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어째서 저희 부모님이어야 했을까요?
한스럽습니다.
원망스럽습니다.
너무나 화가 납니다. 너무나도 슬픕니다.
절망스럽고, 고통스럽고, 울적하고, 짜증이 나고, 소리 지르고 싶고, 답답하고, 우울하고, 때리고 싶고, 목 놓아 울고 싶고, 저항하고 싶고, 생각을 그만두고 싶고, 미칠 것 같고,
너무나도 원망스럽고 원망스럽고 원망스럽고 원망스럽고 원망스럽고 원망스럽습니다.
어째서 우리 가족이었을까요?
어째서 우리 부모님이었을까요?
어째서 제가 아니었을까요?
차라리 저였다면 훨씬 나았을 거예요.
차라리 제가 죽었어야 했어요.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이제 저는, 저는, 저어는, 저어어어는-
“어머나, 그러면.”
저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제 구원자가 그녀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제 구원자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녀는, 그 승려는 제 앞에 쪼그려 앉았습니다. 그리곤 그녀는, 쥐고 있는 석장을 울리는 상냥한 목소리로, 그녀의 긴 머리칼이 파르르 떨리는 웃는 낯으로 말했습니다.
“복수, 해볼래요?”
1.
여러분은 요괴의 존재를 믿으시나요? 예, 당신이 생각하는 그 요괴요. 무시무시한 힘으로 인간을 공격하고, 생명을 앗아가는 존재. 인간의 반대편 극단에 서있다고도 하는 그들을요. 어, 그런 게 세상 어디에 있느냐구요?
뭐, 사실은 여러분이 믿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요괴란 건 실존하니까요. 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요? 글쎄요, 지금 그 말을 쿠모이雲居 마을에서 꺼내신다면, 아마 마을사람들의 대답 대신 낫이나 괭이가 날아올 겁니다. 쿠모이 마을이 어떤 마을이냐고요?
쿠모이 마을은 그 이름에 걸맞게 구름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마을입니다. 아, 오해는 하지 마세요. 구름 위에 지어진, 신선의 마을 같은 곳이 아니라 구름까지 닿을 정도로 높은 산등성이에 지어진 마을일뿐이니까요.
넘으려면 며칠이 꼬박 걸리는 높은 산, 쿠모이 마을의 사람들은 산의 중턱 즈음에 길잡이들의 숙소를 만들어 놓았지요. 그러면 여행객들이 와서 하루 숙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엔 힘이 좋은 쿠모이 마을의 사람들이 여행객의 보따리를 들고 마을까지 바래다줍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 다시 하산하는 여행객들을 안내하며 반대편 중턱의 숙소로 향하지요. 쿠모이 마을의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숙박비, 용역비를 받고 보부상들의 식량을 사들이며 생계를 유지해나갔습니다.
쿠모이 마을에 닿기까지는 꽤 오래 걸리지만, 산을 넘으려는 사람들은 누구나가 지나쳐야 할 관문 같은 마을이었습니다. 때문에 쿠모이 마을은 항상 여행객들이 모여 시끌벅적했지요.
고대의 유물, 또는 누군가가 숨겨놓았다는 금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들쑤시는 호기로운 여행자들, 또는 그런 여행자들만큼 꿈은 없지만, 그래도 스스로 나서서 한 몫 해보려는 보부상들, 진정한 깨우침을 얻기 위해 자연을 벗 삼아 수행을 떠난 승려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괴이쩍은 보랏빛 구름이 마을을 뒤덮은 것은요.
3.
종종 햇빛 때문에 마을을 감싸는 구름이 보랏빛으로 물들곤 했으니, 마을 사람들도, 여행객들도 처음엔 큰 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은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했지요. 길을 안내하고, 길을 안내받고.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저녁 즈음이었습니다. 어제 길잡이 일을 하러 내려갔던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았거든요.
그날 저녁, 마지막으로 길잡이가 필요 없다는 한 승려가 떠나갔을 때(사람들은 말렸습니다. 야밤에 산길을 걷는 건 ■■행위나 다름없었으니까요.), 마을에는 마을사람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이례적인 일이었지요. 마을에서 가장 늙은 켄타 할아버지도 난생 처음으로 겪는 일이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물밀 듯 여행객들이 쏟아져 들어오던 마을에, 마을사람들만 남다니요. 뿐만 아니라, 그 날 저녁에는 도착했어야 했을 길잡이들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도 사정은 똑같았어요. 여행객은 물론이고, 길잡이들도 돌아오지 않았지요. 결국 마을에서 제일 건장한 남성 세 명이 이 길잡이들을 찾으러 내려가 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아무도 마을에 오지 않았습니다. 길잡이도, 그들을 찾으러 내려간 자들도, 여행객들도 말이에요.
“도적떼가 둥지를 튼 걸지도 몰라요.” 이번엔 단단히 무장을 한 남자 일곱 명이 마을을 떠났습니다. 하루가 저물기도 전에 떠났던 사람 중 한 명이 두려움에 질린 얼굴로 비틀거리며 돌아왔지요. 몸을 비정상적일 정도로 바르르 떨고 있는 그 사람을 보고선, 마을 사람들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돌아온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요, 요괴… 요괴가 있소… 저 구름… 구름 그 자체가… 요괴… 요괴요… 요괴는 이, 이렇게 말했소… 서두르지 않아도 좋다고… 하, 하지만… 뜸을 들여서도… 안 된다고… 일주일에 두 명… 두 명이라고…”
“다른 이들은, 다른 이들은 어떻게 되었나?”
“요괴에게…”
“그렇다면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것도…”
“서두르지 마라, 일주일에 두 명이란 말이 무슨 뜻일까요?”
“서둘러 뒈질 필요 없으니 안개 속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말이겠고, 그래도 일주일에 두 명은 제물로 보내란 소리겠지요. 빌어쳐먹을, 참으로 훌륭한 양식업자가 따로 없군.”
양식업자들은, 기르는 물고기를 위해 물속에 울타리를 쳐놓는 걸로 외부의 침입을 막지만, 그와 동시에 그 안의 물고기들을 가두어버리죠. 그리고 때가 되면 기르던 물고기를 건져내 도마 위에 올려놓습니다.
그 요괴가 하는 일도 별반 다를 게 없었어요. 외부의 침입을 막고, 그 안의 물고기들을 가두어버리고, 그리고 때가 되면 기르던 물고기를 건져내 자신의 식탁 위에 올려놓으려 하고 있었지요.
다만 조금 다른 것은, 요괴는 물고기들에게 선택권을 주었다는 것이었지요.
4.
자, 그럼 이 전대미문의 위협에 마을사람들은 어떤 대처를 했을까요? 힘을 모아 요괴에게 대항했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공포 속에서 벌벌 떨어댔을까요? 안타깝게도 둘 다 아니었답니다. 정말이지 현명하게도, 인간들은 요괴님의 요구사항을 맞추어주고자 노력하기 시작했어요.
투표,범죄자, 마녀사냥, 형님 먼저 아우 먼저, 노인공경… 요괴의 식탁에 올라갈 사람을 선발하기 위해 많은 기준들이 세워졌다가 다시 무너졌습니다. 덕분에 마을 어디에서든지 발길질을 하면 싸구려 비극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발에 채이게 되었지요.
파란머리 소녀도 비극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마을 사람들과는 다른 외모, 즉 외래인 이란 점은 이런 상황에선 딱 써먹기 좋은 구실이었으니까요. 저 외래인들이 요괴를 끌고 들어왔다는 헛소리에서부터, 마을에 친인척이 없으니 도마에 올라가더라도 그럭저럭 타격이 적다는 현실적인 이유까지.
“다녀오마.”
소녀의 아버지가 소녀의 파란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소녀는 가지 말라며 울었습니다. 소녀의 어머니가 소녀를 한 번 안아주었습니다. 소녀는 가지 말아달라고 소리쳤습니다. 소녀의 부모님은 쓸쓸한 뒷모습을 남기고 안개 속으로 끌려가듯 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소녀는 안개를 향해 돌아와 달라고, 울며 소리쳤습니다.
물론 소녀의 부모님들은 돌아오지 못했지만요.
5.
시간이 지날수록, 마을의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어갔습니다. 그렇다고 싸웠다는 건 아니에요. 서로를 향한 의심, 불신, 그리고 원망이 조금씩 사람들 사이를 흘러가기 시작했지요.
누구나가 서로의 눈치를 보고, 누구나가 다음 물고기가 자신은 아니길 바라며, 제각기 자신이 아니어야 할 이유를 만들어 항변할 준비를 하고, 제각기 무기를 품에 숨기고 항전할 준비를 하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크게 부풀어 올라서, 공기를 조금이라도 더 넣으면, 혹은 날카로운 송곳이 살짝이라도 닿으면 터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분위기. 그 즈음이었지요. 구름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마을을 감싼 것처럼, 어떠한 전조도 없던 어느 날, 그 무시무시한 구름을 뚫고 한 명의 승려가 마을에 걸어 들어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기절초풍할 노릇이었죠. 요괴의 안개를 지나온 인간이 죽지 않고, 사지가 성한 채로 잘 걸어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은요. 그 승려의 복장이나 들고 다니는 석장이 어디서 본 것 같다는 느낌은 신경도 쓰이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승려들의 물건이란 것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어요?
마을의 촌장이 허겁지겁 맨발로 뛰쳐나와 예의를 갖추어 그 신묘한 승려를 맞이했습니다. 승려는 갖은 호들갑을 떨 준비를 마친 그를 제지하고선 말했습니다.
“환영은 필요 없습니다. 그보다는 빨리 요괴를 퇴치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마을을 한 바퀴 둘러봐도 될까요?”
제지당한 촌장은 결국 취할 수 있는 가장 호들갑스러운 동작을 취하여 - 몸을 열렬하게 굽실거리며 승려를 모시고 마을을 안내하겠다고 하였지요. 이 또한 거절당했지만요.
“혼자서 생각하며 걷고 싶네요.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방해하지 말라는 말이었죠. 촌장과 마을 사람들은 마지못해 승려의 곁을 떴습니다. 요괴를 퇴치하는 것과 마을을 둘러보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또 혼자서 생각하고 걸어야 할 이유가 뭔지, 승려의 말은 이해하기 조금 힘들었지만, 구원자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의 부탁을 누가 거절하겠어요.
승려는 마을을 둘러보기 전,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그리고 신발은 신는 게 좋겠어요.”
승려는 곧 마을을 구석구석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마을을 꼼꼼히 둘러봤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이 미치지 않는 어두운 골목 구석을 찾아다녔다는 소리예요. 이런 장소는 대개 절망에 가득 차있고, 요괴 퇴치를 위해 승려가 워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한참을 헤매던 승려는 마침내 원하던 사람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역시나 그녀일거라고 생각했어요. 승려는 파란머리 소녀에게 다가갔습니다.
6.
소녀의 모습은, 썩 보기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바깥사람들의 출입이 제한된 지금, 마을에서 쓸 수 있는 물자는 한정되어있으니까요. 그런 소중한 것을, 부모도 없고 쓸모도 없는 고아에게 나누어 줄 리가 없잖아요?
소녀는 마을사람들에게 이젠 얼마 남지 않은 먹을 것이나, 마찬가지로 얼마 남지 않은 동정을 받는 대신, 마을에 넘쳐흐르는 것을 주워 먹고 살고 있었지요. 절망과 증오, 분노를요.
승려는 소녀에게 다가갔습니다. 누군가가 다가왔다는 것을 느낀 소녀의 입술이 달싹였습니다.
8.
파란머리 소녀는 보랏빛 구름 속을 걷고 있었습니다. 몸이 바들바들 떨렸지요. 매서운 산바람 때문이기도 하고, 배고픔 때문이기도 했지만, 요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만큼 떨어댔어요. 그렇지만 소녀는 안개 속을 걸었습니다. 요괴의 두려움을 이겨내고서 이루고 싶은 것이 있었으니까요. 가족을 앗아간 요괴에게 한 방 먹이는 거요.
걸으면 걸을수록 구름은 점점 더 짙어졌습니다. 엄마 아빠도 무서웠을까. 소녀는 생각했습니다. 마침내 구름에 가려져 자신의 발밑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소녀의 것이 아닌 발자국 소리가 들렸습니다. 소녀의 몸이 더 심하게 떨렸습니다. 아랫입술을 강하게 물어 피가 흘렀고, 몸이 점점 움츠러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소녀는 승려가 했던 말을 곱씹었습니다. ‘얼굴을 바라보지 말 것.’ 소녀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구름의 입자가 움직였습니다. 발자국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길을 만들 듯 갈라졌지요. 소녀의 눈에 추하게 생긴 요괴의 다리가 비쳤습니다. 요괴가 기이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번 주는 조금 빠르구만. 그런데… 왜 네년 하나뿐이지?”
요괴는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파란머리 소녀를 제물이라 생각했기에, 말했던 대로 두 명째를 찾는 것이었죠. 하지만 소녀는 홀로 걸어왔고, 때문에 요괴는 분노했습니다. 소녀는 뒷걸음질 쳤습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등을 돌려 달아나고 싶었습니다. 두려움에 숨도 가빠왔습니다. 하지만 소녀는 승려가 했던 말을 곱씹었습니다. ‘가까이 다가오면, 부적을 붙이고, 알려준 주문을 외울 것.’
“왜 하나밖에 오지 않은 거냐! 인간주제에 나를 놀리는 거냐!”
요괴는 크게 분노하며 소녀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소녀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품속의, 승려가 건네준 부적을 굳게 쥐었습니다. 그리고 요괴가 가까이 다가와 소녀를 공격하려는 순간, 소녀는 요괴의 몸을 후려치듯 부적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경련하는 요괴의 추악한 얼굴을 바라봤습니다. 미코시뉴도의 몸집은 커지지 않았습니다. 그 흉한 얼굴을 보며, 소녀는 소리쳤습니다.
“너머다 보인다, 미코시뉴도!”
미코시뉴도의 얼굴에 괴로움이 떠올랐습니다. 엄청난 바람이 몰아치며, 보랏빛 구름이 소녀와 미코시뉴도를 감싸 안기 시작했지요. 미코시뉴도의 비명소리 같은 것이 들렸던 것 같지만, 어마어마한 바람 소리는 모든 소리를 집어삼켰습니다. 소녀는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고 주저앉았습니다. 무서우니까요.
마침내 바람 소리가 그치고, 그제야 소녀는 천천히 눈을 떴습니다. 미코시뉴도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산을 집어삼킬 듯 했던 보랏빛 구름도, 마치 미코시뉴도가 남긴 흔적인 양 소녀의 주변에 엷게 퍼져있을 뿐이었습니다.
‘됐다.’
소녀는 풀썩, 자리에 쓰러지듯 앉았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아직 남아있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고, 부모님 생각이 나서이기도 했고, 해냈다는 사실이 기뻐서이기도 했습니다.
소녀는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10.
울음을 그친 소녀는 마을로 돌아가자고 생각했습니다.
요괴를 물리쳤다. 아무도 해내지 못 한 일을 자신이 해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모두의 박수갈채를 받는 자신을 상상하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이 죽었다는 슬픔도 가슴속에 남아있었지만, 그래도 그런 상상을 하니 조금은 즐거워졌지요.
소녀는 다시 일어서서 걸었습니다. 기이하게도 보랏빛 구름이 자신을 따라오는 것 같았습니다. 이게 무슨 일일까, 길을 걷던 소녀가 의문을 가지려던 찰나, 마을의 외곽이 보였습니다. 구름 속에 있을 때는 한참을 걸었던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마을은 멀리 떨어져있지 않았지요. 자신을 발견한 누군가가 놀란 표정으로 마을로 뛰어 돌아갔지만, 소녀는 자신이 살아 돌아왔다는 게 신기했던 모양이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소녀는 칭찬을 받을 자신을 상상하며 마을에 들어섰습니다. 바로 그 때였지요. 무언가가 날아들었습니다. 마을을 구한 여린 소녀에 대한 박수갈채였을까요? 작은 새들의 환영 인사였을까요? 아쉽군요. 정답은 날이 잘 선 낫이었답니다.
소녀의 바로 한 발자국 앞, 낫은 파삭 하고 땅을 뚫고 박혀 들어갔습니다. 소녀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죠. 고개를 들었을 때 날아온 것은 낫보다도 날카로운 욕설이었습니다.
“망할 요괴년! 너희 가족을 받았을 때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어!”
“요괴와 내통을 하고선 모른 척 하고 있었던 거냐!”
“죽여, 저 년을 죽여!”
분노에 가득 찬 마을사람들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서슬 퍼런 기세에 소녀는 겁을 집어먹었지요. 소녀는 다시 산속으로 내달렸습니다. 나뭇가지를 밟고, 가시에 긁히고, 돌멩이에 발을 구르고. 하지만 요괴를 물리쳤다 해도 결국은 어린 아이였고, 신체능력은 어른의 것에 미치지 못했지요.
진이 빠져 넘어져버린 소녀는 마을 사람들을 바라본 채 돌아 앉아, 뒤로 조금씩 기었습니다. 등에 나무가 닿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다 잡은 사냥감을 포위하고 압박하듯 천천히 소녀에게 다가왔지요. 소녀를 둘러 싼 마을 사람들이 제각기 소녀에게 무어라고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주로 요괴에게 희생된 가족, 지인의 죽음에 대한 원한과 소녀를 향한 증오였지요.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이제 죽이자”고. 누구랄 것도 없이 손에 쥔 것을 높이 쳐들었습니다. 그리고 지체 없이 휘둘렀습니다. 소녀는 눈을 감고 몸을 움츠렸습니다. 가녀린 팔로 몸을 가리는 것도 잊지 않았지요. 저 괭이가 몸에 박히면 얼마나 아플까요?
그 고통을 소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자신의 살이 찢어지는 느낌은 들지 않았거든요. 대신 당황한 듯 한 사람들의 목소리만 들렸습니다. 소녀는 살짝, 눈을 떴습니다.
괭이는 소녀의 코앞에서 멈춰있었습니다. 소녀의 뒤를 따라오는 것 같던 보랏빛 구름에 가로막혀서요.
11.
“여… 역시 이 년은…!”
괭이를 휘두른 사람이 겁에 질려 중얼거렸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지요. 소녀도 얼이 빠져서 자신을 둘러 싼 구름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기묘하게도, 그 구름을 자신의 수족처럼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소녀는 손을 쥐었습니다. 구름이 모여들었습니다. 소녀가 손을 펴자 다시 구름이 흩어졌습니다. 한 남자가 기합인지 비명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삽을 휘둘렀습니다. 그걸 막으려고 팔을 들어 올리자, 구름은 벽이 되어 남자를 저지했습니다. 사람들의 표정이 점점 더 일그러져갔지요.
소녀는 마치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처럼, 주변 사람들의 놀라운 시선(공포에 가득찬 시선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을 받으며 구름을 움직이는 방법을 배워나갔습니다. 팔을 휘두르면 구름도 빠르게 움직였고, 손을 뻗으면 구름도 뻗어나갔습니다.
소녀가 자신을 둘러 싼 사람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공포에 질려 벌벌 떨고 있었지요. 괴물을 바라보는 눈들. 개중에는 자신의 부모님을 끌고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가 돌아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개중에는 소녀의 가족이 요괴를 끌고 왔다고 소리 질렀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개중에는 어차피 마을에 친인척도 없으니 괜찮지 않느냐고 웃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자신을 죽이려 했습니다.
소녀는 승려가 했던 말을 곱씹었습니다. ‘어머나, 그러면’
소녀가 입술을 달싹였습니다. “복수, 해볼래요.”
12.
쿠모이 마을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소녀의 손짓 한 번에 하나의 목숨이 사라져갔지요.
소녀가 주먹을 내리치면, 사람 한 명이 말 그대로 ‘납작’해졌습니다. 소녀가 주먹을 내지르면, 또 한명이 저 멀리 내동댕이쳐지며 피를 뿜었습니다.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아낙의 등허리를 으스러뜨렸습니다. 주저앉아 우는 아이를 울지 않게 ‘달래’주었습니다. 날카로운 괭이를 휘둘러오는 남자의 배에 괭이를 박아주었습니다. 부모를 잃었던 때의 원망스러움이 다시 살아나서, 누군가를 죽일 때마다 쌓여갔습니다.
한 남자가 팔다리가 이상하게 꺾인 채 죽었습니다. “어째서야.” 한 남자의 머리는 구름에 쥐여 터졌습니다. “왜 우리 가족이어야 했던 거야?”
“너희뿐만이 아니었어! 그, 그리고… 누, 누군가 죽지 않으면…!” 지껄이던 입을 붙잡아 위 아래로 크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좀 더 말하기 쉬워졌겠죠. 그런 배려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침묵했습니다.
미쳐 날뛰는 요괴 소녀는 죽이고 또 죽였습니다. 머릿속 한 구석의 인간 소녀는 이제야 왜 요괴들이 인간을 죽이려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예? 왜냐구요?
원망스러우니까요.
13.
사람이 한명밖에 남지 않은 마을을 ‘마을’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아마 그러긴 힘들 테지요.
쿠모이 마을이었던 곳은, 이젠 소녀 한명밖에 살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니, 소녀 한명밖에 살아남지 못했다는 말이 맞는 표현이겠네요.
비릿한 피 냄새만이 산바람에 춤추는 폐허 속에서, 인간 소녀는 아무도 살지 않는(살아남지 못한) 집에서 빵을 먹고 있었습니다. 한 입 베어 먹을 때마다 눈물이 조금씩 흘렀습니다. 모든 것이 두려워졌어요. 마을 사람을 죽이던 자신도, 아무도 살지 않게 된 마을도,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알 수 없는 막막함조차도.
14.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을 ‘마을’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아마 그러긴 힘들 테지요.
쿠모이 마을이었던 곳은, 이젠 아무도 살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니,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는 말이 맞는 표현이겠네요.
비릿한 피 냄새만이 산바람에 춤추는 폐허 속에서, 요괴 소녀는 아무도 살지 않는(살아남지 못한) 마을을 떠나자고 생각했습니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웃음이 흘러나왔습니다. 모든 것이 즐거웠어요. 마을 사람을 죽이던 자신도,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인 사실도, 앞으로 더더욱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 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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