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깜빡여진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 달콤한 냄새가 내 후각을 깨웠다. 그리고 낯선 풍경. 처음 보는 안면들. 여긴 도대체 어디지?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하자, 강한 두통이 엄습해왔다. 아무래도 무언가에 머리를 강타 당한 듯했다.
「앗! 흰둥이가 눈을 떴어요. 코이시님!」
침대에서 일어난 나를 붉은 색의 땋은 머리를 한 여자애가 뭐라고 한다. 머리에 짐승귀가 있는 걸 보니, 여자애는 요수인듯 했다. 그리도 그 옆에 있는 다른 여자가 날 빤히 쳐다보더니 해맑은 얼굴로 활짝 웃었다.
「흰둥아! 나 알아 보겠어?」
죄송하지만, 누군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허리까지 오는 긴 흑발을 가진 여자는 아주 훌륭한 흉부장갑을 지니고 있었다. 흉부 사이에 낀 빨간 빛의 거대한 브로치가 사우론의 눈처럼 노려보고 있었다. 대단한 존재감이네. 정말로 대단해.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고 있을 때, 검은 챙모자를 쓴 여자애가 달려들었다.
「흰둥아! 어때? 이제 기억나?」
내 품에 와락 안기면서 그렇게 물어오는 소녀를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내려다봤다.
「아까부터 무슨 말을 하는건지... 그리고 여긴 대체 어디야?」
「쳇. 역시, 한 번에는 성공 못하는 건가?」
소녀는 다소 실망한 어조로 투덜대더니 갑자기 눈빛이 바뀌었다. 순간,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낀 나는 안겨 있는 소녀를 강하게 밀쳐냈고, 그와 동시에 검은 그림자가 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 그림자의 정체를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그것은 정신이 들자마자 엄습했던 머리의 통증의 원인이기도 한 둔기.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어디서 들고 온 건지 모를 벽돌이었다.
그걸 사전 통보나 주저도 없이 휘두르다니. 겉보기와 다르게 참 살벌한 소녀였다. 그건 그렇고 나 저걸로 한 대 맞고 기절 했었구나. 어쩐지 영문도 모를 장소에 눈을 뜬다했어.
「피하면 안 되지. 흰둥아!」
소녀가 볼을 부풀리며 볼멘소리를 했다. 저걸 그냥 맞아 달라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이미 한 번 강타 당했던 만큼 두 번은 곤란하다. 내 머리는 그렇게 단단한 편이 아니라 후유증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소녀는 내 사정 따윈 모른다는 듯 「우우~.」거리며 불만을 토했다.
「충격요법으로 잃은 기억을 되찾게 해주려고 하는데. 왜 저항하는 거야?」
「저기.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거든?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영문도 모를 장소에 강제로 끌고 온 것도 모질라, 벽돌로 뚝배기를 깨려고 하다니. 이건 단순 납치 사건이 아니라 살인 미수에 해당하는 큰 범죄다. 아무리 소년법에 보호를 받는다지만, 너무 막 나가잖아.
무슨 이유로 이러는 건지 묻는 질문에 소녀는 삐친 얼굴로 고개를 훽 돌렸다. 순순히 대답해 줄 생각이 없다는 건가. 도무지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만 하는 소녀를 놔두고, 나는 구경만 하고 있는 공범자에게 눈을 돌렸다.
「미안한데, 설명 좀 해줬으면 하는데.」
그런 내 부탁에 둘 중, 땋은 빨간 머리가 미간을 좁히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 막지 못해서 죄송해요. 저희는 애완동물이라도 주인을 거역하지 못하거든요.」
애완동물? 제대로 사람처럼 생긴 요수인데, 그런 취급을 받는단 말이야? 지저의 인권. 아니, 요권은 대체 어떻게 되먹은 거야. 아무래도 나는 요권의 사각지대를 목격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나도 그 사각지대에 속해버린 모양이고.
곤란한 상황에 쳐했다는 사실에 나는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 분명 벽돌에 가격 당해 기절 했었지? 방금도 그럴 뻔 했고.」
「코이시님은 종잡기 힘든 분이라. 죄송해요!」
「아니, 사과만 하지 말고. 네 주인 좀 어떻게 해달라니까.」
그렇게 죄송하면 나 좀 여기서 벗어나게 해줬으면 했다. 그러나 애완동물인 그녀는 그럴 권한이 존재할 리 없었고, 그저 미안함만 느끼는 게 고작. 좋은 말로 설득한다는 선택지조차 없어 보였다. 이렇게 되면 내가 직접 설득할 수밖에 없나.
「이봐요. 이름이.. 코이시랬나?」
「응. 코이시는 코이시야!」
「그래, 코이시양. 아까부터 날 흰둥이라고 하던데, 그건 왜야?」
「흰둥이니까!」
뭔가 대화가 성립되지 않는 느낌이다. 이래서야 설득이 가능할까? 흉악한데다 사차원인 소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고민하던 나는 땋은 빨간 머리에게 도움을 구하는 시선을 보냈다.
땋은 빨간 머리는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수긍하고 입을 열었다.
「그게 말이에요. 지난겨울에 그쪽이 지저에 떨어졌을 때의 일이에요. 그때의 충격으로 기억을 잃은 그쪽이 한 동안 여기서 애완동물로 지냈었거든요. 흰둥이라는 이름으로.」
간결하면서도 대강 이해가 되는 설명이었다. 그러니까, 기억이 없는 공백이었던 그 기간 동안 나는 저 소녀의 애완동물이었단 건가. 이게 무슨 일이야. 내가 애완동물이었다니!? 긍지 높은 백랑텐구가 한낮 애완동물이 되었었다 이 말인가!
그것도 흰둥이라는 애완견 같은 이름으로.
이건 절대 알려져선 안 될 흑역사였다. 만약, 이 사실이 부대장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면 아마 죽을 때까지 놀림 당할게 분명했다. 으아아아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오장육부가 뒤틀린다. 그 동안의 나는 대체 어떤 생활을 했던 거야? 으으으 쪽팔려.
「어디 아파 보이는데, 괜찮아?」
「정신적인 대미지가 조금..」
코이시양이 내 용태를 걱정하며 묻는다. 나는 솔직하게 괜찮지 않다고 말했다. 그때, 거대 흉부에 파후파후 당하고 있는 사우론의 눈이 다가왔다. 몇 번을 봐도 압도적인 존재감이다. 그런 참한 가슴이 출렁이며 말했다.
「그러면 내가 덜 아프게 호- 해줄 게!」
이게 무슨 착한 서비스란 말인가. 참한 가슴이 호- 해준다면 나야 땡큐지. 그러나 지금은 그런 서비스를 받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아. 이제 괜찮아 졌어.」
흑역사에 대해 계속 괴로워해봤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참한 가슴을 가진 장발의 여자가 왜인지 몰라도 조금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도 호- 를 해주고 싶었던 건가. 가슴이 큰 만큼 모성애가 넘쳐 나는 처자구나. 나는 몸을 돌려 바닥에 두 다리를 내렸다.
「대강 어떻게 된 건지 알겠어.」
그리고는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정리했다.
코이시양은 지금의 나를 기억을 잃었을 때의 나와 혼동해서 이런 납치극을 벌인 거군. 그렇다면 그 오해부터 풀어야 되겠군.
「일단, 코이시양이 잘못 알고 있는 게 있어. 나는 흰둥이와 동일인이지만, 흰둥이가 아니야.」
「흰둥이면서 흰둥이가 아니야? 코이시는 어려워서 잘 모르겠어.」
내 설명이 어렵게 들렸는지, 코이시는 영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코이시를 이해시키기 위해 나는 좀 더 자세한 부연을 했다.
「그래. 흰둥이는 내가 기억을 잃었을 때의 모습이고, 지금은 기억을 되찾은 백랑텐구인거지.」
「그러면 흰둥이는? 어떡해야 흰둥이가 되는 거야?」
「흰둥이는 이제 없어.」
나는 일말의 가능성에 매달리는 코이시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흑역사 덩어리인 흰둥이는 기억을 되찾아 본모습이 되었습니다.' 같은 얘기로 코이시양을 이해시키려 했으나, 그녀는 좀처럼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듯했다.
뭔가 불만이 가득한 얼굴인 코이시양이 오른 팔을 번쩍 들었고, 그 손에는 벽돌이 들려져 있었다.
「그럼, 다시 기억을 잃으면 흰둥이가 되는 거지?」
코이시양은 그런 위험한 발언을 하며 나를 노려봤다. 이거 정말로 대책 없는 아가씨네.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소녀를 어떻게든 설득 시켜보려는 나의 노력에도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당장이라도 내 뚝배기를 깨려고 하는 코이시에게 나는 다급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소용 없다고 했잖아! 그런다고 흰둥이는 돌아오지 않아.」
「왜? 왜 왜 왜 왜?」
안 그래도 무서운 애가 소름 끼치게 공포스럽다. 차갑게 얼어붙은 얼굴로 추궁하는 코이시는 그야말로 호러였다. 공포심 때문에 말문이 막힐 뻔 했으나, 최대한 냉정을 유지하며 침착하게 그 이유를 설명했다.
「다시 기억을 잃는다 해도 그건 기억을 잃는 나일뿐이지, 네가 아는 흰둥이가 아니니까.」
「우웅~ 잘 모르겠어. 역시, 충격요법을 쓸래.」
틀렸나.
이렇게 까지 말이 안 통할 줄이야. 아무래도 코이시양을 설득하는 건 불가능한 듯했다. 그럼, 이대로 코이시양에게 뚝배기가 깨져 기절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지금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도망쳐야 하는 걸까.
대화를 통해 해결한다는 선택이 제외된 지금 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빨리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무자비한 벽돌이 내 정수리를 강타하고 만다. 최악의 경우, 기억 상실을 동반한 영구적 뇌손상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나는 남은 한 가지 수인 도주를 택해야만 했다.
무작정 달아나기 앞서 주위를 살피며 도주 경로를 확인한다. 탈출구는 복도로 이어지는 방문과 밖과 이어진 창문. 가장 빠른 경로는 창문이지만, 그 만큼 잡힐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방문을 통해 달아나면 완전히 벗어나는데 까지 시간이 걸린다.
어느 쪽도 쉽지 않네.
망설이는 동안 벽돌을 쥔 손이 머리 뒤에 위치했다. 이 상태로 힘을 줘서 내려 찍을 생각이겠지. 더 이상 머뭇거리고 있을 수 없어진 나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일어섰고, 동시에 방문이 벌컥, 열렸다.
문을 열어 재낀 누군가가 우리들을 향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큰일이야! 지금 오니들이 이리로 향해 오고 있어!!」
지금 보통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는 듯이 그의 표정은 여간 심각한 게 아니었다. 그 소식에 땋은 빨간 머리의 눈이 커지더니, 동공을 이리저리 굴리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코이시양과 참한 가슴은 태연해 보이지만, 심각한 상황인 게 맞겠지. 그 오니가 몰려온다고 하니까.
오니가 몰려온다.
이거 존나 위험한 상황이잖아! 이게 또 뭔 일이람?
*
한편, 루이드는..
8척의 오니에게 끌러온 곳은 옅은 등불 하나가 조명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인 어둡고 음습한 창고 같은 방이었다. 루이드는 소파에 누워 그 거구에 짓눌린 채 양 손을 머리 위로 포박 당해 있었다.
이제부터 자신은 이 흉악한 ㅁㅁ귀에게 범해진다. 그 끔찍한 사실에 루이드의 두 눈엔 투명한 눈물이 고여 있었다.
저항 하려고 했다. 자신이 지닌 모든 지식을 이용해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시도들은 이 거구의 ㅁㅁ귀에겐 통하지 않았다. 아니, 시도조차 하지 못한 채 이 창고 같은 장소에 감금당했다는 것이 옳으리라.
원인은 찻속에 든 수면제 복용.
그가 운영하는 풍속점에 들린 루이드는 틈을 타 벗어날 생각이었지만, 그 전에 그가 탄 차를 얻어 마셨고, 이 이후 잠시간 정신을 잃었었다. 그리고 친절을 가장한 그의 흉계에 의해 이곳으로 옮겨진 루이드는 바로 정신을 차리고 저항했다. 마법사답게 마법으로.
그러나 어째서인지, 마법은 발동되지 않았다. 루이드는 그 원인을 바로 알아챘다. 자신이 깔고 누워있는 소파에 요술이나 마법 발동을 막는 특수한 술식이 걸려 있다는 것을. 즉, 수면제에 당해 소파로 옮겨졌을 때, 모든 수단을 봉쇄당한 것이었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범하려는 ㅁㅁ귀의 고심이 드려난 수법이었다. ㅁㅁ귀, 텐바쿠는 몸부림치는 루이드를 한층 더 짓누르며 하지 말라며 애원하는 그의 입을 자신의 입으로 막았다. 기분 나쁜 혀의 침입에 루이드는 사지를 비틀며 괴로워했다. 이윽고, 진득한 입맞춤을 끝낸 텐바쿠가 그 입을 아래로 옮겨 루이드의 몸 구석구석을 흡입하며 빨아댔다.
쭈압! 쭙! 쮜쮭! 짹! 찌쮭!
아기 새의 지저귐이 공간을 가득 메운다.
점점 아래로 내려가는 입맞춤에 루이드는 마지막으로 애원했다.
「엉엉. 제발 좀 그만 둬 주세요. 저 노말이란 말이에요!!」
허나, 그런다고 그만 둘 거였으면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을 것이다. 텐바쿠에겐 그런 비명과도 같은 외침은 오히려 흥분을 부추기는 조미료와 마찬가지. 마침내 입이 고간까지 내려간 텐바쿠는 방해되는 바지를 찢어 버리고 중요부위를 가리는 천 쪼가리에 뺨을 갖다 대며 질척하고 더러운 미소를 지었다.
「취향이란 바뀌는 법이란다. 아가야.」
그리고 팬티를 벗겨 루이드의 마지막 남은 저항심마저 짓밟아버린 텐바쿠는 자신도 팬티를 벗어버림으로서 태초의 모습이 되었다. 이어 하나가 되는 작업에 착수한다.
루이드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호모강1간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