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벌이 나타나면 창문을 활짝 열자
나는 빚을 잔뜩 지고 도망 중인
잭 아저씨의 꿈속으로 들어가
문을 두드린다
똑똑
그는 질리도록 잠을 많이 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잊어버렸고
그래서 키가
몇 센티미터쯤은 줄었고
마을의 농사꾼
식물 재배의 왕
황금 알을 낳는 오리를 치는
천부적인 목축업자이자
뜨개질과 지도 그리기의 달인
그것이 잭 아저씨였지만
이제는
뒷마당 텃밭에 부질없는
딸기 몇 그루나 심어 놓고는
“그래 강아지풀 예쁘지
근데 그거 잡초다”, 하면서
배곯은 딸이나 울리고
나는 잭 아저씨가 이제 그만
다 잊고 예전처럼
나와 놀아 주기를 바랐는데
검은 양복 남자들이 온통 파헤쳐 놓은
딸기밭을 뒤적이며
콩나무나 두어 그루 심다가
“예전엔 잘 자랐는데, 이거……”
눈시울을 붉히는 잭 아저씨
나를 업어 키운 잭 아저씨
작아지다가 작아지다가
이제 내 발목만치나 겨우 오는
잭 아저씨
나는 질리도록 딸기를 많이 먹어서
빨갛고 앳된 얼굴에
한 땀 한 땀 압정을 박아 넣으며
부끄럼 많은 과일이 되어 가고
그건 지구본을 아주 세게
돌리고 싶다는 말과 같은데
전기세
가스비
핸드폰 요금
만화방 연체와 굽은 허리의 달인 잭 아저씨
똑똑
사람 없어요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그런데 우리는 어쩌다
한 바구니에 담기게 된 걸까?”
혼잣말을 하는 잭 아저씨
나는 녹이 슨 문을 억지로 열어 보려다
잘 돌아가지 않는 나의 지구로 돌아온다
콩나무가 또 자라겠지
뭐
말벌은 노크도 없이
활짝 열린 창문을 통해
들어온다
완벽한 개업 축하 시
강보원, 민음의 시 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