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 설정 볼 때 마다 의문이었던 거 생각해본 글.
동갤의 영원한 헬누나, 헤카티아 라피스라줄리.
헤카티아 설정을 보면 중국 신화의 영웅인 예와 아내인 상아에 대해 원한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 내용 볼 때마다 진짜 골 때린다.
무슨 이유로 중국 영웅과 그리스 여신을 엮은 건지 신주 머리통을 열어보고 싶은 심정.
그 때문에 왜 하필 순호, 상아, 헤카티아를 엮었는지 나름대로 생각해 봤고
결과적으로 헤카티아는 동방 설정 전체와 연결되는 캐릭터라 생각하게 됨.
거기에 대한 글.
(말투가 반말인 건 원래 다른 곳에 올린 글이기 때문에ㅠ)
1. 순호의 원수: 예와 후예
일단 헤카티아와 순호의 원수인 예를 보자.
예(羿)는 중국 신화 속 영웅이다. 중국 신화 및 여러 개소리를 엮어놓은 책인 산해경(山海經)을 보면 디테일하게 나와 있음.
본래 열 개의 태양은 매일 교대로 동에서 서로 움직였음. 그러던 어느 날 열 개의 태양이 한 번에 뛰쳐나오게 된다.
때문에 하늘에서 이름 높은 활잡이였던 예는 하늘의 명령을 받아 태양들을 쏘아 떨어트린다. 화살을 쏠 때마다 태양의 본 모습인 삼족오가 떨어졌다.
이렇게 열중 아홉 개의 태양을 떨어트린다.
그러나 예는 하늘의 미움을 산다.
태양이 본디 하늘을 다스리는 제준의 아들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상의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다 다른 신과의 마찰도 있었기 때문.
다시 하늘로 돌아가기 위해 서왕모에게 선단을 받았지만 마누라인 항아(姮娥)에게 통수를 맞는다. 선단을 서로 나누어 먹으면 하늘로 돌아갈 수 있을 뿐이지만 두 개를 모두 먹으면 다시 신으로 돌아가기 때문.
이후 예는 지상에 홀로 남게 되고 말년에는 제자한테 몽둥이로 맞아 죽는다...
예의 행적을 보면 잘했으면 잘했지 못한 건 없는 거 같다. 굳이 말하자면 마누라랑 제자 관리 못한 것.
그런데 순호는 왜 예에게 원한이 있냐면 하나라 인물 후예(后羿) 때문.
후예는 하나라 시절 인물로서 활쏘기에 능했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그를 전설 속 영웅의 이름을 따와서 예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후예는 예랑 달리 아주 개ㅆㅂ놈이었나본데
1. 상왕을 죽이고 하나라의 왕이 됨 .
2. 기껏 왕 먹어놓곤 활만 쏘러다님(결과적으로 그 때문에 본인도 왕자리를 뺏기게 됨).
3. 후기(后夔)와 그 아들 백봉(伯封)을 죽이고 기의 아내 현처(玄妻)를 아내로 삼는다.
여기서 봐야할 것은 3번인데 이 현처는 순호(純狐)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현처는 검은 머리의 여성이란 뜻으로 순호의 미모를 뜻함).
춘추좌씨전을 보면 제사도 받아 먹지 못하게 하였다는 부분이 있는데 아예 집안을 싹 끊은 것으로 추측된다.
근데 문제가 되는 것은 후기에 접어들면서 삼황오제 시절의 영웅 예와 하나라 시정 그레이트ㅆㅂ놈인 후예다 동일시 되기 시작한 것. 아무래도 둘 다 미심쩍은 엄청 오래된 옛날 이야기 속 인물이고 이름도 똑같다 보니... 이 때문에 ZUN도 예=후예 설을 적극 지지한 것으로 추정됨.
(사진은 한나라 화상석 탁본)
2. 사양-태양을 떨어트리다
순호가 예에 대해 원망하는 것은 후예 때문이다.
반면 헤카티아의 경우 예를 원망하는 것은 태양(아폴론)을 떨어트렸기 때문이라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선 일월조정신화(日月調整神話)를 봐야 한다.
일월조정신화는 전 세계적으로 발견되는 화소 중 하나로 달과 해의 이상을 고치고, 자연의 질서를 회복하는 신, 혹은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
이족, 므엉족 등의 중국 소수민족, 중국 한족, 몽골, 일본, 베트남,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 중 활로 태양을 떨어트리는 종류를 사양신화(射陽神話)라 한다.
지역마다 대별왕, 선문이, 에르히 메르겡(Эрхий Мерген) 등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지만 핵심은 영웅들이 활을 쏘아 둘 이상의 태양을 떨어트린다는 것.
주로 창세신화의 한 갈래로 보며 예 역시 사양신화의 후기 형태로 본다.
일본에서도 관동 지역에 삼족오와 토끼가 그려진 과녁 그림을 활을 쏘아 찢고 떨어뜨리는 민속행사 등이 남아있음.
여기서 핵심은 헤라클레스 역시 일월조정신화소의 후기 형태로 본다는 것. 헤라클레스 역시 헬리오스를 활로 겨눈 적이 있기 때문.
헬리오스는 후기 아폴론과 착각되거나 종종 동일시되기도 하는데
그 때문에 ZUN은 아폴론=헬리오스, 예=헤라클레스란 공식을 통해 예가 아폴론을 쏴 떨어트렸다는 부분을 만든게 아닌가 싶다.
(사진은 청나라 서왕모화{17-19세기 추정})
3. 항아, 달로 유배되다.
동방 설정을 보면 상아가 달의 도시에 있다는 내용이 있음.
이것 역시 원 신화를 반영한 내용. 위에서 마누라인 항아가 통수를 치고 선단을 혼자 복용했다 했는데
그 죄 때문에 항아는 달로 유배를 당함.
동방에서는 상아도 봉래약을 복용한 인물이며 달토끼들이 그 죄를 갚아가는 중이라 하는데
신화와의 유사성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여기서 내가 생각한 부분은 예=헤라클레스 설에서 영향을 받은 건데
헤라클레스의 최후는 그의 아내가 독이 묻은 옥을 입혔기 때문이다.
예의 최후는 아내가 통수를 치고 서왕모에게 받은 약을 지 혼자 처먹었기 때문이다.
둘 다 마누라 때문에 죽는다.
여기서 예의 아내가 먹은 선단은 서왕모(西王母)에게 받은 거라 하는데 중국 신화의 죽음의 여신이다.
서왕모는 천려오잔(天厲五残), 즉 역병과 다섯 형벌을 내리는 여신으로 죽음과 그 이후 지옥을 다스리는 여신이라 할 수 있음.
때문에 나는 헤카티아 라피스라즐리=서왕모 설을 내세워 본다.
이 설이 맞다면 헤카티아의 원형인 헤카테(Ἑκάτη)가 마술의 여신인데
헤카티아는 왜 지옥의 여신인지 설명이 됨.
헤카티아=서왕모라면 헤카티아가 원한을 갚기 위해 뒤에서 암약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상아가 달에 유폐된 것과도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봄.
4. 환상의 시대가 지다.
헤카티아에게 태양이 떨어진 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태양의 강한 빛이 사라지자 지옥의 어둠도 약화 되었기 때문.
이는 사양신화소에도 나타나는 내용.
사양신화에 나오는 영웅들은 태양과 달을 떨어트리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태양을 떨어트렸다는 내용에 항상 뒤따라오는 내용이 괴물을 무찌른다는 이형퇴치담.
헤라클레스, 예 등등 영웅들은 괴물을 해치우는데 이는 자연 질서의 회복, 혹은 극복을 나타냄.
한국의 대별왕을 보면 더 대놓고 나오는데 태양을 쏘고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구분했다고 나옴.
사양신화가 자연의 극복을 뜻한다 했는데,
일월조정신화는 인간이 하늘의 질서를 이해하고 이용하는 법을 발견했다는 상징으로 해석됨. 특히 말하자면 역법.
인간이 역법을 만들고 농업을 시작하며 인간의 신화 체계는 크게 달라짐.
인간은 더 이상 자연에 대한 무조건적인 공포를 극복할 수 있게 됨.
농업 전에는 토테미즘, 에미니즘의 성격이 강하며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력에 대한 숭배가 주가 된다. 반면 그 후에는 기상현상을 만들고 풍요를 가져오는 하늘의 신들을 숭배하게 됨.
국사 시간에 본 적 있을 단군신가 여기 포함. 곰, 호랑이의 토테미즘(자연신)에서 환웅 신앙(하늘, 밝음)으로의 진입이 여기 해당한다.
그 외에도 그리스의 가이아, 포세이돈을 중심으로 한 지역 풍요신들이 제우스의 올림포스 12신이란 형태로 편입,
노르드에서 프레이야, 프레이르 같은 풍요신(바니르 신)들의 오딘의 애시르 신으로의 편입 등등.
일본의 경우 이런 천신 숭배를 먼저 시작한 중앙과 토착신들을 믿는 지방간의 대립이 극단적으로 나타나는데
아마츠카미(天津神)와 쿠니츠카미(国津神)의 대립, 야마토 정부의 중앙 토벌이 그것.
흔히 아는 모리야 신사의 뒷배경-스와코, 카나코 간의 전쟁이 그 내용이다.
즉 전세계적으로 지역 토착신들은 중앙에 편입하고 만다(일본 야마토 정벌 외에도 지역신들의 기독교 성인화 등).
반면 이렇게 이름도 남지 못한 토착신들은 이름도 남지 못하고 요정, 요괴 따위로 전락하고 만다.
특히 그 중 대표적인게 오니라 할 수 있겠다.
동방에서 보면 오니가 둘이 나오는데(선인이 된 누구는 빼고)
ZUN이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참 그럴듯하다고 생각했음.
일반적으로 자연력의 토착신을 숭배할 때 숭배의 요소는 두 가지임.
1. 자연이 가진 무시무시한 힘
2. 자연이 내려주는 풍요
이런 예로 들 수 있는게 이집트의 세트인데 보통 세트하면 '악한 신' 정도로만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호루스와 이집트를 상하로 양분하여 하이집트를 다스리는 신이고
무엇보다 폭풍과 자연재해의 신이기도 하다.
폭풍과 태풍은 무시무시하지만 그 후 나일강의 범람과 거기서 이어지는 자연의 재생이 세트가 그렇게나 숭배된 이유.
일본신 스사노오(スサノオ)를 예로 들자.
스사노오 역시 폭풍의 신이고, 이자나기의 아들이다.
하늘에서 강림한 신이고, 이자나기의 아들인데도 스사노오는 아마츠카미(천진신)이 아니라 쿠니츠카미(국진신:토착신)으로 분류된다.
스사노오의 신격을 보면 당연항 일인데 스사노오는 난폭한 신인 동시에 술을 베푸는 신이기도 하다.
바꿔 말하자면 강력한 자연력+자연이 내리는 풍요(술).
그 때문에 동방에서 등장하는 두 오니(쇠락한 토착신)이
'강력한 힘'을 지닌 오니와 '술을 좋아하는 주당' 오니로 나온다는 부분은 참 그럴 듯함.
결국 신들은 요괴로 쇠락하고 그런 요괴들 역시 잊혀짐.
모리야 신사만 봐도 국진신, 천진신의 대립이나 신앙이 사라져 환상향으로 건너왔다는 내용이 있잖아.
결국 헤카티아가 지옥의 힘이 약해져 화를 냈다는 부분은 단순히 자기가 피해를 입었다는 게 아니라
예가 태양을 쏨으로서
신앙과 환상의 시대가 끝나고 이성의 시대가 왔다는 것에 대한 분노가 아닐까 생각한다.
결국 헬누나는 나름대로 요괴나 환상을 지키려한 게 아닐까 싶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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