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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의 순간을 만드는 TRPG 현대미술,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전시

조회수 10104 | 루리웹 | 입력 2024.07.05 (20:00:00)
[기사 본문] 기자는 종종 현대미술과 게임을 접목한 사례에 대한 기사를 써왔다. 지난해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그리고 북서울미술관에서 각각 게임을 소재로 한 기획 전시를 비중있게 진행했고, 북서울미술관의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링크) 는 기사로 다루었다. 그 이전에도 적어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다루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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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는 좋은 게임미술 전시가 많았다.


사실, 현대미술은 꾸준히 오랫동안 게임을 다루어왔고, 첫 사례도 수십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매년 적어도 한두달에 한 번 정도는 관련 전시, 세미나를 방문하거나 또는 사람을 만나지만 생각보다 게임의 시선에서 보기에 기사화하기에 좋은 사례는 드물다. 게임이라는 소재를 너무 나이브하게 다루어 새로울 것 없는 경우도 있고, 또는 작품이나 전시 자체는 굉장히 좋지만 (본 사이트의 주 구독자인)비디오 게이머 입장에서는 난해하기 짝이 없는 경우도 있고, 혹은 그냥 전시 또는 작품 자체가 기대 이하인 경우도 있다. 그리고 솔직히 비디오 게이머로서의 정체성과 미술 애호가로서의 정체성 모두 소중하고 둘다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양쪽을 모두 만족시키는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현대미술이라는 존재 자체가 대중들과 멀어졌기에, 또 으레 크게 부각되는 좋지 않은 사례들로 인해 널리 퍼져있는 현대미술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 또는 무관심을 딛고 이를 소개하는데에는 생각보다 큰 결심이 필요하고, 더 기사화에 적합한 케이스를 고르고 고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정작 전시를 본 후에도 기사화를 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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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상희, 2024)


그래서 새로운 전시를 볼 때는 항상 그런 고민을 안고 간다.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링크) 를 보러 갈 때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러나 약 한시간 반 정도가 걸린 체험형 퍼포먼스 이후 고민하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차근차근 글로 써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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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희 작가의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는 지난 6월 12일부터 바로 어제인 7월 4일까지 성북동 팩션에서 선보여졌다. 재미있게도 이 전시를 관람하려면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하고, 여러명이 한 타임에 들어올 수는 있지만 플레이어는 반드시 한명이어야 한다. 이유는 그렇다. 이 전시는 직접 플레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이 전시는 TRPG 의 형태를 빌린 현대미술 퍼포먼스다. 그것 하나로 호기심이 상당히 동했지만 굉장히 긴 호흡을 가지고 또 많은 준비가 필요한 TRPG 의 형식을 어떻게 순간의 퍼포먼스로 치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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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의 분위기에 바로 몰입하고,
압도되는 것도 오직 오프라인 전시에서만 가능한 경험이 아닐까.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는 일종의 관객 참여형 미술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릴레이 TRPG’ 라고 표현하는게 게이머들에게는 좀 더 쉽게 와닿을 것 같다. 하나의 거대한 게임판을 토대로, 전시가 진행되면서 순서대로 참여=플레이한 관객=플레이어들의 흔적이 게임판의 스티커와 캐릭터 시트로 기록되고, 이것이 차츰 누적되어 전체 전시를 완성해 나간다. 첫 전시에는 아무런 흔적없이 오직 지형만 그려져 있었을 뿐인 게임판에 점점 플레이어들의 기록이 축적되면서, 그것이 완성된 형태가 된다.

때문에 가장 먼저 생각났던 건 레거시 보드게임이었다. 퍼포먼스가 완성되어가는 과정이 정확하게 레거시 보드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게임판에 흔적을 쌓고, 엔딩을 맞이하는 과정을 떠올리게 했다. 마치 모두가 턴을 돌아가며 레거시 보드게임을 하듯이, 단지 그 턴이 한시간 반짜리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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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를 예약하면 먼저 온라인 설문지를 받는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답변해야 하는데, 이를테면 그런 식이다. “‘집’ 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단어를 고르세요.”, “당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고르세요.” 등 플레이어의 성향을 파악할만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작가들은 시나리오를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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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입장하면 모든 불은 꺼져있다. 단지 벽에 걸린 몇 개의 표시판을 집중 조명이 비추는 가운데, 저 멀리, 전시장의 가장 안쪽 구석에는 거대한 플레이 맵과 그 앞에 마스터 테이블이 자리하고 있다. 어찌보면 이 플레이 맵은 전통적인 미술의 캔버스가 될 수도 있다. 단지 그 위에 드로잉을 하는 수단이 붓이나 펜이 아닌 스티커이고, 그리고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작가가 붙이는 것 뿐.

가장 먼저 게임의 시놉시스를 듣는다. 무대는 어느 쇠락한 한적한 시골 소도시이다. 이 마을은 플레이어의 ‘고향’ 으로 플레이어는 각자의 어떠한 사연으로 고향에 돌아왔다. 하지만 톨게이트는 폐쇄되고 도시는 격리되었다. 그 이유는 흰개미떼의 습격으로 도시가 황폐화 되고 사람들이 실종되었기 때문. 안개가 자욱한 무너져가는 도시로 플레이어는 저마다의 이유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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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시트는 생각해보면 애초에 나의 답을 적는 공간이다.


처음 받아든 캐릭터 시트에는 플레이어 캐릭터의 직업이 적혀있다. 그리고 그 외의 모든 것은 자유다. 무엇 때문에 도시에 들어가야 하는지 하는 목적, 그리고 이름은 무엇이고 나이는 얼마나 되는지 이런 부분들을 플레이어가 정한다. 아마도 대략적인 시나리오는 작가가 구성해놓았을 테지만,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실시간으로 조금씩 바뀌게 되는 셈이다.

전직 소방관이라는 배경을 받은 기자는 대략 내 또래의 낙향자로 설정했다. 사고로 인해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에서 일거리나 얻을 겸 친구를 찾으러 간다는 식으로. 그 말을 듣고 작가는 지도 위에서 목표 지점을 설정했고, 수많은 스티커가 붙은 지역에서 시작해 도시 복판을 통과하여 아무 것도 붙여져있지 않고 오직 지형만 그려져있는, 즉 아무도 이전에 가지 않고 플레이하지 못했던 지역으로 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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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에서 계속 대화하고, 서로 질문을 주고 받으며 게임은 진행된다.


전시의 제목 ‘대화형 지도’ 처럼, 퍼포먼스는 시간 내내 대화로 진행된다. 작가는 계속 플레이어에게 묻는다. 어디로 가시겠어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말을 걸어보겠어요, 어떤 선택을 하겠어요? 결정권은 플레이어에게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선택과 결정은 지도 위에 스티커로서 남는다. 화살표는 이동방향, 검은색 점들은 지형 또는 오브젝트, 하얀점 9개는 주요 이벤트, 인간 형상은 NPC 등등, 여러 스티커가 덕지덕지 정해진 룰과 패턴을 통해 붙여진다. 처음에는 각각의 표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지만, 경험하며 하나씩 알게되고, 다소 충격적인 부분도 알게 된다.

그 방식은 TPRG와 거의 같다. 단지 조금 덜 체계화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TRPG 플레이어라면 알다시피 TRPG 에서의 꽃은 체계화 만큼이나 그 안에서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는 수많은 자유로운 발화와 방향성이다. 그런 면에서 이 퍼포먼스는 충분히 TRPG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퍼포먼스에 맞도록 훨씬 가볍게 개조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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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없이 오직 점으로 된 지형만 있던 지도가
수많은 플레이어들의 경험이 축적되며 채워진다.


마스터는 지형만 그려진 맵 속에서 플레이어를 인도하면서 이런저런 사건을 맞이하게 한다. 일단 내 목적은 폐차장 겸 카센터에 가는 것이었지만, 중간에 도시에 고립된 낙오병들을 만나 응급처치를 해주고, 이들을 구하기 위해 탈출하기로 결심하기도 하고, 이상한 흰개미들의 환영과 속임수에 당할 뻔 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흥미로웠던 건 앞서 ‘릴레이 TRPG’ 라고 했듯, 이전 플레이어들이 이미 개척해 놓은 길과 사건들, 그리고 그들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커다란 별 표시 모양이 무엇인지 몰랐다. 여기에 접근하자 사람 형상을 했지만 무언가 신비하고 영체적인 모습을 하고 있고, 같은 말을 계속 중얼거리고 있다. 살펴본다 라는 선택을 하자, 작가=마스터는 지난 플레이어들의 캐릭터 시트 중에서 하나를 들고온다. 그렇다. 이미 이전에 플레이한 플레이어들이 죽은 흔적이고, 그들의 시체가 일종의 영체처럼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것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각각의 큰 별에는 모두 유언이 쓰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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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캐릭터 시트를 받아드는 순간이, 이거 '멀티플레이' 였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장면
소울 시리즈의 영체 같은 느낌도 조금 났다.


그리고 중요한 순간에는, 역시나 주사위 굴림이 등장한다. 주사위는 2d6 이지만 대략적으로 3가지 범주로 나누어 대성공, 성공, 실패로 되어있다. 이 주사위 굴림은 역시 게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 주사위 굴림을 이용해서 주제를 전달하기도 한다.

주사위 굴림의 값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플레이어는 리롤 기회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게임에서 리롤의 대가는 캐릭터 시트에 적힌 개인적인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다. “당신에게 고향이란 무엇인가요?”, “고향에 두고 온 것은 무엇인가요?” 짧지만 굉장히 고민을 하게 되는 질문이다. 결국, 이 퍼포먼스는 내 내면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위한 것이다. 내 생각을 꽁꽁 싸매고 싶다면, 마스터와도 공유하고 싶지 않다면 나쁜 주사위값을 감내하면 된다. 하지만 한 번쯤 고민하여 결론을 내리고 살며시 누군가에게는 털어놓아도 좋을 것 같다면, 주사위를 한 번 더 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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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질문들, 결국 모든 현대미술은 '좋은 질문을 던지기' 다.


결국, 이 모든 일련의 과정으로 도시를 탐험하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 속에서,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또 작가는 무엇을 느끼게 하고 싶은지는 천천히 다가오게 된다. 고향이란 무엇인가, 내 고향은 어디이고, 나는 무엇을 두고왔고, 지금의 터전과 고향 중에서 어디를 더 애정하는가? 흰개미들에게 무너져 부동산 시장이 무너지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고, 군인들이 죽어나가고, 노인들이 외면받는 그런 소도시의 모습은, 우리가 가끔 생각하는 주제와 문제들에 대한 압축판이다.

기자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쭉 서울에 살았고 지금도 서울에 살고 있지만, 고향을 묻는 질문에 여지 없이 바로 어릴적부터 30년 가까이 살았던 동네를 떠올릴 만큼 확실히 어느 공간을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만큼 누군가에게나 보편적인 감정이 아닌가. 그리고 재미있게도 이 기호로 가득한 지도를 보고 실제 모습을 상상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내 고향의 모습을 대입하게 된다.

그래서 크게 돌아보면, 게임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작가=마스터가 계속해서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나는 그에 대답하는, 그러면서 내 생각을 정리하게 되는 그런 과정을 겪는 셈이다. 항상 느끼는게 사람들은 직접 말로 내뱉기 전 까지는 어떤 생각을 확실하게 하지 못한다는 생각인데, 작가는 계속해서 나의 발화를 유도함으로서 동시에 내 생각을 유도한다. 마스터는 계속 나에게 질문을 하면서 동시에 좋은 청자가 되어준다.

게임 속에 비유적으로 들어간 이런저런 사회문제도 좋지만, 이 퍼포먼스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평소에 정리하지 않았던, 또는 누가 물어보면 쉽게 대답하기보다는 망설이거나 얼버무리게 되는 개인적인 질문들에 대해서 한껏 진지하게 대면할 기회가 되어준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 쉬이 말하지 않는, 또는 아예 생각하거나 말할 기회가 없었던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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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갯벌에서 탈출에 성공했다. 탈출 소감을 좀 더 멋있는걸 적을걸 그랬다.
내가 도착하기 전에는 아무 것도 없었던 장소가 오브젝트와 결과로 채워졌다.


아무튼 간에 이런 여러 과정을 거쳐 기자는 탈출에 성공했다. 중간 즈음부터 부상당한 군인을 구출하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몇몇 인연은 또 가차없이 포기하고 외면하며 탈출을 향해 달렸다. 아낌없이 주사위 리롤을 적고, 또 주사위가 잘 따라와준 덕도 크지만, 기본적으로는 내 선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이 끝나면 전시장에 불이 켜진다. 처음에 어둠에 가려져 있던 벽면의 보드들은 다른 모든 플레이어들의 기록이다. 그들의 유언, 탈출 소감, 캐릭터 시트, 그리고 여러 기록들. 웃긴 것도 있었고, 사뭇 진지한 것도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플레이어의 최후는 퍼포먼스 인스타그램에 기록된다. 그리고 마침내 이 전시가 그저 개인의 경험, 퍼포먼스를 넘어서서 하나의 함축된 미술 작품이 된다. 지도를 들여다보면서 각각의 아이콘과 플레이 흔적들로 있었던 일을 파악하고, 그 뒤의 자료들도 살펴보면서 더 많은 이야기들을 알게 된다.

기자가 남긴, ‘탈출할 수 있었던 이유’ 는 “적당히 연민해서” 였다. 비록 도시에 고립된 부상 낙오병을 구하기 위해 탈출하기로 했지만, 그 과정에서 조수를 잃었고, 중간에 마주친 할머니, 아이, 그리고 박사는 버리고 떠났기 때문이다.

이 퍼포먼스가 완벽하게 밸런싱 된, 게임 플레이로서의 각별한 재미를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게임은 그저 재미가 아닌 다른 결과물을 준다. 앞서 말한 리롤 기회를 위한 질문은 그를 위한 노골적인 수단 중 하나다. 게임은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어떤 프로세스이고, 그 프로세스를 조금 뒤틀고 몇가지를 첨가하여 나에 대한 질문지가 되어준다. 어쩌면 하나의 로흐샤흐 테스트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 개인의 경험과 생각이 레거시 보드 게임과 TRPG를 적절히 섞은 방식을 통해 하나의 지도 위에 모여질 때, 뭔가 흥미로운 결과물이 된다. 이 게임의, 이 퍼포먼스의 지도는 그저 기호보다 더 많은걸 함축하고 있고, 그 배후에는 수많은 시나리오와 개인들의 성향, 생각이 숨겨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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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 모든 이의 플레이 결과가 기록된다.


그래서 퍼포먼스를 마치고 작가와 대화하면서 나온 이야기 중 하나는 이 전시를 디지털 아카이브로 만들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반응형 웹페이지로 만들어 지도의 아이콘을 클릭할 때마다 그 배후에 있는 이야기들, 그리고 플레이 기록을 보여주는 식으로. 그렇다면 그 어떤 퍼포먼스, 전시의 디지털 아카이브보다 더 작품을 완성하고 보완하는 아카이브가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또 하나 반가웠던 점은 정말로 게임을 깊이 이해하는 미술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게임미술이었다는 점이다. 미술 퍼포먼스이고, 한정된 시간 동안 진행되어야 함에도 비록 완벽한 룰북과 상호작용 시스템이 있는 것이 아님에도 게임으로서의 구조를 갖추고, 여러가지 플레이의 근거를 만들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게임을 할 때 느끼는 감각을 토대로 개인적인 사유에 접근하도록 하는 그 절묘함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게임을 단순히 소재로 하는게 아니라 게임의 형태까지 빌려 만들어지는 전시는 종합적으로 뛰어나기 무척 어렵다. 실제로 그런 경우에는 실망한 작품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게임으로서도, 미술작품으로서도 흥미로웠다.

나의 고향은 어디인가? 나는 왜 고향을 떠나왔는가? 나는 고향에 무엇을 두고 왔고, 그래서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전시부터 며칠동안 기자를 멤돌았다. 어느 순간 마주친 내 진심에 스스로가 당황하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런 의미의 순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현대미술의 중요한 가치가 아닌가 하고 늘 생각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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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수많은 이들의 답안지, 그리고 고민의 흔적.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건, 의미라고 생각한다. 너무 뻔하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대의 미술은 테크닉을 겨루는데에서 의미를 찾기 어렵다. 그보다는 이 작품을 통해서 내가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그 경험이 내게 어떤 변화와 결과를 가져다주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대체 경험 그 자체인 게임이라는 형태는 모든 미술작가에게 매우 흥미로운 소재일 것이다. 단순히 게임을 소재로서 다루기 시작해, 이제는 그 포맷과 형태, 매체를 빌려와 현대미술이 태어나게 하는 시도들을 우리는 지금 보고있다.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는 며칠 간의 지배적인 경험으로 남을 만큼, 의미 있었다. 정말이지 꼭 디지털 아카이빙이 이루어져서 모든 다른 이들의 기록을 한 번쯤 살펴보고 싶을 정도로.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게이머들이 흔히들 이야기하는 예술적인 게임과 닮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그렇진 않지만, 게임계와 미술계는 서로를 향해서 지속적인 방향성을 가져왔다. 게임계에서 출발한 흐름은 흔히 예술적인 게임들, 이를테면 ‘스탠리 패러블’ 같은 부류로 진화해왔다. 미술계도 비슷한 방향성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의미있는 진전이 있어왔지만, 불만족스러운 경우도 많았다. 진정으로 게임의 방식을 받아들이기보다는 고집을 부리거나, 또는 너무 게임의 방식을 받아들여서 ‘게임으로서의 미술, 미술로서의 게임’ 이 아닌 그저 못만든 게임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사이사이 좋은 작품들도 있었지만, 게이머로서의 입장과 현대미술 애호가로서의 입장을 모두 가진 입장에서는 완전하다고 생각할 사례가 많지 않은게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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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가 그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 같다.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게임도, 미술도, 이 퍼포먼스 안에서 한 축이 지나치게 지배적이지 않고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작가가 양쪽에 대한 이해도가 고루 높기에, 양쪽에서 각각 어떤 기대치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선을 지켜야하는지 잘 파악한게 아닐까 싶다.

때문에, 모든 전시가 마무리되고 나서야 기사를 올리게 된 이유도 퍼포먼스에 참여할 누군가의 경험을 전혀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컸다. 좁은 지하 공간에 마련된 전시이지만, 기자가 느꼈던 만족감, 그리고 미술로서의 의미는 어느 대형 미술관에 있었던 작품들보다도 높았던 것 같다. 또 100% 예약제로 운영되는 퍼포먼스이기에 이미 모든 슬롯이 차버려 더 많은 플레이어를 모집할 수 없기 때문도 있었고.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은, 오프라인 미술 전시라는 한계상 경험의 전달이 어렵고 오직 개인의 체험으로서만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경험이라는 사실이다. 디지털 게임처럼 광범위하게 퍼블리싱 될 수 없고, 아무리 열심히 글을 적고 사진을 전하더라도 온전하게 그 경험을 느낄 수 없다는 점이 아쉬우면서도, 바로 그게 아직도 현대미술이 온전하게 자신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이유가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디지털 게임과는 다른, 그런 실존적인 경험이 녹아있기 마련이니까.

때문에 불완전하게나마 이 경험을 꼭 널리 공유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고, 그게 이 기사를 만들게 됐다. 이런게 있다고, 이런 경험을 꼭 해보셨으면 한다고. 한 번 쯤은, 이런 전시를 경험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미술관에 열 번을 가서 아홉 번 실망하고 한 번 의미를 얻더라도, 그 한 번의 의미가 정말 깊게 깊게 기억 속에 남을 수도 있으니까.

▶관련기사 - 현대 미술로서의 비디오 게임 혹은 그 역, ‘슬픔의 집’

▶관련기사 - 게임 속 디지털 미술과 메타버스, '가상정거장 - 에란겔: 다크 투어'

▶관련기사 - 미술에 게임의 상호작용을 넣기,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전시



이명규 기자   sawual@ruliwe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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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보기클릭)39.7.***.***

BEST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전시가 어제까지였네요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체험하러 갔을텐데 아쉽네요
24.07.05 20:07

(IP보기클릭)220.93.***.***

BEST
아... 너무 늦게 알아버렸네 이런 좋은 기회를
24.07.05 23:11

(IP보기클릭)211.58.***.***

BEST
좋네요 국립현대미술관은 유튭 구독도 해놨는데 이런걸 몰랐다니
24.07.06 00:22

(IP보기클릭)118.235.***.***

BEST
예술과 관련하여 솔직하고 심도깊은 기사네요. 이런 기사가 많이 올라오면 좋겠습니다.
24.07.06 10:51

(IP보기클릭)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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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 봤습니다 전시가 어제까지였네요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체험하러 갔을텐데 아쉽네요
24.07.05 20:07

(IP보기클릭)22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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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너무 늦게 알아버렸네 이런 좋은 기회를
24.07.05 23:11

(IP보기클릭)2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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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네요 국립현대미술관은 유튭 구독도 해놨는데 이런걸 몰랐다니
24.07.06 00:22

(IP보기클릭)118.220.***.***

계속 게임 사이트의 저변을 넓히는 이런 기사 부탁드립니다! 이런 전시가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재밌네요^^
24.07.06 01:24

(IP보기클릭)218.237.***.***

오.. 다음 전시 하면 가봐야겠다
24.07.06 02:33

(IP보기클릭)14.50.***.***

예술인지는 모르겠는데 아이디어가 재밌긴하다 ㅋㅋ
24.07.06 10:10

(IP보기클릭)118.235.***.***

BEST
예술과 관련하여 솔직하고 심도깊은 기사네요. 이런 기사가 많이 올라오면 좋겠습니다.
24.07.06 10:51

(IP보기클릭)220.87.***.***

와 개쩌네요;;;;; 알았으면 갔을텐데 ㅠㅠㅠ
24.07.06 11:11

(IP보기클릭)192.0.***.***

졸라 재밌겠다..
24.07.06 11:58

(IP보기클릭)175.209.***.***

와우 진짜 사건 조사서 같네요 ㄷㄷ
24.07.06 15:20

(IP보기클릭)172.226.***.***

이명규 기자님 재밌는 연재 틈틈이 감사하게 보고 있어요 :)
24.07.06 22:29

(IP보기클릭)119.71.***.***

TRPG와드
24.07.07 17:11

(IP보기클릭)221.163.***.***

대박이네;;;;;;;;;;; 아, 왜 난 이런걸 몰랐고 안 갔을까
24.07.07 21:51

(IP보기클릭)223.39.***.***

이런게 있는줄도 몰랐네요. 알았으면 가봤을텐데..
24.07.08 09:25

(IP보기클릭)119.192.***.***

난 왜 이 기사를 오늘 봤을까..너무 아쉽네요. 전시는 꾸준히 찾아보지 않는 이상 놓치는게 많은거 같아요ㅜ
24.07.08 10:25

(IP보기클릭)59.14.***.***

아...아쉽다ㅠㅜ
24.07.09 00:03

(IP보기클릭)110.70.***.***

넘 멋진 전시입니다 이미 끝났다고 해서 아쉽네요ㅠ
24.07.09 10:14

(IP보기클릭)122.47.***.***

좋은 전시
24.07.10 04:4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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