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사령관 각하! 승리! 여기는 어쩐 일이심까?”
사령관이 돌아다니다가 마주친 브라우니는 최고 지휘관과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구김살 없이 쪼르르 다가와 경례를 했다.
사령관은 주위를 둘러보고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병들을 위한 막사라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에 빠져 잠시 산책을 하다보니 이런 곳까지 오고 말았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기에 사령관은 거짓말을 했다.
“그냥 오르카 호를 둘러보고 있었어, 브라우니. 너는 지금 근무 시간 아니야?”
“무슨 끔찍한 소리를! 오늘 휴일이지 말임다.”
브라우니는 그렇게 말하고 “영내 휴가지만 말임다.”라고 덧붙였다.
“무슨 고충 같은 건 없지?”
“하하! 고충이랄 것이 뭐가 있겠슴까. 전부 다 똑같이 겪는 것들인데.”
브라우니는 웃으면서 말하고는 물었다.
“그런데 각하. 혹시 지금 한가하심까?”
“그리 바쁘지는 않지. 왜?”
“그러면 저희 병영에서 조금 쉬었다 가시지 말임다. 이번에 들어온 부식이 맛있지 말임다.”
사령관은 잠시 생각했다.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오자 브라우니는 웃는 낯에 기쁨을 섞었다.
그 모습을 보며 사령관은 브라우니는 정말로 붙임성이 좋다고 생각했다.
브라우니는 신이 나서 사령관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녀의 엄격한 상관들이 본다면 군기교육대에 보낼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그런 것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그래서 사령관은 누가 볼세라 빠른 걸음으로 브라우니를 따라갔다.
근무시간이라 이동하는 동안에 만난 사람은 없었다. 브라우니의 병영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요인도 있었다.
브라우니의 병영은 크기를 보니 소대급 병영이었다.
브라우니가 자기 분대의 생활관 문을 활기차게 열고 들어갔다.
“이리 오너라!”
사령관은 ‘못 말리겠군’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브라우니의 활기참에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야! 브라우니 9937! 아무리 휴일이라지만 너 너무 빠진……히이이이이익! 슈우우웅리잇!”
역시나 휴일이었는지 생활복을 느슨하게 입고 있던 레프리콘이 브라우니가 이상한 소리를 하며 들어오자 습관처럼 갈구려고 했으나 브라우니의 뒤에 사령관이 있음을 알아차리자 기겁하며 경례했다.
“승리! 사령관 각하. 어서 옵셔!”
“쿠울.”
분대 전체가 휴일이었는지 생활관 안에는 레프리콘 외에도 두 명의 브라우니가 더 있었다. 한 명은 넉살 좋게 경례했지만 한 명은 이 소란 중에도 잘 자고 있었다.
레프리콘이 다급하게 자고 있는 브라우니를 깨웠다.
“야! 야! 야! 일어나!”
“으으으응! 레후 상병님. 오늘 휴일이지 말임다.”
“야! 레후라고 부르지 말랬지! 일어나!”
레프리콘은 빼액 소리를 지르며 브라우니를 일으켜 세웠다.
“아! 왜 그러심까!”
브라우니는 짜증을 내며 일어났다. 그녀가 덮고 있던 이불이 흘러내리자 그녀가 알몸으로 자고 있던 것이 드러났다. 예쁜 가슴이었다.
사령관은 슬쩍 고개를 돌려주었고 레프리콘은 급히 이불을 끌어올려 가슴을 가려주었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브라우니는 눈을 비비며 하품을 한 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의 시야에 사령관이 들어왔다.
브라우니는 멍하니 눈을 끔뻑인 후 경례했다.
“승리. 안녕히 주무십쇼.”
그리고 다시 누웠다.
“야, 임마!”
이런 일련의 소란을 겪은 후에야 사령관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브라우니들은 사령관이 오자 희희덕거렸으나 레프리콘은 혹여나 실수를 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편하게 있어. 전부 휴일이잖아.”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브라우니들은 축 늘어졌다. 레프리콘은 그 모습에 위가 욱신거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령관을 생활관까지 데려온 브라우니 9937은 부식들을 탁자 위에 늘어놓았다.
“여기 있슴다, 각하. 맛있게 드시지 말임다.”
“야! 이런 걸 사령관 각하께 드리면 어떡해! 브라우니 10211! PX에서 사령관님께서 드실 제일 좋은 거 사와!”
“저 급여 다 썼지 말임다.”
“내 카드 줄 테니까!”
“오? 심부름 값으로 제가 먹고 싶은 거 사도 됨까?”
“이 고문관이!”
사령관은 이 촌극에 웃었다.
“하하하하! 아냐. 그냥 내가 갑자기 찾아온 거니 너무 격식 차릴 필요 없어. 난 이것만 있으면 충분해.”
사령관은 그렇게 말하며 브라우니 9937이 가져온 부식을 집어 먹었다.
“맛있는데?”
“그렇지 말임다. 소완느님이 오신 이후로 식단도 부식도 전부 완전히 개선되었지 말임다.”
소완이라는 말이 나오자 사령관은 옛날에 소완이 먹을 것에 약을 탔던 것을 떠올리고 움찔했다. 그러나 이내 모두가 먹는 음식에 그런 짓을 했겠냐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부식을 집어먹었다.
딱딱했던 분위기도 부식을 먹으며 잡담을 나누니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뭐 주로 딱딱했던 것은 레프리콘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분위기가 무르익자 브라우니들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조강지처가 좋더라♪ X연료가 좋더라♬”
“기름에 튀긴 양파가 좋다네♩ 맛있으니까 양파가 좋다네♬”
“장군은 매일 하고♬ 영관은 주마다 하고♩ 위관은 달마다 하고♪ 부사관은 년마다 하고♬ 병사들은 언제 하나♪”
“야! 야! 야!”
도중에 브라우니들이 이상한 노래를 부르자 레프리콘이 얼굴이 창백해져서 말리는 일이 있었지만 대체로 즐거웠다.
사령관도 아는 노래가 나오자 브라우니들과 노래를 불렀고, 그러자 분위기는 더욱 무르익어갔다.
마치 술을 마신 것처럼 들뜬 분위기. 그런 분위기 때문일까.
“저기, 사령관 각하.”
사령관을 생활관으로 이끌었던 브라우니가 노래를 부르다 말고 사령관 옆에 앉아 넌지시 사령관을 불렀다.
“응? 왜?”
“저기…….”
브라우니는 드물게도 무언가 어려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고문관 소리를 들어도 그러려니 하는 브라우니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잠시 후 각오를 다졌는지 브라우니가 사령관의 귀에 속삭였다.
“저랑……ㅅㅅ해주심 안됨까?”
사령관은 브라우니를 바라보았다.
처음 설계부터가 그러했기에 브라우니는 지나칠 정도로 활기차고 긍정적이다. 그러나 지금 사령관에게 속삭인 브라우니에게선 활기와 긍정성을 찾기 힘들었다.
열이 올라 붉게 변한 브라우니의 표정에는 불안감과 걱정이 가득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지나친 요구 임을 자각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긍정성은 감히 최고지휘관에게 요구 하게 만들었다. 브라우니의 습기 어린 눈동자에는 그녀의 유전자 레벨로 단단하게 자리 잡은 긍정성이 기대가 되어 흘러나오고 있었다.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이 그러하듯 브라우니는 예뻤다. 화려함은 부족하지만, 친근감을 주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사령관은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죄, 죄송함다. 제가 살짝 미쳤나 봄……”
브라우니는 스스로의 요구를 회수하려고 했지만 사령관은 그렇게 두지 않았다. 사령관은 브라우니의 턱을 붙잡아 고정하고 자신의 얼굴을 브라우니의 얼굴에 가까이했다.
브라우니의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브라우니는 눈을 감았다.
입술과 입술이 닿고, 혀와 혀가 섞이기 시작했다.
“…….”
“…….”
“…….”
지금까지 신나게 노래를 부르던 다른 브라우니들과 레프리콘은 갑작스러운 광경에 놀라 두 사람의 입맞춤을 바라보았다.
입술과 입술이 떨어졌다. 침으로 이루어진 다리가 이어졌다가 끊어졌다.
브라우니는 몽롱한 얼굴로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달아올랐던 분위기가 다른 의미로 달아올랐다.
“각하.”
이번엔 브라우니 쪽에서 다가왔다. 브라우니는 사령관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입술을 맞췄다.
침소리와 숨소리, 신음소리가 조용해진 생활관을 채우기 시작했다.
다른 두 브라우니들도 얼굴을 붉히고 조금씩 두 사람에게 접근했다.
브라우니와 사령관의 입맞춤이 끝났을 때 다른 두 브라우니도 지척까지 다가왔다.
“사령관 각하, 저, 저희도…….”
사령관은 이 둘도 거부하지 않았다.
한 명이 사령관과 입을 맞추면 다른 둘은 사령관의 몸을 만끽했다. 입맞춤이 끝나면 다른 브라우니가 입을 맞추고 다시 다른 둘이 사령관의 몸을 만끽했다. 그러면서 넷은 조금씩 옷ㅇ르 벗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무르익다 못해 짓물러질 때, 모두가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사령관은 곧장 시작하는 대신에, 홀로 남은 레프리콘을 바라보았다.
지금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이도저도 못하고 있던 레브리콘은 사령관이 바라보자 시선을 피했으나 곁눈질로 사령관을 살폈다.
세 브라우니는 그런 선임을 보고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레프리콘에게 다가갔다.
“아! 레후 상병님, 왜 그리 빼고 그러심까.”
“이미 상병님도 충분히 준비되지 않으셨슴까.”
“보는 거에만 만족하시겠다면 저희도 아무 말도 않겠슴다.”
“야! 너, 너희들! 야! 어딜 만져!”
브라우니의 끈적끈적한 손길에 레프리콘은 기겁하고 손을 쳐내려했다. 그러나 그녀의 저항은 미비했다.
사령관이 브라우니들의 뒤를 이어 레프리콘에게 다가갔다.
레프리콘은 붉은 얼굴로 사령관을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령관……각하. ……저도……부탁드립니다.”
사령관은 이도 거절하지 않았다.
* * *
일과시간이 전부 끝났다. 농땡이를 끝내고 이제 막 돌아온 병장 이프리트는 오늘 하루 합법적으로 쉰 다른 분대원들에게 심사가 뒤틀려 살짝 갈구기로 했다.
“야, 남들은 다 근무서는 날에 쉬니까 기분이 어때? 그래도 우리도 근무 끝나서 이제는 너희나 나나 똑같지이히.”
장난스럽게 하는 말에 브라우니는 넉살좋게 답변해 줄 것이고, 레프리콘은 정론으로 대답할 것이다. 그럴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4명의 분대원들은 쭈뼛거리며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네, 예, 고생하셨슴다.”
그나마 브라우니 9937이 평소랑 다르게 모나지 않은 대답을 돌려줄 뿐이었다.
이프리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너희들 무슨 일 있었냐? 왜 그래?”
“아, 아님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긴.”
이프리트는 더 캐묻기 위해 분대 생활관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녀는 무언가 이상한 냄새를 감지했다. 생물이 머물렀다는 느낌이 확연하게 느껴지는 냄새였다. FM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상관들 때문에 청소 같은 것은 열심히 하는 스틸라인 부대원들의 생활관에서는 날 수 없는 냄새였다.
이프리트는 이게 무슨 냄새인가 생각하다가 문뜩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분대원들을 바라보았고 분대원들이 얼굴을 붉히자 이 냄새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이프리트도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주저주저하다가 한 마디만 내던지고 자신의 생활관으로 돌아갔다.
“으응. 너희도 수고했어.”
이프리트가 떠나자 4명의 분대원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돌렸다. 4명의 공범은 서로를 보니 아까까지 있었던 사령관과의 정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4명을 홀로 상대했음에도 사령관은 4명을 전부 쓰러트리고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생활관을 떠난 것이다.
사령관이 4명의 분대원들에게 주입한 것은 생체정보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고위간부가 되면 사령관과 접촉할 기회가 많다는 것을 떠올렸다.
4명은 진급에 대한 의욕을 불태웠다.
그러나……
“아야야.”
온몸, 특히나 두 다리 사이에서의 고통과 이물감으로 인해 오늘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았다.
4명은 오늘은 일단 마저 쉬고, 내일부터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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