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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ected Ones - 52
태양 아래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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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기이한 공간이었다. 코트 메달리아가 있는 곳은 새까만 감옥의 중추. 딱딱하고 어두운 주변과는 달리, 그가 있는 자리만큼은 아무것도 가림없는 새파란 하늘같았다. 그가 밟고 있는 것은 여린 잎들이 자라난 초록색 풀밭이었고, 그의 머리 위로는 해가 떠있었다. 해바라기는 키가 높게 자라 제각기 태양을 향하려 애를 썼다.
무척이나 화창하고 조용한 자리에 코트 메달리아는 격통을 느끼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어깨에서 시작해 허리까지, 몸이 양단되는 고통을 느꼈다. 그리고는 굵고 기다란 손톱이 살을 찢고 간을 빼어먹으며, 다른 장기들도 하나 둘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고통은 코트가 실제로 외부에서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와 지금 멀리 떨어져있는 누군가가 느끼는 고통이었다.
"할아범. 수고했어."
그것은 호즈 호라이즌이라고 하는 노병의 것. 그 늙은이가 몸이 반쪽나고, 간악한 여우에게 장기를 빼먹히고 있는 통증이 죽은 호즈를 대신해서 코트가 느끼고 있다.
"이걸로 살아남은 초월체는 너 하나로구나 폭시 크리스타. 간교한 것."
그는 이 자리에 있지 않은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폭시 크리스타는 자신의 부하였음에도 똑같이 동료인 호즈 호라이즌을 죽였다. 그리고 그 시체를 훼손하며 짓밟고 있다. 코트는 턱을 떨며 증오를 뱉어냈다. 그러나 그는 이내 고통을 끊어냈다. 그의 몸을 타고, 화창한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끈끈하고 검은 괴물들이 꾸물거렸다. 이것들은 신목의 힘을 흡수하고 남은 찌꺼기들.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쓰레기들과도 같은 부산물이다. 당장이라도 털어내버릴 수 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행위는 숲속에서 벌레를 두려워하는 것만큼이나 의미없다고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도착했구나. 기다리고 있었어."
공간이 너무나도 넓어, 그의 목소리가 메아리로 울려퍼졌다. 그의 목소리가 닿은 끄트머리에 새하얀 머리카락의 남자 한 명이 서있었다. 그의 이름은 초아. 그와 얼굴을 마주한 것도, 실제로 마주친 것도 그리 많지 않건만 그에게서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강한 인연같은 것이 느껴졌다.
"기다리고 있었다? 우스운 이야기군. 나와 싸우는 것을 피하고 몸을 숨긴 체, 부하들을 앞장세웠던 너다."
"후후. 그것도 모두 포함해서 기다렸다는 거야."
"네놈의 말은 무엇 하나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하늘의 빛이 점점 변해갔다. 새파란 하늘은 사라지고, 색들이 줄줄이 겹쳐 살점처럼 변했다. 꾸물거리며 살들이 접히고 커다란 눈알 몇 개가 뜨였다. 눈이 뜨인 장소의 근처에서는 이빨이 흉측한 입이 몇 개 올라왔고, 어딘가는 기형적인 괴물의 신체가 떠올랐다. 초아는 징글징글한 광경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 자리엔 너의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게 몇이나 있을까."
초아의 부하들도 초아를 뒤따라 들어왔다. 그러나 코트는 팔을 휘둘러, 초아와 그들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장벽을 만들어 격리시켰다.
"12년만에 해보는 듀얼. 느긋하게 즐겨보자고."
초아가 당황하며 뒤를 돌아보자, 바닥에서 골판지 뜯어지는 소리가 나며, 그와 코트가 서있는 땅이 새까만 건물에서 분리되었다. 첫째로 초아와 코트가 서있는 풀밭이 지상을 향해 와르르 쏟아져 내렸고, 다른이들이 서있던 감옥이 조각조각 분리되어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네놈. 무슨 짓을!"
"이렇게 높은 곳에 터를 잡아봐야 불편하기만 할 뿐이지. 우리들의 듀얼은 지상으로 내려가는 동안 즐기도록 하자고."
"추락하며 듀얼하겠다는 거냐."
"그런거지."
"미친 녀석."
소리가 바람에 파묻힐만큼, 추락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는 않았다. 다만 그들이 밟고있는 땅이 대지를 향해 내려가고 있으며 차가운 바람이 목덜미를 지나자 소름이 끼쳤다.
"시작하자. 듀얼."
"안 그래도 그럴 셈이었다."
그들의 대화를 바람이 한 번 쓸고 지나가자, 둘이 동시에 외쳤다.
"듀얼!"
초아가 덱에서 카드를 다섯 꺼냈다. 그 행동은 느긋하게 카드를 당기는 코트보다 훨씬 빨라, 자연스럽게 선공을 얻을 수 있었다.
"선공은 나다!"
그와 싸우는 것은 12년 만이다. 아주 오랜 시간. 그동안 그의 덱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의 듀얼 방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가 알던 예전과는 전혀 다른 덱일까, 아니면 여전히 같은 덱일까. 오만 잡념에서부터 시작하여, 기계로 된 그의 왼팔이 저릿하기까지 했다.
"[종말의 기사]( LV 4 / ATK 1400 ) 소환."
새까만 갑옷을 입은 기사 한 명이 나타났다. 그의 갑옷은 핏물과 오물이 묻은 채 새까맣게 굳었고, 머리는 푸석푸석한 검정색이었다. 비록 하늘에서 지상으로 떨어지고는 있다지만, 해바라기가 잔뜩 피어있는 풀밭 위에 어울리는 모습은 아니었다.
"효과 발동. 덱에서 [망룡의 전율 - 데스트루도]를 묘지로 보낸다."
"그리고 다시 소생이구나."
"그래. 라이프를 절반 지불하고 튜너 몬스터 [망룡의 전율 - 데스트루도]( LV 7 → 3 )를 묘지에서 특수 소환."
꽃밭을 해집고 나타나는 괴물 한 마리. 새빨간 핏물이 줄줄 흐르는 용 한 마리가 새까만 기사의 옆에 앉았다.
"싱크로하기에 앞서 장착 마법 [요도 죽도] 발동."
기사는 검 한 자루를 쥐었다. 날이 없는 무딘 나무칼 하나. 다만, 그 손잡이는 동물의 뼈가 썩은 채로 엉겨붙어 있어 무척이나 불쾌한 느낌을 줬다.
"레벨4 종말의 기사에게 레벨3이 된 데스트루도를 튜닝."
용이 반쯤 접질러진 날개를 펼쳤다. 펄럭거리는 소리는 둔탁하며, 주변에 자란 꽃들에게 핏물을 뿌렸다. 용은 주변이 검붉게 물들여지건말건 신경쓰지 않고, 날개짓을 하며 날아올랐다. 새까만 기사는 검을 던져놓고, 날아오르는 용의 꼬리를 붙잡았다. 하늘로 올라간 용이 울부짖으며, 새빨간 빛을 떨궜다. 기사는 그 불빛을 향해 몸을 던졌고, 활활 타올랐다. 그의 팔과 다리, 가슴과 머리가 반짝였다.
"분해되어 다시금 조립되어라. [파워 툴 드래곤]( LV 7 / ATK 2300 )"
불속에서 갑옷조각들이 달그락거리며 마찰되었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부딪히는 금속들은 새까만 색을 벗고, 새로운 색을 입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상에 도착하자, 그의 몸은 단단한 기계 갑옷을 입은 용처럼 변했다.
"묘지로 보내진 [요도 죽도]의 효과 발동. 덱에서 지속 마법 [불타는 죽도]를 가져오겠다. 가져온 [불타는 죽도]를 바로 발동하지."
[요도 죽도]의 효과는 묘지로 보내졌을 경우, 덱에서 [요도 죽도] 이외의 "죽도" 카드 한 장을 가져오는 것. 초아는 새빨간 그림이 그려진 초록빛 카드를 가져와 듀얼웨펀에 넣었다.
종말의 기사가 버리고 간 죽도에 불이 붙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미약한 불씨로, 주변에 있는 풀잎을 그슬리게 하는 것이 전부였다.
"파워 툴의 효과 발동."
초아는 덱에서 초록색 카드 세 장을 뽑아들었다.
"너는 이 카드 중에 하나를 랜덤으로 내 패에 넣어줘야 한다."
"흐음~."
초아가 뽑은 카드는 코트의 듀얼디스크에 출력되었다. 카드의 이름은 차례대로 [요도 죽도] 2장 그리고 [부러진 죽도]였다.
"전부 죽도 투성이네~."
그의 듀얼디스크에 출력된 카드들이 뒷면으로 뒤집혀 슥슥 자리를 옮겼다. 코트는 카드 셔플이 끝나자마자 가운데 카드를 찔렀다.
"그럼 이걸로."
그 카드는 [요도 죽도]였다. 초아는 죽도를 왼손에 든 패에 넣지도 않고, 바로 듀얼디스크에 찔러넣었다.
"장착 마법 [요도 죽도] 발동. 파워 툴에게 장착시킨다."
샛노란 기계룡이 풀밭에 꽂힌 죽도를 뽑아들었다. 왼손 대신 달아놓은 드라이버를 떼놓고, 죽도를 꽂아넣었다. 장비를 바꾸었음에도, 외관밖에 달라진 것은 없었다. 파워 툴의 공격력은 여전히 2300이며, 그건 초아와 코트가 가진 엑스트라 덱 몬스터의 공격력 수치 중에서도 낮은 편이었다.
"장착해도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는데."
"그래. 당장은 그렇게 느껴지겠지."
"음?"
"이것으로. 차례를 마친다."
의외로 순순히 초아는 선공 첫 턴을 끝냈다.
--- 초아 ---
몬스터 : □[파워 툴 드래곤]
마법 / 함정 : □[불타는 죽도] + □[요도 죽도]
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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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하다. 첫 턴부터 강력한 에이스 몬스터를 소환해 상대가 숨조차 못 쉴 정도로 압박해야만이 듀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초아의 행동은 너무나도 수수하다. 자기 왼팔을 자른 원수, 자기 세계를 멸망시킨 원수가 자기 눈 앞에 있건만, 그의 행동은 지나치게 침착했다.
"드로."
그 순간 조용히 끓어올랐다. 초아의 분노가 화염의 형태로 하여금 눈 앞에서 터져올랐다.
파워 툴 드래곤이 왼손 대신 달아놓은 죽도는 새빨갛게 빛나며 타올랐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하늘까지 치솟았다. 끝자락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화염은 사선으로 그였다. 비단 검이 지나간 자리만이 아니라, 그 일대 모든 것이 그 불꽃에 닿았다. 풀잎을 그슬리게 하던 것이 전부였던, 꺼진 담뱃불같던 화염이 지금은 태양처럼 뜨겁게 달궈져 코트가 서있던 땅을 강타했다. 초아와 코트 사이에 커다란 금이 갔고, 결국에는 크게 틈이 생겨 갈라졌다.
"지속 마법 [불타는 죽도]의 효과. 제 자신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죽도" 카드가 발동한 다음턴, 상대의 메인 페이즈를 스킵한다."
목이 바짝 말라왔다. 너무나도 뜨거운 불길에 해바라기는 모두 불타서 땅바닥에 떨어졌고, 파랗던 풀밭은 재를 쌓아놓은 폐허처럼 변해버렸다.
눈 앞의 것을 모두 검은 잿빛으로 바꾸고서야 용은 화염을 거두어들였다. 그가 들고있는 죽도는 당장이라도 깨질 것만 같은 주황빛을 내는 암반 속의 용암같았다.
"카드를 들어라 코트."
코트가 만들어낸 것들을 깡그리 불태워버린 초아는 그에게 낮고 중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내 왼팔을 잘라내고 내 사랑하는 이들을 모두 죽인 뒤로 12년. 난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비탄에 찬 것 같기도 한, 초아가 여태까지 낸 적 없는 끔찍한 목소리.
"네놈의 살점, 백골, 영혼까지 깡그리 태워버리겠다."
그 목소리를 들은 코트는 전신에 짜릿한 감각이 일었다. 10년 넘게 숙성시킨 분노를 방금 전 일격으로 조금이나마 맛 본 그는 뺨이 떨렸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몇 년 뒤의 머나먼 일까지. 내게는 모두 오늘같았어."
코트는 새빨간 불씨를 밟아 꺼뜨렸다.
"지금을 지금이라고 인식하게 해주는 강렬한 자극."
그는 카드를 들었다. 여섯 장의 패를.
"그래. 바로 이거다. 초아."
코트에게 있어서, 그 감각은 무척이나도 감미로운 것이었다.
……
택시 운전사 보고 왔습니다. 기숙사랑 그렇게 가까이에 영화관이 있을줄은.
그리고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네요. 여름도 다 지나간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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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야말로 듀얼---! | 17.08.29 23:5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