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충이 스틸라인의 방어선으로 달려간다.
선두에서 달려가던 철충에 초탄이 명중한다. 철충의 단단한 내피는 총탄에 깎여나갔으나 한 발의 총알로는 철충의 돌진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한 발로 부족하다면 한 발 더 명중시키면 된다. 그래도 부족하면 한 발 더. 한 발 더. 그래도 부족하다? 그러면 퍼부으면 된다.
수십 발의 총탄이 철충의 몸을 깎아내고 그 속을 드러낸다. 그리고 드러낸 속으로 한 발의 총알이 파고들어 그 속을 휘젓는다.
단순한 고철덩어리가 된 철충은 관성으로 조금 더 달려가다가 쓰러지고 만다.
그러나 뒤이은 철충들은 그 철충을 짓밟으며 계속 전진한다. 철충은 두려움을 몰랐다.
역부족이다. 그러면 중기관총들과 유탄발사기들은 어떤가?
중기관총의 대구경 탄환은 한 발로 철충의 외피를 뚫고 그 속을 헤집는다. 밀집된 철충의 무리로 쏘아진 탄환들은 한 발에 한 놈씩 착실하게 철충을 쓰러트린다.
거치된 자동유탄발사기들이 쏘아낸 유탄들은 한 번에 철충을 쓰러트리지는 못했지만 넓은 범위의 철충들의 기능에 문제를 일으켜 그 일대의 진군을 느리게 했다.
그래도 부족하면 더 많은 화력을 퍼부으면 된다.
“안녕, 동지들. 임펫 도착. 불꽃놀이 좋아해? 싫어도 이제는 좋아질 거야.”
유쾌한 인사와 함께 임펫 전대가 도착했다.
하늘에서 로켓이 쏟아진다. 단발 로켓이기에 지속력은 떨어졌지만, 재장전 후 일제히 쏟아지는 로켓의 파도는 철충 무리의 전열을 지워버리기에 충분했다.
“피닉스 작전 상공 도착. 늦어서 미안. 원래 주인공은 늦는 법이잖아.”
105mm 포탄이 하늘에서 내리꽂힌다. 화력은 조금 부족해 보일지라도 이 포탄들은 적절하게 철충의 밀도가 높은 곳, 중대형 철충들을 지속적으로 타격하여 불안 요소들을 확실하게 없애줬다.
아직 부족하다고 하면 어쩔 수 없다.
아담한 소녀들이 참호를 누빈다. 그러나 아담한 소녀는 자신의 체구보다 몇 배는 큰 가방을 메고 있었다. 그 중 한 소녀가 박격포 진지에 들어섰다.
“승리! 이프리트 병장님, 포탄 가져왔어요!”
심부름 왔다는 식으로 가볍게 말했지만 실키가 가방을 내려놓자 쿵하고 묵직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가방을 열자 140mm포탄이 들어간 상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안한데 저기다 쌓아줘! 지금 바빠서 못 도와줘!”
이프리트는 다급하게 말하고 박격포에 포탄을 집어넣었다.
“발사!”
140mm 박격포탄이 철충의 바다에 불꽃을 피워올리며 구멍을 낸다. 막대한 수와 밀도의 철충은 그 빈틈을 순식간에 채우지만 140mm포탄이 철충의 무리에 구멍을 내는 속도도 만만치 않다. 140mm포탄의 위력과 넓은 폭발반경도 강하고 넓었지만, 발사속도도 이에 지지 않고 빨랐기 때문이다.
숙련된 포병의 발사속도는 140mm 박격포의 화력투사를 극대화시켰다. 언제나 의욕이 없이 느릿하게 움직여도 이프리트는 병장이다. 필요한 때에는 그 능력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여기는 셀주크.”
전장의 신이 고했다.
“포탄을 광역제압탄으로 변경합니다. 지근거리에서 폭발이 일어나니 아군은 주의 바랍니다.”
전선에서 가장 가까운 셀주크들이 포탄을 바꿨다. 셀주크들은 신중하게, 아군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지만 철충에게는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방향과 각도를 고려하고, 후에 신관의 폭파 시간을 설정했다.
모든 과정을 마친 셀주크는 포탄을 발사했다.
초음속의 고중량 포탄은 순식간에 참호를 가로질렀다. 참호의 보병들은 포탄이 폭발하기 전까지 포탄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참호를 지난 포탄은 철충의 무리 바로 위에 도달했다. 신중하게 계산하여 시간을 설정한 신관은 조금 더 날아간 후 폭발했다.
폭발은 공중에서 일어난 한 번뿐이었기에 화려함은 부족했다. 그러나 부족한 것은 화려함 뿐이었다.
포탄 안에는 1만 발의 화살촉이 들어있었다. 포탄의 추진과 이후 공중에서의 폭발로 이중으로 가속한 화살촉들은 넓은 범위에 흩뿌려져 철충을 덮쳤다.
폭발이 일어난 곳을 시작점으로 부채꼴의 넓은 범위의 철충들이 그 자리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그대로 픽 쓰러졌다.
살아남은 철충들도 있었다. 그러나 몸에 무수한 구멍이 뚫린 철충들은 더 이상 전투를 지속할 수 없을 것이다.
철충들은 무리의 빈 자리를 채우려고 했다. 그러나 쓰러진 철충들은 그대로 장애물이 되었다. 온전한 철충들은 쓰러진 철충을 뛰어넘어 진군했지만 그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었다.
돈좌 된 철충들은 좋은 표적이었다. 총포탄들이 철충들을 덮쳐 더 많은 장애물들을 만들었다.
철충의 무리는 끝이 없었다.
그러나 스틸라인의 화력은 압도적이었다.
철충의 무리는 어느 순간부터 특정한 선을 넘지 못했다.
상황실에서도 전술지도의 붉은색이 나아가지 못하는 것을 알고 환호했고, 전방의 참호에서도 하나둘 그것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달라졌다.
철충이 무한해 보여도 그 수는 끝이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상태를 유지하면. 승리할 수 있다. 살아남을 수 있다.
스틸라인의 병사들은 고무되었다. 진작된 사기는 병사들의 전투 능력까지 향상시켰다. 철충의 무리가 조금이지만 밀려났다.
“이거 이기는 거 아님까? 철충도 별거 없지 말임다.”
“입 놀릴 시간에 쏘기나 해!”
벌써부터 승리를 입에 담는 경솔한 바이오로이드들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굴의 마리는 아니었다.
그녀 역시도 전세가 스틸라인 쪽으로 기울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했기에 그녀는 의심했다.
저 정도의 철충을 아무런 전술 없이 밀어 넣기만 한다고? 그녀의 경험과 지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개개의 철충은 지성이 느껴지지 않지만 무리화된 철충은 명백하게 무언가의 지휘를 받고 있는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의심하고 추론했다. 그녀는 만약에 자신이 철충을 지휘하는 입장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 고민했다.
오래는 아니었다. 쉽고 효율적인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포병 레이더를 가동하라!”
그리고 그녀는 마이크를 집어들고 외쳤다.
“총원, 철충의 포격에 대비하라!”
그녀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분주히 참호를 오가던 실키들이 대피호로 몸을 숨겼고, 레드후드와 셀주크조차도 가장 가까운 차호로 이동했다.
주요 화력 자원이 잠시 지원을 멈추자 철충은 성큼성큼 참호로 밀려 들어왔다.
그러나 보람은 있었다.
대포병 레이더가 무언가를 감지했다. 이 정보는 자동적으로 전술지도에 갱신되었다.
전술지도에 떠오른 것을 본 마리는 외쳤다.
“적탄 낙하!”
마리의 외침에 이어 참호선에 화염과 토사가 치솟았다. 위아래로 크게 흔들리는 땅에서 제대로 설 수 있는 바이오로이드는 없었다.
참호선에 큼지막한 구덩이들이 생겼다. 깊게 파인 참호 덕분에 포격의 위력에 비해 스틸라인의 병사들이 직접적으로 피해를 본 일은 적었지만, 불행하게 참호에 직격을 받은 바이오로이드들은 그 시체조차도 남기지 못했다. 피해를 입은 자 중에는 셀주크도 1대가 포함되어 있었다. 완파되지는 않았지만, 포격을 위한 기능을 전부 잃었으니 지금 상황에선 무척이나 뼈아픈 손실이었다.
그리고 한 차례 크게 갈아엎인 참호는 그 기능이 눈에 띄게 저하되었다.
이동을 위한 교통호가 끊기고, 통신선이 끊겼다. 탄약 창고로 쓰던 참호가 토사로 묻혔다.
그러나 철충은 여전히 진격하고 있었다.
적 포병과 진군하는 철충 중 우선시 해야하는 것은?
마리는 우선 순위를 고려하고 명령했다.
“셀주크 여단! 대포병 사격 실시!”
대포병 레이더로 입수한 적 포병의 좌표와 셀주크의 위치, 거리와 방향, 풍향, 풍속, 공기의 밀도와 온도, 지구의 곡률, 지구의 회전, 지구자기장, 셀주크가 서 있는 땅의 압밀, 작약의 온도, 적 포병의 이동가능성 등이 변수인 복잡한 계산을 통해 도출된 제원이 각 셀주크들에 하달되었다.
셀주크들은 하달된 제원에 따라 몸과 포신을 조절한 후, 모든 자매들이 준비가 되기를 기다렸다. 오래지 않아 모든 셀주크들이 포격 준비를 마치자 일제히 포를 쏘았다.
그 광경은 장관이었고, 170mm포탄의 일제 포격의 목표지점은 더욱 장관일 것이다. 그러나 먼 거리였기에 그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볼 수 없다고는 하나 적 포병이 무력화 되었는지는 알 수 있었다.
“적탄 낙하!”
적 포병의 2차 포격이 참호를 때렸다. 떨어지는 포탄의 수는 크게 줄어든 것 같지는 않았다. 비교적 운신이 자유로운 위치에서 포격을 실시한 적 포병은 포격을 마치자 마자 그 자리를 이탈했을 것이다.
마리는 입술을 씹으며 갈등했다. 하릴없이 포탄을 주고받을 수는 없었다. 철충의 진군이 계속되고 있었다. 가장 강력한 화력인 셀주크가 빠지니 철충의 무리와 참호까지의 거리가 순식간에 줄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적 포병을 그냥 둘 수도 없었다. 전쟁의 사상자 대부분은 포병에 의해 생기지 않던가. 이대로 있다간 적 포격에 전멸당할 판이었다.
마리는 한 가지 방도를 떠올렸다. 그러나 그 방도는 잔인한 것이었다. 희생을 요구하는 방도였다. 마리는 다른 방도가 없는지 찾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가장 확실하고 희생을 최소화 시키는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러했기에 마리는 고민하지 않았다.
“임펫 전대!”
마리는 피를 토하듯이 명령을 내렸다.
“적 포병을 섬멸하라!”
명령은 단순명료했다. 그러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다. 철충의 바다 위를 날아가, 적 포병을 호위하는 병력을 뚫고, 대공 사격이 가능한 적 포병을 파괴하는 임무였다.
어설프게 적은 병력을 보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병력만 희생되고 적에게는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한다. 모든 임펫을 동원하여 확실하게 성공시켜야 했다.
그러나 이 명령은 임펫전대에 내리는 마지막 명령이 될 것이다. 가는 길은 험난할 것이고 돌아오는 길은 그 이상으로 험악할 것이다.
임펫 전대는 전멸할 것이다.
마리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지휘관이었다.
곧 임펫 전대의 전대장에게서 통신이 수신되었다.
“하핫! 알겠어, 마리 대장. 적 포병들 섬멸시킬게. 대신에 이 전투가 끝나면 불꽃놀이나 크게 해줘. 우리들도 볼 수 있게.”
임펫은 ‘같이 보자’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녀들도 알고 있으리라. 편도 비행이 되리라는 것을.
그러나 그녀들은 명령을 거부하거나 슬퍼하지는 않았다. 그녀들은 스틸라인 자매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임펫 전대가 철충의 바다 위를 가로지른다. 그녀들은 곧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적 포병의 포격이 그쳤다.
그리고.
임펫도 돌아오지 않았다.
마리의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 그토록 비통했다.
그러나 마리는 비통해할 시간도 없었다. 그녀가 눈물 한 방울 흘릴 때마다 자매들이 죽어간다. 그녀는 지휘관이었다.
마리는 철충무리가 포격으로 인해 화력투사가 약해진 틈을 타서 참호의 지근거리까지 접근하자 명령을 내렸다.
“1차 방어선을 포기한다! 최전방의 병력은 2차 방어선으로 후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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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작중 배경이 2100년대 인데 왠지 전투는 무기만 최신인 근현대 전투 같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군요.
위워솔져스가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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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보기클릭)58.227.***.***
실제로 브라우니 갈아넣은게 적지 않았다는 답변이 있었죠. https://m.cafe.naver.com/lastorigin/828143 Q-7 대전차 마사일 재블린 가격이 3억원대로 T-2브라우니 3명의 가격으로 알려졌는데 이러한 무기보다 싼 브라우니를 작전 후에서 후퇴명령등을 내리지 않고 그냥 버리고 가거나 브라우니 보다 더 비싼 무기 회수를 위해 더많이 희생시키는 일이 많았나요? A-7 적진 않았습니다. | 21.05.23 13:0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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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마리는 리리스 잡을때 브라우니 희생시키는 전술을 사용안하고 자신이 직접 나섰다는 답변 보면 경우에 따라 달랐다고 봐야겠죠. https://m.cafe.naver.com/lastorigin/679422 Q-1. . 블랙 리리스는 불굴의 마리를 끌어내기 위해 단신으로 스틸라인 병대를 일방적으로 살육한게 맞는가 A-1. 브라우니나 레프리콘을 미끼로 유도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블랙리리스 한 기의 제조 금액은 현대의 원화 기준으로 천억원 대에 달하기에 한 기에 1억원 정도인 브라우니를 1000기 이하로 소모시키는 것이 올바른 전술이었음에도 마리는 직접 나서서 피해를 줄이려 했습니다. | 21.05.23 13: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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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우니는 이렇게 고통받기 위해서 만들어졌는데 정작 본인들은 긍정갑이라는게... | 21.05.23 15: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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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편 예정이라 그...그렇게 멀리는 안 갑니다. | 21.05.23 15: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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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nding Death!가 구호인 부대이다보니.. | 21.05.23 15: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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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임펫의 처절한 최후도 쓰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너무 길어질 거 같아서... | 21.05.25 22:0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