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상망측 한국어화 ‘샨테’, 정식 발매는 이렇게 바뀐다
바야흐로 대한국어화 시대다. 이제 양대 콘솔로 발매되는 굵직한 독점작 한국어화는 열의 아홉 성사되는 편이고, 중소규모의 인디 게임들까지 점차 지원 언어에 한국어를 빼먹지 않는 추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시리즈가 한국어화된다고?”하며 놀랄 일이 왕왕 있었는데, 이제는 뭐가 한국어를 지원한데도 이상하지 않을 단계에 이르렀다.
다만 한국어화 사례가 크게 늘어나며 전에 없던 유감스러운 번역 품질의 문제도 함께 불거졌다. 대형 플랫폼 홀더나 믿을만한 국내 유통사가 맡은 작품은 그럴 일이 없지만, 외국 게임사가 자체적으로 작업한 경우 이따금씩 이상한 번역이 튀어나온다. 아무래도 구글 번역기를 지나치게 신뢰한데다 검수해줄 사람도 없었던 모양. 결국 비용이 문제다.
당장 지난 6월 필자가 호평 리뷰한 ‘샨테와 일곱 사이렌(Shantae and the Seven Sirens)’도 괴상망측한 한국어화로 빈축을 산 바 있다. 이 작품은 PC, 콘솔에 앞서 애플 아케이드 기간 독점으로 3월 선행 출시됐다. 아마도 당시 iOS 가이드라인에 따라 예정에 없던 멀티 랭귀지 지원을 하다 보니 졸속으로 번역기를 돌린 듯하다. 결과적으로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됐지만.
다행스러운 점은 얼마 전 PS4, 닌텐도 스위치로 ‘샨테와 일곱 사이렌’ 정식 발매가 확정되어 구제책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간 우수하고 꾸준한 한국어화로 마니아층의 지지를 받아온 아크시스템웍스 아시아지점이 전체 번역을 점검하고 바닥부터 다시 작업 중이다. 드디어 귀여운 하프지니가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게 될까? 맛보기로 초반부 번역을 확인해봤다.
※ 상단이 웨이포워드, 하단이 아크시스템웍스 아시아지점 번역입니다. 영어 원문은 글로 적었습니다.
영어 원문은 Whoa-HAAAAH!! EEEEEEEE!!!!! This place is a pradise! 게임을 시작하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오프닝 영상이다. paradise를 낙원도 아닌 천국이라 번역했지만 주된 뜻은 통하므로 큰 문제는 아니다. 다만 여기서 샨테가 딱딱한 경어체를 쓰는데, 이런 어색한 존대/반말 활용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서로의 상하 관계를 무시한 존대와 반말이 튀어나오고 "난 쉬어야 할 것 같애. 먼저 가시죠."처럼 한 문장에 존대와 반말이 혼재된 경우도 있다. 아크시스템웍스 아시아지점 번역은 이를 본래 관계에 맞춰 바로잡았다.
영어 원문은 Places like this are all tourist traps. The find a spot with historical significance…. 여기서 tourist traps는 높은 물가로 여행자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명승지, 즉 관광지를 의미하는 관용적 표현이다. 그런데 기존 번역에선 '여행자들의 함정'이라 직역하여 뜻을 알기 어렵고, 여행자를 노린 함정인지 여행자가 설치한 함정이란 건지도 불분명해졌다. 뒷부분은 역사적인 장소에 자리를 잡고 호텔을 짓는다는 내용이나 영어 원문에도 없는 '왜냐하면'을 넣어 번역이 더 이상해졌다. 아크시스템웍스 아시아지점은 이런 관용적 표현도 제대로 번역했다.
영어 원문은 Now that Shantae's a big celebrity, I'll finally have my chance! 일단 샨테가 샨체이가 되어버렸다. 이처럼 웨이포워드는 Shantae를 샨체이, 샨테이, 산테 등으로 번역했다. 한 게임 내에서 고유명사 번역의 통일이 안되는 상황. 그리고 big celebrity는 유명인사지 꼭 연예인으로 특정할 수 없다. 심지어 유명한 연예인이란 번역은 더 이상하다. 아크시스템웍스 아시아 지점의 번역에선 연예인 부분이 빠졌다.
영어 원문은 …the inaugural HALF-GENIE FESTIVAL! 이 부분이 좀 특이한데, 영어만 봤을 때 웨이포워드 번역에 딱히 문제는 없다. 앞뒤 문장을 확인해봐도 아크시스템웍스 아시아지점 번역의 '역사에 남을'에 해당하는 문장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영어에서 inaugural이 단순한 첫 회가 아니라 높으신 분의 취임 등에 쓰이는 무게감 있는 어휘인 점, 그리고 시장이 크게 흥분하여 축제를 자랑하는 상황을 고려하여 '역사에 남을'을 붙인 듯하다.
영어 원문은 YESSSS! Half-Genies are just nuts. I love'em. ~are just nuts는 약간 시쳇말에 가까운 표현으로 굳이 어감을 살리자면 'X나 쩔어' 정도다. 웨이포워드는 이걸 직역하여 창졸간 하프지니들을 비정상으로 만들어버렸다. 아크시스템웍스 아시아지점의 경우 뜻만 통하도록 점잖은 말투로 순화하였다.
영어 원문은 It makes me want to SKIP BORING TEXT by pressing X. 웨이포워드 번역은 직역조차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 '~makes me want to ~하고 싶게 만들어' 그리고 'BORING TEXT 지루한 글자'를 모두 생략했다. 그런데 어쨌든 기존 번역도 X 버튼이 건너뛰기 기능이라는 뜻은 전달되니 묘하다.
영어 원문은 this place is such a racket. scram. 이 문장의 경우 '난장판이다'와 '바가지다'로 둘 다 해석 가능하다. 따라서 웨이포워드 번역도 아주 딴소리는 아닌 셈이지만, 작중 상황을 고려하면 바가지라 얘기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꺼저'는 당연히 오역이리라 생각했는데 수정본도 '어서 꺼져'인 점이 재미있어서 넣었다.
영어 원문은 TRAAAAAAANS-FORRRRM!!! 당연히 샨테가 춤을 춰 동물로 변신하는 걸 이야기하므로 웨이포워드의 '변경'은 잘못된 번역이다. 또한 영어와 달리 한국어는 어미를 붙여야 자연스럽기 때문에 아크시스템웍스 아시아지점은 '할 수 있어!'까지 더한 모습이다. '샨테' 시리즈는 AAAAA처럼 알파벳을 길게 나열하여 외침을 표현할 때가 많은데 한국어로 살리기 어려웠는지 이 부분은 삭제됐다.
영어 원문은 See if the power lines run back to some rich guy's mansion or something. 하프지니 재플이 침몰된 도시을 둘러보며 이후 전개의 복선을 살짝 던지는 장면이다. rich guy가 갑자기 부유한 놈이 되면서 재플의 말투가 불량해졌고 some이 빠지는 바람에 특정인을 가리키는 것처럼 바뀌었다. 이 직전에 만난 부유한 놈이라곤 시장밖에 없기 때문에 스토리를 곡해하게 만드는 나쁜 번역이다. 다행히 아크시스템웍스 아시아지점의 번역에선 개선되었다.
영어 원문은 Nugget. 마지막으로 짧지만 강렬한 오역이다. 이건 번역이랄 수도 없다. Nugget은 금괴를 의미하며 흔히 치킨너겟이라 할 때 너겟과 스펠링이 똑같다. 그래서 작중 볼로가 배고프다고 징징거리다 금괴를 씹어먹는 개그씬을 연출하기도 한다. 금괴든 치킨너겟이든 웨이포워드가 주장하는 '너겠'이 아닌 건 확실하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