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또 무슨 부적이에요?"
"액막이 부적. 잠깐 뒤돌아볼래?"
마루는 한껏 고개를 돌려 등 뒤의 종이 부적을 바라봤다. 레이무의 반대쪽 손가락을 튕기자 부적에서 보랏빛 불꽃을 확 태워 마루를 확 감쌌다. 이런 여행에 필요한 건 현명함, 강한 자신감, 그리고 행운이라는 레이무의 생각에 의거한 액땜이었다. 지금까지 앞의 둘을 준비했으니, 이걸로 마지막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었다. 정말 출발할 때가 되자 마루는 부르르 몸이 떨렸다.
"많이 떨려?"
"두근거리기도 하지만, 긴장되기도 하고."
"막상 다가오니까 무섭기도 한가 본데. 그래도 가고 싶은 거지?"
말해봐야 입 아프다는 듯 마루는 배낭을 멘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주고, 옷매무새를 정돈해면서 레이무가 말했다.
"여행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는 말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했어. 하지만 마루는 진심이잖아?"
"안 그랬으면 지금까지 고생해 가면서 훈련도 안했겠죠?"
"그래. 위험하다느니 뭐니 해서, 가면 안된다고 딱 자르면 마루가 무작정 뛰쳐나가지 않을까 생각까지 들더라."
마루 성격을 생각하면 가출 얘기는 단순히 농담이었다. '내가? 가출까지?'을 하는 표정을 띄우며 마루가 피식 웃자 레이무가 마저 말했다.
"정말 만에 하나 일이 터지더라도, 그동안 열심히 한 마루를 믿으니까 보내주는 거야. 그 일기장, 잔뜩 채워서 와."
"다녀올게요."
마루의 배낭이 가벼운 건 무겁지 않은 여행길을 위해, 그리고 조만간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였다. 어깨는 가볍게, 마음은 든든하게.
...
지상에서 올려다보면 저 짙은 구름은 꼭 하늘의 천장 같았다. 지금까지 세상의 한계선처럼 느껴졌던 곳을 향해, 따뜻한 불덩이가 천장을 꿰뚫었다. 눈을 감고 상승한 끝에 어둠과 얼음 조각들이 걷히면서 햇살이 쏟아졌다. 높디 높은 하늘은 처음 느끼는 혹한으로 가득했지만, 그만큼 태양에 가까워지면서 쏟아지는 햇빛의 열기에 눈을 뜨며 마루는 잠시 추위를 잊었다.
쪽빛 도화지 같은 하늘은 조금 더 먼 곳을 바라보면 깊고 깊은 물 속을 보는 기분이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거리감이었지만 이게 오히려 마루를 짜릿하게 만들었다. 미지는 공포임과 동시에 개척의 의지를 달구는 법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목적지는 머나먼 저 너머가 아니었다.
아래로는 새하얀 구름이 바다를 이루고 있었고 저 너머 수평선은 맨눈으로 똑바로 바라보기 어려웠다. 태양의 광채가 너무 강렬해서였다. 대신 백금빛으로 빛나는 구름의 바다가 저 빛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혹한을 견디기 위해 온몸을 휘감은 불꽃은 뜨겁고 빠르게 약동하고 있었다. 잠시 그렇게 순백의 바다를 가로지르며 마루는 이 절경을 마음 속에 녹여냈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루는 항해를 마치며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뛰어내리는 동시에 내뱉어 하얗게 얼어붙은 숨결에는 기대가 한 가득 담겨 있었다.
구름 아래로 빠져들어간 후에 나타난 건 조각 구름이 많이 떠 있는 하늘이었다. 곧이어 지상에 속해 있지만, 동시에 하늘에도 속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수목한계선에서부터 산꼭대기까지 티 한 점 없는 만년설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까마득한 높이로도 가릴 수 없는 거체의 위압감. 지금 마루의 발 밑에 있는 건 바로 순백색으로 단장한 요괴의 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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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산림을 순찰하고 지루한 대기 상태에 있던 중, 이누바시리 모미지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덩이에서 신선함을 느끼며 초소 밖으로 뛰어나갔다. 저 불덩이는 유성 같은 걸까. 운이 나쁘면 산불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모미지는 별일 아니길 바라면서도, 이런 일이 흔치 않다는 이유로 약간 걱정했다.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낙하 지점에 도착했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모미지가 발견한 건 뜬금없게도 오들오들 떨면서 곤란한 기색이 역력한 마루였으니까. 모미지는 노련한 순찰자였기에 고민하지 않고 움직였다. 주변에 불씨 하나 없다는 걸 빠르게 확인하자마자 척 봐도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마루를 등에 업고 초소로 달렸다.
집처럼 아늑하다고 말할 순 없는 백랑텐구의 감시 초소였지만, 적당히 피운 모닥불과 모포만으로도 마루는 빠르게 건강해졌다. 스릴을 너무 즐긴 나머지, 자유낙하의 칼바람 속에서 감당 못할 정도로 체온을 빼앗겨 고생한 마루. 그리고 요즘 이런 산중턱에서는 보기 힘든 외지인, 그것도 어린애를 찾아서 당황스러운 모미지. 딱딱딱딱 이빨 부딪치던 소리가 조금 잦아들고 나서야 서로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어쩌다가 그런 곳에서 조난당한 거야?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고?"
"날아서 왔다가, 너무 추워져서 거기서 그렇게..."
하늘을 나는 인간은 희귀한 편이기에 모미지는 신기하다는 눈이 되었다. 곧이어 마루는 하늘에서 떨어지다가 너무 추워져서 집중이 깨지고, 불까지 꺼뜨리고 난처했던 자신의 사연을 늘어놓았다. 그 다음엔 자신에겐 정말 중요한 일 때문에 여행을 왔다는 얘기였다. 전부 말하진 않았지만 들을수록 하는 짓부터 뒷사정까지 되게 독특한 애구나, 하고 모미지는 생각했다. 마루는 중간중간 불 만지는 연습도 할 겸, 입을 놀리는 동시에 간간히 불꽃으로 형상을 빚어 이야기에 시각적 실감을 덧붙였다.
오늘 같이 더럽게 추운 날 혼자 근무하던 차에, 이런 독특한 이야기들은 재미있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러고는 이야기 잘 들었다는 듯 모미지는 군것질거리를 좀 건네주기도 했다. 그러고 잠시 뒤, 자신이 건네준 육포 조각을 물어뜯는데 혈안이 된 마루를 보자 모미지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으드득 소리와 함께 간신히 한 입 뜯어내고 열심히 질겅질겅대던 와중에, 쾅 하는 소리가 초소를 울렸다.
문을 거칠게 열어서 난 소리였는데 가뜩이나 낡은 초소 어디에 바람구멍 뚫리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소리였다. 휭 소리와 함께 들어오는 찬바람 속에서 여러 목소리가 오갔다.
"근무하느라 수고 많으십니다 모미지~. 물어볼 게 있어서 왔는데요~."
"문 좀 살살 여시라고요. 그러다 망가집니다."
"히꾹."
힘들게 씹던 걸 삼키기 직전에 깜짝 놀랐으니 딸꾹질이 나와도 이상할 게 없었다. 때문에 모미지는 옆에 둔 수통을 집어 마루에게 넘겨줘야 했다. 문 부서져라 힘껏 열어재끼며 등장하고, 저 딸꾹질하는 애는 누구냐며 눈짓을 하고 있는 건 바로 샤메이마루 아야였다.
"흐음... 어린애네요?"
"좀 전에 찾은 방문자입니다. 방문 사유는 여행이라고 하네요."
아야는 신문 기자다운 날카로운 감식안으로 마루를 관찰하기 시작했고, 마루는 그 뚫어져라 보는 시선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하늘에서 떨어진 불덩이에 호기심을 느껴 근처에 있는 이 초소에 온 아야는 이번엔 저 특이한 방문객에게서도 흥미를 느꼈다. 자기소개를 하듯이 새까만 까마귀 날개를 힘차게 털면서 아야가 인사를 건넸다.
"샤메이마루라고 합니다. 산에 잘 오셨어요."
...
요괴의 산, 그 중에서도 텐구 사회는 폐쇄적인 곳인지라 원래라면 외부인의 침입을 적극적으로 막는다. 하지만 마루가 아쉬운 마음과 함께 발길을 돌리지 않을 방법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지금처럼 아야의 눈에 띄는 것이었다. 여러 방법 중 이게 좋은 편인지 나쁜 편인지 마루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저랑 모미지를 먼저 만나서 다행이네요. 그 중요하다는 여행, 이 샤메이마루 아야가 보장해 줄게요."
"저 정말 따라가도 괜찮을까요?"
"혹시 모르니까 근무 시간 끝나면 내가 그쪽으로 갈게. 그때까지만..."
간단한 일 몇 가지만 도와준다면 묵을 곳은 물론이요 안전하게 보호해주겠다는 아야의 제의. 분명 마루에겐 좋은 조건이긴 한데... 모미지의 약속이 어째 마루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결국 고민 끝에 마루는 아야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잠깐이었지만 신세 많이 지고 가네요."
"너무 걱정하진 말고, 나중에 보자."
나중을 기약하는 인사을 나눈 뒤 마루와 아야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 와중에 아야는 기자답게 쉴새없이 질문을 했다.
"제가 인간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혹시 여행길에 다른 요괴가 해코지하려고 하면 어쩌려고요?"
"저도 준비해둔 게 있으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이렇게 저 같은 인간 좋아해 준다는 분도 만났잖아요?"
"음, 정말 그럴까요?"
모미지가 마루에게 경고한 게 바로 이런 거였다. 까마귀는 겉은 새까매도 속깃털은 하얗다던데, 모미지가 아는 아야는 정말이지 속까지 시커먼 사람이었다.
"방금 전처럼 구두로 한 약속을 보장해주는 건 그 사람의 양심뿐이잖아요? 그리고 양심이라는 건 정말 쉽게 저버릴 수 있다고 생각 안해요?"
"지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양심 좀 버리고, 모미지는 입막음하면 당신을 겨울 보양식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뜻이에요."
"...진심이에요?"
"그 손난로 정도밖에 안되는 불 말고, 준비해둔 게 더 많았으면 좋겠네요."
마루는 지금 온몸에 불을 피워뒀음에도 저승 한복판에 있는 것처럼 싸늘함을 느꼈다. 그런데 사실 지금 이런 아야의 태도는 철저하게 연기였다. 아야는 적어도 아직까진 자신의 양심을 굳게 지키고 있었다.
여행 중에 언제든 요괴한테 이런 위협을 당할 수도 있다는 걸 알려주는 교육 겸 장난이었다. 요괴는 인간이 두려워하는 존재라는 상식을 신경쓰지 않는, 저 당돌해 보이는 여행자에게 말이다. 여기서 아야가 이 장난의 취지를 얘기해주고 사과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아야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마루는 준비해뒀던 것들 중 하나를 꺼내고야 말았다.
직후에 아야가 본 건 마루가 손에 들고 있는 작은 칼과 막대 모양 철편이었다. 한술 더 떠서 허공엔 정체 모를 백색 가루들 또한 흩뿌려져 있었다. 그동안 수없이 연습했던 대로 칼등으로 철편을 긁으며 휘두르자 불씨와 가루가 섞이면서 한순간 저 작은 칼을 거대한 화염의 기둥으로 만들었다.
첫 일격은 아야가 당황스럽게 피하면서 그 자리의 눈밭을 끓어오르게 하는데 그쳤고, 두 번째 공격은 불 붙은 날개를 눈 속에 박아넣은 채로 아야가 진심 어린 변명을 늘어놓은 덕에 조금 지연되었다. 칼과 철편은 여전히 시뻘건 불길에 휩싸인 채 언제든 불을 당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동안 마루는 여행에 앞서 레이무와 마리사한테 다양한 걸 배웠는데, 그 중 둘이 항상 강조했던 게 하나 있었다.
'나쁜 요괴는 일단 때리고 봐라. 어차피 쉽게 다치지도 죽지도 않는 애들이니까 망설이지 말고.'
그럼에도 마루는 참 마음 여린 녀석이었다. 일단 아야가 장난쳤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최대 화력을 준비하며 지글거리던 양손의 불길도 기세가 조금 꺾였다. 하지만 용서는 그 정도까지였다. 자신은 진짜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 약속도 안 지키는 나쁜 사람, 거짓말쟁이, 장난이 너무 심하다 등등. 울먹거리면서 한번 말할 때마다 거칠게 불씨가 튀기면서 아야를 굽고 지졌다. 아야의 피와 살을 지글지글 태워버릴 정도로 뜨겁진 않았지만, 텐구에겐 꽤나 아플 정도의 불길이 마치 수 백 개의 회초리처럼 아야를 때려댔다.
"앗 뜨거뜨거 앗 뜨거! 아이고 잘못했어요!"
정말 마음만 먹는다면 떨쳐내는 거야 아야한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자신이 한 짓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있었던 모양이다. 그나마 사방이 눈밭인 게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아이한테 잘못한 어른은 겸허히 저 울분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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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교수님, 과제도 다 제출했으니까 슬슬 팬픽 쓸 여유를 주셨으면
??? : 아이! 학기가 끝나야 과제를 그만낼 거 아냐! 잔말 말고 공부나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