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길티기어'와의 만남에 관한 후일담
그래서 이젠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마왕을 대신하여, 당시 YBM시사닷컴 게임사업부에서 관련 작업을 지휘했던 신종현 전 본부장으로부터 뒷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원래는 게임사업부에서 길티기어 이그젝스를 준비하려 했는데, 3개월 간 내부 처리가 지연되면서 일본에서 '길티기어 이그젝스 샤프 리로드'가 먼저 발표되고 말았다. 이에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게임사업부의 운명을 걸고 신해철을 기용하자고 상부에 제안했다.
● 제의를 받고 신해철 측이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
신해철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으로 접근하긴 했지만, 다른 후보를 채 선정하기도 전에 이야기를 들은 매니저가 그 날 저녁 바로 미팅을 진행, 신해철 본인이 게임을 너무 좋아하므로 잘 될 것 같다고 말하더니, 정말로 다음 날 바로 신해철로부터 OK 사인이 떨어졌다.
● 많은 사람들이 신해철 같은 사람과 작업하면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어 수지 타산이 안 맞을 것 같다고 우려했던 기억이 난다.
실은 새로운 앨범을 준비하면서 만든 백여 곡 중 일부를 재활용해서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저렴한 비용에 계약했다.
신해철 뿐만 아니라 넥스트 멤버들이 게임을 너무 좋아해서, 매니저가 작업실에 있던 게임 콘솔을 치웠는데, 이 때문에 대리 만족을 위해 게임에 사용할 만한 음악도 여럿 샘플링을 해두었다고 하더라.
● 신해철은 배경 음악만 작업한 것이 아니라. 성우로도 참여했는데 어떻게 된 사연인지?
신해철 자신이 원래 게임 성우를 해보는 것이 꿈이었던지라, 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도중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그래서 캐릭터 사진을 주고 어떤 것을 해보고 싶느냐고 하자 '테스타먼트'를 선택했다. 그의 연기에 대해 녹음 담당자는 연기가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목소리 톤이 좋다고 평했는데, 본인이 더 연기에 욕심을 내더라.
길티기어 이그젝스로 작업을 진행하다 길티기어 이그젝스 샤프 리로드의 일본 발매 시점과 차이가 없어져서 타이틀을 변경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판 길티기어 이그젝스 샤프 리로드에는 없는 스토리 모드를 길티기어 이그젝스 사양으로 추가하고, BGM도 넥스트가 만든 음악과 원곡을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여 일본 발매일에 맞춰 출시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완전판이 된 셈인데, 당시 한국판에서 양쪽 배경 음악을 모두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아크시스템웍스 키도오카 미노루 대표의 결단이었다.
● 한국판 OST가 일본에 발매된 것은 어떻게 된 일인가?
신해철의 음악을 들은 키도오카 미노루 사장이 일본에 OST 발매를 제안해서 이루어졌다.
처음에 수량을 1만개로 계약했는데, 총 2만 5천개를 출하했다. 국내 PS2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매우 좋은 수치라 할 수 있다. 손익분기점(BEP)이 1만 5천개였으니까.
● 본인이 겪어본 신해철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모두 세 번을 만났는데, 참 유쾌한 성격이었다. (내가) 자신보다 키가 크니 옆에 있을 때는 꼭 앉아 있으라며 농담을 했고, 게임을 워낙 좋아해서 대화 도중 게임 이야기를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신해철과 계약할 당시 YBM시사닷컴이 해당 음악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했는데, 정작 요즘 길티기어 시리즈에서는 들을 수가 없어 아쉽다. 언젠가 아크시스템웍스 아시아 지점에서 이를 활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장원 기자 inca@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