 밀렸더라도 밤이 되면 일단 공세가 멈추기 때문에 반격의 여지가 생기는 셈이다.
게임의 모든 요소가 지닌 궁극적인 목표는 재미를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 형태의 전장 또한 보다 재미있는 MOBA를 위해 채택되었을 것이다. 가령 공격로가 2배가 됨으로써 전술의 폭도 그만큼 넓어지고 여러 재미있는 상황을 기대해봄직하다. 그런데 적어도 기자는 이게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구형에 집착하다 보니 전장 중앙으로 갈수록 시점이 꼿꼿이 서버리고 입체감 표현이 떨어져 지형의 단차 식별이 어려웠다. 공격로를 이동하며 싸우는 것도 그냥 그렇구나 싶은 거지 실질적으로 전황이 변화하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일단 각 공격로간 개성이 크지 않다. 전부 동일한 일자 형태에 주변 환경도 엇비슷하니 옮겨 다닌다는 체감이 적다. 물론 공격로마다 인접한 정글과 중립 몬스터가 달라지므로 의미가 있긴 할거다. 아직 얼리 억세스 초창기라 유저들이 대형 중립 몬스터(‘기간테스’라 부른다)에 그리 신경 쓰지 않아 그렇게 느꼈을지도. 그런데 이런 단조로움을 가속화하는 또다른 요소가 바로 ‘터널링’이다. 소정의 비용을 지불하고 아군 건물 근처로 순간 이동하는 것인데, 재사용 대기시간도 짧고 비용이 지나치게 저렴하여 공격로 커버가 너무 쉬워진다.
영웅간 밸런스에 대한 성토도 이어지고 있지만 현시점에서 지적하기는 이르지 싶다. 여러 영웅의 균형을 맞추는 일은 다년간 서비스된 게임도 어려워하는 일이며, 무엇보다 커뮤니티에서 거론되는 OP 캐릭터가 계속 뒤바뀔 만큼 아직 게임에 대한 유저들의 이해도가 그리 높지 않다. 현재 공개된 영웅(‘어센던트’라 부른다)은 총 16종으로 스킬 메커니즘 자체가 잘못 설계된 경우까진 보이지 않는다. 일부 캐릭터가 성장 시 사실상 무적이 된다거나 몇몇은 아예 버려지고 있긴 한데 다행히 수치 조정으로 개선될 수 있는 수준이다.
이와 별개로 유저들이 캐릭터에 애정을 갖게 하는데 다소 소홀한 게 아닌가. ‘어센던트 원’은 MOBA 장르치고 과할 정도로 뛰어난 그래픽을 갖췄으며 영웅 모델링도 매우 훌륭하지만, 정작 게임 도중에는 이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아무래도 시점 문제도 있겠거니와 하나의 SF 세계관에 묶여 있다 보니 파워 슈트를 입은 모습이 거기서 거기기도 하다. 캐릭터별 음성도 아직 적용되지 않았는데, 얼리 액세스라 무의미하다고 판단했을지 모르지만 첫인상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지 않나. 그저 그리스 신화의 인물들을 미래 전사로 꾸며 놓았다고 끝이 아니다.
우려가 앞섰던 영웅 성장 시스템은 생각보다 무난하다. ‘어센던트 원’은 영웅의 능력치를 올리는 업그레이드와 여러 부가 효과가 담긴 강화모듈, 그리고 스킬 레벨업이 모두 존재한다. 따라서 진입장벽이 굉장히 높아지지 않을까 걱정한 것인데, 실상 업그레이드와 강화모듈은 기존 MOBA의 아이템을 쪼개 놓았을 뿐이다. 다른 게임에서 아이템을 구입하여 능력치 상승과 부가 효과를 모두 얻는다면 여기서는 능력치는 업그레이드로, 부가 효과는 강화모듈로 챙기는 셈이다. 하나를 둘로 나눈 만큼 조금 더 어려워지긴 했으나 성장의 자유도가 높은 점은 칭찬할만하다.
이렇다 보니 ‘어센던트 원’은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생각해보라. 업그레이드도 강화모듈도 모두 돈이 필요하다. 기본 능력으로 지니고 있는 체력 및 에너지 회복, 레이더 감지기(와드), 터널링도 모두 돈이 든다. 그만큼 손재주 좋게 먼저 우세를 점한 영웅이 혼자 폭주하며 2~3레벨씩 앞서가고 적들을 쓸어 담을 수도 있는 구조다. 이처럼 압도적인 ‘캐리’가 존재하고, CC기 성능이 강력한 반면 기본적인 평타 속도와 움직임이 약간 굼뜬 것은 요즘 나오는 MOBA 보다는 ‘도타 2’가 많이 떠오른다. 개발자 가운데 ‘도타 2’ 마니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재미있는 결론에 도달하는데, ‘어센던트 원’은 구형 전장으로 시선을 확 끌며 참신함 가득한 외형을 지녔지만 실제 플레이는 꽤나 진부한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MOBA 중에서도 최고참인 ‘도타 2’를 닮았으니까. 물론 상술했듯 게임의 궁극적인 목표는 참신함이 아닌 재미에 있으므로 그게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구형 전장으로 아예 참신함을 강조했으면 핵심 게임 플레이에서도 무언가 엣지가 있으리라 기대하기 마련이니. 반대로 지나치게 이질적인 작품일까 거부감이 있다면 그런 걱정은 접어 둬도 괜찮겠다.
쓰고 보니 아쉬움 위주로 작성하고 말았지만, ‘어센던트 원’이 여태껏 국산 MOBA라고 나왔던 게임들 가운데 특출한 완성도라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미 해당 장르의 세계 정상급 작품들이 다수 들어와 있는 시장에서 국산끼리 완성도를 재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분명 때깔이 좋고 흥미로운 면도 있다. 이런 마니악한 프로젝트를 여기까지 끌고 온 넥슨과 데브캣을 응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기자는 양일간 ‘어센던트 원’을 그리 재미있게 즐기지는 못했다. 그 진면목을 알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었을지도. 앞으로도 한동안 이 게임을 만져볼 요량이다.
|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