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도는 언제나 반갑지만 요즘엔 더욱 그렇다. 멋진 도전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제작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 투자자들의 요구, 한 번의 실패로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몰리는 환경 탓에 비슷한 게임들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모바일 게임은 특히 심하다. 우리 게임은 특별하다고 떠들썩하게 홍보하는 게임들도 막상 속을 들여다보면 거기서 거기다. 다른 회사의 게임을 베끼는 건 너무 흔해서 놀랍지도 않고, 자기 회사에서 만든 게임을 그래픽과 제목만 바꿔 재탕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제작 비용이 낮은 게임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돈을 많이 들인 게임만큼 화려하지 않고 편리하지 않아도 나름 괜찮은 시도를 보여주는 작품을 찾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흙 속의 진주까진 아니라도 놀이터 모래 속에 숨어 있는 동전 같은 그런 게임. 이번 리뷰에서 소개할 벡터 2는 그런 게임이다. 덜 다듬어져 투박한 구석이 많지만 러닝 게임에 로그라이크 요소를 더한 제작진의 시도를 흥미롭게 지켜볼 가치는 있다.
1편에서 과도한 업무를 못 이기고 탈출을 시도한 주인공. |
실패한 걸까? 꿈이었을까? 실험실에서 눈을 뜬다. 그리고 계속되는 달리기. |
벡터 1은 전형적인 러닝 게임이었다. 오프닝 애니메이션과 부드러운 파쿠르 동작이 독특하긴 했지만 정해진 스테이지 안에서 장애물을 피하고 넘으면서 점수를 올리는 전반적인 틀 자체는 장르의 문법에 충실했다. 후속작이 나올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혹시 나오더라도 그 안에서 조금 다듬는 선에서 그치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2편은 그 틀과 나의 예상을 모두 깨버리고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목표 지점까지 달린다는 점도 같고 파쿠르 동작으로 장애물을 넘는 점도 같다. 하지만 이 두 가지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제 스테이지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판마다 새롭게 구성된다. 그리고 한 번 죽으면 특정 스테이지로 돌아가 다시 시작한다. 로그라이크의 영원한 죽음과 랜덤 맵을 도입한 것이다.
실험실에서도 멈추지 않는 파쿠르. |
전작에서 그대로 가져온 동작들이 많다. |
시작할 때마다 맵 구성이 달라지는 덕분에 긴장감이 더욱 높아졌다. 전작에선 반복 플레이를 통해 까다로운 구간을 외우면 클리어할 수 있었지만 이제 어느 장애물이 어디서 나올지 모르니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야 한다. 물론 정해진 패턴 안에서 임의로 배치되는 방식이니 많이 하다 보면 결국 익숙해지겠지만 높은 층에 도달할수록 알고도 쉽게 피할 수 없는 패턴이 연속으로 배치되기 때문에 기억력보다는 순발력에 의존해야 하는 이 게임의 특징을 생각보다 오래 유지한다. 특히 11층부터는 매 순간이 살얼음판이다.
이번에도 1편과 마찬가지로 스테이지 안에서 루트가 나뉘는데 루트의 결정을 플레이어의 선택이 아니라 운에 맡기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진행 중에 파란색 연구 토큰를 획득하면 쉬운 길로 갈 수 있지만 얻지 못하면 피할 수 없는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는 길로 가야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죽어야 하는 경우가 생기지만 이 위험을 어느 정도 관리할 수 있도록 장비 시스템을 준비해두고 있다.
장애물 패턴이 많진 않아도 까다롭게 설계되어 있다. |
초반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패턴들. 정확한 타이밍을 알아내야 한다. |
한 층을 마칠 때마다 스테이지 난이도와 파쿠르 점수를 합산해서 받은 포인트로 장비를 구입할 수 있다. 헬멧과 부츠 등 다섯 가지 아이템이 있고 종류에 따라 막을 수 있는 장애물이 서로 다르다. 아머는 레이저를, 헬멧은 공중에 있는 기뢰를, 부츠는 바닥에 있는 지뢰를 막을 수 있다. 그래서 여러 장애물이 겹쳐 있어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장비의 에너지를 깎는 대신 죽음을 면할 수 있으며, 현재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 중에 어느 부위를 희생시킬지, 남은 파츠로 막을 수 있는 장애물 종류는 무엇인지 생각하는 플레이를 하게 된다.
구입할 수 있는 장비 범위와 성능이 랜덤으로 제공되기 때문에 결국 운에 의해 게임의 방향이 결정되긴 하지만, 여러 가지 특성을 해금할 수 있어서 많이 죽으면 죽을수록 좋은 장비를 얻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한 번에 많은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죽으면 보너스를 더 많이 제공하는 파쿠르 동작이나 파츠에 붙는 부가 능력이 열리게 된다. 고급 파쿠르 동작으로 더 많은 포인트를 모으면 성능이 좋은 파츠를 구입할 수 있고 이는 더 오랜 생존으로 이어진다.
파란색 연구 토큰을 못 구하면 해골 표시가 난 길로 가야 하고… |
그곳엔 피할 수 없는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다. |
무작위로 생성된 스테이지 속에서 점프 테크닉과 장비 활용으로 위험을 통제하며 진행하는 방식은 무척 흥미롭다. 파츠 에너지가 바닥났을 때 실력 반 행운 반으로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기분은 특별하다. 다만, 이런 과정은 반복 연습을 통해 고정된 스테이지를 완벽하게 클리어하는 데서 재미를 느꼈던 전작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오로지 전작만 생각하고 접한 사람은 실력과 관계없는 필연적인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마음 편히 달리면서 멋지게 파쿠르만 하면 되었던 전작과는 달리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장비와 연구 토큰을 수시로 확인하는 과정이 당황스러울 가능성도 있다.
정통적인 로그라이크 게임에서는 필연적인 죽음이 자연스럽지만 이런 러닝 게임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아래위로 레이저가 꽉 들어차 있어서 절대로 피할 수 없는 패턴을 만나면 이 게임엔 피할 방법이 없는 장애물이 있다는 걸 인지하게 되고, 다음에 까다로운 패턴이 등장했을 때 과연 피할 수 있는 장애물인지 확신할 수 없게 된다. 해골 마크가 박힌 구역에 있는 장애물 외에는 모두 피할 수 있도록 디자인해야 테크닉과 확률의 이상적인 조화가 이뤄지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구현했는지 무척 혼란스럽다. 솔직히 지금도 11층 이후에 나오는 몇 가지 패턴은 정말 해법이 있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포인트를 모아 장비를 구입하자. 파쿠르에 자주 성공할수록 비싼 장비를 구할 수 있다. |
장비에 붙는 다양한 특성을 해금하여 생존력 향상! |
하지만 이렇게 한 가지 장비만 나오면 모든 게 부질없다. 결국 운이 가장 중요. |
특정 과제를 완수하면 곧바로 높은 층에서 시작할 수 있는 프로토콜 시스템은 편리하다. 예컨대, 네 가지 프로토콜 중 실험 프로토콜을 개방하면 모든 장비를 갖추고 11층에서 출발하게 된다. 어려운 스테이지에 빨리 도전할 수 있어서 좋다. 출시 초기에는 실험 프로토콜에서 한 번 죽으면 다시 시작하기까지 3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고 기다리기 싫으면 데이터 칩 5개를 내야 했지만, 지금은 30분 정도만 기다리면 되고 데이터 칩도 2개로 줄어서 크게 불편하지 않다.
하지만 낮은 프로토콜에서 얻을 수 있는 파츠 종류를 제한한 점은 아쉽다. 1층이나 3층에서 시작하면 헬멧과 벨트를 절대 얻을 수 없어서 기뢰나 전기 충격기에 한 번만 닿아도 죽는다. 운이 좋으면 계속 진행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 이는 단검 한 자루 들고 던전에 들어가서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나 도전하는 로그라이크의 기본 이념과 전혀 맞지 않으며, 나중엔 하위 프로토콜이 아무런 필요가 없어지는 문제도 낳는다. 상위 스테이지에서 시작할 수 있지만 아이템이 부족한 단점을 감수해야 하는 ‘스펠렁키’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디자인인 셈이다.
스토리가 있긴 한데 아직 1장만 공개된 상태. 없다고 생각하자. |
한 번에 여러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 다양한 보너스를 받아 다음 게임이 수월해진다. |
그래도 앞에서 언급한 문제들은 심각한 단점이 아니다. 계속하다 보면 익숙해지는 점들도 있고 취향의 문제로 볼 수 있는 부분도 있으니까. 하지만 최적화를 제대로 하지 못한 건 이런 장르에서 매우 치명적이다. 테스트에 사용한 갤럭시 노트 5에서 게임이 끊기는 현상이 자주 발생했고 인트로 화면에서 로딩하는데도 1분이 넘게 걸렸다. 로고가 안 넘어가길래 게임이 멈춘 줄 알았다.
패치 후에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진행 중에 조금씩 끊기는 증상이 여전히 발생하며 이는 장애물이 복잡한 패턴으로 배치되는 후반으로 갈수록 심해진다. 나중엔 착지 지점의 미세한 차이 하나로 주인공의 생사가 갈리게 되는데, 이런 기술적인 결함으로 힘들게 올라온 스테이지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일이 발생할 때마다 만감이 교차하게 된다. 10분 넘게 애지중지 살려온 캐릭터가 순간 터치가 안 먹혀서 폭사했을 때는 게임을 지울까 하고 몇 번을 고민했다.
재도전에 4시간이 걸렸던 문제와 화면이 보이지 않는 버그는 얼마 전에 고쳐졌다. |
그러나 인트로 화면의 긴 로딩은 여전하다. 여기서 1분 넘게 기다려야 한다. |
다행히 과금 유도는 심하지 않은 편이다. 게임 내 화폐인 데이터 칩이 대량으로 필요한 건 죽고 나서 부활할 때뿐이며, 이건 플레이어가 로그라이크의 영원한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필요 없는 기능이다. 정말 아쉬울 땐 광고 한 편 보면 1회 부활할 수 있으니 문제 될 일이 없다. 장비 특성과 파쿠르 동작을 좀 더 빨리 해금할 수 있는 업그레이드 킷을 판매하지만 게임 내에서 천천히 얻을 수 있고, 나중엔 업그레이드 킷에서 중복되는 특성이 나오는 일이 많아서 크게 도움되지 않는다.
가끔 고급 프로토콜에서 30분 기다리기 싫어서 데이터 칩을 쓰고 싶을 때가 있는데 칩 두 개 정도는 광고 두 편 보거나 게임 내에서 얻은 칩을 소모하면 되기 때문에 과금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죽고 나서 강제로 광고를 봐야 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이게 좀 귀찮다. 5천 원 정도에 광고 없애주는 패키지를 판매하거나 유료 버전을 출시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금을 유도하긴 하지만 무척 약한 수준. 로그라이크는 죽어야 제맛이니까. |
업그레이드 키트도 중복 아이템이 많아서 구매 의욕이 들지 않는다. |
사무실을 탈출해서 건물 위를 시원하게 달리던 1편의 모습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실험체가 되어 연구소에서 죽음을 반복한다는 설정도 그렇고, 개운한 클리어가 아니라 찝찝한 실패를 되풀이하는 플레이 방식도 적응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 점들에 익숙해진다 하더라도 최적화 문제는 패치가 되기 전까지 계속 발목을 잡을 게 분명하다.
그만큼 제작진의 시도는 처음부터 위험했다. 전작에서 너무 많이 달라졌고 너무 많은 걸 넣으려 했다. 로그라이크의 매력을 충분히 살리지 못해서 결과적으로 실패한 점도 있다. 하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한 덕분에 매력적인 부분들이 탄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정교하게 설계된 장애물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허를 찌르는 스테이지, 토큰과 장비를 통해 위험을 통제하는 과정, 해금 요소 덕분에 오래 하면 할수록 풍부해지는 특성들까지. 장르의 틀 안에 안주했다면 결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림자에 아쉬워하기 보다 빛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반가운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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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보다 못한 후속작이야 많다만.. 이건 못하다는 수준이 아니라는게 큰 문제죠 -_-;' 1은 재미있고 스피디한 액션성이 넘쳐남에 비해 2는.. 엄청난 렉에, 보너스가 없으면 즉사구간에서 무조건 죽어야 하는 것. 그리고 스테이지도 쿨타임이 있어서 바로 할 수 없다는것과, 끝이 없다는것 이걸로 인해 5일정도 하다가 지웠습니다. 애정으로 견뎌볼려고 했는데 안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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