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치들과 떨어져 홀로 지저 마을을 배회하던 루이드는 후회가 막심했다. 솔직히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갔을 뿐이었는데, 마피아 항쟁 같은 일에 끼어든 격이 될 줄이야. 도중부터는 자신도 분위기에 휩쓸리긴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높아진 텐션을 주체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래서 사태파악을 하자마자 빠진 것이지만.
거기서 더 머뭇거리지 않고 빠르게 결단을 내린 것은 다행이나, 문제는 지금 여기가 어디냐는 것이었다. 분명, 광분한 요괴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최대한 우회해서 달아날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와 버린 듯했다.
이러다가 지상으로 돌아가기 전에 발각될지도 모르겠어. 지금 헤매고 있는 거리엔 자신이 타이치들과 한통속이라는 사실을 아는 요괴가 없는 듯 했지만,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순 없었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 하는데.
「도대체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 가잖아!」
지저마을은 어디를 가더라도 거기가 거기 같다는 것이 루이드를 혼란시켰다.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오래된 골목길을 걷듯이 지저의 거리는 외지인인 그에겐 복잡한 미로와 같았다. 에도시대를 방불케 하는 건물들이 오밀조밀 밀집되어 있는데다 2층, 3층 씩 쌓여져, 길을 사이에 두고 붉은 등이 달린 줄들이 이리저리 거미줄처럼 얽혀 방문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어딜 가도 그런 식의 건물들뿐이라 방향감각은 물론, 왔던 길로 돌아가는 것도 쉽지 않은 거리.
루이드는 자신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또 어디로 가야만 벗어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한 마디로 길을 잃은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대로 정처 없이 걷는 것뿐. 걷다보면 언젠가는 밖으로 나갈 수 있겠지. 넓어봤자, 도쿄보다 넓겠냐. 그런 믿음으로 걷고 또 걷고 계속 걸었다.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벌써 몇 십 분을 걸었는데도 같은 광경만이 보였다. 어쩌면 똑같은 장소만 맴돌았는지도 모른다. 마을을 벗어나기도 전에 지칠 판이라 초조해졌지만, 루이드는 이럴 때야말로 침착해야 한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조금 쉬고 나면 좋은 방법이 떠오르겠지.」
다리에 피로가 쌓이기도 했고. 루이드는 어떤 가게 앞에 놓인 마루에 걸터앉아 조금 휴식을 취했다. 초여름 수준으로 더워 땀도 나고, 계속 긴장 상태로 있다 보니 여러모로 지친 그는 그렇게 한 동안 멍하니 지나다니는 행인들을 관찰했다.
시비가 붙었던 요괴들은 하나 같이 흉악했는데, 제법 예쁘게 생긴 여자들도 많잖아. 특히, 저 애는 좀 취향일지도. 그렇게 여자들의 다리를 음흉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품평하던 그는 불헌듯 미치지 못했던 생각이 떠올렸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길을 모르겠다면, 날아서 확인하면 되는 것을. 어째서 그런 간단한 걸 생각해내지 못했던 건지, 루이드는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아 부끄러워졌다. 이래선 등신이라고 놀림 당해도 할 말이 없잖아.
초조한 나머지 머리가 굳었던 모양이다. 루이드는 떠오른 김에 바로 실행하기로 했다. 엉덩이를 일으켜 세우고 마법을 행사하려는 찰나.
「저기 너. 혹시, 이곳이 처음이니?」
어깨와 다리가 드려난 살짝 풀어진 기모노를 입은 여성이 그에게 다가왔다. 요염해 보이는 미녀라 루이드는 살짝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네. 그런데요?」
「그렇구나. 어쩐지 힐끔힐끔 쳐다본다 했어.」
여자가 후훗, 하고 웃었다. 루이드는 여자가 갑자기 왜 가만히 있는 자신에게 말을 건 것인지 의문이었지만, 그녀의 웃음에 바로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렇군. 나한테 작업을 거는 중이구나.
역헌팅이라니. 루이드는 처음 겪어보는 일에 긴장되긴 했지만, 이것도 좋은 기회라 보고 그녀에게 어울리기로 했다.
「아..아하하.. 들켰나요? 그쪽이 너무 미인이라 저도 모르게 시선이 간 모양이네요.」
「후후후. 너 정말 아첨을 잘하는 구나. 맘에 들었어. 특별히 서비스 해줄게.」
서비스라니? 뭘?
아니, 물어 볼 것도 없었다. 자신의 능수능란한 화술에 마음이 사로잡힌 거다. 쉽게 말하자면 원나잇각이 뜬 거지!
루이드는 너무도 알기 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야한 짓을 기대하는 흑심이 그대로 드려나 있었지만, 여자는 개의치 않아하며 그의 손을 잡았다.
「옷!? 진짜!? 아무리 그래도 진도가 너무 빠른데요!」
「순진한 척은. 너도 빠른 게 좋잖니?」
「그래도 이렇게 픽업하듯이 하는 건..」
루이드는 속으로는 내심 기대하면서 여자의 손에 이끌러 으슥한 골목길로 들어갔다. 그리고 누구의 눈도 닿지 않는 그곳에서 여자는 자신의 기모노를 풀어 헤쳤다.
「설마, 여기서?」
「뭐 어때? 그러는 너도 참기 힘들어 보이는데?」
여자의 손길이 훑고 지나간 루이드의 고간은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있었다. 전기처럼 흐르는 아찔한 감각에 루이드는 몸을 떨며 침을 꼴깍 집어 삼켰다. 여기서 저런 미녀랑 하게 되다니. 이런 경험 난생 처음이자,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후회 중이었는데, 설마 이런 행운이 찾아오다니. 역시, 히데오를 따라온 것이 정답이었나 보다. 루이드는 이제부터 하게 될 달콤하고 아찔한 경험에 점점 격한 흥분상태가 되어갔다.
뇌내의 도파민이 분비되고, 콧김이 거칠어져 간다. 기모노가 땅바닥에 떨어졌고, 여자의 하얀 속살이 공개되었다. 봉긋하게 솟아있는 아름다운 가슴에 홀린 루이드는 떨리는 손길로 그녀의 양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촉촉하게 빛나는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치려는 순간.
응?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다.
아까부터 들려오는 키긱키긱, 거리는 소리와 하복부에 느껴지는 벌레가 기어오르는 감각. 루이드는 순간, 멈칫하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왜 그래? 빨리 안 할거야?」
재촉하는 여자의 말을 무시하고, 관찰한 그녀의 하반신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언제 탈바꿈한 것인지 매끈하던 여자의 다리는 빳빳한 털이 돋아난 절지생물의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 다리가 연결된 하반신은 거미의 몸이었다. 생식기가 붙어 있어야할 부분에는 먹잇감을 씹어 먹으려는 흉악한 거미의 입이 달려 있었다.
「오우 쉣! 씨바알-!!」
루이드는 기겁하며 여자를 밀쳐냈다. 그리고 창백해진 얼굴로 뒤로 물러났다. 하마터면 속을 뻔 했어. 어쩐지 상황이 좋게만 흘려간다 싶더니만.
「날 꾀어내서 잡아 먹을 속셈이었구나!」
만약, 눈치 채는 것이 조금만 더 늦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루이드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찔했다. 그래도 실체를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지 않은가. 자신을 적대하는 그에게 여자는 크게 뜬 눈으로 응시하다가 이내 큰 소리로 광소했다.
「아하하하핫-! 뭔 소리니? 내가 널 왜 잡아 먹어?」
「그.. 거미입으로 잘근잘근 씹어 먹을 생각이잖아요!」
「어머, 얘도 참. 내 본모습이 그렇게 싫어? 편견 없이 몸을 맡기면 두 번 다시 보통의 여자로는 만족할 수 없게 만들어 줬을 텐데.」
먹을 생각 없다는 것은 아무래도 사실인 듯 했다. 여자는 순수하게 루이드와 야한 짓을 할 생각이었고, 단지 본모습을 드려냈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상의 존재에겐 거미의 하반신은 큰 거부감으로 다가온다. 미적 감각이 인간에 가까울수록 혐오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줄곧 지저에서만 생활해 온 여자는 그런 루이드가 이해가지 않는다는 듯 눈썹을 세우고 불만을 내비쳤다.
「아까까지 좋아해 놓고 내 하반신을 보자마자 이러는 건 너무 하잖니? 나도 섬세한 여자라고?」
그러나 성적 취향이 일반 오타쿠와 별반 다르지 않은 루이드에겐 그녀의 하반신은 생리적으로 받아 들일 수 없는 혐오스럽기만 한 것이었다. 루이드는 손사래하며 뒷걸음질 쳤다.
「기분 나쁘게 할 생각은 아니지만, 그건 도저히..」
특히, 키긱키긱 소리를 내는 거미입 만큼은 견딜 수 없었다. 저런 흉악한 걸 보고도 아무렇지 않다면 그건 미치광이이거나 초월적 가능충일 것이다. 루이드는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죄송했습니다!」
나름 마계에서 마법사로 이름이 알려진 그였으나, 저런 것엔 면역이 없는 관계로 도주를 택하고 만 루이드였다. 완강히 거부당한 채 남겨진 여자는 심술이 난 듯 양 볼을 잔뜩 부풀리고 툴툴댔다.
「뭐야 쟤. 너무 무례하잖아!」
*
으슥한 골목길에서 벗어난 루이드는 무언가 쫒기 듯 달리다가 어느새 온통 붉은 거리에 들어섰다. 지저마을의 거리는 어딜 가나 비슷했지만, 이곳만큼은 어딘가 다른 분위기를 내포하고 있었다.
루이드는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갈까 고민하다가 아까 거부하고 도망쳤던 거미여자가 떠올라서 그냥 가던 길을 걷기로 했다. 뭐, 아까같이 미녀가 접근해 오더라도 쉽게 넘어가지 말아야지. 그렇게 결심하며 걷고 있던 그에게 무수한 시선이 향해졌다.
시선에 담겨진 것은 처음 보는 자를 향한 호기심.
그리고 『그』에게 선택 당했다는 것에 대한 동정.
아까부터 미녀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에 루이드는 기껏 다짐한 결심이 흔들릴 것 같았지만, 거미여자의 흉악한 아랫입을 떠올리며 참아냈다. 이번에는 경솔하게 넘어가지 않을거야!
루이드는 여자들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바닥을 보며 걸었고, 그 결과 전방 부주의로 정면에서 다가오던 행인과 가볍게 부딪히고 말았다.
머리를 행인의 복부에 박은 루이드는 그 충격으로 뒤로 살짝 밀려났지만, 행인은 그 자리에서 꿈쩍하지 않았다. 뭔가, 엄청 큰 사람이네. 자신의 머리가 겨우 복부에 위치할 정도라니. 필시 키가 무지막지한 요괴일거라 생각하며 고개를 든 루이드는 행인의 험상궂은 외모에 굳어졌다.
단순히 키만 큰 행인이 아니라 설화상의 나오는 오니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무서운 인왕상의 얼굴이 미소를 그렸다.
「일행이랑 떨어져서 길이라도 잃었나?」
친절하게 말을 걸어왔지만, 루이드에겐 무섭기만 했다. 아니, 저렇게 웃는 쪽이 훨씬 무섭다. 루이드는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뇨.. 그냥 지저에 온 김에 구경 좀 하느라고..」
아무렇게나 둘려대면서 벗어나려 했지만, 그의 눈에 든 이상 루이드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마. 그라믄, 내가 관광 시켜주꾸마. 대신, 나랑 좀 놀지 않을래?」
「뭐.. 뭐하고 놀면 되요?」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루이드에게 『그.』 텐바쿠는 씨익, 입가를 찢어 올리고 반호를 그린 눈으로 말했다.
「기분 좋은 땀을 흘리는 놀이! 니도 마, 이런데 올 정도니까. 뭘 말하는지 알겠제?」
불길함을 느낀 루이드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고, 그럴 때마다 텐바쿠도 한걸음씩 앞으로 다가왔다.
갑자기 친절하게 대해 오는 흉악한 떡대의 오니가 자신과 놀자고 한다. 게다가 그 놀이가 땀을 흘리는 것이며 이 거리 자체가 유흥가로 보인다. 오니는 검은 고무팬티 하나 입고 있을 뿐인 나체나 다름없는 모습이다.
가장 결정적으로 팬티 한 장에 가려진 고간이 어째서인지 공격적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바보라도 알 수 있는 상황에 루이드는 강한 위기를 느끼고 도망치려 했지만, 그걸 용납할 오니가 아니었다.
「어서 나랑 한판 하자!」
어느 사이엔가 손목을 잡힌 루이드는 저항할 틈도 없이 그에게 끌러가고 있었다. 젠장! 거미를 피했더니 이번엔 흉악한 게이냐고! 다시금 몰러오는 막심한 후회에 루이드는 속으로 절망의 비명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