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시도는 린네와 리오를 데리고 오사카 뿐 아니라, 관서지방의 각종 명물이나 장소를 돌아다녔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때마다 리오는 기력이 줄어들기는커녕, 신이 나라하면서 뛰어다녔다.
“파파! 저기 봐, 사람들이 잔뜩 몰려있어!”
리오는 눈을 번쩍이면서 수많은 인파들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서는 여러 종류의 만화나 라이트노벨 등 각종의 2차원 캐릭터들과 연예인이나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의 복장이 눈에 띄었다.
“아아. 보니까 코스프레 축제를 하는 거 같네.”
순간, 니아가 생각난 시도는 쓴웃음을 지으며 리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코...스프레?”
“응.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의 옷으로 갈아입는 거야.”
“...으음. 그렇구나.”
“어머? 리오 쨩. 관심있어?”
“응! 만화 선생님이랑 토끼 씨가 보여주던 캐릭터 중에 굉장히 예쁜 마법소녀 언니가 있었는데, 그 언니 옷 입어보고 싶어!”
“...으으음.”
...벌써부터 코스프레 같은 거에 취미들면 곤란한데, 라고 중얼거리는 시도를 보고서 린네는 슬쩍 옆구리로 찌르고선 리오를 데리고 인파 쪽으로 향했다.
“한 번 가볼까? 리오 쨩.”
“응! 마마랑 같이 가고 싶어!”
“...후훗.”
자신을 내버려두고 먼저 떠난 모녀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지켜보던 시도는 자신도 어쩔 수 없이 그 인파 속으로 향해 전진했다.
잠시 후, 리오는 요시노와 니아가 소개해준 마법소녀 미스트라는 캐릭터의 복장으로 갈아입고서는 몸을 한 바퀴 돌며 깡충깡충 뛰기 시작했다.
“헤헤...파파. 마마. 리오 귀여워?”
“으응! 정말정말 귀여워! 리오 쨩.”
“정말? 헤헤. 리오 기뻐!”
그런 리오의 모습에 린네는 두 눈을 번쩍이고서는 어느 틈에 구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귀여운 고스로리 옷을 건네줬다.
“저기, 리오 쨩. 한 번 이것도 갈아입어 봐!”
“와아, 그 옷 입어보고 싶어!”
“응! 분명 리오 쨩에게 잘 어울릴 거야.”
그 옷을 시작으로 린네는 여러 각종의 옷을 리오에게 입혔다.
맨 처음에는 고스로리, 메이드복, 세일러복, 토끼 귀가 달린 파자마 등등 어느새 1시간 정도의 시간이 지났고, 시도 역시 리오가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사진을 찍기 바빴다.
“꺄아아악! 이것도 예쁘고, 저것도 예쁘고...대체 어떤 걸 입히면 좋을까?!”
“...저기, 마마.”
“응?”
“리오...이제 힘들어.”
“...아! 미, 미안해. 리오 쨩.”
뒤늦게 서야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음을 자각한 린네는 리오에게 원래 옷으로 갈아입히고선 한숨을 내쉬었다.
“...많이 힘들었지? 리오 쨩.”
“으응. 괜찮아! 리오. 충분히 즐거웠어.”
리오가 활짝 웃으면서 고개를 젓는 그 모습은 실제로 지상에 작은 아기천사가 지상으로 강림하는 것을 목격하는 거 같았다. 그런 리오에게 아까전서부터 이런저런 옷을 입히면서 어느새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특히 여성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꺄아악!거리고선 눈 호강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식한 시도와 린네는 곧 난처한 얼굴로 웃을 뿐이었다.
주변에서는 ‘따님이 너무 귀엽네요.’, ‘엄마 닮아 미인이시네요.’ 등등 여러 가지 환호가 들렸고, 심지어는 그 중에서는 아동복 모델 편집자라고 자신을 소개하고선, 나중에 혹시 모델을 진출할 생각이 있다면 꼭 자신들의 업소 쪽으로 전화해달라면서 명함을 건네는 이들까지 나타났다.
“...하하. 정말이지. 리오 쨩의 귀여움을 다른 사람들도 잘 아네. 그렇지, 시도?”
“뭐, 리오가 귀여운 것은 섭리니까 말이지.”
자연스럽게 딸바보들이나 내뱉을 말을 한 시도를 보고서 린네는 자신도 모르게 이마에 맺힌 땀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자아, 그럼. 리오 차례가 끝났으니까...다음은....”
린네는 이번에는 사이즈가 제법 커다란...그러니까 장신의 여고생들이나 입을 법한 하늘색의 살랑살랑한 드레스를 꺼내들었다.
“헤에...린네 그런 옷에 관심이 있었구나. 근데 너무 크지 않을까?”
시도가 고개를 갸웃 거리자, 린네는 씨익 웃고서는 시도에게 잔인하기 그지없는 말을 꺼냈다.
“이거 시도가 입을 건데?”
“......하아...?”
시도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드레스와 린네를 번갈아보고선 곧 말없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저기, 린네 씨?”
“응?”
“...왜 내가 이런 걸 갈아입어야 하는 거지?”
“안 돼?”
시도의 물음에 린네는 놀랐다는 식으로 두 눈을 크게 떴다.
“난 남자야!”
“그렇지만...시오리 양. 여자 옷 많이 입었잖아...?”
“어이!”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화장도구나 가발 같은 것도 없었다. 적어도 남자인 상태에서 그런 걸 입었다간 여러모로 인간으로선 끝장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후후훗. 지금 가발이랑 화장도구 같은 거 없어서 안심했지? 짜잔!”
속마음을 읽은 건지, 생각을 마치기 무섭게 린네는 가방 안에서 여러 종류의 화장품과 시오리 쨩 가발이랑 머리핀. 심지어는 라타토스크에서 개발한 음성 변조기까지 챙겨둔 상태였다.
“만전이잖아?!”
“헤헤. 혹시 모를까봐 코토리 쨩에게 부탁해서 받아왔어.”
“코토리이이이이이이잇!”
아마 지금쯤이면 배 붙잡고 웃고 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 시도는 땅바닥을 치며 통곡했다.
아무튼 만전의 준비를 해둔 린네의 의지를 모두지 꺾을 수 없었기에 시도는 어쩔 수 없이 린네가 시키는 대로 시오리 모드 상태에서 중세시절 귀족 영애들이나 입을 드레스로 갈아입고 말았다. 그 모습은 마치 동화 속에서나 나올 공주님 같았고, 그런 시오리를 바라보고서 린네는 넋이 나간 채로 입을 벌렸다.
“...헤에. 천앙재 때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혹시나 했지만, 막상 보니까 꽤 잘 어울리는데 시도? 질투 나는 걸?”
“...질투하지 마.”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시도에게 이번에는 리오가 큰 소리로 외쳤다.
“파파! 굉장히 예뻐!”
리오가 큰 소리로 파파라고 외치자, 주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시오리를 힐끗 처다보기 시작했다.
“리오, 제발 이런 상황에서 파파라고 부르지 말아줘!”
“...응? 왜?”
“그야 물론 위험하니까 그렇지!”
“그치만 파파는 파파잖아? 굉장히 예뻐~!!”
“...고맙다. 리오.”
시도는 이마를 짚고서 그저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그저 귀여운 딸아이의 칭찬을 위로로 삼아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선 주변 인물들의 시선과 맞서 싸워야만 했다.
“...정말이지. 시도도 참. 언제까지 그렇게 화내고 있을 거야?”
“...화 안 났어.”
시도가 시선을 피하면서 아랫입술을 내밀자, 그런 시도를 보고서 리오는 비수로 꽂힐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파파. 소인배?”
“리오, 그런 말 대체 어디서 배운 거니?”
“코토리 쨩이 알려줬어.”
...아까 전의 시오리 세트도 그렇고 리오에게도 알려준 쓸데없는 말까지...오늘은 여러모로 자신의 여동생이 그저 원망스러웠다.
“후후, 파파는 참 속이 좁아. 그치? 리오 쨩.”
“응! 파파는 속좁아~.”
“...크으으윽!”
“하하하. 알았어. 미안해, 시도. 사과의 의미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저기 가서 저 옷 좀 입어볼까?”
“...또 시오리 모드가 되라고?”
시도가 도끼눈으로 그렇게 말하자 린네는 고개를 저으면서 옷을 골라 시도에게 건네줬다.
“이 턱시도. 입어줘.”
순백의 턱시도를 받고서 시도는 축 처진 채, 탈의실에서 말없이 옷을 갈아입었다.
그렇게 턱시도를 다 갈아입은 채, 탈의실에서 나온 시도 앞에서는 곧 경악스러운 광경이 펼쳐졌다.
프락시너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린네는 이번에도 한정현현을 한 것 마냥 머리카락이 길어져 있었다. 단, 평소랑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 그녀가 입고 있는 것은 결코 영장이나 평소에 입던 사복이 아닌, 평생에 결혼식장에서나 입을 순백의 웨딩드레스였다.
“...헤헤. 시도. 어울려?”
린네가 볼을 붉히면서 수즙은 얼굴로 묻자, 시도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마른침을 삼켰다.
“...아아. 으...응.”
시도가 반쯤 넋이 나간 채로 똑같이 얼굴을 붉히자 린네는 고개를 푹 숙이면서 중얼거렸다.
“...자꾸 그렇게 뚫어지게 바라보면...좀...부끄러울지도....”
“미...미안!”
“...시...시도도 굉장히 멋진 걸...그 턱시도....”
“...으, 응. 뭐...린네가 골라준 거니까.”
두 사람 다 얼굴이 점점 붉혀지는 그 모습은, 이윽고 머리 위에 연기가 나는 그런 환각마저 보일 기세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정령들이나 라이젠 고교의 학생들뿐만이 아니라, 그 누구라 할지라도 잉꼬부부라면서 놀리거나 염장을 지르지 마!라고 신경질을 낼 상황이었다. 뭐, 주변에 있는 여성 직원은 순수하게 ‘두 사람 다 어울려요!’ 라면서 양 손바닥을 짝! 하고 칠 뿐이었다.
“...오오옷! 마마! 굉장히~굉장히~예뻐~!”
리오가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시도의 턱시도 바지랑 린네의 드레스 치맛자락을 붙잡자, 두 사람도 웃으면서 말했다.
“고마워. 리오.”
“후후후. 사랑해. 리오 쨩.”
“응! 리오도 마마랑 파파를 사랑해!”
그 후, 린네와 리오를 데리고 시도는 며칠 동안 관서를 돌아다니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시도. 저기 저 집 기모노 좀 봐봐. 예쁘지?”
“파파. 리오도 마마랑 똑같은 무늬로 된 거 입고 싶어!”
린네와 리오를 데리고 기모노 가게나 각종 옷들을 사 입어봤고,
“아! 시도. 손에 소스가 묻었어.”
“에...어디?”
“...우우. 핥아줄게.”
“자, 잠깐만 린네?!”
오사카에서만 판다는 명물 먹거리를 사먹으면서 배회하고,
“와아아! 시도 저기 좀 봐!”
“헤헤. 경치 좋다. 그렇지? 파파, 마마!”
그밖에 오사카 성을 비롯해 이곳저곳 관광 명소를 찾아갔다.
아무튼 그렇게 시간은 지나갔고, 마침내 여행을 마치고 귀가하기 전 날이 찾아왔다.
“후후후. 리오 쨩. 여행은 즐거웠어?”
“응! 무척~무척~! 좋았어!”
“그래? 다행이네.”
기존에는 적당한 호텔에서 숙박했지만, 마지막 숙소로는 린네의 부탁으로 온천여관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꽤 한적한 산 속에 있는 작은 여관이었지만, 어째 분위기가 고요한 게 참 맘에 들었고, 시도 역시 마지막에는 온천을 즐겨보고 싶었다.
여관에서 제공해주는 식사를 마치고, 시도는 자리에 일어서서 말했다.
“자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몸을 담궈 볼까나.”
시도가 그렇게 말하자, 린네도 리오를 안으면서 말했다.
“그럼, 리오 쨩. 우리도 슬슬 목욕할까?”
린네가 그렇게 말하자, 리오는 먼저 몸을 일으킨 시도의 기모노 자락을 붙잡았다.
“...저기, 리오. 이러면 파파 목욕 못하는데?”
시도가 난처하다는 식의 목소리로 말하자, 리오는 갑자기 두 눈에 힘을 주기 시작했고, 시도는 그 모습에 적잖게 당황했다. 그 표정은 자신이나 린네가 도저히 양보할 수 없다면서 고집을 부릴 때처럼 리오 역시 자신들의 자식이라 그런지 뭔가 고집을 부릴 때, 똑같이 눈에 힘을 줬다.
“...저어...리오...?”
“...파파도 함께 들어가.”
““에에에에엑?!””
“...허허. 젊은 부부가 혈기가 왕성한 거 같군. 아주 보기 좋아. 그렇죠, 영감?”
“그러게 말이야. 후후. 정말이지.”
가운으로 몸을 가린 채, 나온 두 노부부가 그렇게 말하자, 시도와 린네는 저번에 턱시도랑 웨딩드레스를 입었을 때보다 더 더욱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시도와 린네는 오후에 자신들이 있었던 탕과 장소가 다른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바로 흔히들 말하는 혼욕탕이라는 장소에서 두 사람은 방금 전 두 노부부처럼 가운으로 태어난 직후의 모습들을 가리며 둘 다 어쩔 줄 몰랐다.
사실, 그 이전에 리오의 요구를 거부했지만, 곧 코토리로부터 전화가 오더니 리오의 불안지수가 높아졌다는 통보를 받았고, 시도와 린네는 어쩔 수 없이 리오의 부탁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우우우. 긴장 되네.”
“...응. 그치만, 어쩔 수 없잖아.”
“...그러게, 뭣보다 리오 쨩이 저토록 좋아하니까.”
두 사람을 앞서서 먼저 입욕하려는 자신들의 딸 리오를 바라보며 시도와 린네는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아앗! 맞다. 리오, 먼저 씻고 들어가야지!”
“네에에!”
리오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자, 린네는 그저 천진난만 딸을 바라보며 웃었고 리오를 천천히 씻겨줬다.
“됐다, 들어가도 돼. 급하게 들어가면 뜨거우니까 천천히, 알겠지?”
“응! 조심할게, 파파도 같이 들어올 거지?”
“...아아. 그래.”
그렇게 가족 셋이서 나란히 온천에 몸을 담그면서 밤하늘의 달을 바라봤다.
“시도. 저기 봐, 달이 참 예쁘지?”
“...으, 으으응. 뭐, 그렇지....”
“...시도 아까서부터 어째 반응이 이상한데...? 대체 왜 그러는 건...어....”
뭔가 위화감을 느낀 린네는 천천히 자신이 입고 있는 가운을 보고서 곧 전신을 가린 채,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 이건...!”
...알고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린네의 가운은 온천물을 통해서 점점 살결이 보이기 시작했고 지금은 거의 그녀의 몸 세세한 부분까지 고스란히 보이고 있었다.
“꺄아아아아악?!”
곧 린네의 비명소리가 온천에 울리는 것과 동시에, 린네는 황급히 자리에 일어서려고 했으나 리오가 오른팔을 꽉 붙잡고서 완고하게‘마마 같이 있어야 해!’ 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우우우. 리오 쨩! 제발 부탁이야! 지금은...! 지금은 좀 봐줘!”
“...그치만...그치만....”
“...아우우....”
리오가 울먹이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자, 린네는 오히려 자신이 울고 싶어졌다. 여기에서 리오의 의사를 거절했다가는 분명 일이 복잡하게 번질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린네는 도저히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결국 온천에서 계속 몸을 담그는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시도 역시 린네처럼 아랫부분을 가리던 목욕가운이 투명해지면서 시도와 린네는 태어난 직후의 모습 그대로 유지되며 서로의 나체의 시선을 공유하고 말았다.
마음 같아서는 얼른 뛰쳐나가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말없이 알몸을 앞에 두고 괴롭기 그지없는 고문을 받아야만 했다.
“...시도. 봤지?”
“...으으응.”
이미 볼 건 다 봤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안 봤다고 했다간 오히려 욕만 더 얻어먹을 게 뻔했다.
“...시도는 앳찌.”
“...윽!”
그러는 린네 역시 시도의 나체를 두 눈에 새겼기에 그 이상의 말을 하지도 못 한 채, 거기에서 멈추고 말았다.
“...저기, 저기 마마.”
“...으, 응. 리오 쨩? 왜 그러니?”
“이번엔 오랜만에 마마랑 파파랑 셋이서 같은 방에서 자고 싶어!”
리오가 이어서 조르기를 하자, 시도와 린네는 다시 한 번 난처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저번’이란 틀림없이 에덴이 2차로 발동되면서 마지막 전 날에 린네의 집에서 나란히 잠자리에 들 때를 말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셋이서 같이 자는 것이 너무 부끄러워서 거부했지만, 방금 전까지 같이 목욕까지 한 이후로는 ‘그 정도쯤이야.’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지막 밤은 이어졌고, 시도와 린네 사이에 있던 리오는 린네에게 꼭 안기면서 말했다.
“...파파.”
“...응?”
“...마마.”
“왜 그러니? 리오 쨩?”
“리오는 지금 엄청 행복해~.”
“.......”
“저번서부터 파파랑 마마랑 기차 타고 여행하고, 밥 먹고, 옷도 입고, 목욕하고, 잠자고, 웃고, 떠들고...정말정말 행복했어.”
“...리오.”
리오의 말에 시도의 눈가에는 눈물이 머금기 시작했고, 그런 시도의 모습에 린네는 안쓰러운 얼굴로 리오를 더 새게 껴안았다.
“...저기...파파, 마마.”
“...응?”
“나중에~. 리오랑 또 여행 가줄 거야?”
그 말에 시도는 지금 당장이라도 울어버릴 것 마냥 고통스러웠다.
...이제 조만간 있으면, 이 에덴은 소멸되고 린네랑 리오는 사라지게 될 것이고 아마 시도의 기억 속에서 역시 그녀들의 흔적은 찾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 진실은 너무나도 잔인했다.
저번처럼 이 에덴의 유지를 선택할 권리조차 없어져버린 이 상황은 시도에게도, 린네에게도, 그리고 리오에게도 너무나도 무자비했다.
린네는 이번에 에덴이 소멸되더라도 자신들을 잊지 않을 것이라 했지만, 그건 도저히 장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시도는 그저 울음을 터뜨리고 싶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리오랑 린네 두 사람을 껴안은 채, 울고 싶었다.
...하지만...이번에야말로 마지막일지 모를 이 순간에, 시도는 도저히 눈물을 흘릴 수 없었다.
저번처럼 이 두 사람을 웃는 얼굴로 배웅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리오. 그리고 린네....”
시도는 두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 가녀린 허리가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 마냥 새게 껴안았다. 대신 눈물을 흘리지 않고서 두 사람의 귓가에 이렇게 말했다.
“...사랑해.”
그렇게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세 사람의 가족들에게 코토리는 힘없이 말했다.
“...아쉽지만,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프락시너스에서 관측한 에덴의 영력 파장은 점점 약해졌고, 결계의 범위는 물론이고 그 두께 역시 점점 얇아져가고 있었다.
곧 린네와 리오. 두 모녀의 몸은 찬란하게 빛나면서 곧 입자마냥 천천히 흩어지고 있었다.
“...린네...리오...!”
두 사람이 사라져가는 것을 배웅하기 위해, 토카를 비롯한 정령들 역시 마중 나와 있었고, 그녀들 역시 두 사람이 사라진다는 사실에 맞닥뜨리자 곧 슬픈 얼굴로 린네와 리오를 바라봤다.
“...정말이지, 다들 하나 같이 죽는 사람을 보는 표정을 하고선, 자아. 시도. 고개를 들어. 마지막에는 울지 않기로 약속했잖아?”
“...그치만 너...!”
“...괜찮아, 죽는 게 아니라...그냥 사라지는 거뿐이야, 잠시 모녀끼리 여행가는 걸로 생각하세요? 어리광쟁이 남편님.”
“...읏...방금 전까지 여행을 떠났으면서, 이번에는 나만 왕따 시키고 가겠다는 거야?”
“...헤헤. 나 없는 동안 밥 잘 챙겨먹고, 잘 일어나고, 지각하지 말고...알았지?”
진짜 남편을 두고 어디 멀리 떠나는 아내마냥 잔소리를 하자, 시도는 피식 웃으면서 눈가에 고인 눈물들을 닦았다.
“...리, 린네. 정말...가야만 하는 거냐?”
“...그래. 토카 쨩.”
“...리, 린네...씨...리오 씨...짧지만 정말...즐거웠...어...요.”
“응. 나도 정말 즐거웠어. 요시노 쨩, 요시농.”
“코토리 고모, 마나 고모.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읏...! 마지막에서야...고모라고 부르는 거야? 정말 못 된 조카라니까!”
“...코, 코토리 씨. 눈물 닦으세요. 고모인 우리가 여기서 처 울면 안 되는 거라고요.”
“...라이젠의 로젤리아 린네와 그녀의 딸 리오여. 부디 귀환하는 동안 구풍의 왕녀인 우리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통곡. 린네, 리오. 정말 그동안 즐거웠어요.”
“...린네 양, 리오 쨩. 나중에 꼭 다시 만나요.”
“...정말...왜 사라져야 하는 거냐고?! ...나 같은 못난이도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왜 너희가 이런 식으로...!”
“...소노가미 린네. 언제든지 돌아와. 당신의 내가 꼭 뛰어넘어야 할 가장 큰 벽. 이긴 채, 도망가는 것은 내가 용납 못 해.”
“...리린 쨩. 리오 쨩. 다음에는 재밌는 만화 몇 개 준비해둘게.”
“...무쿠들은 언제나 너희를 기다리고 있겠다.”
모두가 그렇게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하자, 린네는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응. 언젠가 다시 만나자. 모두들....”
“...린네...리오....”
시도가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리자, 린네와 리오는 시도의 양 쪽 뺨에 키스를 하고서 말했다.
“...시도. 괜찮아. 금방 갔다 올게.”
“오옷! 파파. 마마랑 여행 갔다 올게.”
“...아아...응...응!”
시도가 눈물을 흘린 채, 고개를 끄덕이자 린네와 리오. 두 모녀는 만족했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인 채, 말했다.
“...그럼 모두들....”
“토카 쨩, 요시노 쨩, 요시농 토끼 씨, 고모들, 다크언니랑 유즈루 쨩, 미쿠 쨩, 나츠밍, 오리링, 만화선생님, 무쿠 쨩...그리고 파파....”
...두 모녀의 주변 사람들을 남기는 여행은 그렇게 다시 시작되었고, 두 사람은 곧 그 출발신호를 내뱉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그 말의 뜻은 다시 모두의 곁으로 돌아올 것을 약속하겠다는 의미였다.
...그 약속의 말을 끝으로 곧 두 사람을 감싸던 빛이 퍼지면서....
린네와 리오....
두 모녀는 그렇게 시도와 모두의 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게 봄방학이 끝나면서 평소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봄방학이 끝나면서 개학하는 첫 날, 시도는 지각하지 않기 위해 전력질주로 달리고 있었다.
“정말이지, 린네랑 그렇게 약속을 했음에도 나란 녀석은...!”
비록, 린네와 리오...두 사람의 존재는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이상하게도 시도와 모두의 기억 속에서는 분명 두 사람이 뚜렷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혹시 아직까지 에덴이 이 텐구시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했지만, 에덴은커녕, 토카들의 영력조차 제대로 감지되지가 않았다.
지금 되돌아보면, 린네는 분명 이 에덴이 사라지더라도 자신들에 대한 기억은 더 이상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 장담한다고 했지만, 설마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들을 기억하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그녀들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대한 슬픔이 맴돌아 있었고, 시도는 차라리 잊어버렸던 것이 슬프지가 않고,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어리석은 생각조차 할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기억 속에서까지 그녀들이 사라지는 것은 싫었다.
이전에 린네에게서 받은 물망울초 열쇠고리. 시도는 그것을 꽉 움켜지면서 달렸다.
그렇게 교문을 통과하고 간신히 시간에 맞춰 교실로 들어온 시도의 앞에 의외의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시도. 약속했지? 더 이상 지각하지 않기로...정말이지....”
“...에?”
“여어, 나의 색슈얼 비스트 이츠카. 대체 뭐야? 응? 아침서부터...교내 ‘아내로 삼고 싶은 여학생 랭킹’ 1위권인 소노가미 양이랑 다투다니.”
저 멀리서 토노마치의 말은 가볍게 무시한 채, 시도는 토노마치가 언급한 그 소녀를 바라봤다.
“린에에에?!”
시도가 그렇게 소리를 지르자, 린네는 “잘 들리니까, 좀 소리 좀 낮춰야 할 거 같은데....”라고 중얼거리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아, 아니...너...어떻게...?”
시도가 당황하면서 입을 벌리자, 린네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말했지? 언젠가 또 에덴이 발동될 거라고.”
“...아, 아니...그렇지만 이렇게 금방?”
“응. 아마 이후로도 사라질지라도 금방 다시 에덴은 복구될걸? 비록, 힘이 약해져서 우리들의 존재를 유지하는 기능만 있고, 윤리간섭이며 조작 등등. 그런 기능은 일절 없겠지만. 결국에는 시도를 안전하게 지켜줄 낙원은 없어진 셈일까나?”
“...그, 그럼.”
“응. 여기는 결국, 시도가 살고 있던 세계 그대로고 그냥 우리들이 존재하기 위한 장막만 펼쳐진 셈이라고 보면 되. 뭐, 주기별로 사라지고 다시 생성하고를 반복하겠지만....”
린네가 그렇게 얘기하자, 시도는 두 눈을 크게 뜨고서 자신의 자리에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오옷! 시도. 왔느냐. 정말이지 아침서부터 당황했다. 린네가 벌써 이렇게 돌아오다니. 정말로 기분이 좋구나.”
“시도. 좋은 아침이야.”
토카와 오리가미가 그렇게 말하자, 시도는 손을 흔들면서 인사를 받아줬고, 곧 린네를 향해 다시 시선을 돌렸다.
기쁨에도 불구하고 너무 갑작스럽기 때문인지, 시도는 그저 어리둥절했던 표정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런 시도를 자극시켰던 것은 곧바로 린네가 귓가에 속삭인 말이었다.
“...그런고로,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시도...아니, 서방님.”
린네가 그렇게 말하자, 곧 시도는 쓴웃음을 내짖고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앞으로 잘 부탁할게. 린네.”
그렇게 두 사람이 대화를 마치자, 타마에가 교실 문을 통해 들어왔고, 이어서 낯이 익은 소녀의 모습이 교실에 있는 전원의 눈에 들어왔다.
“파파! 마마!”
두 사람의 딸. 소노가미 리오는 그렇게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두 사람에게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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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나중에 적으려고 했는데, 그냥 오늘 끝내서 여운을 없애렵니다.
즐감 하셨으면 부디 부탁이오니 추천을 날려주시길....
PS : 사실, 온천 씬에서 리오 먼저 들어간 다음, 소아온 16.5처럼 번외편으로 수위소설 적으려고 했다는 것은 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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