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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캡콤이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의 수많은 마이너 업그레이드 버전을 내놓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게이머라면 스트리트 파이터 4의 후속작을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겁니다. 스트리트 파이터 2의 대시-터보-슈퍼-슈퍼X로 이어지는 흐름과 스트리트 파이터 3의 2nd 임팩트-3rd 스트라이크로 이어지는 화수분 같은 모습, 그리고 기종을 가리지 않고 무수한 파생 작품을 내놓은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시리즈에 이르면 캡콤의 타이틀 릴레이는 경이로울 정도로 왕성한 생산력을 자랑했었습니다. 전 세계적인 인기 대전 격투 게임의 정식 후속작이 약 10년 만에 나왔고, 또 적지않은 호응을 얻었으니 그 후속작이 제작되는 것은 무척이나 당연한 흐름이었을 겁니다.
가정용으로는 1년 만에 출시된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4. |
색연필로 거칠게 스케치한 느낌의 오프닝. |
결국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4의 발매가 결정되었고, 2008년 7월 아케이드 버전 출시 이후 2년이 채 되지 않은 2010년 4월 PS3와 Xbox360으로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4가 정식 발매되었습니다. 물론 여기까진 캡콤을 잘 아는 게이머라면 그리 특별할 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4는 기존 시리즈와는 다른 특별한 요소가 존재했습니다. 바로 한국인 캐릭터 한주리의 존재입니다. 이젠 게임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제작되는 영화나 애니에서의 한국인 캐릭터의 등장은 그리 놀랄 게 없겠지만 적어도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에서 한국인 캐릭터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 게이머들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겁니다(아예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를 더이상 볼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도 적지 않았을 겁니다).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최초의 한국인 캐릭터 한주리. |
비단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뿐만 아니라 그간 캡콤이 무수히 제작했던 대전 격투 게임을 찾아봐도 CVS 시리즈의 김갑환을 제외하면 딱히 떠오르는 한국인 캐릭터가 없었기에 한주리의 등장은 더욱 놀라웠습니다. 게다가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4의 메인 포스터나 특전 애니메이션, 오프닝 등에서의 존재감은 가히 최종 보스 레벨인데다 스토리 모드에서 라이벌로 등장하는 캐릭터는 베가 아저씨, 전용 BGM도 소박한 느낌의 한국 스테이지와는 안 어울리게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는 곡으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사소한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주리의 연속 입력 기술인 질공섬은 추가 입력 공격에 각각 스트리트 파이터 3 시리즈의 부제인 '2nd 임팩트'와 '3rd 스트라이크'가 붙는 멋진 센스를 보여줍니다.
얼마 전 발매된 NDS용 피겨 프린세스(우)도 최종 보스틱한 한국인 캐릭터가 등장했었지요. |
과거 SNK의 아랑전설 2로 데뷔해서 좋은 반응을 얻은 후 더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를 거치며 하나의 완성된 캐릭터로 굳건한 자리를 잡은 김갑환이 갱생과 정의를 부르짖는 좀 과하게 선한 캐릭터였다면,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4의 한주리는 표독한 말투와 사악한 표정의 악역 캐릭터로 등장하면서 어떻게 보면 제작사가 의도적으로 이렇게 캐릭터를 잡은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김갑환과 대극을 이루는 캐릭터라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주리는 굉장한 존재감을 자랑하며 스트리트 파이터 월드에 멋지게 데뷔했고, 그녀의 존재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에 한국인 캐릭터가 등장하길 고대하던 캡콤 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선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성격은 완전히 달라도 한쪽 눈이 빛나는 건 똑같군요. 둘 다 평범한 성격이 아니긴 하지만. |
물론 주리의 복장이나 한국 스테이지에 대해 불만을 표한 유저도 꽤 있고, 개인적으로도 중국식 복장이 생각나는 디자인이 꽤 눈에 밟힙니다(중국식 속옷이 아니라 그냥 탱크탑이라고 하면 할 말 없겠지만요). 실제로 주리의 복장이나 한국 스테이지는 발매 전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던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괴악한 개성의 캐릭터들이 넘쳐나는 스트리트 파이터의 캐릭터들 사이에서 무시 못할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면서 스토리의 한 축을 굳건하게 담당하고 있는 것을 보면 미우나 고우나 꽤 오래 사랑받을 캐릭터로 자리 잡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오노 PD가 농담조로 손예진이 모델이랬지만 |
가끔은 저런 소녀스러운 주리도 귀여워요. |
주리와 함께 이번 작품의 오리지널 캐릭터로 등장하는 하칸은 나름 진지한 위치의 주리와는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개그로 점철된 캐릭터라 할 수 있습니다. 캡콤이 주리를 건성으로 만든 건 아닌가 의심하던 게이머들도 하칸을 보면 주리는 정말 진지하게 만들어주었구나 생각할 정도로 간만에 캡콤의 괴악한 설정이 폭발하는 캐릭터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온몸에 기름을 잔뜩 뿌려대며 터키식 레슬링을 구사하는 하칸은 그 괴이한 설정과 함께 이해 불가능한 헤어스타일과 가슴 사무치는 연출의 필살기를 선보이며 강한 존재감을 게이머들에게 드러낸 캐릭터입니다. 그런 주제에 어여쁜 마눌님과 귀여운 자식들, 재벌이라는 무척 위너스러운 설정은 많은 게이머들에게 부조리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느끼게 해줍니다.
정열적인 기름 덕후 하칸. |
사람 환장하게 하는 기술들이 일품이다. |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4의 오리지널 캐릭터인 한주리와 하칸. |
이번 작품에서는 전작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와 함께 기존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에서 인기를 얻었던 캐릭터들도 대거 등장해서 풍성한 캐릭터 셀렉트 화면을 자랑합니다. 전작이 아케이드 버전에서 가정용 버전으로 이식되면서 주로 제로 시리즈 위주의 캐릭터들을 가정용 캐릭터로 추가했다면 이번 작품의 추가 캐릭터들은 특정 작품에 편중되지 않고 기존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의 캐릭터들을 골고루 추가한 편입니다.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2의 디제이와 티호크, 스트리트 파이터 3의 이부키, 더들리, 마코토, 그리고 제로 시리즈의 코디, 가이, 아돈이 새로운 캐릭터로 가세하면서 전작보다 10명이 더 추가되었습니다. 또한 전작과는 달리 모든 캐릭터는 처음부터 바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제로 시리즈의 아돈. |
사이 좋게 추가된 코디와 가이. |
스트리트 파이터 3에서 등장했던 이부키와 마코토. |
디제이와 티호크도 새로이 참전했다. |
핵심 시스템인 세이빙 어택 시스템은 다단 세이빙이 들어갈 것이라는 루머도 있었지만 전작과 마찬가지로 단타만 가드할 수 있습니다. 중펀치+중킥으로 발동되는 세이빙 어택은 버튼 지속 시간에 따라 3단계로 나뉘게 됩니다. 1단계 세이빙 어택은 순간적인 하이퍼 아머 효과를 발동하면서 적의 공격을 무력화한 뒤 공격할 수 있으며, 카운터로 들어가면 상대방을 잠시 무방비 상태로 만들 수 있습니다. 2단계 세이빙 어택은 적의 공격을 무력화한 후 공격할 때 무조건 상대방을 무방비 상태로 만들 수 있으며, 3단계 세이빙 어택은 적의 하이퍼 아머 효과를 무시하고 공격할 수 있는 가드 불능의 아머 브레이크 효과가 붙습니다. 2단계부터는 성공하면 무조건 상대방을 무방비 상태로 만들고 추가 공격을 할 수 있습니다.
세이빙 어택 발동 시 하이퍼 아머로 적의 공격을 무효화. |
3단계 저축에 따라 세이빙 어택의 효과도 달라진다. |
세이빙 어택 발동 시 하이퍼 아머로 적의 공격을 무력화하더라도 일정량 체력 게이지가 줄어들게 되며, 이때 줄어든 체력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회복되지만 회복되기 전에 다시 공격을 받으면 그대로 게이지가 줄어들기 때문에 가드 대미지 없이 적의 공격을 완벽하게 무력화할 수 있었던 스트리트 파이터 3 시리즈의 블로킹 시스템과는 다른 성능의 시스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이빙 어택 중에는 이동과 점프가 불가능하지만 버튼을 누르는 중이나 세이빙 어택이 들어간 직후에는 전방 대시와 후방 대시가 가능하기 때문에 대시를 사용해서 세이빙 어택 자체를 캔슬하거나 세이빙 어택 직후에 무릎이 꺾인 상태의 상대방을 추격해 들어가서 추가타를 넣을 수 있습니다.
세이빙 어택 발동 도중 전방/후방 대시를 사용할 수 있다. |
또한 공격 도중에 사용할 수 있는 EX 세이빙 어택 시스템도 존재합니다. 특정 공격이나 필살기를 사용한 직후 슈퍼 콤보 게이지를 소모해서 세이빙 어택을 발동하면 해당 기술을 강제로 캔슬하고 바로 세이빙 어택을 낼 수 있습니다. 이때 발동되는 EX 세이빙 어택은 일반적인 세이빙 어택의 하이퍼 아머 발동 효과는 없지만 캔슬 전방 대시를 사용해 추가 공격을 하면서 몰아붙이거나 반대로 공격이 가드 당했을 때 후방 대시를 사용해 적의 반격을 피하는 등, 공격의 성공 여부에 따라 전략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블로킹과 가드 브레이크, 하이퍼 아머와 슈퍼 캔슬 등 그간 캡콤의 대전 격투 게임에서 볼 수 있었던 여러 요소를 이용해 하나의 시스템으로 만들어낸 것이 세이빙 어택이라 할 수 있으며, 강제 연결과 함께 고수와 하수의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내는 시스템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옛 추억을 되살린 콘셉트의 게임이기도 하고 올드 유저를 배려한 게임이라는 이미지 덕분에 스트리트 파이터 4 시리즈가 어느 정도 쉬운 게임이라는 말도 있지만 여전히 기존 시리즈에서 플레이어를 애먹이는 대부분의 요소는 오롯이 살아 있고, 플레이어 간의 격차도 이전 시리즈보다 줄어들었다고 하긴 어려운 편입니다. 물론 그만큼 대전으로서의 재미는 깊어졌지만 약간은 방심하고 들어온 유저들에겐 허들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EX 게이지를 소모해서 강제로 필살기를 끊고 EX 세이빙 어택을 사용할 수 있다. |
전작과 마찬가지로 특정 캐릭터를 제외하곤 슈퍼 콤보는 하나만 있지만 울트라 콤보는 하나씩 새롭게 추가되었으며, 스트리트 파이터 3 시리즈처럼 캐릭터를 선택하고 나서 어떤 울트라 콤보를 사용할지 하나만 고를 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공격할 때마다 축적되는 슈퍼 콤보 게이지는 총 네 칸으로 구분되어서 끝까지 모았을 때 슈퍼 콤보를 사용할 수 있으며, 슈퍼 콤보 게이지의 50%나 25%를 소모해서 EX 필살기를 사용하거나 두 개씩 소모해서 EX 세이빙 어택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슈퍼 콤보 게이지 옆에 붙은 리벤지 게이지는 공격을 받을 때마다 차오르며, 절반 이상 모았을 때 울트라 콤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아놓은 리벤지 게이지의 양에 따라 울트라 콤보의 위력은 달라집니다.
캐릭터마다 하나씩 울트라 콤보가 추가되었다. |
캐릭터 셀렉트 시에 울트라 콤보를 하나 고르는 방식. |
아케이드 버전보다 가정용 콘솔 버전으로 먼저 제작된 타이틀답게 스토리 모드가 존재합니다. 다만 애니메이션이 풍부하게 사용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정지 화면에 몇 가지 효과를 준 연출이 대부분이어서 크게 눈요기라 할만한 부분은 없는 편입니다. 그마저도 이상하게 그림체가 망가지는 장면도 심심찮게 튀어나오는 편이어서 만족스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그래도 과거 게임 외적인 부분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전작과 이번 작품의 스토리 모드를 통해 이어지는 여러 곁가지 이야기는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의 팬이었다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만한 부분이며, 스트리트 파이터 월드의 공간을 나름 채워주는 요소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곧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며 격하게 설레는 켄. |
그리고 그 아이는 시리즈 3편에서 아버지의 소중한 무언가를…. |
설정 일러스트와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들도 있다. |
전작에서 호평받았던 네트워크 대전 시스템은 이번 작품에서도 그대로 이어져서 혼자 싱글 플레이를 하는 와중에 다른 플레이어의 난입이 이루어지기도 하며, 엔드리스 배틀 모드와 팀 배틀 모드가 추가되어서 대전 방식의 폭을 넓혔습니다. 또한 유저의 실력을 표시하는 포인트를 세분화해서 플레이하는 캐릭터마다 따로 포인트를 표시하기 때문에 해당 플레이어의 캐릭터에 따른 실력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플레이를 통해 얻은 아이콘과 칭호의 수 또한 풍부해서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시스템이 없는 본 작품에서 자신의 개성을 구현하도록 했습니다.
게다가 전작에서 불편하다는 지적이 나왔던 리플레이 모드 저장 방식이 간단하게 바뀌었고, 리플레이 채널 모드를 도입해서 리플레이 화면을 따로 모아서 편하게 감상하거나 다른 플레이어와 공유하도록 유도합니다. 리플레이 화면은 단지 다른 플레이어끼리의 대전을 감상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옵션 설정을 통해 해당 플레이어가 어떤 조작을 하는지도 적나라하게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입력 확인 옵션은 리플레이 화면을 통한 수련에도 도움을 주는 동시에 스틱으로 하면서 패드로 한다는 거짓말(...)을 대놓고 할 수 없는 장치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리플레이 저장과 감상이 편리해졌다. |
화면을 가득 채우는 각종 수치와 입력 기록. |
다른 플레이어와의 대전을 통해 실력을 쌓는 네트워크 매치 모드와 함께 오프라인으로 전반적인 시스템 이해를 도와주는 챌린지 모드 또한 그대로 존재합니다. 과거 PS1 시절 특유의 악랄함으로 이름을 떨쳤던 스트리트 파이터 EX 시리즈의 트라이얼 모드를 옮겨온 듯한 챌린지 모드는 기본적인 필살기 사용은 물론 강제 연결과 타겟 콤보, 간단한 연속기에서부터 과연 영장류가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연속기까지 다양한 과제가 주어지며, 트라이얼 모드 하나만 가지고도 한동안은 질리지 않고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4를 플레이할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를 자랑합니다. 또한 이번 작품에서 새로이 추가된 보너스 스테이지 또한 트라이얼 모드에서 다시 플레이하면서 연습할 수 있습니다.
매우 알차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챌린지 모드. |
추억의 자동차 부수기도 부활. |
전작을 구입했던 유저에게는 작은 메리트가 존재하는데, PS3나 Xbox360 본체에 전작의 세이브 데이터가 남아 있다면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4를 처음 구동할 때 바로 두 개의 추가 컬러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전작의 PC 버전에서 추가되었던 수묵화 필터가 적용된 모습이며, 나머지 하나는 이번 작품의 오프닝과 캐릭터 일러스트에서 보여주었던 날카로운 색연필로 스케치한 듯한 느낌의 필터가 적용된 모습입니다.
PC 버전의 수묵화 필터가 부러웠던 콘솔 유저에겐 작지만 멋진 선물이라 할 수 있으며, 이번 작품의 대표 연출이라 할 수 있는 색연필 필터도 비록 대전 시의 화면이 조금 지저분해 보이긴 하지만 승리 화면이나 울트라 콤보, 등장 연출 처럼 캐릭터들이 확대되는 장면에서는 꽤 분위기 있는 모습을 만들어냅니다. 또한 특전이라고 하기엔 좀 민망하지만 전작의 유료 추가 복장을 구입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도 해당 복장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번 작품에서 추가된 세 번째 복장은 오노 프로듀서의 삼계탕 섭취 지원을 위해 따로 돈을 주고 사야 합니다.
전작의 세이브 데이터가 있다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수묵화 필터(좌)와 색연필 필터(우). |
전작의 유료 복장은 이번 작품에도 그대로 연계. |
세 번째 유료 복장도 추가되었다. |
과거 스트리트 파이터 2가 버전업을 거치면서 같은 디자인의 스테이지를 이어가면서도 버전에 따라 시간대 조절이나 색채를 바꾸어서 다른 느낌을 주었다면,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4는 전작의 스테이지를 그냥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남코의 철권 5-철권 5 DR처럼 스테이지 디자인이 크게 변경되지는 않더라도 분위기나 시간대를 바꾸는 정도의 손질만 하더라도 '재탕'이라는 느낌까지는 들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또한 전작의 갤러리 모드가 삭제되었는데, 콜렉션 패키지를 구입한 유저를 배려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작에서 멀쩡히 지원했던 부분이 후속작에서 의도적으로 삭제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터라 살짝 못마땅해지긴 합니다.
사실 스트리트 파이터 4가 3D로 제작되면서 3D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 대전 도중 과격한 카메라 워킹이 이루어지고 승리 화면 연출도 멋지게 만들었기에 이번 작품에서는 기존 울트라 콤보의 카메라 앵글을 살짝 변경하거나 승리 화면 연출도 좀 이색적으로 바꾸지 않았을까 기대했는데 결국 기존 연출을 그대로 사용한 것도 기왕 3D로 만든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나마 전작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로딩은 빠르고 PS3와 X360 두 기종 다 인스톨 기능을 지원하기에 무척 쾌적한 대전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간대 변화나 날씨 변화 정도만 줘도 좋지 않았을까. |
그래도 멸 승룡권의 연출은 참으로 개념찹니다. |
전작도 그러했지만 이번 작품 역시 만족스러운 조건으로 정식 발매가 이루어졌습니다. 일단 자막 한글화가 이루어졌으며, 심심한 폰트였던 전작에 비해 폰트도 그리 튀지 않을 정도로 변경되었습니다. 게다가 본체 언어 설정을 바꾸면 영어/일본어 자막으로도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캐릭터들의 음성도 영어와 일본어 중에서 선택할 수 있으며, 아예 캐릭터마다 음성을 어느 언어로 할지 지정할 수 있습니다. 발매일도 일본판 발매일과 동일하며, 정식 발매 가격도 49,000원으로 북미판(39.99달러)과 일본판(4,900엔)과 비교해도 적절한 수준입니다.
물론 전작이 52,000원이었고 이번 작품은 훨씬 싸게 발매한다는 이야기가 있었기에 가격에 대한 불만은 있는 편입니다. 하지만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4가 비싸게 나왔다기보다는 전작이 워낙 싸게 발매되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리 싸지 않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또한 이번 작품에서 총 10명의 캐릭터가 추가되었고 단순 마이너 업그레이드라 정의하기엔 너무나 많은 부분이 추가/보완된 작품을 자막 한글화로 일본판과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과도하게 비싼 가격 정책이라고 잘라 말하기엔 조금 박정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전작에 비하면 폰트도 무난하게 좋아진 편 |
모든 캐릭터마다 개별적으로 음성 지정 가능. |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4는 전작의 성공을 발판으로 한 일종의 완전판일 수도 있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면 전작을 구입한 유저에겐 상대적인 박탈감을 안기며 추가 지출을 하게 하는 타이틀일 수도 있습니다. 작년에 발매되었던 스트리트 파이터 4의 베이스를 그대로 따라간 타이틀이지만 10명이라는 적지 않은 캐릭터의 추가와 스테이지, 그리고 울트라 콤보 2의 추가와 함께 몇몇 기술에 추가와 수정이 이루어지면서 단순한 우려먹기 식 타이틀이라 하기엔 꽤 많은 부분이 추가되고 변경된 타이틀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가 주는 즐거움은 하나의 독립된 패키지 타이틀로 충분하다 평가할 수 있으며, 여전히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는 명작 시리즈의 최신작다운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