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우지를 눈앞에서 놓치고 만 타이치는 그를 납치했던 소녀를 떠올렸다. 묘하게 인상이 옅지만, 적어도 요괴의 산에 상주하는 요괴는 아닐 거라 직감했다. 그리고 요괴인 소녀는 범상치 않았다. 자신을 상대로 소우지와 함께 종적을 감춘다는 것은 어지간해선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러면 어딘가의 대요괴인가.
그리 보는 게 타당하겠지만, 타이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소녀가 대요괴라 불리는 존재라면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대요괴가 가진 존재감이란 감을 갈고 닦은 그가 아니라도 알 수 있을 만큼 압도적인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소녀는 대요괴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히 강한 요괴였다. 아마, 어중간한 텐구보다 강할 것이다. 그런데도 소녀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것은 최근 들어 환상향으로 이주한 요괴이거나 지저의 요괴일 것이다.
타이치는 최근 이주해온 요괴가 홍마관 세력뿐이라는 것을 생각해서 후자에 무게를 실었다. 산에 지저로 통하는 구멍이 생긴 이후로 지저요괴들이 자주 출몰하게 되었다는 것을 비추어 볼 때,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판단을 마친 타이치가 한 행동은 소우지를 구하기 위한 독자적인 준비였다. 원래라면 상급자에게 동포의 납치를 알려야 했지만, 지저와 연관되기 싫어하는 상층부의 성향을 미루어 볼 때, 소극적인 태도만 취할 것이 분명했다. 제대로 된 수색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스스로 나서기로 한 것이었다.
*
문을 강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여느 때처럼 방에 틀어박혀 게임 삼매경인 히데오의 귓가를 때렸다. 이런 시간에 자신의 집을 찾아올 인요는 없을 텐데, 게임에 집중하기 힘든데다, 누가 문을 두드리는지 궁금해진 히데오는 느슨해진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손님을 맞이하려 나갔다.
「캡. 지금 큰일. 소우지 납치 당했어.」
문을 열자마자, 심각한 사실을 알려오는 흑인이 서있었다.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얼굴이지만, 히데오는 그가 마사다 타이치라는 바깥세계로부터 돌아온 카라스텐구임을 떠올리고는 자세한 내막을 물었다.
「소우지가 납치 당해? 어디 자세하게 말해 줄 수 있겠나?」
「모자 쓴 이상한 Girl한테 끌러갔다. 지저로. thets for sure.」
「그 사실을 다른 텐구에게도 알렸나?」
「No. 알려봤자, 도움 안 돼. 방해만 할 거다.」
「나한테 알린 건 내게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군.」
「Yes! 캡. friend. 반드시 도와줄 거라고 생각한다.」
말투가 거슬리긴 했지만, 타이치가 진심이라는 것을 알아챈 히데오는 고개를 숙이고 고민했지만, 망설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들어 타이치와 시선을 나누었다.
「상부에서 아직 지저의 출입을 금하고 있기 하지만, 친구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지. 지저는 위험한 곳이다. 최대한 빠르고 신속하게 수색해야 한다. 그럴 각오는 되어 있겠지?」
「준비 되어있어. 캡. 구하려 가자!」
「무슨 일이야?」
둘의 대화가 신경 쓰인 루이드가 뒤에서 끼어들며 물었다. 그리고 타이치를 보고는 눈을 크게 뜨며 깜짝 놀라했다.
「흑인?! 자..잠깐. NBA선수가 왜 여기 있는 건데!」
흑인이 시카고 불스 유니폼을 입고 있으니, 그렇게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히데오는 놀란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설명을 하려 했지만, 루이드의 행동이 빨랐다. 품속에서 꺼낸 펜과 수첩을 타이치에게 내민 루이드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말했다.
「아임 시카고 불스 팬! 플리즈. 싸인 오케바리~!」
콩글리쉬 수준의 어설픈 영어를 써가며 싸인을 해달라는 그의 모습에 히데오는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었다. 보통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아무런 의심 없이 싸인을 부탁하는 루이드도 루이드지만, 그렇다고 넙죽 싸인을 해주는 타이치도 만만치 않았다.
심각한 얘기하는데, 뭐하는 짓들인지.
헛기침을 내뱉은 히데오는 서로 초면인 둘을 짤막하게 소개했다.
「음.. 이쪽은 내 집에 얹혀 살고 있는 빈대인 루이드.」
설명이 마음에 들지 않은 루이드가 노려봤지만, 히데오는 신경쓰지 않고 타이치를 소개한다.
「그리고 여기, 하얀 가루를 즐겨 흡입할 것 같은 흑인은 카라스텐구인 마사다 타이치다. 생긴 건 이래도 텐구이니 결례를 범하지 않도록 해라.」
그렇게 말하는 당신도 결례를 범하고 있는 것 같은데. 루이드는 그런 말이 목구멍을 타고 턱밑까지 올라왔지만, 타이치의 얼굴을 보니 자신 또한 결례를 범할 것 같아 참았다. 저 얼굴로 카라스텐구라는데, 어떻게 평범하게 대할 수 있을까. 머릿속에는 온갖 니거드립으로 가득차고 있었다.
「니혼고 와카리마쓰까?」
카라스텐구라는 소리를 들어도 루이드는 그를 외국인처럼 대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외견이 너무 강렬한지라.
「와카리마쑤-! me 요카이 산 출신! 흑인 No, 백인 No, Wolf NoNo! Im CRAW! 진짜로 최고로 멋진 텐구! REAL 카라스텐구! My is name 마사다 타이치. 요로시쿠-.」
어깨를 들썩이며 리듬을 타며 말하는 그의 랩. 아니, 뭔 놈의 자기소개가 이리도 흥겨운지, 루이드는 저도 모르게 리듬에 맞춰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그의 페이스에 말려든 루이드도 그처럼 자신을 소개한다.
「Yo-! 마계최고 명문가. 명문 중의 명문. 우월한 혈통의 마법사. 그게 바로 나-. 루이드 디드 레이시스-. 나를 봐-. 지성이 느껴지지. 나를 봐-. 힘이 느껴지지. 신비로운 판타지. 그것이 바로 위대한 대마법사. 아크 위저드의 증거-!」
「고만해 ㅁㅊㄴ들아!」
히데오가 버럭 소리를 질려 래퍼가 빙의한 둘을 말렸다. 한시가 급한데, 장난이나 치고 있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초면이면서 쿵짝이 맞은 걸 보면, 둘이 서로 비슷한 성향인 것 같았지만, 그보다 소우지다.
「내 부하. 아니, 친구가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했다는데, 놀고 있을 때야?」
「Oh-. ssory! My 친구 소우지 구해야 되. 루이드 너도 도와줘!」
「... 야레야레 어쩔 수 없구만.」
분위기에 휩쓸린 탓이긴 하지만, 루이드는 자신도 한몫 거들기로 했다.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았다지만, 그 역시 소우지의 친구 아닌가. 부대장과 그의 친구의 협력을 얻어낸 타이치는 그들과 함께 지저로 통하는 구멍으로 향했다.
*
한 달 전, 요괴의 산 중턱에 생겨난 커다란 구멍. 지저로 통하는 구멍은 직경 10미터가 넘는 크기를 자랑했고, 지금은 지저와 지상을 왕래하는 출입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최소 텐구 한명 정도는 지키고 있어야 할 그곳에는 다른 누군가들이 점거하고 있었다.
총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현대적인 전투복을 입은 군인. 그들은 접근해오는 타이치를 알아보고 하늘 높이 손을 흔들었다.
「캡틴!」
「오-, 윌리!」
자신을 캡틴이라고 부른 군인의 이름을 입에 담으며 타이치는 그들 무리와 합류했다. 그는 이어 자신을 따라온 히데오와 루이드를 소개했다.
「저쪽은 백랑텐구 부대장. 그리고 저쪽은 매지션 루이드.」
이곳의 풍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근대적인 군인의 모습에 히데오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대체 저놈들은 누구야? 언제 어디에서 들어온 거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마치, 오랜 전우를 재회한 듯해 보이는 타이치이게 다가간 히데오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이, 타이치. 저놈들은 대체 누구야?」
「소우지 구하기 위한 별똥대. my Special mercenary.」
그의 말대로 군인들은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내포하고 있었다. 든든해 보이는 조력자이긴 하나, 백랑텐구들의 대장인 이상 추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으음... 그런가. 근데, 어디에서 온 놈들이야. 정체가 뭐냐고?」
「내 부하들. Me 바깥세계, Yokai헌터했어. 그때 부하들.」
「뭐라고 하는 지 잘 모르겠군.」
타이치의 설명은 그의 언어구조상 명확한 한계가 있었다. 그에게서 만족할 만한 설명을 듣기 힘들 거라 판단한 히데오는 시선을 윌리라고 불러진 군인에게 돌렸다.
「나이스 미투. 캔 유 스피치 재패니즈?」
「일본어 잘 합니다. 편하게 말하세요.」
생긴 건 영락없이 서양인이면서 일본어가 유창했다. 환상향 토박이인 타이치가 유창하지 못한 게 더 이상했지만, 어쨌든 대화가 통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히데오는 편하게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했다.
「그런데, 당신들 여긴 어떻게 들어온 겁니까?」
「저희들은 캡틴을 따라 들어 왔습니다. 어떻게 오게 된 건지는 저희도 잘 모릅니다.」
「그러면... 당신들 뭐하시던 분들이죠?」
「에.. 캡틴이 신용하는 당신에게만 밝히는 건데, 저희는 초자연미지생명체. Unknown섬멸을 위한 비밀특수전담부대입니다.」
초자연미지생명체. 아마 요괴를 비롯한 괴이를 뜻하는 단어이리라. 그런 자들을 섬멸하는 부대라. 히데오로서는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리고 그것은 타이치의 이력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의도적이었는지는 모르나 그가 그들의 존재를 대텐구를 비롯한 상층부에 숨겨 왔다는 것이 되었다.
어째서 자신의 이력을 날조하면서 까지 숨겼던 거지? 히데오는 군인에게 소총을 건네받는 타이치를 의심의 눈초리로 노려봤다. 단순한 흑인이 아니었단 건가. 그는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비밀을 안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드는 의문이 있었다.
텐구의 상층부. 텐마님을 속이면서까지 숨겨왔던 부대를 어째서 지금 자신에게 공개한 것일까? 히데오는 도무지 그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설마지만, 그만큼 소우지를 구출하는 일을 우선하고 있는 건 아닐까? 숨겼던 사실마저 밝힐 정도로.
만약, 사실이라면 그는 소우지를 진정으로 형제(Bro)처럼 생각한다는 거겠지. 히데오는 무엇이 진실이든 간에 그간 타이치가 숨겨온 그들의 존재에 대해 함구하기로 했다.
소총을 손에 쥔 루이드가 올라간 텐션을 주체하지 못하고 람보 흉내를 내고 있었다. 히데오는 그런 모습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뱉는다. 준비를 마친 타이치가 부대원들에게 뭐라고 짧게 브리핑을 했고, 마지막으로 다함께 주먹을 쳐들어 구호를 외쳤다.
그리고 본격적인 지저 탐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히데오는 윌리에게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을 물었다.
「당신들 역시, 평범한 인간은 아닌 거지?」
윌리는 쓴웃음을 짓더니, 이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괴물을 잡으려면 괴물이여야 한다는 이론 하에 창설된 부대라서.」
캡틴인 타이치만 하더라도 텐구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아무리 근대화기로 무장했다 하더라도 상대는 인간을 초월한 존재이니 말이다. 창설 이념을 떠나서 그들이 내포한 범상치 않은 기운은 요괴의 것. 즉, 요력이었던 셈이다.
「저만 하더라도 뱀파이어. 흡혈귀니 말입니다.」
윌리는 그렇게 말하더니 검지로 자신의 입가를 당겨 다소곳하게 자리 잡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려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