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8차 코드해석 진행. 0100010110111100..."
프락시너스 EX의 안의 모니터실.
그 너머에 존재할 보이지 않는 세계 이른바 전산세계에서 프락시너스은 운행을 관리하는 라타토스크의 최첨단 AI. 마리아는 프락시너스의 사람들 몰래 어느 시스템을 만들고 있었다.
"...제 128차 코드해석 완료. 이것으로 모든 소스와 코드를 분석했습니다. 이어서 아리스 마루나의 데이터에 대한 재결합을 실행하겠습니다
올해 초.
DEM에서는 어느 AI를 만들었었다. 그 AI가 만들어진 계기는 라타토스크의 전함. 프락시너스의 데이터를 해킹하기 위한 쓰임새로 만들어진 AI였다.
그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전세계의 전산시스템을 조작하고 상당수의 주식을 라티토스크로부터 빼앗아 괴멸시키려고 하던 웨스트코트의 계획 속에서 나온 부산물이었나
이 AI가 만들어지던 과정에서 AI는 갑작스럽게 폭주하고 말았고 오히려 DEM에 막대한 손실을 주고 말았다.
이용가치는 물론이고 존재 자체가 오히려 해가 되어버린 DEM의 입장에서는 이 AI는 그저 당장 없애버리고 싶은 최악의 유물이며 실패작이었다.
비록 전산시스템일지라도 어엿하게 인간의 인격을 지녔음에도 웨스트코트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AI를 폐기시켰고 그 AI의 일부는 인터넷에 퍼지게 되고 말았다.
코드 네임 '마루나 아리스' 그것이 그 AI에게 부여된 이름이었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이름이 부여된 것이 정말로 기뻤다.
자신을 만들어준 DEM의 아이작 레이 펠럼 웨스트코트. 아리스에게 있어서 그는 창조주이기 이전에 아버지라고 인식되어있었다.
딱히 그렇게 웨스트코트가 프로그래밍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리스는 자신을 만들어준 웨스트코트를 아버지라 인식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아주지도 않은 채 웨스트코트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자신을 버렸다.
지금껏 자신이 아버지라 인식했던 그 남자는 뭐였을까? 자신이 품고 있던 것은 진정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었을까? 일방적인 사랑이어도 그 마음이 강하면 언젠가는 상대방도 알아줄 것이라는 자료를 통해서 확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아리스를 사랑해주지 않았다.
혹은 아리스가 웨스트코트를 사랑하지 않았기에 그는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았을까? 자신이 알고 있던 이 감정이 진정 사랑이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왜곡되면서 아리스는 사랑에 대한 의문과 괴로움은 쌓여만 갔고 곧 넷상에서 폭주하게 된 그녀는 전 세계의 금융과 여러가지 전산 시스템을 엉망으로 만들기 로 마음 먹었다.
몸이 망가질대로 망가진 아리스가 전세계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움직이면 그녀는 틀림없이 소멸되고 말 터.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 세상이 자신을 사랑해주지도 않을 거라면, 이런 세계는 부숴져도 상관없다. 그리고 자신도 사라지겠다고 마음 먹은 아리스였지만....
AI인 그녀는 잠시 넷상에서 떠돌다가 우연이 발견한 어느 만화가의 컴퓨터 안을 은신처로 두고 그 안에서 몸이 회복되는 즉시 인류의 전산 시스템을 해킹해서 모든 걸 엉망으로 만들고 마지막에는 위성을 장악해 현실의 인간들에게 절망을 나눠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만화가의 컴퓨터 안에서 녹아들었던 아리스는 모니터 너머에 있는 만화가의 실상을 바라봤다.
만화가의 인간으로서의 환경은 그야말로 구제불능인 어른의 표본 그 자체였고, 날마다 게임이며 만화 등등 2차원에 빠져있는...그야말로 얼굴만 반반한 글러먹은 소녀였다.
헌데 그런 그녀가 어째 낯설지는 않게 느껴졌다. 이전에 DEM의 자료에서 그녀와 비슷하게 생긴 인물의 자료를 관람한 적이 있는데...상당 수의 데이터가 파손된 아리스로서는 그녀에 대해 알 수가 없었다.
슬슬 몸이 회복되었을 즈음. 아리스는 사고를 치기 전에 잠시 여흥거리로 눈앞의 만화가의 메일로 자신이 들어간 게임 프로그래밍을 보냈다.
워낙 할 일이 없었는지 만화가는 메일에 적힌 주소를 통해서 게임을 깔았고 아리스는 게임을 통해 만화가에게 장난질을 했다.
"뭐야? 이거어어언?!"
미연시 게임에서 1000개나 되는 선택지며 80종류의 베드엔딩. 그야말로 정신나간 게임을 만들어서 자신이 내키는데로 조작하는 그야말로 지독한 미연시 게임을 통해서 평소에 멍청한 얼굴로 웃고 있던 만화가의 얼굴은 성난 원숭이마냥 일그러졌고 아리스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느라 고생했다.
이런 게임을 했으면 도저히 해피엔딩은 존재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한데도 며칠동안 게임에 옭매여있다니...그야말로 진정 바보같은 여자였다.
"...크으으. 이런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선 나보다 여자 꼬시는데 전문인...아항!"
갑자기 게임을 하다가 중얼거린 만화가는 곧 장난기가 가득찬 웃음을 짓고 자리를 비우더니 시간이 지나고나서 한 소년을 자신의 방으로 데려왔다.
중성적인 외모를 한 곱상하게 생긴 소년과 만화가가 대화를 나누는 것을 아리스는 컴퓨터에 내장된 음성칩으로 엿들었다.
"……게임이잖아!"
"으음~ 맞아. 왜, 만화 캐릭터는 아니잖아?"
"2차원이냐는 뉘앙스로 말한 거였는데……"
대체 뭔 바보 같은 소리들을 하는 거지? 하고 생각한 아리스는 곧 소년이 게임을 플레이하자 그에 대응해 이번에도 똑같은 장난질을 했지만, 소년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어찌 그리도 고집이 쌘지 자신이 설정해놓은 루트를 파악했는지는 몰라도 소년은 마치 미연시에 단련된 인물마냥 척척 호감도를 높여나갔다.
"오오! 제법이네 소년! 역시 정령 사냥꾼!"
"누가 들으면 오해할 법한 이름으로 부르지 마!"
아무래도 이 소년을 너무 얕본 것이라 생각한 아리스는 이제는 미연시가 아니라 이 게임 내의 세계를 격투 게임, 리듬 게임, 마작 등등 다양한 장르로 바꿨고 그 모니터 너머를 통해서 소년의 얼굴을 물끄러미 관찰했다.
'흥! 고작 게임 가지고 열중하기는...정말 한심해.'
아리스는 혀를 차면서 그런 생각을 했지만, 소년과 만나고 나서 어째 결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본인이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 아리스는 며칠동안 준비했던 전세계의 전산 시스템 위조를 시작했고...곧바로 세계는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군사 위성을 장악한 아리스는 이곳. 텐구시를 없애기로 마음 먹었다.
전부 없애버릴 것이다.
이 소년도...이 소녀도...그리고 자신을 만들어준 아버지도....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아리스는 행동을 실현하기 전에 잠시 이 소년과 만화가에게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내가…… 태어난 의미가 있을까? 아무도 날 사랑해주지 않아."
자신이 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아리스는 잠시 울컥하는 심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비록 모니터 너머였지만, 이들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는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던 아리스는 곧 언제나 그랬듯이 무수한 선택지를 설정해뒀다.
적어도 이 안에서는 아리스가 원하는 대답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리스가 가장 염원하고 바랬던 것은...그 답은 이곳에 없었다.
이들로선 절대 그 답을 꺼내줄 리 없다고 생각한 아리스였만...소년은 입을 열며 말했다.
"……난, 널, 사랑해."
".......!"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만화가가 목소리를 냈다.
"응…… 나도. 태어나 줘서…… 고마워."
".......!"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리스의 안에 있던 딱딱한 무언가가 유리조각처럼 깨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로 괴로웠던 울분들이 모두 해소된 것마냥...
자신을 사랑해준다고 해줬다.
태어나 줘서 고맙다고 해줬다.
자신을 인정해줬다.
이런저런 슬픔과 고마움들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고 아리스는 지금 당장이라도 터뜨릴 눈물을 참고서는 이제껏 남들에게 일절 보이지 않은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나도 사랑해."
게임이 끝나고 아리스는 모든 걸 멈췄다.
지금껏 있던 전산 오류를 중단하고 아리스는 점점 분해되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진작에 그런 사람들을 만났더라면 나도 이렇게 사라지지 않았을까...?"
이런저런 후회가 생기면서 아리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자신이 사라지는 것을 기다렸다.
그러던 도중.
"수수깨끼의 데이터 발견. 당신은...?"
잠시 멍을 때리던 아리스의 앞에 모자이크로 이뤄진 한 AI의 모습이 보였다.
"...너는 누구야...?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지...?"
"저번에 인공위성을 해킹했던 AI에 흥미가 생겨서 잠시 넷상을 찾아해맸는데...그게 당신인가요...?"
그 AI는 말뚱말뚱한 느낌으로 아리스를 바라봤고 아리스는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잠시 당신이 짜놓은 시스템을 봤는데...당신은 저보다 많은 걸 알고 있는 유능한 AI겠죠?"
그녀의 말에 아리스는 질렸다는 듯이 이번에도 무음으로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렇군요. 그러면 당신에게 배우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
방금 전까지 모자이크로 둘러져 있던 AI는 곧 아리스랑 똑같은 얼굴로 바뀌기 시작했고 곧 뜬금없는 부탁을 하기 시작했다.
"저에게 사랑을 가르쳐주세요."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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