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만듦새에 더 심란하다, 창세기전 모바일: 아수라 프로젝트
연내 정식 서비스 예정인 모바일 SRPG ‘창세기전 모바일: 아수라 프로젝트’가 4일부터 5일 밤까지 깜짝 테스트를 진행했다.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도 출시 한 달 전에야 체험판을 풀더니 매번 일정이 참 갑작스럽다. 과연 게이시르의 비프로스트 잠입과 팬드래건의 제국 호송대 기습으로 시작되는 게임답달까. 연내라고 해봐야 이제 며칠 안 남은 만큼 사실상 론칭 빌드를 미리 살펴볼 기회였다. 본고를 읽고 흥미가 동한다면 사전예약(링크)을 해두자. 추후 정식 서비스서 사용 가능한 엘드 10만, 비트 1,500개, 캐릭터 및 장비 소환권 5장을 준다.
[관련] 콘솔·모바일로 ‘창세기전’ 부활 이끈, 팀 안타리아 삼각편대
연내 정식 서비스를 앞둔 모바일 SRPG '창세기전M: 아수라 프로젝트'
어쩌면 모바일 게임이 ‘창세기전’ 부활의 주인공!?
지난 10월 ‘아수라 프로젝트’ 소식을 접하고 기함한 이가 비단 필자 한 명만은 아니리라. 장장 7년간 악전고투 거쳐온 ‘창세기전 1·2’ 콘솔 리메이크의 결착을 기다리던 와중에 뜬금없이 모바일 게임이 함께 나온다니. 심지어 얼마 뒤 공개된 트레일러 및 스크린샷은 ‘회색의 잔영’보다 멀끔하기까지. 물론 최신 스마트폰 사양이 닌텐도 스위치를 압도하므로 때깔이 좋다고 괴히 여길 일은 아니다. 그래도 뭇 게이머가 콘솔 타이틀에 거는 기대치가 다르지 않나. 여러모로 걱정스러운 체험판을 시연하고 나니 어느 쪽이 주력인가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일단 팀 안타리아라는 IP 관리자가 중심이 되어 다수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굴린다는 야심 찬 계획은 잘 알겠다. 라인게임즈가 내세운 그럴싸한 명분 외에도 여러 현실적인 사정이 적잖이 얽혔을 터다. 앞서 개발 중이던 ‘창세기전 1·2’ 콘솔 리메이크 ‘회색의 잔영’과 새롭게 공개된 모바일 SRPG ‘아수라 프로젝트’는 게임으로서 양극단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두 ‘창세기전’이 자기 잠식하지 않고 원만히 공존할 수 있다. 축적된 리메이크 일러스트, OST, 성우 녹음과 각종 에셋을 다른 작품에 유용하자는 발상도 꽤 합리적으로 들린다.
하나의 IP로 두 개발사서 만든 콘솔과 모바일 게임을 함께 낸다는 기획
노린 건지 짓궂은 건지, 튜토리얼이 하필 LPG 빌드였던 썬더둠 공략전
사실 몇 년 전 ‘안타리아의 전쟁’이 유감스런 선례를 남겨서 그렇지, 따지고 보면 ‘창세기전’ IP와 작금의 수집형 RPG가 어울리는 구석도 있다. 흔히 ‘창세기전’을 추억할 때 SRPG로서 시스템 및 콘텐츠가 훌륭했다, 완성도가 높았다고 말하는 이는 드물다. 대부분 스토리가 웅장하다,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음악이 아름답다는 감상이다. 특히 1·2편은 ‘삼국지 영걸전’과 패미컴 시절 ‘파이어 엠블렘’처럼 군담물을 표방하여 소모적으로 쓰이는 등장인물이 많다. IP가 사랑받는 이유가 스토리, 캐릭터고 심지어 분량까지 충실하다면 수집형 RPG로 퍽 적절하다.
보통 하나의 IP로 콘솔과 모바일 게임이 동시 전개될 때 우려를 사는 건 후자다. 반면 이 경우는 ‘회색의 잔영’을 향한 드높은 기대치가 체험판으로 폭락함에 따라 ‘아수라 프로젝트’로선 한 뼘이나마 입지를 넓혔다(라인게임즈가 원하는 바는 아니겠으나). 무엇보다 모바일이라 덮어놓고 욕할 만치 게임이 나쁘지 않다. 미어캣 게임즈 실력인지 팀 안타리아의 관리 덕분인지 몰라도 최소한 ‘안타리아의 전쟁’ 같이 괴작은 아니다. 긴한 내용이야 후술하겠으나 결론부터 적자면 ‘회색의 잔영’ 부산물 취급하기에 ‘아수라 프로젝트’가 의외로 괜찮더란 것.
'창세기전'이 SRPG로서가 아니라 캐릭터와 스토리로 추억될 뿐이라면
군담물 특유의 수많은 등장인물이 수집형 RPG에 퍽 어울리기는 한다
의외로 콘솔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SRPG에 진심
이제 ‘아수라 프로젝트’ CBT 빌드를 좀 더 뜯어보자. 게임을 켜면 먼저 어느 첨탑 발코니에 홀로선 이올린의 뒷모습이 보인다. 장소와 구도가 마치 그녀와 G.S가 입을 맞췄던 아스타니아를 연상케 한다. 뿐만 아니라 코스모스 시스템 가동 시 흘러나오는 ‘Neo Space’와 도트 감성 가득한 로딩창까지. 소싯적 ‘창세기전’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곳곳에 자리했다. 스스로 ‘창세기전’ 올드팬이라던 미어캣 게임즈 남기룡 대표의 소개가 허언이 아니었던 모양. 완성도에 직접적으로 보탬이 되진 않더라도 이런 소소한 ‘추억팔이’는 언제나 환영이다.
주된 콘텐츠는 연이은 스테이지를 차례로 공략하며 원작 스토리를 감상하는 월드맵이고 그 외에 흔히 숙제라 부르는 소일거리(제국군 습격, 블루시드 해적단, 고블린 소탕)와 PvP(격투 대회), 도전 모드(피라미드)가 있다. CBT임에도 커뮤니티 콘텐츠인 기사단까지 공개됐는데, 일일 임무를 수행하여 얻은 주화로 몇몇 아이템을 구입하는 식이다. 물론 소환이라 명명된 뽑기(혹은 가챠, がちゃ) 역시 존재하며 캐릭터와 장비 항목으로 나뉜다. 등급은 희귀, 영웅, 전설 순이다. 이외에 원작 기반의 게임답게 스토리 및 캐릭터 설정이 정리된 도감을 제공한다.
UI/UX가 단출하고 투박한데, '창세기전' 팬이라면 뭉클할 요소는 있다
핵심은 '창세기전 1·2' 스토리 콘텐츠. 일종의 숙제와 PvP도 존재한다
여기서 인상적인 점은 캐릭터 특성과 그 상성 관계가 굉장히 세분화됐다는 것이다. 단순히 풀 < 물 < 불 < 풀과 빛 < 어둠 상성으로 끝이 아니라 헤비, 미디엄, 라이트 아머와 참격, 타격, 관통, 마법에 따라 대미지 보정이 달라진다. 일반적인 검병, 창병, 도끼병 외에도 아군을 보호하는 검방병, 창방병 그리고 장애물을 뛰어넘는 순찰자, 단검병 끝으로 궁병, 마법사, 치유사로 역할이 구분되고 거기서 다시금 두세 갈래로 전직이 가능하다. 원작에 비해 제한될 수밖에 없는 스킬셋은 편집 기능을 지원하며 이올린 등 주역 캐릭터는 초필살기를 지녔다.
게임 진행은 ‘회색의 잔영’처럼 스테이지를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컷신 감상 아니면 전투 뿐이다. 최초 병력 배치도 속전속결을 위해 적과 아군이 지척에 섰다. 보통 첫 턴에 곧장 접전이 벌어질 정도. 하지만 이러한 약간의 모바일스러움을 제외하면 SRPG로서 깊이가 결코 ‘회색의 잔영’에 밀리지 않는다. 아니, 기물간 역학과 상성, 지형지물 활용에서 창출되는 전략성은 되려 ‘아수라 프로젝트’가 윗길이다. 상술한 원소, 병종의 유불리 외에도 협공, 목책을 통한 엄폐, 시간 및 날씨 변수, 타일 효과, 무엇보다 ‘회색의 잔영’에도 없는 통제 영역(ZOC)이 있다.
원소 상성뿐 아니라 공격 방식와 병종에 따라 전투의 유불리가 바뀐다
원호, 엄폐, 통제(ZOC)에 시간, 날씨까지 SRPG로서 갖출 건 다 갖췄다
세련되고 편리한데 돈은 내야, 모바일 게임의 명암
연출과 편의기능은 또 어떤가. 타격 혹은 피격 시 두 캐릭터를 근접 조명하는 연출은 ‘회색의 잔영’서 많은 이들이 바라던 기능이다. 심지어 ON, OFF에 아군만 출력이 가능하고 보다가 스킵도 된다. 개전 시 간편한 배치 수정, 적 이동 및 공격 범위을 비롯한 세밀한 타일 표시(빨강, 파랑, 보라, 노랑, 녹색, 빗금) 상황을 살피기 위한 탑뷰 전환, 1.5배속,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턴 되돌리기, 하다못해 재시작과 전투 포기까지. ‘회색의 잔영’ 플레이 후 그렇게나 넣어달라고, 신경 좀 써달라고 요청한 기능들이 왜 다 ‘아수라 프로젝트’에 있느냐는 말이다.
스토리야 여러 스테이지로 분절된 모바일 게임보다 모든 서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따라가는 콘솔 타이틀이 낫지 싶다. 실제로 ‘아수라 프로젝트’서 생략되거나 축소한 내용이 없잖아 있는지라 스토리만큼은 ‘회색의 잔영’을 추천한다. 다만 성기사단이 설산이나 숲에서 헤매는 과정까지 볼 필요는 없고 굵직한 장면 위주로 감상하겠다면 이쪽도 그리 나쁘지 않다. 생략과 축소 대신 전체적인 때깔이 좋고 스탠딩 CG 표정 변화도 지원하니까. 정말 계획대로 정식 서비스가 순항할 경우 언젠가 ‘서풍의 광시곡’ 등이 업데이트된다는 것도 장점이다.
'회색의 잔영'서 많은 이들이 바라던 전투 연출이 존재. 편의성도 괜찮다
스토리 감상하기는 콘솔이 더 나을 듯하나, 이쪽은 표정 변화를 지원한다
물론 이 모든 평가의 전제는 뭇 게이머가 소위 ‘폭사’하지 않고 월드맵을 꾸준히 밀고 나갈만한 진용을 갖췄다는 거다. 결국 모바일 게임은 시스템 및 콘텐츠 전반이 유료 재화를 통한 뽑기, 즉 과금을 기반으로 설계되기 마련. 미어캣 게임즈가 제아무리 각 잡고 번듯한 SRPG를 만들려 했더라도 모바일이란 플랫폼이 ‘아수라 프로젝트’의 족쇄요 한계다. 현재로선 비트(유료 재화)와 기억의 파편을 정기적으로 수급할 창구도 마땅치 않다. 이것이 한 차례 패키지 구매로 모든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회색의 잔영’과 결정적으로 길이 갈리는 지점이다.
그리고 준수한 완성도의 전투를 제외하면 마감이 투박하거나 비어 보이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모바일 게임도 나름의 트렌드를 좇아 콘텐츠 구성과 UI/UX가 계속 발전하는데, 그러한 변화상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이다. 대략 5년 전 어느 중소 개발사의 수집형 RPG를 받아본 느낌이랄까. 론칭까지 반 년 이상 남아서 게임의 핵심만 우선 검증하는 단계라면 참작하겠으나 ‘아수라 프로젝트’는 당장 이달 정식 서비스에 돌입한다. 아예 모조리 엉망진창이면 모를까 잠재력이 충분한 작품이 미완성으로 출시될 작금의 상황이 못내 안타깝다.
제아무리 각 잡고 만든 SRPG라도 모바일 게임의 한계는 안고 갈 수밖에
전투는 훌륭하나, 그 외에 콘텐츠 분량이든 밀도든 론칭 빌드라기 아쉽다
미완성으로 던지는 것까지 소프트맥스 닮지 않길
스스로조차 이런 말을 하게 될 줄 몰랐다. ‘창세기전 모바일: 아수라 프로젝트’는 썩 괜찮은 모바일 SRPG다. 혹자의 우스갯소리처럼 ‘회색의 잔영’ 체험판으로 충격요법을 심하게 당해서 ‘다시 보니 선녀’라는 게 아니다. 저 ‘아르케랜드’ 같이 (비록 국내 흥행은 실패했으나)우수한 해외 작품과 어깨를 견줘도 충분히 승부가 성립할 정도다. 제대로 완성된 부분만 평한다면 말이다. 현재로선 연내 서비스를 위해 서둘러 마감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일단 론칭하고 고칠 요량이라면… 그런 해묵은 90년대 악습까지 소프트맥스를 계승할 필요는 없지 않나?
일단 게임을 내고 패치로 완성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그것도 30년 전에…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