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2와 비교해 가장 중요했던 소프트웨어가 열악했던 시절, 헤일로는 XBOX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큰 무기였습니다. XBOX 패드에 최적화된 헤일로의 조작감은 마우스 + 키보드가 간절했던 기존 콘솔 FPS 게임보다 월등히 좋아 불편 없이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시스템적으로도 콘솔에 맞게 간편하게 디자인된 헤일로는 높은 수준의 그래픽과 게임 플레이가 뒷받침되면서 수많은 게이머들을 팬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에 힘입어 미국에서는 스타 워즈, 스타 트랙과 비견될 정도의 프랜차이즈로 성장하게 됩니다. 국내에서는 모든 시리즈가 완벽하게 음성, 자막 한글화를 거쳐 발매된 몇 안 되는 작품이며, 최신작인 헤일로 리치 또한 완벽하게 한글화되어 지난 9월 14일 발매되었습니다.
헤일로 시리즈는 XBOX로 1편(2003년 1월 24일)과 2편(2004년 11월 9일)이 발매되고, XBOX360으로 시리즈의 마지막인 3편(2007년 9월 28일)이 발매되었습니다. 헤일로 시리즈는 코버넌트와의 전쟁 속에 있는 마스터 치프의 활약을 중심으로 그려냈고 그 전쟁은 헤일로 3에서 끝났습니다. 헤일로 3부작이 완결되자 헤일로 시리즈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FPS가 아닌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으로 장르를 바꾼 헤일로 워즈(2009년 2월 26일), 헤일로 2에 등장했던 뉴 몸바사에서 작전을 수행한 ODST 대원들을 주인공으로 한 헤일로 3 ODST(2009년 9월 22일)가 발매됩니다. 그리고 이 두 타이틀은 마스터 치프가 없어도 헤일로 시리즈가 존속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습니다.
마스터 치프가 주인공이 아닌 최초의 헤일로. |
장르가 싹 바뀌었던 헤일로 워즈. |
헤일로 리치 또한 마스터 치프가 아닌 다른 주인공을 내세운 헤일로 시리즈이며, 헤일로 리치의 주인공은 스파르탄으로 조직된 노블팀에 막 배속된 노블 식스입니다. 노블 식스는 플레이어가 직접 커스터마이즈한 모습 그대로 싱글 플레이 모드에서 사용할 수 있으며, 성별까지 지정해줄 수 있습니다. 성별로 바뀌는 것은 목소리와 외관으로, 여성에 비해 남성이 좀 더 몸집이 크지만 게임상에서의 성능은 차이가 없습니다.
노블식스의 외향은 플레이어가 설정할 수 있습니다. |
헤일로 리치의 무대인 리치 행성은 시리즈 내에서 자주 언급된 장소이며, 시간적 배경은 헤일로 1 바로 직전입니다. 그동안 헤일로 게임 내에서 말은 많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없었던 유저들은 이제 리치 행성에서 있었던 전투를 노블 식스를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UNSC의 군사거점이었던 리치 행성이 코버넌트 함대에 의해 삽시간에 함락당하면서 인류는 수많은 병력을 잃게 됩니다.
이번 작품에서 유저들은 시리즈 최초로(헤일로 워즈 제외) 스파르탄 동료와 함께 작전을 수행하게 되면서 거의 모든 미션에서 스파르탄 동료들이 함께 하며, 적게는 한 명에서 많게는 세 명까지 동시에 행동합니다. 일반적인 해병과는 다르게 이들은 절대 죽지 않는 체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적들의 공격으로부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줍니다. 게임 중에는 그들과 협력하여 진행하는 것이 손쉽게 작전을 완료할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FPS의 불가사의한 법칙에 따라 헤일로 리치도 자질구레한 일들은 유저가 직접 해야 하지만 노블 식스가 작전을 수행할 때는 항상 아군이 엄호해줍니다. 때문에 전작인 헤일로 ODST와 같이 팀으로 작전을 수행할 때 느낄 수 있는 기분을 한껏 느낄 수 있습니다.
아머 어빌리티는 헤일로 리치에서 새로 추가된 기능으로, 색다른 움직임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무난하게 질주 능력부터 시작해 하늘을 날 수 있는 제트팩, 적을 혼동시키는 홀로그램 생성기, 몸을 투명하게 만들 수 있는 위장 장치, 방어막을 생성해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방울 방어막과 어떠한 공격도 막아낼 수 있는 부동 방어. 이들 아머 어빌리티는 멀티플레이 모드뿐만 아니라 싱글 플레이 모드에서도 사용 가능합니다.
기본적으로는 달릴 수 있는 질주가 주어지지만 미션 도중 무기와 함께 다양한 기술이 제공되며, 잘만 사용하면 대규모의 적들도 보다 쉽게 상대할 수 있습니다. 노블 식스와 같이 행동하는 스파르탄 대원들도 아머 어빌리티를 사용합니다. 이외에도 엘리트에게만 주어진 회피 능력은 멀티플레이 모드에서 엘리트를 선택했을 때만 사용 가능하며, 싱글 플레이 모드에서는 적으로 나오는 엘리트가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머 어빌리티의 적절한 사용이 승리의 열쇠. |
적을 뒤에서 암살하는 스텔스 킬. |
사실 코버넌트들도 얘네들 상대하긴 싫을 겁니다. |
UNSC와 코버넌트의 무기 양상은 대체로 이렇습니다. UNSC의 무기는 적당한 화력과 넉넉한 탄창을 가지고 있고 코버넌트의 무기는 대체로 한 발 한 발이 강력하지만 탄창이 부족합니다(그런데 적 코버넌트가 쓰는 무기는 무한 탄약). 기존 헤일로 시리즈가 미션 시작 시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무기의 화력이 코버넌트 무기보다 약했던 모습을 보여준 데 비해 헤일로 리치에서는 기본 무기도 코버넌트의 무기와 비교해 결코 밀리지 않는 화력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는 시리즈 최초로 크로스 헤어가 채택되었습니다. 크로스 헤어는 총알을 쏠수록 벌어지며 제일 좁을 때 쏘면 정확도가 올라갑니다. 덕분에 기본 무기인 어설트 라이플로도 점사를 하면 원거리의 적을 어느 정도 견제할 수 있습니다.
이에 맞춰 적의 인공지능도 강화되었는데, 대체로 아군보다 적들의 인공지능 향상이 눈에 띕니다(아군의 인공지능도 나아지긴 했지만 멍청한 짓도 잘합니다). 일단 적의 시야 안에서 조준을 하면 대부분의 경우 적들이 회피합니다. 특히 엘리트들은 위에서 설명했던 회피 어빌리티까지 사용하기 때문에 공격이 쉽지 않습니다. 헤일로 리치의 적들은 시야 안에 적이 보일 때는 엄청난 반사 신경을 보여주지만 시야 밖으로 적이 사라졌을 경우 사라진 적을 찾아 움직입니다. 이는 유저의 위치를 미리 알아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유저를 다시 시야 안에 넣기 위한 행동입니다. 이를 이용해 쉽지는 않지만 적의 시야 밖에서 적을 공격하면 좀 더 유리하게 전투를 이끌 수 있습니다.
코버넌트와 UNSC는 대대적으로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
예를 들어 적이 아군 NPC와 교전하고 있을 때는 상자나 집 등을 이용해 적의 시야 밖에서 이동하면 먼저 공격하지 않는 한 바로 뒤에 근접해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적들의 시야가 닿지 않는 먼 곳에서 스나이퍼 라이플로 공격하면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적들의 시야를 분산시키는 전술에 효율적인 아머 어빌리티로는 홀로그램 생성기가 있습니다.
홀로그램은 유저가 설정한 노블 식스와 동일한 외형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발견한 적은 홀로그램에 시선을 집중합니다. 1 대 1로 교전 중 장애물 뒤로 숨은 다음 오른쪽으로 홀로그램을 보내고 적이 홀로그램을 공격하는 것을 확인한 후 왼쪽으로 뒤돌아가 적을 암살하는 것은 간단하면서 효과적인 전술입니다. 적들이 불리해졌을 경우 후퇴하거나 장애물 뒤로 숨는 모습도 자연스러워서 멀티플레이 모드를 플레이하는 것과 비슷한 화면을 연출합니다.
쉴드는 완전회복돼도 심각한 상처는 헬스팩이 필수. |
AI뿐만 아니라 사람도 속일 수 있는 홀로그램. |
어... 나 얘 싫은데. |
방어막 밖으로 나갈 수 없어! |
이외에도 적에게서 탈것을 빼앗는 것이 상당히 어려워져서 무턱대고 탈것을 빼앗기 위해 접근하면 뺑소니를 당해 일격에 전사합니다. 헤일로 리치에서는 탈것을 빼앗기 위해서도 적의 시야 밖에서 접근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가끔씩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아군의 경우 지형에 끼여서 무기를 계속 들었다 놨다 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됩니다.
운전을 맡기면 적들 사이를 안전 속도를 중시하며 서행하거나 눈에 뻔히 보이는 진행 경로를 무시하고 엉뚱한 곳으로 달리기도 합니다. 적들의 인공지능은 가끔씩 꼬이는 것인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적의 공격을 피해 도망쳐서 방어막을 재생시키고 보니 그 장소에 세 마리의 그런트가 멀뚱히 서 있는 모습을 봤을 때는 헛웃음이 나오더군요.
헤일로 시리즈는 전통적으로 다른 FPS 게임들보다 넓은 장소에서 전투를 벌이는 게임이며, 주변 지형지물의 활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투의 양상이 달라지는 일이 흔하게 발생합니다. 헤일로 리치에 들어와서는 이 부분이 더욱 극대화되었습니다. 한 장소에서 전투를 끝낸 다음 진행 방향으로 가지 않고 주변을 살펴보면 미처 생각지도 못한 곳에 무기와 헬스 팩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또한 진행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 최소 두 가지 이상 존재하는 것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탄탄한 전투 시스템과 함께 하는 헤일로 리치는 싱글 플레이 모드의 구성 또한 뛰어납니다. 물론 늘어지는 부분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총 10개의 미션이 모두 개성이 뚜렷합니다. 그중에서도 우주선에서 비행선을 몰아 코버넌트 함대와 격돌하는 어퍼컷 작전 챕터의 충격은 엄청납니다. 이 부분은 헤일로 리치의 장르인 FPS가 아니라 아예 하나의 아케이드 비행 게임이 통째로 들어 있습니다. 간단한 조작으로 멋진 플레이와 화면 연출을 보여주는 부분은 오직 어퍼컷 작전 하나의 챕터에서만 플레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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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게임이라 하기엔 완성도가 너무나 높은 우주전. |
기존 헤일로 시리즈 3부작이 코버넌트와의 전쟁 양상을 묘사했던 것과 다르게 헤일로 리치는 전작이라 할 수 있는 헤일로 ODST와 마찬가지로 분대 단위의 노블 팀, 그리고 그중에서도 노블 식스의 시선으로 전쟁을 바라봅니다. 때문에 미션을 진행하면서도 전쟁을 보는 시각은 좁으며, 전투의 전체적인 모습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브리핑과 게임 도중 들려오는 무전, 노블 리더의 작전 지시 시 들을 수 있는 현재 상황 등으로 한정되는 편입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팀 동료들과의 인간 관계가 오히려 더욱 세밀하게 표현되었고, 이는 괴멸 직전의 리치 행성의 상황과 함께 잘 만들어진 밀리터리물에서 느낄 수 있는 비장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게임의 분위기를 띄워주는 그래픽 또한 전작들보다 향상되었습니다. 암울한 분위기를 예시하듯 헤일로 리치는 이전의 작품들과 비교하면 원색의 비중이 상당히 줄고 어두운 색과 장소들로 포진되어 있습니다. 몇몇 스테이지에서는 밤에 작전을 펼치거나 빛이 들어오지 않는 장소로 진입해서 적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힘듭니다. 이 때는 나이트 비전을 사용하면 녹색 필터를 걸친 것 같은 화면이 되며 주변을 정확히 볼 수 있게 됩니다. 헤일로 ODST에서도 비슷한 기능이 있었는데, 헤일로 ODST에서는 이 기능을 써도 어두운 부분이 생각보다 잘 보이지 않았지만 리치에서는 야행성 눈을 뜬 것 같이 주변을 파악하는데 문제가 없습니다(생각해 보면 마스터 치프는 방어복에 이런 기능이 없어 전등에만 의존해야 했는데…).
눈이 침침하세요? |
나이트 비전을 키세요! |
스파르탄들의 방어복도 전작들보다 색이 어두워지고 곳곳이 벗겨진 흔적을 볼 수 있으며, 원형을 유지하기보단 보조 장비를 이곳 저곳 추가한 모습이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뛰어난 그래픽과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헤일로 리치의 게임 화면은 약간의 단점이 있습니다. 이중 가장 크게 보이는 문제는 바로 잔상으로, 특히 이벤트 영상에서 제일 두드러집니다. 이벤트 영상이 아닌 실제 플레이 화면에서는 거의 신경 쓰이지 않을 만큼 잔상이 줄어들긴 하지만 여전히 존재하며, 게임 화면이 상대적으로 뿌옇게 보이는데 일조합니다.
많은 적들이 등장하는 헤일로 리치의 특성상 프레임 드랍도 간간이 발생합니다. 한 화면에 많은 적이 잡히거나 화려한 효과가 터질 때 수 초 동안 프레임 드랍이 발생하며, 얼마 안 있어 정상 프레임을 회복합니다. 프레임 드랍은 게임을 진행하는 도중 자주 발생하지는 않지만 이런 부분을 거의 신경 쓰지 않고 플레이할 수 있었던 전작들과 비교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가끔씩 모션 블러가 걸려 있는 대상이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등 상황에 따라 화면 효과가 자연스럽게 쓰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강력한 코버넌트 전함의 공격. |
단 한방에 아군 전함이 격추. |
헤일로 리치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매우 어둡습니다. |
멀티플레이 모드는 기본적인 부분은 바뀌지 않아 크게 신선한 느낌은 받기 힘듭니다. 하지만 여전히 재미있으며, 싱글플레이 모드와 마찬가지로 아머 어빌리티와 효율은 좀 떨어지지만 상대를 멋지게 쓰러뜨릴 수 있는 스텔스 킬을 사용할 수 있어 좀 더 다채로운 상황이 펼쳐집니다. 전작에서 친구들끼리만 즐길 수 있어 아쉬움을 남겼던 사생결단이 드디어 매치 메이킹을 지원하는 점은 가장 큰 추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끼리의 대결보다 공동의 적(=코버넌트)을 상대로 싸우는 사생결단은 협동 게임을 좋아하는 유저들에게 적합한 플레이 방법이 될 것입니다. 사생결단은 기본적으로 매치 메이킹으로 시작했을 경우 10분의 제한시간 동안 살아남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덤으로 사생결단에서는 캐릭터의 목소리를 선택할 수 있는데, 이 중에는 노블팀 대원들의 목소리도 있고 마스터 치프와 존슨 상사 같은 친숙한 인물들도 있습니다.
유저 스스로 맵을 만들 수 있는 포지 모드도 이번 작품에서 크게 강화되었습니다. 전작들과 다르게 ‘거대하다’ 라는 말이 적합할 정도의 크기를 자랑하는 기본 맵을 제공하며, 그 안에서 유저들은 규칙이 허락하는 내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습니다. 현재는 발매 초반이라 유즈맵의 숫자가 다양하지 않은 것 같지만 헤일로 3에서도 다양한 유즈맵들이 나왔던 만큼 헤일로 리치에서는 더욱 스케일이 커졌기에 기상천외한 유즈맵들이 유저들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헤일로 리치는 이제까지 나온 헤일로 시리즈 중 가장 높은 완성도와 재미를 가지고 있고, 그동안 헤일로 시리즈에서 느꼈던 아쉬움은 대부분 해결되어 있습니다. 헤일로 리치는 번지에서 제작하는 마지막 헤일로라는 명칭에 걸맞은 작품입니다. 이후 헤일로 시리즈는 마이크로소프트 게임 스튜디오 산하의 343 인더스트리에서 개발된다고 합니다. 앞으로 나올 헤일로 시리즈는 번지의 헤일로와 비교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리치 또한 하나의 기준이 될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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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탄은 죽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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