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카가다 아미다. 담임이고. 지리 가르치고. 듀얼 담당이고. 끝. 질문?”
단 열 마디로 자기소개를 끝내버리는 그녀 앞에서 나를 포함한 학생들은 질문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없네.”
그러곤 고개를 돌려버리는 그녀를 우리들은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사실 그녀가 드디어 뭔가를 할 것만 같이 굴어 기다렸는데, 그녀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도로 책상에 엎드려버려 머리가 공허해진 것도 있었다.
그런 학생들 앞에서 아미 선생은 졸고 있었다. 잠시 동안이지만 교실엔 정적이 일었다. 학생들은 어색해서 아무 말 못하고 있는 가운데, 그녀는 그런 것쯤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눈을 감고 있었다.
“근데 3교시가 뭐였더라.”
그 와중에 갑자기 선생이 그리 묻자 사람들은 웅얼거리기만 할 뿐 말을 내뱉지는 못했다.
“오늘은 개학식이라 4교시까지 오리엔테이션, 이후는 일정이 없다고 적혀있어요.”
그나마 정신을 잡고 있던 여자아이, 호시노 아야가 어김없이 나서서 대답하자 그제야 선생은 허리를 긁적이며 시간표를 쳐다보았다.
“그러냐.”
그런데 시간표를 보고도 그녀는 또 한참 엎드려만 있다가 고개를 다시 들어 물었다.
“근데 그럼 이제 진짜 할 거 없네. 뭐하지?”
그렇게 물어봐야 역시 대답은 없다는 걸 아는지, 그녀는 맹한 우리의 얼굴을 슥 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너희끼리 듀얼이나 해. 짝지하고 한 판씩.”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다시 책상에 엎드렸다. 이번엔 진짜 자려는 듯 베개를 꺼내든 것이 아까와의 차이점이었지만.
“…자기소개 같은 건 안 하나요?”
교실 어디선가 누군가 그리 묻자 선생은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아주 살짝 들고 중얼거렸다.
“알아서 친해져.”
그리고 다시 곯아떨어지는 그녀를 보고 그제야 모두들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어쩌라는 거야.”
“우리 반 망한 거 아니냐?”
웅성거리는 소리는 점차 커져, 나중에는 그냥 떠드는 소리가 되어 교실을 메웠다. 선생이라는 작자는 그 와중에도 눈을 편히 감고 있었지만. 머리카락이 적절히 귀까지 내려오는 길이였기에 소리를 막아주는 것도 한몫했겠지만, 그녀의 게으름이 얼마나 심하면 그 시장바닥 속에서도 그리 잘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얘들아, 일단 선생님 말대로 듀얼하자!”
한편 소음 사이에서 정신을 차리고 아이들을 설득하는 호시노 아야라는 아이에게서도 놀라움을 느꼈다. 선장이 방향타를 놓아버린 상황에서, 그녀가 그나마 사람들을 움직여 반을 돌아가게 하고 있었다. 물론 교실은 끊임없이 떠들썩했지만, 아까완 달리 사람들은 서로 마주보고 듀얼을 하고 있었다.
“저기, 우리도….”
그때 내 짝도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이 바뀐 것 같았다. 아까부터 말이 한 마디도 없었던 사람이었다. 이름표엔 호죠 시라누이라 적혀있는 그는 입학식 때부터 계속 조용히 앉아있기만 했던 사람이었다. 반에 아는 사람이 없는지, 그는 쉬는 시간 때도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기만 할 뿐 회색 단발을 끊임없이 매만지며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 그가 말을 거는 게 신기해 일단 말을 걸어 보았다.
“듀얼하자고?”
“선생님께서 하라고 하셨으니까….”
내가 쏘아붙이듯이 말하자 그는 다시 움츠러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손에 쥔 덱을 놓지는 않았다. 자연스레 그의 덱으로 눈길이 갔다.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카드가 ‘요도-시라누이’인 것을 보아 그는 이름같이 시라누이를 쓰는 사람 같았다.
“그래, 그럼 하자.”
덱을 책상에 올려놓는데 피식, 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상대에게 덱을 보여줄 정도로 승부에 대한 자각이 없는 사람이 상대라는 게 너무 웃겼다.
“듀얼.”
하즈키 유우
패: 5장
LP: 8000
VS (1턴)
호죠 시라누이
패: 5장
LP: 8000
“너에게 선공은 넘길게.”
내가 선공을 넘기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곤 카드 다섯 장을 뽑아들었다.
“우선 몬스터를 한 장 소환.”
그는 그리 말하며 ‘시라누이의 궁사’를 내 앞에 올려놓았다.
호죠 시라누이
패: 4장
LP: 8000
“효과 발동, 궁사의 효과로 시라누이의 은둔자를 소환.”
그리고 예상대로 그는 패에서 다른 몬스터를 한 장 더 소환했다.
호죠 시라누이
패: 3장
LP: 8000
“은둔자의 효과를 발동, 궁사를 묘지로 보내고 덱에서 유니좀비를 소환. 그리고 효과 발동….”
“좀 느리게 해주지 않을래? 상대가 할 일이 있을 지도 모르잖아?”
그의 말이 점점 빨라져 한 마디 하자. 그는 내가 말 할 줄 몰랐다는 듯 깜짝 놀라며 카드를 떨어뜨릴 뻔 했다.
“미, 미안해.”
“주의해.”
그에게 쏘아붙이곤 난 한숨을 쉬었다. 그는 내 한숨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다시 정신없이 듀얼을 진행해나갔다.
“유니좀비의 효과를 발동, 덱에서 요도-시라누이를 묘지로 보내고 유니좀비의 레벨을 1 올릴게.”
그는 부스럭거리며 요도-시라누이를 묘지로 보내고 유니좀비의 레벨이 1 올랐다는 표시를 했다. 한편 난 그가 준비하는 동안 옆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패트랩도 없는 지금, 할 게 없으니 그가 전개하는 동안 구경이라도 해볼 심산이었다. 그리고 지금 보니 F반이지만 그나마 다양한 듀얼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오른쪽의 호시노 아야는 정크도플 덱을 쓰는 듯했다. 여러 싱크로 몬스터들이 상대방을 압도하고 있었다.
“으으, 졌다.”
상대가 그리 말하자 호시노 아야는 회색 생머리를 뒤로 넘기며 활짝 웃었다.
한편 왼쪽에서는 음침한 남자가 홀로 듀얼을 하는 것 마냥 전개를 해나가고 있었다. 그의 팔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그는 아마도 흑룡 덱을 쓰는 것처럼 보였다. 개인적으로 흑룡 덱이 강하다고는 생각지 않았으나, 그와 상대의 듀얼만을 보면 흑룡이 그럭저럭 강해보이긴 했다.
그때 즈음 상대가 전개를 다 했겠다 싶어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전개는커녕, 그는 목의 붉은 펜던트를 만지작거리고만 있었다.
“왜 안 했어?”
그는 다시 한 번 놀라며 나에게 정중히 물어보았다.
“뭐, 네가 할 게 있는지 싶어서….”
“없어. 그냥 해.”
그는 움찔하며 전개를 다시 시작했다.
“그럼 계속 할게. 유니좀비와 시라누이의 은둔자를 튜닝, 전신-시라누이를 소환!”
엑스트라 덱에서 나온 하얀 색 카드는 공격력이 3천. 부담스러운 수치를 가진 녀석이었다.
“그리고 카드를 두 장 뒤집고 턴을 종료할게.”
그리고 카드를 두 장 뒤집은 후 그가 나에게 시작하라는 듯이 눈빛을 보내, 나도 천천히 카드를 집어 들었다.
“내 턴. 드로우.”
하즈키 유우
패: 6장
LP: 8000
VS (2턴)
호죠 시라누이
패: 1장
LP: 8000
내 상대와 패를 번갈아 보며 게임을 빨리 끝낼 방법을 모색했다. 처음엔 좀 놀아줄 생각이었다. 시라누이 덱을 상대해본지도 꽤 오래되었었고, 면접 때를 제외하면 이 듀얼이 이 학교에서 처음으로 신청 받은 듀얼이었으니까.
그렇지만 갑자기 맥이 빠져 더 이상 시간을 끌기가 싫었다. 물론 패가 좋기도 했다.
“일단 패를 1장 버리고 트윈트위스터를 발동.”
하즈키 유우
패: 4장
LP: 8000
푸른 눈의 아백룡을 버리고 우선 마법, 함정 카드를 제거하고 시작하기로 했다. 상대의 묘지로 간 카드는 신의 경고와 배너티 스페이스.
“이후 패에서 푸른 눈의 백룡을 버리고 드래곤 자각의 선율을 발동, 덱에서 푸른 눈의 백룡과 푸른 눈의 아백룡을 가져올 게. 체인할 거 있니?”
하즈키 유우
패: 4장
LP: 8000
내가 덱에서 카드를 가져올 때 즈음 상대는 대답 없이 눈빛을 흔들고 있었다.
“패에서 푸른 눈의 백룡을 보여주고 푸른 눈의 아백룡을 특수 소환. 그리고 푸른 눈의 아백룡의 효과로 전신-시라누이를 파괴.”
하즈키 유우
패: 3장
LP: 8000
그는 힘없이 전신-시라누이를 묘지로 옮겼지만 난 그의 반응이 어떻든 간에 개의치 않았다.
“패에서 용의 거울을 발동, 필드 위의 푸른 눈의 아백룡과 묘지의 아백룡, 백룡을 소재로 진 궁극의 푸른 눈의 백룡을 소환!”
하즈키 유우
패: 2장
LP: 8000
“체인할 거 있니?”
“…없어.”
내가 공격하기도 전에 그는 이미 본인의 카드를 치우고 있었다.
하즈키 유우 (승) VS 호죠 시라누이 (기권)
“뭐, 나름 재미있었어.”
그는 아무 말 없이 뒤돌아 앉았다. 그래서 잠시 심했나 싶긴 했는데, 뭐 어차피 듀얼이란 건 그런 거니 이내 마음에서 그런 생각을 떨궜다.
“제법이네. 운이 좋긴 했지만 두 턴에 듀얼을 끝내고.”
그런 나에게 어느새 아미 선생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뭐, 그렇죠.”
“예전에도 봤지만 역시 재미있는 녀석이네.”
그는 혼자 중얼거린 듯했는데, 나에게 그의 말이 들려와 한 번 질문을 던져보았다.
“어디선가 절 보신 적 있나보네요?”
솔직히 대회 같은 곳에서 봤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그녀는 정반대의 대답을 했다.
“면접.”
아미 선생은 짤막하게 대답하고 나에게 문 쪽으로 손짓했다.
“뭐, 이겼으니까 그냥 나가도 된다. 매점에 가든지. 기숙사에 가든지.”
그렇다기에 난 뒤도 안 돌아보고 교실에서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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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가 수정되었습니다.
친구가 글이 이상하다며 1시간 동안 제게 말들을 쏟아내는데 꼭 수정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 연재 주기는 일주일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이상은 여러가지 사정 때문에 무리입니다ㅠㅠ
> 주인공이 사용하는 덱은 보시다시피 백룡입니다.
특히 융합 백룡을 사용합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