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다리를 잡고 뜨거운 숨을 뱉어내던 세이코가 너무 징그럽게 느껴진 나머지, 전력으로 도망쳐버린 마리사였지만, 진정되고 나니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온 마리사는 다시 찾아갈 용기가 생기지 않아 제정신을 찾은 세이코가 돌아오기를 마냥 기다렸지만, 그녀는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몇 시간은 지났을 것이다. 하늘은 이미 어두컴컴한 밤의 장막이 쳐져있다. 마법의 숲에서도 비교적 안전한 장소라고 해도 밤은 위험이 도사리는 시간이다. 하물며 요괴가 존재하는 환상향에서는 더욱.
하는 수 없이 세이코를 찾으려 나선 마리사는 그녀와 탄막전을 벌였던 장소부터 향했다. 설마, 아직도 그러고 있진 않겠지. 뜻하지 않게 알아버린 세이코의 이상 증세에 강한 거부반응이 일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식모다. 제자도 겸하고 있지만, 모처럼 얻은 무임금 가정부를 잃을 수는 없었다.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마리사는 비행속도를 줄였다. 그리고 세이코가 마지막으로 피탄 되었던 장소를 내려다보며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곧 어렵지 않게 그녀를 발견했다.
세이코는 바닥에 누워 정신을 잃은 듯 눈을 감고 있었다. 낙하하듯 하강해 착지한 마리사가 급하게 누워있는 그녀에게로 뛰어갔다. 짧은 거리였지만, 급하게 뛰느라 가빠진 숨을 고르며 마리사는 세이코의 상체를 안아들었다.
「어이, 정신차려봐. 괜찮은 거야?」
「으.. 으음... 마리사 씨?」
눈을 뜬 세이코가 멍한 눈으로 마리사를 올려다본다. 마리사는 안심한듯 작게 한숨을 뱉어냈다.
「이런데서 잠들면 감기 걸린다고. 얼른 집으로 돌아가자.」
「..네.」
자신이 언제 잠이 들었었는지가 의아했지만, 세이코는 일단 마리사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빗자루 뒷자리에 동승한 세이코가 앞에 탄 마리사를 꼭 끌어안자, 둘의 몸이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원래는 일인승이지만, 아직 하늘을 나는 일이 익숙지 않은 세이코를 위해 뒷좌석을 허용한 마리사는 자신의 등에 밀착된 두 개의 지방 덩어리 감촉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녀석, 보기보다 엄청 크잖아. 게다가 말랑말랑하고 이 중량감. 이건 특상품이라고!'
자신에겐 없는 흉부 장갑의 위력에 마리사는 비행하는 것도 잊고 무심코, 그 감촉에 빠져들 것만 같았다. 이러다 엄마의 품에 안겨 젖을 빨던 시절로 돌아갈 것만 같아. 흐트러진 정신은 빗자루의 컨트롤에 영향을 주었다.
「마리사 씨! 떠.. 떨어져요. 떨어져욧!」
둘의 태운 빗자루가 갑자기 옆으로 기울더니 아래위로 흔들렸다. 세이코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마리사의 몸을 더 강하게 끌어 안았지만, 그럴 수록 빗자루의 흔들림은 심해졌다.
'그렇게 세게 끌어안지 말라고. 윽! 가슴의 감촉이 너무 좋아서 집중이 안 되.'
어떻게든 빗자루의 통제권을 되찾아야하는데, 자신의 등을 자꾸만 부비적대는 특상품이 집중력을 자꾸만 분산 시키고 있었다. 그래도 명색이 마법사 나부랭이 아닌가. 잡념을 떨쳐내지 못하더라도 빗자루 비행에는 나름 짬이 있다. 호그와트에 입학하면 퀴디치 선수로 이름을 떨칠 정도로 그녀는 빗자루 비행에 대한 자부심과 그에 걸맞는 숙련도를 자랑했다.
「안 떨어지게 꽉 잡으라고!」
「그러고 있어요!」
두 개의 돌출된 돌기가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끌어안은 것을 확인한 마리사는 그 상태로 부스터를 켰다. 빗부분이 크게 펼쳐지더니 열량을 띤 빛이 분사된다. 집을 향해 로켓처럼 날아간 마리사와 세이코는 그 기세를 줄이지 못하고 그대로 집의 정문에 충돌했다.
쾅! 와장창창!
충격으로 박살난 문과 함께 안의 물건들이 사방으로 튀어오르며 파손한다. 집안 가득 피어오른 뿌연 연기 너머로 망신창이가 된 두 사람이 콜록거렸다.
「켁켁.. 아야야야.」
「조금 지나쳤을라나...」
따지는 듯한 눈빛에 마리사는 겸연쩍은 얼굴로 변명했다. 추락한 것도 아니고, 집이랑 그대로 충돌했는데 뭐가 조금이라는 건지. 자칫 잘못했으면 크게 다칠 뻔 한 세이코는 먼지가 걷히고 나자, 원망하는 눈으로 마리사를 쏘아봤다.
「어디 뼈가 부러지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 했어요.」
「헤헤 미안. 그래도 안 다쳤으니까 된 거 아니야?」
참사가 벌어질 뻔 한 일을 저지르고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볍게 넘기는 그녀의 태평한 태도에 세이코는 가벼운 두통이 이는 것도 잠시, 표정을 바꾸어 이렇게 말했다.
「다음부턴 좀 더 세게 박아주세요♥」
「어. 다음부턴 조심 할 게... 응? 방금 뭐라고?」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싶은 눈으로 쳐다보는 마리사에게 세이코는 스위치가 켜진 몹쓸 성벽을 가감없이 드려냈다.
「온 몸의 뼈가 산산조각 날 정도로 세게!」
「으악! 이런 개변태!!」
생리적인 거부반응으로 마리사의 몸이 세이코로부터 몇 발짝 뒤로 물러난다. 이젠 멀쩡하다 싶더니, 왜 또 이러는 거야? 멀쩡할 때와 극심한 차이를 보이는 세이코의 모습에 당혹을 넘어 혼란스럽기까지하다. 이런 답이 없는 변태에게 사양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은 마리사의 독설이 쏟아졌다.
「그게 네 본성이냐? 여태 순진한 척 했던 건 날 방심시키기 위한 연기였구나! 살다살다 너같은 변질자는 처음 본다고, 이 마조히스트야!」
그러나 변태 스위치가 켜진 세이코에게는 그녀의 독설은 포상이다.
「맞아요! 이게 제 본성이에요! 거칠게 다뤄질수록. 엉망진창으로 범해질수록. 몸이 달아오르는 극도의 도M 마조히스트가 바로 저라고요! 그러니까, 좀 더.. 좀 더 저를 매도해주세요─♥」
감당 할 수 없는 치녀의 변태성이 폭주한다. 마리사는 지금의 세이코에게 무슨 말을 한들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하게 매도할수록 흥분하는 성도착증 환자에는 그 어떠한 행동을 한들 마이너스. 심지어 무시를 해도 그것을 방치라는 이름의 플레이로 받아들인 변태가 제멋대로 흥분할 뿐이었다.
「제기랄! 공짜 가정부를 들인 줄 알았더니, 터무니없는 변태 치녀였어.」
속물적인 유혹에 넘어간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이거늘. 어쩐지 너무 후한 조건이다 했어. 공짜로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대신, 마법을 알려달라더니, 이러면 얘기가 다르지 않나? 정상인이라면 누구라도 기겁을 하고 도망칠 어브노멀적인 성적 욕구를 채워달라는 것은 계약에 없던 일이었다. 설령 그것이 구두로 이루어진 것이라 해도.
자신에게 음흉한 눈길을 보내는 세이코를 향해 팔괘로를 조준한 마리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경고했다.
「이 이상 다가오면 쏘..쏠거야!」
하지만, 도M 마조히스트 세이코에겐 위협이 되지 않는다.
「쏠 건가요? 아아.. 하얗고 뜨거운 것을 저에게 쏜다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래가 욱씬욱씬해져와요!」
「이.. 변태가. 내 마포를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물리적인 폭력 행사조차도 이 마조히스트에겐 그저 쾌락을 안겨주는 업계 포상일뿐. 무엇을 해도 포상으로 받아들이는 이른바 '가불기'상태에 빠진 마리사는 강한 스트레스에 위장이 아파왔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스트레스성 위염.
자신도 주변에 민폐를 만만치 않게 끼치는 캐릭이지만, 눈앞의 변태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누구라도 저런 변태성에는 혀를 내두를 것이다.
어서 자신을 벌해달라며 괘씸한 가슴을 내미는 세이코에게 마리사는 결단을 내렸다.
「그래. 원하는 대로 해주지. 실수로 죽지나 말라고!」
현재 저 변태를 진정시킬 방법은 딱 하나. 기절을 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설령 힘조절에 실패해서 목숨까지 빼앗더라도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문제다. 지금은 당장이라도 저 변태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다.
조준한 팔괘로에 마력을 집중시켜 주특기 스펠을 발사한다.
「먹어랏! 마스터 스파크-!」
팔괘로로부터 발해지는 빛의 격류. 극태의 마포가 세이코를 집어 삼키고 그대로 후방에 빛의 기둥을 만들어냈다. 잠시 후, 기둥은 무수한 별가루가 되어 흩어져 소멸했다.
마스터 스파크의 빛줄기가 휩쓸고 간 자리엔 풀 한포기 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걸 정면에서 맞았으니 세이코 또한 무사할 리 없었지만, 그녀의 몸은 검게 그을린 정도로 그쳤다. 마리사는 쓰러진 세이코의 코에 귀를 가까이 대어 호흡의 여부를 확인했다.
다행히도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진심 마스터 스파크에 맞아 반나체에 가까운 그녀를 자신의 침대로 옮겼다. 그리고 눈을 뜰 때 까지 기다리며 생각에 잠겨 들었다.
이제부터 어떡해야하지.
지금 와서 순순히 돌아가 주지 않을 것 같은데.
자신의 침대에서 고른 숨을 내쉬는 인물 때문에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다. 눈을 뜬 그녀가 다시 변태성을 드려내는 것이 두려웠고, 그렇다고 쫒아낼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까처럼 마스터 스파크로 기절 시키는 것도 자주 쓸 방법이 아니었다. 이번엔 무사했지만, 언젠가는 힘 조절에 실패해 진짜로 살인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앨리스에게 상담이라도 해야 하나.」
섣불리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지 않은 그녀는 눈을 뜬 세이코가 마조변태가 아닌 새침했던 소녀로 돌아와 주길 바랐다.
*
사나에에게 초대를 받은 나는 오랜만에 모리야 신사를 찾았다. 비번 날이 아니지만, 어차피 지저요괴들이 들락날락 하는 마당에 성실하게 경비를 설 필요도 없겠지. 안 그래도 허술했던 초계근무도 지금에 이르러선 형식만 남은 느낌이니까.
돌층계를 오르며 묘한 시선을 느꼈지만,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은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신사에 도착했다.
「오빠, 오셨어요?」
「어.」
마침, 마당을 쓸고 있는 사나에가 나를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해왔다. 나는 가볍게 받아준 뒤, 사나에 옆에 있는 츠즈사(물 있는 곳)로 가서 그곳에 놓인 나무국자로 입을 축였다. 그리고 순서대로 국자로 물을 떠서 왼손을 씻은 뒤, 오른 손을 씻었다.
이걸로 준비는 끝.
본전으로 가서 새전함에 동전 몇 닢 넣고 박수를 두 번.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정확한 법도에 따라 참배를 끝내자, 예의바른 신님의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바쁜데 잘 와줬습니다.」
「아니요. 뭘. 요즘 산의 규칙이 느슨해져서 널널합니다.」
황송한 말씀에 겸연쩍어 하는 나에게 카나코님은 인자한 미소로 말하셨다.
「그래도 오늘 쉬는 날은 아니잖습니까? 사나에의 부탁에 쉬는 시간을 할애해서 온 것일테니, 이쪽에서는 미안할 따름이죠.」
「그런 건 신경 쓰시지 않아도 됩니다. 요즘 경비대가 워낙 땡보직이 되어 가지고요. 하하.」
빈말이 아니라 진짜다.
안 그래도 시간 때우는 일이었는데, 이젠 어디 가서 뭘 해도 신경도 안 쓴다는 느낌이다. 오죽하면 부대장이란 텐구도 아침 조회시간 이후로 증발을 할까. 들리는 소문으로는 마칠 때까지 집구석에 틀어 박혀 있다고 하던데. 설마, 부대장씩이나 되는 텐구가 그렇게까지 빠졌을 까봐.
마당을 다 쓴 사나에가 이쪽으로 걸어와 땀방울이 맺힌 얼굴을 보여줬다.
「늦어서 죄송해요. 바로 밥 준비를 하려 들어갈게요.」
「됐다. 이따가 쓸면 될 것을 끝까지 쓴다고 수고했는데, 바로 밥까지 준비 시켜서 미안하구나.」
「괜찮아요. 아, 그리고 오빠.」
땀을 흘려 여고생 특유의 풋풋한 냄새를 풍기는 사나에가 나를 보며 물었다.
「아까 전에 오빠 친구라는 분이 찾아왔었는데요.」
「어..」
친구라니. 누굴 말하는 거지?
당장 떠오르는 녀석은 토도키와 부대장인 히데오였다. 그리고 최근 소개 받은 루이드라는 지저의 요괴. 이렇게 보니 새삼스레 내 교우관계가 얕다는 것을 싫어도 알게 된다. 그렇다고 아싸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지만.
사나에는 내 표정을 살피더니, 조심스레 뒷말을 이었다.
「그.. 뭔가 흑인 같은 사람이었어요. 본인은 오빠의 동료였다고 하는데.. 아는 사람이에요?」
「아아..」
그녀석도 친구로 쳐야하나.
그쪽에서 제멋대로 친구 취급하고 있긴 했지만,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모르는 사람이야. 애초에 왜 흑인이 있는 건데? 여긴 환상향이잖아. 일본이라고 일본! 흑인이라면 아메리카에서 뽕이나 빨면서 래퍼나 할 것이지!」
「저기, 오빠. 그거 완전 인종차별적인 발언이에요.」
「나한테 흑인 지인 따위 없다고!」
그렇게 극구 부인하는 나에게 사나에가 곤란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 흑인분.. 지금 별채에서 스와코님이랑 tv를 보고 있는데..」
그 사실을 전해 듣자마자, 나는 쉬는 시간을 반납하고 당장 근무지로 복귀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