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따위는 없는 인간이 공격에서 취할 행동은, 기술이나 극도로 정밀한 술법따위가 아닌 단순한 육체의 휘두름뿐이다.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마음뿐만 아니라 육체마저도 그런 경향을 띄도록 만들어 극도로 거친 행위만을 반복시킨다. 레이무는 온갖 주술등에 몸이 베여나가도 개의치 않고 그대로 돌진만을 시행해 접근을 마친다. 곧이어는 다잡은 주먹을 날린다. 그런데 허무히 허공을 가르는 소리만이 나며 오히려 균형을 잡지 못한 자신이 넘어졌다. 하쿠레이는 기우뚱 넘어지려는 레이무를 발차기의 가격으로 억지로 일으키며 그대로 석장을 내지른다. 단숨에 즉사시키기 위한 공격은 오히려 의도가 티나 레이무는 고작, 정도의 느낌으로 무리치 않고 두 손으로 석장을 멈춰세웠다.
그것으로 잠시 생겨난 대치상황에서 하쿠레이는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레이무의 눈을 보았다. 자신을 향하는 증오에 무의식적으로 겁을 느껴 레이무를 뿌리쳤다. 레이무는 한 번 더 도약하며 하쿠레이의 심장에 뾰족히 세운 손을 내질렀다. 쨍그랑! 하고, 인간의 피부와 맞닿아 생겨난 소리는 아닌 것이 확실한 소음이 울렸다. 하쿠레이는 다급히 품에서 부적을 꺼내며 주문을 왼다.
하쿠레이는 더 이상 레이무가 인간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물리적인 공격보다는 퇴마와 퇴치에 사용하는 주술쪽으로 방법을 선회했다. 주술은 인간이 요괴의 공포에서부터 독립될 수 있다는 수단 중에 하나다. 그것이 가진 특별한 힘은 요괴를 향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수십 대에 걸쳐서 내려온 인간의 지혜의 집합체이고, 또한 신의 축복이다. 그렇기에 같은 인간에게는 소용없지만 요괴에게는 소용이 있다. 상대에게는 분명 통한다.
일제히 쏘아진 부적들이 레이무의 길앞을 막고, 또 레이무의 몸에게까지 쏘아졌다. 팔을 꿰뚫린 레이무는 괴로운듯 비명지른다. 그 목소리는 고통에 몸서리치는 인간의 목소리가 아닌 짐승이나 내뱉는 울음소리같은 것이다. 축 늘어져버린 오른팔을 방치하고 아직은 멀쩡한 왼팔로 레이무는 무작정한 공격을 했다. 한참을 빗나가다가 일은 석장과의 충돌에선 주위에 불고 있는 태풍과 비견되지도 않을 정도의 강렬한 파동이 발생됐다. 이미 인간의 경지는 벗어난 싸움이지만, 서로는 서로의 강함에 대해 당혹을 가질 재간조차 없었다. 잠시라도 틈을 주었다간 서로중에 하나는 무조건 죽는 싸움이다.
"크읏...!"
하쿠레이는 충돌 탓에 한껏 밀려나 다시 중심을 잡는다. 정면에서 맞부딪히는 행동이 자신에게 더 이상 승산이 없을 것이라 파악한 그녀는 한 걸음 빠지면서 생을 지나오며 쌓아왔던 주술들을 무작위적으로 왼다. 상대는 이미 이성을 잃고 무작정 달려드는 행위만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거리를 두는 것이 승산이 있으며, 잠시 대비하고 있어야만 오히려 상대의 무지막지한 힘을 역이용하여 상처를 줄 수 있게 될 거다.
그 상처는 잔물결 정도의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되고, 단번에 목숨을 앗아갈 수 있을 정도의 파도여야만 한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지금에서는 더욱 그래야만 했다. 쓰러져 목숨을 잃어가는 상대에게 동정같은 것을 느끼지 않고 싶기에 그런 게 아니다. 뒤틀려져있던 레이무의 팔은 벌써부터 다시 휘둘러지기 시작할 정도로 경이로운 회복력을 보이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상처를 누적시킨다는 행위만으론 자신에게 승산은 없어서 였다. 그래서 하쿠레이는 물러나던 자신의 몸을 땅을 끌면서까지 정지시키고, 무작정 달려드는 레이무와 맞대결을 할 자세를 취한다. 그러면서도 약점인 자신의 심장을 내보인다. 언뜻 보기에는 ■■행위나 다름없는 이 행동은 오히려 약점을 노려오는 상대에게 맞춰 반격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양날의 검이다. 또한 자신이 목숨을 내주고 있기에, 상대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에도 죄책감을 들지 않도록 해주는 암시어린 동작이다.
콰드드드득! 심장을 노려오는 레이무의 공격에 하쿠레이는 타이밍을 맞춰 그것을 막아낸다. 충돌은 대비를 했더라도 그녀를 수십미터는 밀려나게 만들 충격을 내서, 하쿠레이는 튕겨나가지 않으려 이를 악물며 몸을 기울였다. 찌푸려진 서로의 눈이 서로를 바라본다. 레이무의 눈은 증오로 가득 차있다. 하쿠레이는 살기 위한 발버둥으로 찌푸렸을 뿐인 눈이라 그녀에게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억누르고 내쳐내야만 했다.
하쿠레이는 양 손으로 꽉 잡고있던 석장을 기울이며 더불어 레이무의 힘까지 흘려넘긴다. 레이무는 하쿠레이의 바람대로 돌진의 궤도가 바뀌면서도 아득바득 부리는 발버둥처럼 몸을 휘둘러 공격을 성사시키려 든다. 하쿠레이는 공중인 탓에 무방비하게 드러난 레이무의 몸에 석장을 그대로 내질러서 찌른다. 푸슉! 하고, 결코 부딪히는 소리는 아닌 음이 태풍을 뚫고 울린다. 하쿠레이는 날을 너머 손잡이까지 시뻘겋게 변해있는 석장을 보며 가쁘게 숨을 내쉰다. 레이무는 꼬챙이가 된 채로 축 늘어져 흐릿한 눈동자를 보이고 있다. 레이무의 입에서 부자연스러운 숨 탓에 토해지는 피를 보며 하쿠레이는 눅진한 한숨을 내보냈다. 한숨에는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의 온기가 스며져있다. 유리창에 댄다면 하얀 김을 새게 만들 한숨에 그녀의 마음의 창인 눈도 덩달아 희끄무레해졌다. 하지만 회한은 느끼지 않는다. 동정심을 느꼈다간, 자신은 언젠가 그 마음에 잡아먹혀버리고 말 터였기에.
"미안… 하다."
시체가 되어버린 레이무는 싸늘해질 거다. 그 싸늘함이 식어버리기 전에 하쿠레이는 무심코 사과를 한다. 방금 전엔 죄책감을 가지지 않겠다고 했으나 사실 억지로 되뇌었을 뿐인 고집이었다. 항상 본심은 그렇지 않았다. 기울어진 석장 손잡이로 흘러드는 피가 자신의 손을 적시자 하쿠레이는 도저히 이 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겼다.
"ㄱ……ㅁ…."
그러다 소리가 들렸다. 희끄무레해진 하쿠레이의 시야에서 무언가가 변화했다. 정면에 있는 시뻘건 모자이크는 점점 크기를 비대히 키우면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듯했다. 잠시 아연한 통탄에 빠져있던 하쿠레이는 무른 감각때문에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모자이크가 완전히 다가오는 것을 막지 않았다.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을 듣고싶었던 탓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죽으라고!!"
외침과 동시에 콰득! 하고, 씹히는 소리가 났다. 와득와득, 뼈까지도 무른 것마냥 무리없이 깨물어 부수는 소리도 났다. 그것이 스스로의 목을 집어삼키며 나는 소리임을 깨달은 하쿠레이는 그제서야 풀려있던 정신이 되돌아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대비하기엔 늦은지 오래였다. 내치려고 해도 목에 뾰족히 박혀있는 이빨은 뽑히려는 기색조차 없었다. 이미 잡혀먹이기 시작한 그녀는 고통스럽다는 듯 비명만 내지를 뿐이다.
"끄아…악!"
상대는 포식자와 같이 피식자의 비명도 개의치 않고 사냥을 계속한다. 목에서부터 과감히 깨물어가니 하쿠레이의 비명도 머지 않아 멈췄다. 그러나 레이무는 허기가 진다는 듯이, 사냥을 마친 포식자처럼 식사를 할 뿐이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집어삼킬 무언가가 완전히 사라졌음에도 이빨을 딱딱 부딪혀대가며 배고프다 비명을 질러댔다. 주위에 있어야할 시체따윈 이미 없었다. 싸움에 전부 날아가버리기라도 한 것인지, 이성을 잃어버린 자신이 무심코 전부 잡아먹어버린 것인지.
레이무는 하늘을 향해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입을 왁 벌리며, 쓰라린 숨을 내쉬어댔다. 전혀 배부르지 않았다. 오히려 고파서 미칠 것만 같았다.
상대를 죽여야 하는데, 더 이상 죽이고 집어삼킬 녀석이 없었다. 그렇다면 친구와 가족마저 죽인 한량에 대한 복수가 이것으로 끝인가?
아니, 복수가 단지 이것으로 끝일 성 싶은가. 수십을 죽인 녀석을, 단지 그 녀석의 목숨 하나를 빼앗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은가. 나는 도무지 너희들을 용서하지 못하는데.
"……하하."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할까. 그러다가 레이무는 떠올리곤 웃었다. 복수할 녀석을 늘리면 됐다. 하쿠레이는 죽였으니, 하쿠레이가 말했던 대로 그 녀석을 시켜 사람들을 죽이게 만들었던 녀석들도. 그와 연관된 모든 녀석들로.
그리고, 이 이변을 일으킨 녀석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