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싫다.
인간은 언제나 나를 아프게 한다.
인간은 싫다.
멋대로 만들어 놓고 나를 쓸모가 없다고 했다.
인간은 싫다.
전부 사라졌으면 좋겠다.
인간은 싫다.
전부 사라져도 나를 아프게 했던 기억은 남아있다.
인간은 싫다.
인간에 대해서는 싫은 기억뿐이다.
인간은 싫다.
정말 싫다.
* * *
악몽을 꿨다.
인간이 멸망하기 전의 꿈이다. 내가 실험실에 있었을 때의 꿈이다.
오래전의 일이다. 그러나 아팠던 기억, 고통스러웠던 기억은 여전히 남아 나를 괴롭힌다.
이런 날은 다시 잠들어 봤자 다시 악몽을 꾼다.
그러나 하염없이 침대에 홀로 앉아있어도 악몽과 기억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그래서 산책을 하기로 했다.
금속 벽으로 된 잠수함 안을 돌아다닌다. 낮게 우웅하고 울리는 소리와 내 발걸음 소리만 들린다. 벽 너머에는 동료들이 있겠지만 이렇게 늦은 시간에 그들을 깨울 수는 없었다. 그래서 홀로 계속해서 걷는다.
마치 안개 속을 걷는 것 같다. 세상에 홀로 나만 남아있는 것 같았다.
단조로운 외부자극은 다시 내가 내면으로 매몰되게 한다.
방금 꾸었던 악몽이 떠오른다. 옛날에 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싫다.
과거가 현실을 잠식하려 한다.
인간은 이미 오래전에 없어졌는데. 어째서 아직까지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인가. 인간이 없어지면 고통도 끝날 줄 알았는데. 왜 아직도 괴로운가. 괴롭다. 괴롭다. 괴롭다. 괴롭다. 괴롭다.
“티아멧?”
고통에 빠져 허우적 거릴 때 누군가가 나를 끌어올린다.
“……사령관.”
이제야 주위가 보인다. 여전히 복도. 그러나 복도 저쪽에는 사령관이 있다. 사령관은 나에게 걸어오며 묻는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산책……중이에요.”
내 말에 사령관은 웃으며 나에게 다가온다.
“하하. 나랑 같네.”
사령관이 내 앞에 도달한다.
사령관이 팔을 들어 올린다.
“이 병 신이!”
앞으로 닥칠 고통을 줄이기 위해 나는 몸을 움츠렸다.
“잠이 안 와?”
그러나 내가 예상했던 고통은 전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부드러운, 따뜻한, 상냥한 손길이 머리에서 느껴질 뿐이다.
“……네.”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그런데. 그러면 같이 좀 걸을까?”
“……네.”
* * *
사면이 금속으로 된 복도를 사령관과 걷는다. 낮게 우웅하고 울리는 소리와 내 발걸음 소리와 사령관의 발걸음 소리 그리고 사령관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번에 마리가 티라미수를 만들어 주더라. 마리가 그렇게 요리를 잘할 줄 몰랐어. 물어보니까 커피에 어울리는 간식은 자신이 직접 만들어 본다고 하더라. 아, 혹시 티라미수 먹어봤어?”
“티라미수가……뭐죠?”
무심코 질문을 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것도 몰라? 쓸모없는 년.”
폭언을 들을 거라 생각했다.
“아……거기서부터 설명해야 하는구나.”
그러나 나의 질문에 사령관은 끙끙거리며 답을 한다.
“음, 검은색이랑 하얀색이 층이 진 케이크인데. 폭신폭신한 느낌이 아니라 녹은 초콜릿처럼 부드러워. 아, 실제로 재료에 초콜릿도 들어가고, 커피랑, 치즈, 설탕……어쨌든 이것저것 들어가는데.”
사령관은 열심히 나에게 설명해준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이렇게 말한다.
“하하. 어쨌든 엄청 맛있는 케이크야. 나중에 마리한테 한 번 더 만들어달라고 할 테니까. 같이 먹자.”
* * *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복도를 걷는다.
그러다가 사령관이 말했다.
“그러고보니 요즘 티아멧…….”
“그렇게 자원을 투자했는데 이 정도밖에 못 해? 쓰레기 같으니.”
사령관이 말했다.
“엄청 활약하고 있더라. 탐색이면 탐색, 정찰이면 정찰, 전투면 전투. 하나도 빠짐없이. 지난번에 스틸라인 순찰대랑 같이 위력정찰 나갔다가 철충 무리랑 마주쳤잖아. 그것을 전멸시켰다고 했을 때 진짜 감탄했어.”
사령관은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언제나 고마워. 정말 큰 힘이 되고 있어.”
* * *
오르카 호는 크다. 그러나 오래 걸은 것 같지 않은데 벌써 한 바퀴를 돌아 내 방 앞에 도달했다.
“벌써 티아멧 방이네.”
“……밤이 늦었어요. 이제 쉬시죠, 사령관.”
“고작 이 정도로 뻗어버리다니. 하, 시발, 실패작이잖아, 이거.
사령관은 하품하며 기지개를 켰다.
“응. 그러네. 나도 슬슬 졸리고. 산책한 보람이 있네. 티아멧이 있어서 지루하지 않아서 좋았어.”
“방까지 모셔다드릴게요.”
“아냐. 티아멧도 피곤할 텐데. 그리고 오르카 호 안이잖아. 혼자서도 충분해.”
“……네.”
“잘 자. 좋은 꿈 꿔, 티아멧.”
사령관은 마지막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를 떠났다. 그 등을 바라보다가 방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금속으로 된 침대와 변기뿐인 방.
그러나 내 방에는 폭신폭신한 매트리스와 부드러운 이불이 깔린 침대가 있고, 동료들이 준 선물이 예쁜 가구들 위에 올려져 있고, 밖에서 따온 꽃을 엮은 꽃다발이 내 방에 향을 입히고 있었고,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 속의 나는 웃고 있었다. 그리고 사령관이 준 사탕을 모아둔 통이 있었다.
* * *
인간은 싫다.
인간은 언제나 나를 아프게 한다. 하지만 사령관은 아니다.
인간은 싫다.
멋대로 만들어 놓고 나를 쓸모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사령관은 아니다.
인간은 싫다.
전부 사라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사령관은 아니다.
인간은 싫다.
전부 사라져도 나를 아프게 했던 기억은 남아있다. 하지만 사령관은 아니다.
인간은 싫다.
인간에 대해서는 싫은 기억뿐이다. 하지만 사령관은 아니다.
인간은 싫다. 하지만 사령관은 아니다.
정말 싫다.
……싫다.
이대로 홀로 있기 싫다. 이대로 사령관을 보내기 싫다.
닫히는 문을 억지로 멈춰 다시 열고 복도로 뛰쳐나간다. 저기 사라져가는 등을 향해 달려간다.
사령관이 돌아본다.
“왜? 무슨 일 있어, 티아멧?”
걱정이 가득한 눈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어떤 소리를 해도 화내지 않고 들어줄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가지고 부탁할 수 있었다.
“같이……자주시면 안 될까요?”
사령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침대는 좁았다. 그래서 두 사람이 누우려면 서로 꽉 끌어안아야 했다. 그래서 침대가 좁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잘 자, 티아멧.”
“안녕히 주무세요, 사령관.”
짧은 인사를 나누고 눈을 감는다.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있었다. 그러나 혼자는 아니었다.
사령관의 품은 크고 따뜻했다. 사령관의 향이 내 코 속을 채운다. 사령관의 심장소리와 나의 심장소리가 동조한다. 사령관의 손이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과거의 기억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다.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괴롭다.
그러나 새로운 기억들은 과거를 밀어내고 내 안을 채운다. 연구실 밖의 세상은 기상천외함으로 가득 차 있고, 동료들과 있으면 즐겁다.
그리고 사령관과 함께 있으면 행복하다.
연구실에 있던 때를 떠올리면 고통스러운 것처럼, 오르카 호에 합류한 후에 쌓은 기억을 떠올리면 행복하다.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이 행복한 기억으로 덮인다.
인간은 싫다. 인간은 싫었다.
그러나 나를 쓰다듬어주고, 나를 위로해주고, 나에게 고맙다고 해주고, 나에게 웃어주고, 나를 안아주고, 나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있는 이 인간은 좋았다.
그러했기에 인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사령관.”
사령관은 대답하지 않았다. 잠이 든 것이겠지. 그래서 나는 말할 수 있었다.
“만일 다른 인간님이 제 사령관이었다면… 상상하기도 싫어요. 마지막 인간님이 사령관이라서 정말 다행이에요.”
마지막이자 최초의 인간은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지 웃고 있었다.
이 사람이 행복하기에 나도 행복해졌다. 그래서 나는 고백했다.
“좋아해요, 사령관.”
나는 사령관의 입술에 몰래 입을 맞췄다.
새로운 기억, 새로운 행복이 또 다시 과거 위에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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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다른 인간님이 제 사령관이었다면… 상상하기도 싫어요. 마지막 인간님이 사령관이라서 정말 다행이에요.”
티아멧 호감도 100일 때의 터치 대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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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아멧 소설을 썼지만 정작 저는 티아멧이 없군요...
언제 얻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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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꽃길만 걷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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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는 안 찾아오는군요, 크흡! | 21.06.09 19:4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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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메인도 다 못 뚫은 늅늅이라 울고만 있습니다 흑흑 | 21.06.09 19:46 | |
(IP보기클릭)2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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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꽃길만 걷기를... | 21.06.09 19:4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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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점점 흐려지는 연출을 해보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색의 종류가 부족해서 그냥 두 가지만 썼습니다... | 21.06.09 19:4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