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쳐 쓰기로 결심하는 시
모모와 바게트 빵에 잼을 발라서 먹고 있는데
전화 한 통이 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미래 시
편집자 누구누구인데요 이번
신인 특집호에 원고를 싣고
싶어서요
좋은 일이네
“네 정말 감사합니다 꿈에 그리던 일이에요”
그리고
전화를 끊고 나는 바게트를 한 입 더 깨물어 먹으며
모모에게 말했다
이번에 미래 시 신인 특집호에 내 원고를 싣고 싶다네
그렇네, 모모도 전에 여기다 실었었지?
모모는 치아 교정 수술을 하느라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볼이 예쁘고
바게트를 좋아해서 바게트 빵이 나오는 시를
스물여섯 편이나 썼다 그중 하나는 모모의
등단작이기도 하다
아니
아니라고?
응…… 나한텐 그런 연락 안 왔는데
그래?
그래
모모는 재작년에 등단했잖아
그랬지
그럼 작년에 신인 특집호에 실린 거 아니야?
아니야
이상하네
이상하군 눈 내린 창밖에서 눈부신
햇빛이 모모와 내가 서 있는 거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모모는 심술을 부리면 볼이 부풀어 오르고
웃음이 많고 손이 매운
여자에 대한 시를 서른두 편이나 썼다 모모의
문제는 시를 너무 많이 쓴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거실에 담요를 깔고 누워
바게트를
깨물어 먹으며
모모의 시가 신인 특집에 실리지 못한 이유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모모, 너는 시를 너무 많이 써
그래?
그리고 너는 내 꿈 이야기를 훔쳐서 시에 쓴 적도 있어
내가?
그건 사실이었다
나는 모모가 아주 잠깐 등장할 뿐인 꿈 이야기를
신기한 마음에 모모에게 들려준 적이 있는데
이틀 아니면
사흘 정도
지나고 나서 모모는 내게 시 한 편을 보여 줬고
거기엔
내 꿈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어떤 이미지가
들어 있었다
그 구절은 이랬다
“우리는 동시에 꿈을 꾸었다. 너의 꿈속에서 한 여자가 나의
흰 정장에 금색 스프레이를 뿌렸다.”
분명히 말해 두지만, 우리는 동시에 꿈을 꾼 게 아니었다
꿈을 꾼 것은 나였다
알았어 또 뭐가 있지?
음
모모의 시에는 비유가 없어
비유가 없다고?
그래 비유가 없어 그리고 시적 짜잔도 없어
짜잔?
또 하나 생각해 볼게…… 신인 특집은 좋은 신인들의 시
를 싣는 거잖아?
그런가?
그러면 모모는 좋은이 아니거나 신인이 아닌 거야
좋은이 아니란 건 무슨 뜻이야?
모모, 그건 비유나 짜잔이 없단 뜻이야
신인이 아니란 건?
모모, 그건 신인상 시상식이 취소되었다는 뜻이야
모모는 점점 더 작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담요 위에서
그리고 더 많아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바게트 빵의
부스러기들처럼
그리고 우리는
곰돌이, 지구 온난화, 보르헤스의『픽션들』페이지 수,
어제 저녁에 먹은 식사 메뉴, 모모가 쓴 꿈에 대한
아흔아홉 편의 시들
또 영화배우들과 전 세계의 전래 동화 같은 것들의 영향
을 고려에 넣어
모모의 시가 신인 특집에 실리지 못한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모모,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응?
K씨가 나오는 시들,
응
그 K씨들 나 아니야?
아닌데……
모모는 K씨가 나오는 시를 많이,
그러니까 백스물두 편이나 썼는데
사람들이 “이거 K씨 걔 아니야?” 물어보면 모모는 항상
아닌데……라고 대답하고
사람들이 그렇게 물어보는 게 웃기지 않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그렇게 웃기지는 않았고 사실
조금 시무룩했고
무엇보다
약간의
정체성의 혼란을 느꼈지만
모모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나는 K씨가 아닌지도
K씨는 내가 아니듯이
바게트를 다 먹자 배가 부르고
배가 부르자 또 아늑한 밤이 왔다
우리는 침대에 나란히 누워
언제쯤 모모의 시에 좋은과 신인과 비유와 짜잔이
찾아올런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
잎사귀가 부족해서 그런 걸 수도 있어
잎사귀가 뭔데?
모르겠어, 그냥 파릇파릇하고 이쁜 거
모모는 파릇파릇하고 이쁜데
내 시 말이야
그래
그렇지
아마 모모는 요정이 되려고 하는 걸지도 몰라
무슨 요정?
글쎄…… 벽난로의 요정?
벽난로의 요정이 하는 게 뭐야?
따뜻해지는 거, 그리고 가끔 타닥타닥 소리를 내
너는 무슨 요정인데?
나는…… 의자의 요정이 좋겠다
의자의 요정은 무슨 일을 하는데?
그냥 벽난로 앞에 있는 거야
그렇네
동시에 꿈을 꾸는 거지
그래
모모는 계속해서
작아져서
이제는 타닥타닥 소리로만 남아 있었다
그건 어떤 꿈일까?
나는 꿈에서 K씨가 되어서 그건 어떤 꿈일까? 생각했다
바게트 빵의
부스러기들로 까끌까끌해진 담요 같은
그러니까
미래 시 신인 특집호에 할당된 것처럼 한 지면에 실리는
두 편의 시 같은
넓은 침대를 혼자 굴러다니다가
나는 그런 꿈을 시로 써서 발표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러니까
두 편의 시;
한 편은 훔쳐 쓰기로 결심하는 시
한 편은 훔쳐 쓰는 시
완벽한 개업 축하 시
강보원, 민음의 시 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