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악취가 진동하는 황량한 대지. 시체가 겹겹이 쌓여있는 주검의 땅에 메마른 바람이 휘몰아치고 썩은 고기를 탐내는 까마귀 때가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나이든 노인부터 어린 아이까지, 이 많은 시신들은 한 마을을 전멸의 위기로 몰고 갔던 역병의 결과이다. 불치병으로 인한 부조리한 죽음이 남긴 것은 생을 바라였던 염원. 끝내 이루지 못해 원한이 되었던 염원은 죽은 이들의 살과 피로 새로이 생명을 만들어냈다.
시체더미 속에서 태어난 요괴.
요괴는 비루했다. 누추하고 연약하며 나태했다. 수십, 수백의 원혼이 남긴 부정한 기운으로 태어났을 지언데도 약했다. 헌데, 요괴는 살고자하는 의지만은 강했기에 다른 요괴들을 피해, 때때로 인간들에게 쫓겨 도주를 반복하며 살아왔다. 아무리 상처를 입고 괴로워도 생을 향한 연연. 그것은 요괴가 태어난 근원인 원혼들의 집착이 만들어낸 주박일 것이다.
이름도 없는 요괴.
의미도 없이 생존을 위한 도주생활을 이어간 지 십여 년. 산에는 강한요괴가 땅에는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에서 약한 요괴가 홀몸으로 오래 산 셈이다. 도주만으로 그만한 세월을 살아온 요괴는 틀림없이 달음질에 통달한 위타천요괴이리라.
이 날도 포식자들의 눈을 피해 산 깊숙한 곳으로 흘려 들어온 요괴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이마에 송골송골하게 맺힌 땀을 닦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짐승 소리와 계곡에서 들려오는 냇물 소리에 한동안 안심하고 지낼 좋은 거처를 찾았다고 스스로 낙관하고 있는데 바로 그때, 예고도 없이 눈앞에서 낙하해 오는 두 물체에 그는 크게 놀라고 마는 요괴.
낙하물은 검은 날개를 펄력이는 텐구였다. 갑작스런 사태에 요괴의 가슴은 빠르게 달음박 쳤고, 안 그래도 창백한 피부가 더욱 창백해져 체내에 피가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은 시신 같았다.
모처럼 좋은 은신처를 찾았다 싶었더니!
좋았다 만 정도가 아니었다. 갑자기 텐구가 나타났다는 것은 운이 없게도 그들의 영역에 발을 들이고 말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곧 자신의 명이 여기서 끝날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인 것이었다. 당연히 공포에 휩싸이지만, 그와 동시에 짜증도 치솟았다. 어째서 자신은 매번 이리도 운이 없는 것일까. 쫓기고 쫓겨 도망치다 도달한 곳은 또다른 위협이 가득한 곳이었고, 그곳을 벗어난 곳 역시 안전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도 마음 놓는 날 없이 매일매일 도망만 치는 인생을 살아온 그는 이미 지칠 때로 지쳐 있었다. 그런데도 생을 놓을 수가 없다니. 스스로도 이런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다.
누더기 차림의 요괴 앞에 승복을 멀끔하게 차려입고 한 손엔 석장을 든 두 까마귀 텐구는 얕잡아 보는 표정으로 그의 전신을 훑었다. 그리고 비웃음이 걸린 얼굴로 입을 연다.
"뭐야 이거. 완전 초라한 녀석이잖아?"
"그러게. 누가 겁도 없이 우리 영역에 발을 들이나 싶었더니."
노골적으로 낄낄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요괴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행여 비위를 상하는 행동이라도 했다간 그자리에서 죽임을 당할게 분명하니까.
"어이. 너 혹시 여기가 우리들 영역이란 거 모르고 들어온 거야?"
"아이고~ 제가 실수로 텐구님의 산에 들어온 모양입니다."
물음에 요괴는 정말로 몰랐다는 사실을 피력했다. 그 비굴한 태도에 텐구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몰랐으면 단 줄 알아?"
"이 새끼 안 되겠네."
옆에 텐구가 맞장구치며 눈을 부라렸고, 요괴는 바로 머리를 숙여 쓴웃음을 지었다.
"넓은 아량으로 이 미천한 요괴 못 본걸로 하고 그냥 넘어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말은 잘하네."
최대한 비위에 거슬리지 않게. 요괴는 조심스레 텐구들을 회유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냥 넘어 갈 수야 없지."
고지식한 텐구를 상대로 회유책이 통할 리가 없었다. 비웃음 가득했던 그들의 눈빛은 이제 경멸이 어려있었고 상황은 보다 악화되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한 텐구가 요괴 앞으로 다가온다.
"우리 영역에 무단으로 침입해 들어온 놈은 누구라도 예외가 없어."
위험을 느낀 요괴가 뒤로 발을 물리려는 순간. 인지하기도 전에 그의 명치에 높다란 텐구의 게다가 꽂혀 들었다. 퍽! 소리와 함께 체중을 실은 발차기에 요괴의 몸이 공중으로 살짝 떠올랐고, 곧 부엽토가 쌓인 바닥을 데굴데굴 굴렸다.
"이 누추한 놈이, 살아서 돌아갈 생각 마라!"
온 몸이 마비가 오는 통증을 견디며 요괴는 간신히 고개를 들었고, 이어서 텐구의 발이 그의 턱을 가격했다. 충격으로 다시 데굴데굴 구르며 요괴의 몸은 부엽토투성이가 되었다.
텐구는 자신들의 영역에 발을 들이는 자에게 용서가 없다. 요괴는 어디선가 들었던 그 얘기를 상기 시키며 절망했다. 정말로 하나도 틀리지 않은 얘기다. 입안이 터져 쇠맛이 나는 피를 토해내며 속으로 욕지거리를 되뇌었다.
제기랄!
운이곤 쥐뿔도 없는 자신이지만, 오늘은 특별히도 운수 사나운 날이었다. 그래도 악운만큼은 강해 어찌어찌 해서 살아남는 일이 많았지만, 그것도 오늘로서 끝인지도 모른다. 별로 미련이라곤 없는 인생이지만, 부조리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역시 싫다.
분통을 터트리는 것도 잠시, 어떻게든 살아나갈 방도를 찾기 위해 궁리해보지만, 해답이 보이지 않았다. 도망치려 해도 금세 따라잡힐 것이고, 말로서 회유하는 것도 아까 봤듯이 실패하고 말았다. 살려달라고 목숨을 구걸해 봐도 들어줄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텐구의 석장이 요괴의 몸을 꿰뚫기 위해 높이 들어 올려져 있었다.
그대로 힘을 주어 뾰족한 석장 끝으로 요괴의 몸을 사정없이 뚫어버리려는 그때.
"어이-, 멈춰!"
어디선가 들려온 우뢰와 같은 외침이 텐구의 움직임을 멈춰 세웠다. 무슨 일인 걸까? 의문 속에서 고개를 들어보니, 아까까지와는 상반된 얼굴의 텐구가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굳어있지 않은가.
텐구를 여기까지 긴장하게 만들다니, 목소리의 주인은 꽤나 거물임이 틀림없었다. 텐구의 안색을 살피던 요괴는 그들의 시선을 따라 어느 한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자 보인 것은.
"둘이서 약한 놈 괴롭히면 쓰나?"
척 보기에도 위험해 보이는 요괴가 엉기적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그게..."
"응? 뭐가??"
"저 자가 우리 영역에 무단으로 발을 들였기에 벌을 주고 있었습니다."
물음에 어버버 거리며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텐구를 대신해 다른 텐구가 대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요괴는 피식 웃으며 장난기 담긴 어조로
"으음.. 그런 거였어? 그런 거라면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
라며 방관하려는가 싶더니
"라고 할 줄 알았냐!!"
하고 불같이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히익-!하고 두 텐구는 공포로 사색이 된 얼굴로 떨었다. 그런 두 텐구를 찬찬히 훑어보며 무서운 요괴가 턱을 매만지며 이어 말했다.
"여기가 니네들 땅이라고?"
그 영문을 알 수 없는 물음에 텐구가 어리둥절해 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고, 또다시 요괴의 호통이 이어졌다.
"내가 있을 동안엔 내 구역이다!"
"그.. 그런 억지가...!?"
"왜? 꼽냐?? 꼬우면 싸워서 쫒아 내던가."
요괴의 억지에 두 텐구는 반문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 제멋대로인 요괴는 요중오니라 불리는 그 오니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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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오랜만에 연재합니다.
그 동안 글쓰는 감이고 뭐고 다 잃어서 쓰는 게 많이 힘드네요.
요즘 일 땜에 피곤해서 더더욱 그런듯.
일단, 선배가 등장하는데 까지 올려봤는데, 나중에 수정하면서 내용이 추가 될 듯 싶네요.
(반응이 궁금하다. 쓴소리라도 좋으니 뭐라도 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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