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쯤 무너진 건물 사이로 산산조각난 사람 시체와 박살난 시리즈 H 잔해 같은 쓰레기가 빽빽하게 널브러져 있고, 도시에 비해 전깃불 하나 없다시피 한 어두운 뒷골목. 도시의 장벽 바깥은 언제 봐도 사람이 살 것처럼 보이지 않는 폐허더미였다. 하지만 바이크 엔진소리와,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 먼 곳에서는 비명소리와 총성이 들리는 걸 보면, 이런 황무지 같은 곳에서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그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옆으로 누운 건물 창문 밖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기어 나오고 있었다.
“자 그러면 일을 시작해 보실까.”
세계가 하나로 모이고, 정부라는 개념이 사라진 대신 모든 국가가 기업이 되어버린 새로운 개념의 단일국가. 자유 합중국. 신 서기 50년의 자유 합중국. 108번째 주 훼이첸의 새벽은, 반쯤 무너진 빌딩 숲 사이에서 고철과 넝마로 중요한 부분만 가린 인간들이 하나둘씩 기어 나오는 걸로 시작되었다.
“오늘은 관광이랍시고 잘못 들어온 부자 녀석들이라거나, 조난당한 비행기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걸어 다니는 고철더미 같은 인간들 중. 아랫도리만 철판으로 가린 사내가 불길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한마디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암시장과 가내수공업 특유의 조잡하고 위험해 보이는 총기류와 폭발물을 들고 있었다. 다만 그 중에도 약탈로 얻은 멀쩡한 무기를 들고, 역시 다른 먹이를 해치우고 얻은 차와 바이크에 몸을 실은 이들이 절반은 되었다.
언제나 피비린내와 화약 냄새가 가시지 않는 훼이첸의 거리와, 그 거리를 아무런 제제 없이 돌아다니는 약탈자들은. 자본으로 하나 된 자유 합중국이 어떻게든 감추려 하는 재래식 변소 같은 뒷면이었다. 어느 주라도 정부를 대신하는 대기업과, 그 대기업의 계열사들이 운영하는 도시가 있지만. 대기업의 손을 벗어난 곳은 어디라도 쓰레기들만 가득한 지옥이었다. 그리고 훼이첸은 그 지옥이 대부분인 ‘버려진’주에 속했다.
하이에나처럼 군침을 흘리는 약탈자 무리들은, 그나마 멀쩡하다 싶은 구역이 남은 곳을 향해 천천히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오늘도 쉽게 먹어치울 수 있는 먹잇감을 찾는 야생동물들의 탐색이 시작되었다. 피와 그 날 먹을 식량. 그리고 강렬한 폭력에 굶주린 짐승 같은 인간들은, 이미 황무지에 가까운 훼이첸 시내를 마구 헤집으며 조잡한 부스러기나마 찾기 위해 눈을 번득였다.
그 때 너저분한 인간들 앞에 그럭저럭 먹음직한 먹잇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손에 몇 권의 책을 든 채 마치 포식자를 피해 몸을 숨긴 초식동물처럼, 허리를 낮춘 상태로 기어가다시피 걷고 있는 어린 소녀였다.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가느다란 팔과 다리는, 필사적으로 도망간다고 해서 그들의 손아귀를 벗어날 것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약탈자들은 입맛을 다시며 정말 손쉬운 상대를 만난 것에 굉장히 기뻐했다.
“오늘은 운이 좋네. 먹을 게 별로 없어 보이지만, 일단 쉽게 먹는 게 중요하지.”
건물 위에서 쌍안경을 낀 약탈자가 손짓하자, 나머지 무리는 아예 총과 칼을 허리춤에 도로 채운 뒤, 천천히 걸어가며 소녀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소녀가 크게 놀라 뒤로 달아나려 했지만, 이미 그들은 둥글게 빙 둘러싼 채 그녀가 달아나지 못하게 서로 단단히 뭉치며 포위망을 좁히고 있었다.
“깜짝 파티다 꼬마야!”
그들은 소녀를 완전히 둘러싸자, 큰 소리로 웃으며 소녀의 배를 발로 걷어 차 날렸다. 그리고 쓰러진 소녀를 다시 일으켜 세운 뒤, 바닥에 패대기쳤다. 그러자 소녀의 너저분한 가방 안에서 깨끗한 하녀복과 얇은 카드 칩 모양의 신분증이 튀어나왔다. 쌍안경 낀 약탈자가 그 신분증을 주워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히죽 웃어댔다.
“이야 이 년. 이거 좀 있는 집 보모노릇 하는 애잖아.”
그러자 다른 약탈자들이 그녀의 가방을 뺏어, 조금이라도 값이 나갈 것 같은 물건이나 먹을 것들을 서로 나눠 갖기 시작했다. 그 광경은 마치 하이에나들이 죽은 짐승의 시체를 뜯어먹는 것 같았다.
“그러면 처녀는 아니겠네?”
약탈자 중 한 명이 그렇게 한마디 던지자, 소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얼굴을 가릴 뿐이었고. 들개 같은 약탈자 패거리들은 지저분한 얼굴에 음험한 미소를 띠며,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흘려댔다. 그들이 가방을 거꾸로 들어 털어대자, 피임약과 쾌락주사. 성도구 등이 마지막으로 바닥에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약탈자들은, 자신의 예상이 들어맞은 게 기뻤는지 더욱 큰 소리로 웃어댔다. 그리고 소녀는 더 이상 얼굴조차 들지 못하고 뒷걸음질만 칠뿐이었다.
“뭐 어때. 한 번 하거나 백 번 하거나 이미 뚫린 년인데 즐기는 데 문제없잖아.”
약탈자 패거리들은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흘리며 그녀를 산 채로 뜯어먹기 위해 자기 몸의 절반밖에 안 되는 소녀 주변을 천천히 둘러쌌다. 그들에게 한 번 걸린 이상, 이 소녀는 자기가 가진 걸 전부 다 내놓을 수밖에 없다. 약탈자들 중 몇몇은 바지를 벗으며 다리 사이의 고깃덩이를 주물러대고 있으며, 한 명은 차 안에서 아이스박스와 의료용 톱. 그리고 마취제와 메스를 준비했다.
그렇게 여러 명의 약탈자들이 한 소녀를 뼈 한 조각 남기지 않고 먹어치우려 할 때. 발소리와 함께 하얀 그림자가 비틀거리듯 움직이는 게 그들의 눈에 띄었다.
“저건 또 뭐야?”
“글세. 어디 어라? 저거 여자잖아? 그것도 먹기 힘들고 별 볼일 없는 어린애가 아니라 먹음직하게 다 큰 여자 말이야.”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알몸에 검은 색 낡은 외투 한 장만 걸친 장신의 여성이다. 특이하게도 이마에 가로로 길게 그은 것 같은 상처가 나 있고, 몸 한 가운데에 절단면 같은 선이 그어져 있었다. 게다가 머리카락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하얗게 새어 있었다. 다만 외투 색이 종이처럼 하얀 피부색과 심하게 대조된 탓에, 그녀의 투명할 정도로 뽀얀 피부가 더 돋보였고. 무르익은 가슴과 반질반질한 도자기 같은 허리와 엉덩이 선은, 비쩍 말라 먹을 것도 없어 보이는 소녀를 미뤄두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모습이었다.
“뭐야? 이런 똥통 밑바닥 같은 곳에 저 정도의 미인이 돌아다닐 수 있나?”
훼이첸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먹을 것도 없고, 입을 옷도 없어 시커먼 피부색에 비쩍 마른 체형. 아니면 들어가는 재료가 쓰레기에 가까운 정크 푸드만 먹고 살아, 반대로 익사체처럼 퉁퉁 부은 여성밖에 없었다. 간단히 말해 젊은 여성이 저렇게 아름다운 몸을 가꿀 조건이 되지 않는다. 다만 그녀의 눈이 강한 약이라도 한 것처럼 확 풀려 있는 걸 보자마자, 그들은 이 여성이 다른 곳에서 왔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뭐 눈까리를 보니까 약에 취한 것 같은데. 아마 조지 워커 주의 돈 많은 녀석이 약에 너무 취해서 대충 내다 버린 물건 아냐?”
다만 그들은 키 큰 여성 쪽으로 시선이 쏠린 와중에도,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기 싫은 모양인지. 소녀를 둘러싸고 있는 간격을 점점 더 좁혀가고 있었다.
“상관없어. 저 꼬마는 적당히 붙잡아두고 있으라고. 난 저 년의 상태를 확인해보고 좀 즐겨볼 테니까.”
쌍안경을 낀 채 다리 사이에만 철판을 두른 남자가, 실실 웃으며 어깨에 맨 총을 빼 들었다. 쌍안경 낀 녀석은 60년 전쯤 생산이 중지되어버린 잎담배를 입에 물고, 그 여성을 향해 총을 겨누며 천천히 걸어갔다. 다른 패거리들과 다르게, 그는 지금 조지 워커 주의 사설 경찰이 사용하는 최신식 복합소총 UM-19를 들고 있었다. 유탄의 종류만 해도 네이팜과 화학탄 등을 추가 사용할 수 있고, 초당 30발을 퍼부을 수 있는 물건으로. 방아쇠에 약간 힘만 줘도 약에 잔뜩 취한 저 키 큰 여성을 스펀지처럼 구멍이 숭숭 난 몸뚱이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흉포한 무기다.
그는 일부러 그녀에게 겁을 주기 위해, 발밑과 머리 위 그리고 어깨 근처를 향해 몇 번 위협사격을 했다. 마지막 한 발은 더 크게 겁을 줄 생각인지, 유탄발사기로 옵션을 바꿔 슬러그탄을 다리 사이의 바닥에 정확히 박아 넣었다. 패거리들에게 잡혀 있던 소녀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엎드렸고 소녀를 둘러싼 이들은, 그 상황이 즐거운 모양인지. 그녀를 발끝으로 툭툭 건드리며 큰 소리로 웃어댔다. 하지만 정작 위협사격을 받은 키 큰 여성은 여전히 멍한 눈으로 정면을 응시할 뿐이었다.
“헛 참. 저 년 봐라? 쫄지도 않네. 아랫도리 정도는 좀 축축하게 적셨으면 재미있었을 텐데 말이야. 역시 약에 찌든 년인가?”
그 때. 쌍안경 남자는 아주 잠깐이지만, 그녀의 입가에 초승달 같은 미소가 걸린 걸 봤다. 그는 순간적으로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는 걸 부정하기 위해, 더욱 빠르게 걸어가 그녀의 가슴에 총구를 들이밀었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은 총구가 닿으면서 움푹 팼고, 잘 부푼 빵 반죽 같은 탄력이 그의 총 손잡이를 통해 전해졌다.
“이봐! 너 뭐하는 년이야? 귀먹었어? 말을 못 하면 비명이라도 질러 보라고!”
그는 그 여성 탄력 있는 가슴 감촉에 흥분하면서, 철판으로 가려진 물건을 뻣뻣하게 세웠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약에 취한 사람처럼 들릴 듯 말 듯 입술을 오물거리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쌍안경 사내는 그녀의 바로 앞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그는 달빛을 받아 농익은 과일 같은 그녀의 가슴을 세게 움켜쥐었다. 키 큰 여성은 거북이마냥 엎드린 소녀를 빤히 쳐다보며, 헤 벌어진 입으로 침 한줄기를 흘릴 뿐이었다. 그리고 소녀를 향해 넋이 빠진 미소를 지으며, 소녀의 어깨에 조용히 손을 얹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왜? 장기를 뽑아다 팔아봤자 하루치 식량도 안 나올 저 꼬마를 구하려고? 다크 나이트 흉내라도 낼 생각이야 아가씨?”
그는 키 큰 여성이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은 뒤, 연분홍색의 유두를 꼬집어 올리며 실실 웃어댔다. 그리고 자신의 아랫도리에 갖다 붙인 박쥐 모양 철판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쳤다. 그 여성은 다시 한 번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알아들을 수 없으니까 좀 크게 말해보라고?!”
그가 일부러 도발하듯 키 큰 여성의 입가에 귀를 갖다 대자, 그녀는 순간적으로 씩 웃으며 새하얀 이를 드러냈다. 순간 쌍안경 남자는, 그녀의 눈에 광기에 가까운 생기가 번득이는 것을 봤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섬뜩한 미소에 얼어붙어 버렸다. 뒤이어 그녀는 맹수처럼 입을 크게 벌린 뒤 쌍안경 남자의 귀를 깨물어, 마치 얇게 자른 햄처럼 그 남자의 귀를 끊어내 버렸다.
“으, 으아아아악! 아악! 이, 미친 년!”
그 남자는 귀를 부여잡으면서 울부짖었고, 그녀는 잘라낸 귀를 껌처럼 씹다가 삼킨 뒤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도시괴담에서 볼법한 살인 광대 같은 미소를 지었다. 오른쪽 눈 밑에 있는 한 쌍의 눈물점 때문에, 그 모습은 정말로 정신 나간 광대처럼 보였다. 그녀는 음침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그의 무릎을 발로 힘껏 밀어 차서 으스러트렸다. 뼈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무릎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였고. 그는 균형을 잃고 썩은 통나무처럼 주저앉아버렸다.
그녀는 곧바로 발의 방향을 바꿔, 반달 같은 섬광을 그려 그의 턱을 후려쳐 날려버렸다. 그의 턱뼈가 두 조각 난 채 얼굴에서 떨어져나가, 피부에 걸친 상태로 덜렁거렸다. 입 주변이 피투성이가 된 여성은 짐승처럼 달려들어, 턱뼈가 박살난 그 남자의 등에 올라탄 채로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뭐라고 했는지 알려줄까?”
그 남자는 턱이 반쯤 떨어져나가 덜렁거린 상태에서, 어린애처럼 울부짖으며 고개를 마구 내 저었다. 다만 턱이 닫히지 않아 바람 빠지는 소리가 섞여, 좀비 영화에서 자주 들릴 법한 기분 나쁜 소리만 새어나왔다. 그녀는 그의 머리통을 도장처럼 바닥에 힘껏 내리찍은 뒤, 다시 한 번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난 다크 나이트 같은 정의의 수호자 게 아니라, 사람 죽이는 거 좋아하는 제이슨 부히즈다. 너희 같은 되먹지 못한 녀석들을 잘게 찢어야만 오르가즘을 느낀다고 말했다! 잘 안 들린다면 다시 귀를 갖다 대보라고. 그 땐 더 확실히 대답해줄테니까!”
키 큰 여성은 남자의 이마에서 새빨간 과즙이 흘러 얼굴이 토마토처럼 변할 때까지, 유리파편과 돌조각이 가득한 비포장도로 바닥에 찧어댔다. 그는 비명 같지 않은 비명을 질러대다가 목이 쉬어, 바람 빠진 파이프처럼 숨넘어가는 소리만 내뱉었다. 그리고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패거리들은, 총을 겨누고 있지만 밑에 그가 깔려 있어 함부로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초승달 같은 미소를 지은 뒤, 코트 안쪽으로 오른손을 뻗었다. 그리고 모두가 눈 깜짝할 사이에, 큼직한 벌목도가 번득이더니 그의 목을 마치 찰흙 베듯 가볍게 잘라냈다. 그의 목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그 여성의 하얀 피부를 붉게 물들였다. 그녀는 온 몸에 피를 발라대며 폭소를 터트렸다.
“아하하하! 이거야 이거라고! 역시 이게 가장 짜릿하다니까! 음 이 향긋한 피 냄새! 화약 냄새만 곁들이면 딱이라고!”
굶주른 늑대가 양을 단번에 물어죽이듯, 사람 목을 종이 인형처럼 가볍게 잘라내며 웃어대는 그녀의 모습에 약탈자들 모두가 넋을 잃어버렸다. 사람 몸을 째고 찢어 죽이는 데 익숙해진 그들이라도, 이 정도의 광경은 적응하기 힘든 모양인지. 대부분의 약탈자들이 다리에 힘이 풀린 채 뒷걸음을 치고 있었다. 장신의 여성은 느긋하게 몸을 일으켜, 잘린 머리통을 패거리들 중 가장 앞에 서 있는 남자를 향해 던졌다. 그 남자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잘린 머리통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뒤이어 요란한 총성이 터지며, 그 남자의 머리통이 수박처럼 깨져버렸고. 그 피와 뇌수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패거리들의 얼굴에 들러붙었다. 가장 앞에 서 있던 남자는, 상상을 초월하는 참상에 자연스럽게 입이 벌어졌다. 그리고 크게 놀라서 쩍 벌어진 그의 입에 박살난 머리통에서 튀어나온 눈알이 깊게 들어갔다.
“으아아악! 으악! 이 미친!”
“빌어먹을! 우웩!”
동료의 눈알을 삼켜버린 남자는, 실수로 안에 들어간 눈을 씹어버려 뱃속에 있는 걸 죄다 게워냈다. 맨 앞에서 피와 육편을 가장 많이 뒤집어쓴 남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이성이 마비되었는지. 그 자리에서 마네킹처럼 뻣뻣하게 선 채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몸에 묻은 육편과 눈알. 치아 조각 등을 털어냈고, 몇몇은 그 광경을 견뎌내지 못하고 저녁에 먹었던 음식 쓰레기들을 바닥에 토해냈다.
“왜 이래? 너희들? 사람 죽이고 다닌 게 하루 이틀도 아니잖아?! 이 정도쯤은 수박 하나 박살 난거랑 똑같잖아? 왜? 힘없는 평범한 녀석들 시체가 아니라서 겁이라도 처먹은 거야? 이 샛노란 병아리 새끼들아!”
장신의 여성은 이번엔 패거리들을 향해, 두 자루의 큼직한 자동권총을 겨눴다. 그리고 패거리들을 향해 흉측하게 일그러진 미소와 함께, 아무 거리낌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하하하하! 병아리 새끼들 따끈따끈한 베이크드 빈즈라고! 다 처먹고 잘근잘근 으깨져라!”
타이프라이터를 두들겨대는 소리와 함께, 총구에서는 짐승의 송곳니 같은 새빨간 화염이 치솟았다. 그녀가 굵고 기다란 자동권총을 든 두 손을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어지럽게 흔들어대자, 들개 같은 약탈자 패거리들의 몸뚱이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뒤이어 그들의 몸뚱이에 박힌 총알이 폭발하면서, 그들의 몸은 마치 폭죽처럼 비린내 나는 불꽃같은 피와 육편을 마구 튀겨댔다. 그 광경은 마치 총구에서 축포가 터지면서 사방으로 새빨간 꽃가루가 흩날리는 것처럼 보였다. 피비린내와 화약 냄새에 코가 막힐 것 같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렇게 하이에나 패거리들을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마치 소시지 공장의 폐기물 처리장의 내용물이 되어버렸다. 남은 한 명은 고기 반죽이 되어버린 동료들의 시체 위에 오줌을 흘리며 주저앉았다. 총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권총을 든 여성은, 총을 대충 흔들어 담배를 입에 문 것 같은 총구의 연기를 걷어냈다.
“어라? 하나 남았네. 내 실력도 다 죽었나보네.”
그녀는 느긋하게 담배 하나를 빼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권총을 한 자루만 뽑아, 주저앉은 약탈자를 향해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녀의 권총은 메탈 가수의 그로울링처럼 울부짖으며, 화약 냄새 가득한 불꽃과 함께 무수한 탄환을 그의 발밑에 쏟아 부었다.
“히, 히익! 이이이이. 미친!”
2초만에 탄창 하나가 텅 비어버려, 빈 격철 때리는 소리만 들렸지만. 오줌을 지린 채 주저앉은 그의 몸에는 단 한발의 총알도 맞지 않았다. 그녀는 탄창을 빼서 내다버린 뒤, 새 탄창으로 갈아 끼우며 씩 웃었다. 그리고 다시 슬라이드를 당겨 장전한 뒤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민 채 씩 웃어 보였다.
“아 역시. 이거 실력이 다 죽은 것 같네. 이런 파리 한 마리도 못 맞추고. 이제 총으로 쏴 맞추는 건 그만둘까?”
살아남은 한 명은 그녀가 자신을 못 맞춘 게 아니라, 일부러 안 맞췄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었고. 그 사실에 대변까지 지리면서 서서히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그녀가 쥐고 있는 총이 그립 아래쪽에 탄창이 길게 늘어졌고 총신이 크고 두터운 걸로 봐선, 지금은 거의 안 쓰는 폐물이나 다름없는 기관권총 FU-K17 ‘민스 미트’ 몸뚱이에 박히면 폭발을 일으키는 전용 특수탄 때문에, 한 발이라도 맞으면 다진 고기가 된다는 뜻에서 붙여진 명칭이었다.
“저, 저 미친 년! 저런 무기를!”
유일한 생존자인 계급장 박힌 군용 모자를 쓴 남자는, 그녀의 손에 쥐어진 총이 뭔지 알아차리고 욕설을 내뱉었다. 총알 한 발 가격만 해도 그들이 평생 약탈해도 살 수 없을 정도의 고가품인 ‘파핑 캔디’인 것은 둘째 치고, 초당 30발을 쏘면서도 탄창 하나당 두 발 맞추면 명사수라고 할 정도로 탄환 낭비가 심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한. 저런 돈지랄로 가득한 무기를 쓸 사람은 이 근처에 딱 한 명 밖에 없었다.
‘검은 코트의 미치광이.’
그는 이제 상대가 어떤 자인지 알게 되었고,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 어디에서 힘이 났는지 몰라도, 개구리가 뛰듯 빠르게 일어나, 열 살 때부터 쥐어왔던 무기마저 버리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민스 미트를 버리고 톱날이 들쭉날쭉한 칼 한 자루를 꺼내 그립을 꽉 쥐었다. 칼의 톱날이 고속으로 회전하면서, 날 부분이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마치 귀신이 우는 것 같은 섬뜩한 기계음이 크게 울려 퍼졌다. 이 전기톱 같은 작고 얄팍한 칼은 대 기갑차량 장비 ‘베이비 백립’이다. 그녀는 입 꼬리를 거의 귀 끝가지 올리며, 도망가는 자의 등 뒤를 향해 뛰어올랐다.
“그래 바로 그거야! 울부짖고 비명 지르면서! 힘껏 도망가라고!”
검은 코트의 미치광이는 검은 코트를 입은 채 밤하늘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높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치 벼락이 치는 것 같은 기세로 떨어졌다. 그녀는 땅으로 착지하면서 남자의 뒤통수를 상어 이빨 같은 톱니가 난 칼로 내리찍었다. 칼은 사나운 모터 소리를 내지르며, 마치 물이나 공기를 가르듯 막힘없이 그의 몸뚱이를 가르고 지나갔다. 뒤이어 남자의 몸이 머리에서부터 항문까지 붉은 줄이 그어졌다.
키 큰 여성이 천천히 몸을 일으킨 뒤, 그의 뒤통수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건드렸다. 붉은 줄이 그어진 남자는 천천히 바나나 껍질 벗겨지듯 갈라져, 정육점 고기처럼 두 쪽이 난 채 더러운 흙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렇게 담배 한 개비가 다 타들어가기도 전에 십 수 명이나 되는 약탈자 패거리들은, 자기 몸뚱이로 훼이첸의 거리 한 구석을 정육점처럼 만들어버렸다. 그녀는 피와 육편이 가득 들러붙은 얼굴을 대충 문지른 뒤, 역시나 피가 잔뜩 묻은 입 근처를 혀로 핥아 닦으며 씩 웃었다.
“아 개운해. 안 그래도 이번 일이 썩 잘 안 풀려서 기분 나쁘던 참인데. 마침 잘게 다질 사냥감들이 돌아다녀서 기분이 확 풀렸어!”
그녀는 온 몸에 피를 묻힌 채 큰 소리로 웃어대며 시체더미를 향해 소이수류탄 하나를 던졌다. 삽시간에 고깃덩이들에 불이 붙으면서, 살이 타는 누린내가 확 퍼졌다. 그 때 구석진 곳에서 구역질하는 소리가 들렸고, 키 큰 여성은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라? 이 녀석 아직 살아있었나?”
키 큰 여성은 소녀의 등을 가볍게 쓸어내려주면서, 웃음기 섞인 얼굴로 그녀를 달래주며 얼굴을 확인했다. 그리고 약간 놀랐는지, 눈썹을 위로 살짝 올리며 입 끝을 실룩거렸다.
“가, 가만 이 녀석 이번 일감 아니었나? 잠깐만 얼굴 돌리지 말아봐.”
키 큰 여성은 허공에 한 여자아이의 사진이 담긴 홀로그램 모니터 하나를 띄웠다. 그 다음 눈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소녀의 얼굴과 비교해봤다.
“어라? 이 녀석이 맞잖아. 제대로 찾은 거라고 하하하하!”
소녀의 눈에는 검은 코트를 입은 채 피투성이가 된 여성이 걸어오는 모습과, 자신을 빤히 쳐다보다가 폭소를 터트리는 모습에 잔뜩 겁을 집어먹었는지. 뱀과 마주친 개구리처럼 얼어붙었다. 키 큰 여성은 그녀가 다른 곳으로 도망가지 못하게 어깨를 두 손으로 붙잡은 뒤, 그대로 쪼그려 앉아 소녀와 눈을 마주쳤다.
“어라? 이 녀석 떠는 거 보게. 이런 광경은 처음 보는 거야? 응? 응?”
키 큰 여성은 허리를 확 숙여, 그녀의 코앞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면서 입 끝이 죽 찢어진 것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유 합중국 주민이라면 이런 피비린내하고 화약 냄새 정도는 즐길 줄 알아야지? 안 그래? 응? 설마 이런 도축장 작업은 처음 보는거야? 신기하네.”
눈을 부릅뜨며 소녀를 노려보자, 그녀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신음소리와 함께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핏물과 토사물이 한데 섞인 오물 위에 그대로 쓰러졌다. 키 큰 여성은, 곧바로 가면을 벗듯 평상시의 웃음기 가득한 표정으로 되돌아와 한숨을 내 쉬었다.
“에이 겨우 이 정도 갖고 기절하는 건가? 겨우 이런 것 같고 기절할 정도라면 자유 합중국에서 살아남기 힘든데. 역시 귀한 집안에서 자라나면 다 저렇게 되는 건가.”
그녀는 소녀를 쳐다보며 의문이 가득 담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골치 아프다는 듯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으며 이마를 두들겼다. 그 다음 왼쪽 손목을 걷어, 시계 크기의 휴대용 컴퓨터 단말기의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 다음 마치 술이라도 한 잔 마신 것처럼 잔뜩 기운이 오른 투로 명령을 내렸다.
“아 사라냐? 자다가 깼어? 나다. 화장이라고. 오늘 전리품 하나 가져갈 거니까 당장 내가 있는 곳으로 헬기 보내. 위치는 자동으로 표시되니까 1초라도 늦으면 모가지를 날려버릴 거야? 알았지?”
그녀는 곧바로 자기 용건만 말한 뒤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코트 주머니에서 붉은 액체가 든 주사기를 꺼내, 목덜미에 꽂으며 피스톤을 꾹 눌렀다.
“뭐 어쨌건 그 녀석 말대로! 귀중품은 이 근처에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오늘은 이제 상쾌한 기분으로 푹 쉬러 가 볼까!”
그녀는 오물 위에 쓰러진 소녀를 안아 든 다음.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면서, 날카로운 미소를 지었다. 뒤이어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그녀의 발밑에 눈이 시릴 정도로 밝은 서치라이트가 비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