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스 : 1999, 그 아방가르드함에 대하여
새로운 구시대, 아방가르드 RPG를 표방한 ‘리버스 : 1999’는 말 그대로 전위적이고 살짝 급진적이다 싶을 정도로 힙스터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는 타이틀이다. 유려한 아트워크와 이펙트를 보여주는 한편, 다른 모바일 수집형 RPG 타이틀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몇 개의 선택들이 빛을 발한다.
● 스토리가 이끄는 플레이 경험 - 고증과 소재를 아방가르드하게 전하는 방법들
‘리버스 : 1999’의 정체성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비주얼 노벨 쪽의 경험이 가장 중심에 자리하며, 여기에서 캐릭터의 수집과 육성 그리고 전투에 이르는 전반적인 경험이 뻗어나가는 식이다. 이와 같은 구조에서 전투나 육성은 이야기를 감상하는 과정에서 플레이어를 막아서는 역할 혹은 진행을 의도적으로 막는 장치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이야기와 연출이 중심이 되는 타이틀이므로 ‘리버스 : 1999’는 독특한 설정과 세심한 연출이 더해지면서 플레이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어떤 이유로 인해 하나의 시대가 삭제되며, 그 안에 있던 사람들도 사라지는 ‘폭풍우’라는 현상이 벌어진다는 설정은 리버스 : 1999의 분위기를 한층 무겁게 만든다.
거꾸로 올라가는 비로 시작되는 폭풍우. 여기서 살아남는 것은 마술을 쓸 수 있는 마도학자 뿐이며, 그 시대의 일반인은 시간과 함께 사라진다는 설정이다. 따라서 리버스 : 1999의 초중반부 이야기는 사라지는 시대에 대한 기억들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이 서사의 중심에 자리한다.
거꾸로 내리는 비, 폭풍우. 그리고 시대의 종말
스토리와 연출이 중심이 되고 있기에, 게임 내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은 이야기를 감상하고 연출을 확인하는 것이 된다. 조금 극단적인 예가 될 수 있겠지만, 3분 정도의 전투를 진행한 다음 10분 정도 이야기를 연속해서 보게 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짧은 이야기의 연속이 아니라, 긴 이야기의 흐름을 가지고 있고 이 과정에서 전투나 수집보다는 육성의 결과로 이야기를 감상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야기를 보는 데에 방점이 찍혀있다
스토리 전반의 대사는 꽤 많은 텍스트량을 자랑하는 한편, 여러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연출을 더하고 있다. 현재 기준으로 총 4장까지 마련된 스토리 중에서 여러 연출을 선보이고 있지만, 가슴 한켠을 후벼파듯이 다가오는 직접적인 장면을 넣기도 했다. 독특한 화풍의 일러스트와 색감. 그리고 캐릭터들이 가져오는 매력이 전부 어우러지며 안타까움을 낳는 장면이기도 하다.
더욱이 흥미로운 점은 ‘리버스 : 1999’가 가져온 소재들이 쉽지가 않다는 점에 있다. 게임 시작과 동시에 컷신으로 나오는 레굴루스의 장면을 보자. 영국 바다 한 가운데에서 로큰롤을 방송하는 해적. 로큰롤 + 해적이라는 다소 이질적인 그림이기도 한데, 이러한 장면은 1960년대 영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실제로 바다에서 진행한 해적 방송이니까.. 로큰롤 해적인 것
해적 방송은 당시 경직되어 있었던 사회에 던지는 물음이자, 저항의 의미를 가진다. 그렇기에 저항적인 예술성향을 의미하기도 하는 아방가르드라는 키워드와 접점이 이루어진다. 경직된 것에 대한 저항이자, 고정되어 있는 것에 대한 저항이다. 이후 ‘리버스 : 1999’가 보여주는 이야기를 고려하면, 여러 의미를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앞으로 흐르지 않고 사라지며 뒤로 감기며 퇴보하는 상황은 ‘폭풍우’로. 그 속에서 변하지 않고 고정된 채 침전해가는 것은 ‘재단’으로. 그 모든 것에 저항하며 본인의 길을 구축하는 주인공 버틴이라는 구조가 성립한다고 볼 있다. 해석은 각자 다를 수 있겠지만, 큰 틀에서 고정되고 역행하는 것을 마주하고 타파하는 것이 리버스 : 1999가 보여주는 이야기의 골자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역행하는 시대에서 어떻게 저항하고 자신을 구축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이후 콘스탄틴과 대립하는 재단 내의 인물 ‘Z’는 체스가 아닌 바둑의 형태로 은유가 이루어진다. 체스가 왕을 잡는 것이 목적이라면, 바둑은 상대보다 더 많은 집을 짓는 것이 목적이다. 한정적인 장소(바둑판)에서 나의 영역을 더 많이 만드는 것이 게임의 목적이 되는 것이다. 상대를 제압한다는 최종 목적은 같지만, 서로의 방법론이 다르다는 것을 은유하기도 한다.
유닛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인식을 보여주는 콘스탄틴
따라서 유닛으로 누군가를 잡아내 탈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 집. 즉, 나의 의견에 동조할 수 있는 인물들을 늘려나가는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함을 의미한다. 4장의 이야기가 투표 장면을 보여주며 절정에 이르는 것을 생각하면, 완전한 승리를 위한 소모전이 아니라 흐름 속에서 비교우위를 구축하는 과정이 승리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거기서 나오는 차이는 4장의 마지막, 투표 장면을 긴장되는 것으로 승화시킨다.
리버스 : 1999의 이야기는 이렇듯 일반적인 모바일 수집형 타이틀의 이야기와는 조금 궤를 달리한다. 꽤 많은 은유와 비유. 여러 시각에서 해석할 수 있는 소재들이 즐비한 이야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막대한 진입장벽이 되기도 한다.
흐름 속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위치를 점거하고자 하는 Z. 두 인물의 차이가 체스와 바둑으로 그려진다
초반부터 큰 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기에, 이야기로 플레이어를 몰입시키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야기는 안에 잠재된 것을 폭발시킨다. 2장에 이르러 슈나이더의 이야기가 마무리 되는 시점이 대표적이다. 그 전까지 삐걱대던 캐릭터 설정이 있기는 하지만, 2장 마지막에 도달하면서 그 아쉬움을 다 잊을 정도의 여운을 남긴다.
2장 종막부터 이야기 퀄리티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이렇게 해두고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아닌 게 아쉬울 정도
하지만 어느 시점을 넘어가면서 본인들의 정체성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이 즈음 되면, 다소 난해한 이야기도 매력으로 작동한다. 여기에 유려한 일러스트와 연출까지 더해지면서 아방가르드함의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셈이다.
개인적으로 악마 같았던 연출이라고 생각하는 오렌지 씬
● 다소 퍼즐적인 전투 플레이 - 그런데 세심한 아트를 곁들인
리버스 : 1999는 그 본질적으로 가장 먼저 이야기가 앞서는 타이틀임은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전투 측면은 스토리를 보기 위해서 등장하는 적을 격파하며, 보스를 제거하는 플레이로 귀결된다. 이야기에 따라서 일부 적들이 등장하고 이를 뛰어 넘어야만 다음 이야기를 볼 수 있는 구조다.
전투가 중심이 되는 타이틀이 아니기에, 전투 자체의 반복 플레이보다는 어떻게 잠깐 동안의 전투에서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렇기에 리버스 : 1999의 전투는 약간의 퍼즐적인 플레이에 가깝게 설계되어 있다.
같은 카드를 이동하고 배치해서 더 높은 단계의 공격을 하는 것
단순 명료한 전투 시스템이기는 하지만, 몇 가지 변수가 있다. 캐릭터들의 스킬 카드를 이동시킬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동 시에는 액션 슬롯 하나를 사용하게 되므로 공격 기회가 1회 줄어든다. 하지만 이후 더 강력한 공격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기회를 보면서 카드를 이동해 열정 포인트와 스킬 카드의 단계를 올리고 적을 효과적으로 제압하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개발진은 여기서 몇 개의 변주를 더한다. 시스템 측면에서 단순한 만큼, 적의 패시브나 행동 방식을 복잡하게 설계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진행하면, 플레이어는 스킬의 단계를 올리고 게이지를 쌓아서 진행하는 것만이 아니라 적의 능력이나 패턴을 파악하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약간 단순하다 싶은 룰은 적의 긴 특성과 패턴으로 복잡도를 더한다
즉, 결과적으로 전투 진입 시에 적의 상태를 먼저 살펴볼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레벨 등을 올려서 대미지로 찍어 누르는 것도 가능하기는 하지만, 적절한 레벨이라면 상성이나 적의 행동 양식을 파악하고 빈틈을 노리는 플레이가 필수적으로 다가오게 된다.
이를 이해하고 전반적으로 각 스테이지는 육성을 제대로 하기만 한다면 스토리 전체를 클리어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오히려 극한의 조건을 가지고 있는 전투 관련 튜토리얼이 실수 하나만으로도 실패하는 등 까다롭게 느껴질 정도다. 최적의 효율을 내기 위한 과정을 고민해야 하기에, 단순한 룰임에도 퍼즐과 같이 순서와 능력을 파악하는 과정이 수반된다.
자동 조작이 없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될 수는 있겠지만, 전투 시스템이 지향하는 바를 생각하면 최초 1회 클리어는 직접 진행하도록 해서 플레이 자체를 꼭 하도록 만들었다. 더불어 아직까지는 카드 간의 연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디버프 / 버프 정도가 연계의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는 상태다. 변주를 가하는 것은 적의 특성일 뿐, 플레이어가 직접 전투 양상을 바꾸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가상 몽유 6지역부터는 클리어를 할 때마다 두 명의 캐릭터를 제외하게 되는데, 이는 곧 플레이어가 여러 캐릭터를 키워야함을 뜻한다. 따라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캐릭터와 함께 다수의 캐릭터를 육성하게 되고 최종적으로는 더 많은 캐릭터의 수집 / 육성 재화의 부족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아니 키울 건 많은데 왜 행동력 채워주는 사탕을 안주냐구우...
먼저 게임이 나온 중국 서버에서도 아직까지 이야기가 5장에 그친다는 점을 생각하면, 육성 재화를 모으고 조금씩 성장하는 플레이가 리버스 : 1999의 스토리 이후 플레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밀도 있는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플레이를 이끌고. 전투와 연출로 눈을 즐겁게 했던 것과는 별개로 이야기가 비는 타이밍에는 전형적인 분재 게임처럼 작동하게 된다.
결국 스토리 외적으로는 여러 캐릭터를 획득하고 키우는 게임으로 귀결된다
● 아니 이걸 이렇게까지? - 힙스터함을 올리는 요소들
스토리 중심의 타이틀에서 캐릭터의 매력과 육성 시스템을 곁들인 리버스 : 1999는 플레이 양식이나 이야기의 무게감에서 자신만의 스탠스를 확고하게 가져간다. 이걸 전위적인 측면에서 아방가르드라고 표현할 수도 있고 남들과 다른 점을 계속 어필한다는 점에서 힙스터함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정점을 찍는 것이 캐릭터를 디자인하는 것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지는 성우의 목소리 측면이다. 분명 수집형 타이틀이고 미소녀 일러스트가 눈에 들어오는 타이틀이지만, 캐릭터 디자인이 범상치가 않다. 전반적으로 노출도를 올리기보다는 아름답거나 특색있는 형태의 캐릭터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그래도 레굴루스는 예쁘다. 중요하니까 한 번 더 말한다. 예쁘다
여기에 성우들의 기묘한 열연도 언급을 할 필요가 있다. 이건 한국어 음성보다는 영어 음성에서 더 명확하게 나오는 특징이다. 영어 음성으로 게임을 플레이할 경우, 영국인인 레굴루스의 억양이 영국식으로 달라진다거나. A 나이트의 대사가 프랑스어로 나온다거나 하는 것들이 대표적이다. 캐릭터의 인상이 확연하게 달라질 수 있는 지점이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는 영음을 추천하고 싶을 정도다.
졸지에 4장이 나온 A 나이트. 저를 A4 나이트라고 불러주시겠어요?
이렇듯 캐릭터와 스토리 중심의 게임임에도 세부적인 것들이 기묘한 인상을 풍기고 있는 상태다. 앞서 언급한 실제 역사를 비틀어 표현하는 것에 더해서, 억양까지 반영을 해버리는 디테일 전반은 개발진이 얼마나 힙스터에 가까운지. 그리고 얼마나 진심으로 이를 구현하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요소다.
더빙 중에는 제일 정신이 나갈 것 같은 대사다
● ‘리버스 : 1999’ - 그 아방가르드함에 대하여
정리하자면, 리버스 : 1999는 다른 수집형 타이틀에서 몇 가지 요소를 가지고 왔음에도 자신만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시스템 측면에서는 그간 시장에서 서비스 되었던 타이틀과 완전한 차별화를 이뤄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시스템을 기저에 두고 선보이는 스토리와 연출. 디테일한 캐릭터 디자인과 목소리 등은 다른 게임이 보여주지 못했던 일면에 도달해 있다.
이야기 전반으로 저항이라는 것을 키워드로 삼는 한편, 이 속에서 저항하며 살아가는 인물들을 중심에 내세운다. 이 모든 것들이 뒤섞여 만드는 게임의 분위기는 호불호가 강하게 걸리기는 하지만,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각별한 작품으로 자리 잡을 여지를 남긴다.
수집형 측면에서도 뽑기 스택이 공유되거나 이월되는 등 편의적인 측면을 따라가고 있다. 따라서 스토리에 관심이 있는 플레이어라면 전반적으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타이틀로 시장에 자리를 잡지 않을까 한다. 새로운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간이 길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한 편의 비주얼 노벨을 감상한다는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는 타이틀이 되리라 생각한다.
정필권 기자 mustang@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