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의 일이 있은 뒤, 대략 몇 달 지날 무렵이었다. 일감을 찾고, 인력시장을 가고, 일을 하고 하루 일당을 챙기고. 매일 같은 일상의 반복이었건만, 청년은 언젠가부터 이전에는 없었던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청년이 자주 방문하던 인력시장과, 구인구직 사이트들이 하나 둘씩 문을 닫으면서부터였다.
안드로이드들이 일자리를 대거 차지하고, 그에 대항하기 위해 청년의 친구처럼 스스로 기계가 되기를 택한 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었던 것이다.
------------------------------------------------------------------------------------------------------------------------------------------------------------
"얘기가 다르잖습니까. 여기 오는 데 걸린 시간은 어쩌구요."
하루 일당 9만원씩, 도합 10일 짜리 컴퓨터 유지보수 업무였다. 청년이 사는 곳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 받는 일당에서 근처에서 머물 때 쓸 숙식비까지 제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때는 이미 여름의 초입 무렵이었고 거리가 멀어 약간 꺼려지기도 하였으나, 당장 돈이 궁하고 언제 또 이만한 일감이 나올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그의 입장에서는 일을 가려 받을 처지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만사 제쳐두고 왔건만, 느긋하게 앉아서 볼펜으로 뭔가를 끄적이고 있던 하청업체 담당자가 그의 억장을 무너지게 만들었다. 안됐지만 퉁쳐서 7만원만 받으라는 것이었다. 다 된 밥에 재 뿌린 격이라 청년이 대뜸 따지고 들자, 담당자가 이유랍시고 내뱉는 소리는 더욱 기가 막혔다.
"우리도 먹고는 살아야지. 요즘에 이 정도 떼어가는 거면, 하도급 중에서도 아주 양심적인 거요."
"이미 소개비 명목으로 떼가는 거 다 아는데, 대체 그게 무슨 소립니까. 장난질 치는 거면.."
"거 기술이 있어서 먹물 좀 먹은 줄 알았더니, 아주 감이 떨어지는 친구로구만. 저 쪽에 저거 보이쇼?"
담당자의 볼펜 끝이, 한쪽 구석에서 분주히 무언가를 조작하고 있는 작업자를 가리켰다. 서버 여기저기에서 뻗어 나온 케이블 다발이 단말기에 연결되어 있고, 그 단말기의 한쪽 끝은 그 작업자의 뒷통수에 꽂혀 있는 케이블과 이어져 있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재빠르게 키패드를 누르고 있는 손 끝과, 팔과 얼굴의 접합선. 그리고 목 한쪽에 새겨져 있는 바코드를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안드로이드였다.
"저 친구 한 명이면 댁같은 사람 10명이 할 일도 금방이지. 옆에서 이 돈 받고 보조라도 하던지, 아니면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를 일자리라도 기다리던지.."
기분이 더러웠다. 그것은 단순히 받을 수 있는 돈을 못 받게 된 데에서 오는 것만이 아니라, 그 스스로가 자부하던 인간으로서의 무언가가 조금씩 외면당하고만 있는 것 같은 현 시대의 상황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결국 청년은 고집을 꺾고 담당자가 놀리던 볼펜을 낚아채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팔짱을 끼고 '그럼 그렇지, 네가 별 수 있나' 라고 말하는 듯한 담당자의 표정이 더더욱 그의 속을 뒤집었다.
------------------------------------------------------------------------------------------------------------------------------------------------------------
세상은 빛살처럼 바뀌어만 갔다. 전자두뇌와 강화 팔다리를 장착한 사람들, 길거리를 걸어가는 안드로이드들도 이제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나마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게 해주던 일자리는 점점 사라져갔고, 청년이 간절히 기다리던 기본 소득제는 여야의 대립으로 인해 시행되지 못하고 정치권의 흙탕물 위를 표류하고만 있었다. 매일같이 줄어만 가는 수입 속에서도 악착같이 버티던 청년은 결국 머물던 원룸을 나와, 시 외곽에 자리한 재개발촌의 구석진 골방으로 몸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몇 안 되는 이삿짐을 싸놓고, 그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항상 만나던 식당에서 보자고.
------------------------------------------------------------------------------------------------------------------------------------------------------------
"이 친구... 그렇게 어려우면 나한테 연락을 하지..."
"고양이 쥐 생각이야. 아내랑 애 딸린 자네만 할까. 한 잔 해, 취할지 못 취할지는 모르겠지만."
청년은 술잔을 입에 털어 넣고, 고개를 돌려 가게 한 쪽 구석에 있는 TV를 바라보았다. 새로 나온 안드로이드 모델의 광고였다. 제 3세대. 공장의 무식하게 생긴 로봇팔이 아닌, 최초로 안드로이드가 직접 설계하고 만든 안드로이드라는 문구가 대문짝만하게 떠올랐다. 연예인 뺨치게 생긴 외모와 늘씬하게 빠진 팔 다리로도, 보통 사람의 몇 배나 되는 근력과 내구도를 갖추었고, 최신의 시스템을 탑재하여 감수성도 인간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는 둥의 설명이 이어졌다. 청년은 자기도 모르게 말하였다.
"이제는 누가 기계이고, 누가 인간인지 모르겠네."
"3세대 말이로군. 오다가다 몇 번 본 적 있다네."
씁쓸함이 묻어있는 말에, 청년은 다시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인간하고 별 차이점이 없나?"
"겉보기로는. 잠시 대화도 나눠 보긴 했는데... 말하고 생각하는게 좀 어눌하더만. 자네도 만나서 얘기해보면 아마 금방 알 수 있을거야."
"....."
별 것 아니라는 식의 단서를 붙였지만, 그 말을 듣고 그는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벌써 기계들은 인간의 감수성과 사고능력을, 한 발짝 차이로 따라온 것이다. 그는 자신이 예상하던 그 미래가 지나치게 빨리 다가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만간 그들이 우리를 모든 면에서 넘어설 텐데. 인류는 창조주를 넘어서는 피조물을 용납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인간이란 원래 시기심이 많고, 자기중심적인 존재니까..
"요즘 들어서 그런 생각이 든다네."
상념에 잠겨있던 청년은, 친구의 한마디에 정신이 들었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마음, 정신이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걸까."
"또 시작이군. 그건 자네 머릿속에 들어있는 하얀 두부덩어리에서 오는 거야. 아니, 지금은 고철로 바뀌었겠군. 하하..."
친구의 나직한 물음에, 청년은 우스갯소리로 화답하였다. 좋은 머리에 어울리지 않게 원체 감수성이 풍부했던 그의 친구가, 이런 식의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물음에 매달리는 것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친구는 아랑곳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얼마 전에 새로 업그레이드를 했다네.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이 전자두뇌 말이지. 구형 아니랄까봐, 도저히 요즘 나오는 모델의 처리속도를 따라갈 수 없더군."
"돈 꽤나 깨졌겠군."
"부분 업그레이드로 될 일이 아니라고 해서, 아예 전체를 들어내서 새 두뇌를 박아넣었지. 그리고 수술이 끝나고 그걸 봤다네."
"보다니.. 뭘 말인가."
"내가 원래 쓰던 전자두뇌. 그리고 수술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수술실 한 켠에 주욱 쌓여있던 또 다른 수 많은 전자두뇌들."
"......"
친구는 그 말을 마치고, 소주잔을 크게 들이켰다. 청년은 친구의 얘기를 들을수록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에 깊이 들어가는 것만 같은 마음이 들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우리의 정신이나 인간다움, 마음이.. 뇌에서 오는 거라면. 다른 모든 게 없어도 그 뇌가 바로 나의 자아, 나의 정신이라고 볼 수 있겠지. 그렇지 않나?"
"그야.. 그렇겠지."
"그리고 그 정신이 데이터화되어, 지금 이 전자두뇌에 들어있기에 내가 나로서 살아가고 숨쉬는 것이겠고."
"그럴거야. 그런데 왜 자꾸 이런 얘기를 하는 건가?"
불안해진 마음을 감추기 위해, 청년은 다소 언성을 높였다. 짜증 섞인듯한 반문에 그의 친구는 잠시 우물거리다가,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그렇다면 그 데이터를 다른 사람의 전자두뇌에 넣으면... 그 사람은 내가 되는 건가?"
친구의 반문에 청년은 말이 막혔다. 그가 알고 있는 지식과, 배운 바 대로라면 당연히 '그렇다'라고 대답해줘야 옳았겠지만, 쉽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대답을 하기 위해 입을 여는 순간, 지금 이 숨막히는 공간을 만들어낸 그 시커먼 무언가가 자신의 입으로 쏟아져 들어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번 그 생각을 하니, 도저히 떨쳐낼 수가 없었다네. 우리의 정신이 그저 0과 1의 나열에 불과하고, 그것들이 모여 만들어진 데이터가 나라니."
"....."
"만약 뇌사자나 혹은.. 안드로이드에게, 나의 데이터를 복사해서 넣으면 이 세상에 내가 여럿 있는 셈이 되겠지. 요즘엔 안드로이드도 사람과 다를 바 없으니 아무도 모르겠군."
"그만 해."
"지금 내가 내가 맞기는 한 건가? 이 세상 또한 데이터로 만들어진 가짜가 아니라고 어떻게 확신하지? 지금 이 모든 것이 환상이나, 내 머릿속의 망상에 불과하고, 그저 내 정신만을 빼가지고 어딘가의 연구실이나 실험실에서..."
"그만 하라고!"
청년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탁자의 찬거리와 술병이 뒹굴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주위의 사람들이 놀라 그 둘을 쳐다보았다. 그는 주변 시선을 아랑곳않고 친구를 쏘아붙였다.
"미친 놈 같으니. 그건 망상이야, 과대망상! 집에 있는 아내와 딸을 생각해 봐. 그것도 가짜라는 거야? 지금 눈 앞에 있는 나는? 나도 가짜인가? 응? 말해보라고!"
그는 분기를 이기지 못해 다짜고짜 친구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친구는 저항할 마음도 없는지, 맥빠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표정을 보고 청년은 어안이 벙벙해, 한 동안 말을 않다가 나지막이 실소하고 말았다. 지금 이게 다 뭐란 말인가. 우리들은 왜 싸우고 있단 말인가. 청년의 손가락에서 힘이 빠졌고, 그제서야 풀려난 친구는 고개를 푹 숙이고만 있었다. 이윽고 자리에 도로 앉아 술을 따르는 청년을 보고, 주위 사람들은 흥미를 잃은 듯 고개를 돌리고 다시 서로 대화하기 시작하였다.
"정신과라도 가 보는 게 좋겠어. 요새 많이 지친 모양이야. 취했던지."
"말했잖나. 이런 걸로는 취할 수도 없다고. 생각해보니 술을 마실 이유도 없군."
"그렇지. 깜빡했어."
쪼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빈 잔에 술이 채워지는 소리만이 두 사람을 감쌌다. 친구가 입을 열었다.
"요즘, 여자들 사이에서는 피부나 몸을 교체하는 게 유행이라더군. 다들 쉬쉬 하지만, 큰 돈을 들여 몸뚱아리나 얼굴 전체를 젊은 몸으로 갈아치우는 사람도 있다는 거야. 몸이 어떻게 바뀌든 간에 전자두뇌만 이식하면 되기에 가능한 일이지."
"할 일 없는 여편네들이로군. 돈 쓸 구석이 그렇게 없나보지."
"이미 내 아내도 시술받았어. 하룻밤만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른 사람이 되서 나타났지. 딸아이도 처음에는 제 엄마를 못 알아봤다네."
"...."
청년은 마지막으로 병에 남아 있던 소주를 잔에 붓고는, 단번에 들이켰다. 그는 단지 취하고 싶었다. 그러나 말 없이 가라앉은 친구를 보니 취기가 싹 달아나는 느낌이었다. 더 이상 앉아 있을 이유도 없다 싶어,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는 그에게 친구가 말을 던졌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돼. 세상은 변했어. 인간의 모든 건 이제 언제라도 갈아치우고 대체할 수 있는 부품에 불과해.. 우리의 정신마저도."
"그래도 바뀌는 건 없어. 나는 나고, 자네는 자네일 뿐이야. 당연한 거지."
"나는 그 당연한 사실을 계속해서 의심할 수 밖에 없다네. 모든 게 혼란스러워."
친구가 갈 데까지 갔다는 생각에 애잔함마저 느껴졌다. 처음부터 그딴 기계를 머리에 박아넣지 말았어야 했어. 그런 식으로 생각하며, 청년은 등 뒤로 느껴지는 친구의 눈빛을 무시하고 식당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주리라는 생각과 함께. 그리고 그 생각이 맞았다. 친구는 자기 자신과 세상의 존재를 의심하고 또 의심하다가, 해결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것은 청년과 그의 친구가 마지막으로 만나 술을 마셨던 때로부터 정확히 반년이 지난 뒤였다.
그의 친구는 자신이 살고 있던 아파트의 옥상에서 뛰어내림으로서, 자신의 목숨으로 존재를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