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으로만 치면 상다리가 부러져라 차려진 -실상은 전골 냄비 단 하나뿐에 없는- 호화로운 저녁식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찢어진 창호지와 무너진 벽 사이로 비쳐드는 햇빛은 기름기 잔뜩 흐르는 고기 표면을 윤기나도록 비추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식욕이 자극되지 않을 수가 없게 하였다. 마리사도 그런 사람들 중의 예외는 아닌지라 침을 꿀꺽 삼키면서 당장이라도 입에 한껏 머금고 싶어하는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그녀의 꿇은 무릎과 종아리에 맞닿지 못하는 허벅지, 천장을 향해 쭉 뻗은 두 팔을 종합해 보았을 때, 결코 식사에 사용할 법한 자세라곤 할 수 없었으니까. 벌을 받는 자세일 뿐이었지.
"저기…… 마리사는, 못 먹는 거야…?"
"응."
떠보듯, 어떻게 용기내어 코이시가 물었으나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대답뿐이었다. 그나마 그 대답마저도 더 이상의 질문을 않으니 더하여 나올 턱이 없었다. 그렇게 이어지는 침묵은 그녀를 괴롭게 했다. 바깥의 목소리가 고요해질수록 들려오는 마음의 목소리가 커져갔다. 어떨 때는 한탄과 분노로 인한 욕지거리였고, 어떨 때는 고통의 호소였다. 익숙치 않은 본심의 파악은 가슴속에 시큰거림과 먹먹함만을 낳았다. 무시하려 해보아도 도리어 눈을 마주치기까지 하자, 코이시는 마리사의 마음속 호소를 더 이상 무시할 수가 없었다.
"…앉게 해주면 안 될까? 부탁할게."
"…뭐, 그래."
신 레몬을 한 입 생으로 씹은 듯한 코이시의 표정에 유카리는 생각을 바꾸고 마리사를 불러 앉혔다. 검지를 까닥거리고 오른편의 바닥을 툭툭 두들겼다. 그곳은 유카리의 옆자리였다. 그 선택에는 기뻐해서 또 오버하게 될 마리사를 제압하게 될 게 뻔하단 이유가 있었고, 또 일말의 죄책감이나마 가지고 있으라는 신호이기도 했다. 솔직히 형벌이 훨씬 부족하다 느꼈다만, 지금으로썬 벌을 받지 않는 쪽이 그런 쪽보다 더 불편하다니 어쩔 수가.
"아싸!"
마리사는 아픈 것도 벌써 잊고 재빠른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잠시 후, 우물거리는 입과 부풀어오른 볼은 그녀의 행복을 더할 나위 없이 표현했다. 자기가 캐고 자기가 사와놓고 정작 자신이 못 먹는다는 불상사와도 같은 사태에 놓이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마리사였다. 코이시는 그것으로 마음의 짐을 살짝은 덜었다. 그런데도 왜일까, 아직은 묵직한 무언가가 가슴속에 서려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정체모를 무언가가 심장을 좀먹는 감각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저녁식사는 편치 못했다.
나름은 도란도란하다 할만한 저녁식사가 끝났을까. 코이시는 고요하지만 북적거리는 방을 나와 지는 해를 바라봤다. 석양은 괜한 먹먹함만을 돋우었다. 무슨 마술을 부린 건지.
무거운 한숨이 코이시의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때, 그녀를 부르는 누군가가 있었다. 유카리였다.
"식사가 별로였어?"
"아니, 좋았…어."
그러나 미미하게 찌푸린 인상은 그게 아니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식사의 탓은 아니었다. 유카리는 툇마루에 조심히 앉더니 옆자리를 두들겼다. 코이시는 말없이 두들긴 곳보다 가까이, 그녀와 밀착하여 붙어앉았다. 유카리가 말했다.
"너는 네가 이쪽 세계의 일원이 아니라고 했었지."
"응."
긍정의 대답이었지만 거짓을 범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직접 내뱉은 말이었지만, 또 반나절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선 그런 감각이 몸에선 느껴지지 않았으니. 당시에 몸에 잔존했던 어렴풋한 위화감, 그건 분명했을텐데. 지금은 마치 며칠전의 꿈마냥 불확실함만이 부유하고 있었다.
"아까 전에도 말했었지만, 되도록 널 바깥쪽의 세계로 내보내줄 예정이야. 이세계라면 몇 개가 더 있긴 한데, 아무래도 가능성은 바깥세계가 가장 크거든. 출입이 다른 곳에 비하면 그나마 자유로운 편이니까."
"나간다면 그곳에 쭉 있는 거야?"
"짧으면 일 주, 길면 한 달? 이변을 해결할 때까지는 아마도 있을 거야. 네 몸은 되찾아야지. 안 그래?"
아무튼 스미레코가 받아줘야 할텐데. 유카리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곤 뒷목을 긁적였다.
"스미레코?"
"아, 바깥세계에서 올 사람이야. 설득에 성공한다면 바깥에 있는 동안 널 돌봐줄 사람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내가 항상 옆에 있어줄 수는 없으니까."
"아…."
유카리로 눈을 쭉 향하던 코이시가 고개를 돌리곤 살짝 숙였다. 시선이 쭉 가늘은 무릎만을 향하고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손가락은 저도 모르는 새 꼼지락댔다. 과연 적응할 수 있을까. 우선으로 걱정이 들었다. 입술을 애써 씰룩거려 지은 억지웃음으로 불안함을 감추어보려 해도, 그것만이 신체에서 내보내는 신호는 아니라. 불안함의 기미는 금세 유카리에게 들통이 났다.
"불안해?"
"…응."
과연 괜찮을까. 미묘한 억지미소와 자존감 낮은 가늘은 눈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입을 뻥긋거려봐도, 정면의 풍경으로 시선을 돌려보아도, 결국에는 원상태로 돌아와선 어색함을 잔뜩 표하게 됐을 뿐이다. 코이시는 그녀와 떨어지기 싫었다. 지난 반나절간의 기억뿐이지만 가장 호의적인 그녀였고, 가장 관심을 가져준 그녀였으니까. 대해줄 때의 말투가 나긋나긋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본심을 알아차릴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그녀에게는 호감만이 생겨났었다.
난 그런데, 그런 유카리-혹은 레이무-와 떨어져서 과연 괜찮을 수 있을까? 마을에서처럼 단순히 사토리란 이유로 경멸과 증오의 시선을 받게 되지는 않을까? 혹은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이곳의 사람들이 이변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지 않고, 또 특이치 않은 것으로 취급하는 것처럼. 결국에는 이변과도 같은 자신이란 존재에 대한 관심을 끊어버려 영원히 원상태로는 돌아가게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뒤숭숭한 가정들이 떠올랐다. 그것은 겉잡을 수 없게 불안을 증폭시켜 숨막히는 감각을 돋우어댔다. 과민이며 의존인 것은 알았지만, 그래서 더더욱 떠나기가 싫었다.
들려오는 마음의 소리마저 무시할 정도로 코이시가 아랫입술을 잘근거리면서 불안감을 표하자, 유카리는 말했다.
"괜찮아. 며칠마다 들를 테니까, 힘들거나 적응이 안 된다 싶으면 그 때 말해."
"……응, 고마워."
"곧 올것 같으니까 준비하고."
"응?"
유카리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주홍빛의 하늘을 바라봤다. 팔짱을 낀 그녀의 시선이 향해있는 곳으로 코이시도 눈을 돌렸다. 시선의 끝자락에선 석양에 덜 물들어 그나마 희멀겋던 구름들이 점점 한 점으로 밀집하더니 잿빛의 비구름이 되어선 흉흉스런 바람을 날카롭게 휘몰고 있었다. 마른 하늘의 벼락이나 우박같은 쌩뚱맞은 이상사태까지 동반되자 어깨를 들썩이며 잠시 움츠리는 코이시에게 유카리는 말했다.
"아 저건 별 거 아냐. 그냥 폼내는 거라서."
"…폼?"
"마리사처럼 옹고집은 아니긴 한데, 하지 말래도 하더라. 진짜 쟤도 한 번 따끔하게 혼내야 하려나."
유카리의 말은 격렬한 태풍으로 변모한 바람에 의해 코이시에게 도달치 못했다. 그녀는 신사를 강타해나가는 바람에 버티는 데에만 해도 엄청난 용을 쓰고 있었다. 유카리는 한 손으로 페도라를 잡으며 허리를 숙여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는 코이시를 품에 감싸안았다. 두 팔에 완전히 감싸인 코이시는 두근거리는 심박이 들려오는 기분을 느꼈다. 두 눈을 꽉 감고 있자니 그 심박은 더더욱 커져갔다. 균등한 간격의 소리는 자신을 괴롭히던 천둥과 바람소리가 멎고나자 잔잔해졌다.
힐긋, 뒤를 바라보던 코이시는 소규모의 허리케인이 아직 신사에 잔존해있는 것을 보았다. 허리케인을 질린다는 표정으로 응시하던 유카리는 볼멘소리를 내며 눈썹을 찡그렸다. 하여간, 시끄럽게 등장하는 건 차암 좋아해요. 혀를 차는 것까지 코이시에겐 느껴졌다.
돌풍은 곧 둘로 갈라졌다. 그곳의 중심부에서는 안쪽에 이상한 문자가 잔뜩 쓰여있는 망토를 쓴, 갈색머리의 안경소녀가 오른손으로 망토를 풀어헤치듯 크게 휘두르며 등장함을 알렸다. 마치 자신이 돌풍을 갈라냈다는 것을 용쓰면서 티내는 과장된 행동.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기도 해서, 돌풍속에서 태어난 그 소녀. 우사미 스미레코는 자신의 출연을 자랑스레 뽐내었다.
"우사미, 우사미 스미레코 등장!"
코이시는 떠났다. 마리사와 카센도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니 벌써 한밤중이 되어선 하늘의 가늘은 초승달만이 밋밋한 빛을 내보이고 있는 때였다. 그제서야 유카리는 서투르지만 배워두었던 둔갑을 이용해 자신의 원래 모습인 레이무로 외형을 바꿨다. 한나절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자신의 모습이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레이무는 한 눈을 감곤 괜히 한쪽 손의 손가락을 까닥대며 본래 감각을 되찾아갔다. 신사의 토리이로까지 털털히 걸어간 그녀는 뒤의 레이무(유카리)에게 말했다.
"잠시 갔다올게. 신사 잘 지키고 있어."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었다.
새벽녘의 마을은 고요했다. 목숨을 중히 여기는 자라면 요괴들의 행동시기인 한밤중에 맨낯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게 뻔하였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레이무의 걸음길에는 습격하는 요괴가 있다거나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쿠레이의 무녀에게 덤벼들지 않는 것도 목숨을 중히 여기는 자의 한 조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한산한 마을의 거리에 감도는 것은 레이무의 구두 뒷축이 흙바닥과 마찰하여 생기는 소리뿐이었다. 그녀가 목적지까지 도달하기 전까진.
레이무는 어느 한 느티나무의 앞에서 멈춰섰다. 곧이어 고개를 올린 레이무의 눈에 굵은 느티나무 가지에 벌러덩 누워있는 한 요괴가 띄었다. 그런 요괴에게서 술을 받아먹는 또 다른 요괴에게는 레이무는 관심이 없었다. 일단 용건부터가 없었기에 그러했다. 또 다른 이유로는 그 요괴의 존재가 정형화된 무언가조차도 아닌, 정체불명의 무언가이기 때문이였다.
느티나무에서의 짤막히 휴식을 청하던 요괴는 인기척을 느껴 머리를 긁적여대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머리칼에 달려있던 나뭇잎은 금방이라도 떼어질듯 위태위태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허리에 단단히 매어졌다 생각됐던 술병이나 코안경이 나무 아래로 떨궈지는 불상사가 일었다. 평소의 그녀, 그러니까 평소의 후타츠이와 마미조라면 그런 일은 없었을 터였으나. 예상대로 찾아온 손님이 그녀의 눈으로 보기엔 찰흙들을 어린아이의 조악한 솜씨로 뭉뚱그레 뭉쳐놓은 듯한 괴상한 모습이기에 웃느라 정신이 팔려 그런 몸가짐까지 신경을 쓸 재간이 없었다. 푸하핫! 크게 웃던 마미조는 아직 나무 윗동에 있는 정체불명 요괴의 반응을 살피다, 다시 레이무를 보며 피식거리는 입가를 훔쳤다.
"무, 무슨 일인가.. 레이무."
입술이 꿈틀거리는 것을 참아대었으나 그것도 잠시. 결국 마미조는 푸흡, 조소를 터트렸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한 번 쓸어내려 표정을 원상태로 바꾼 그녀는 결국 청원을 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다만, 그 둔갑 좀 풀어주지 않겠나.. 내 눈으로 보니 조악하기 짝이 없어 괴로울 지경이네."
"……."
"아 저게 하쿠레이 레이무였어? 그리고 저게 둔갑이었어? 난 무슨 행위예술인줄 알았네."
나무 윗동에서 마미조의 옆으로 다가가 책상다리를 하고있던 정체불명의 요괴는 어느새 습을 정형화하여 비아냥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 뒤로 입꼬리를 한쪽만 길게 올리는 표정을 지었는데, 그것은 비웃음이 분명했다. 마미조는 손을 휘휘 저으며 말리는 티를 냈다.
"말이 심하네 누에. 둔갑 방식은 각자가 차이가 있는 법이야. 아무래도 레이무는 이번에 방식을 바꿔서 그런지..."
"시끄러워. 용건이 있으니까 그것부터 해결하고 잡담을 나누든지 해."
"일단 둔갑부터 풀어주게. 보기 괴로워. 왜 굳이 자기 모습 위에 다시 자기 모습을 덧씌운겐가? 새로운 둔갑 방법을 알려주기라도 하길 원하는 겐가? 이 참에 요괴 너구리의 둔갑을 배우기라도?"
"…쯧."
레이무는 둔갑을 풀더니 지긋지긋하단 느낌으로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그녀의 둔갑이 풀리는 것을 잠시 턱을 괴고 지켜보던 마미조는 자세는 그대로, 그런데 턱을 괴는 것은 잊고 머리를 붕 뜨게 한 채로 눈을 휘둥그레 뜨며 살짝 놀란 티를 내었다. 느껴지는 것은 분명 하쿠레이의 특성이온데, 그녀의 본 모습이 야쿠모로서 드러났으니. 성격이나 안목에는 나름 자신이 있어 누군가의 말버릇, 발성 방법 등을 구분하는 데에 착각하거나 하는 실수는 없다 생각했건만, 그게 아니었다니. 자신도 아직 멀은 것일까. 마미조는 자신을 살짝스레 책망하며 야쿠모 유카리를 반기는 너털웃음을 겉으로 드러냈다.
"이거, 환상향의 현자분이 아니신지? 어언 일로 하쿠레이를 흉내내신 건지."
"아니야. 난 하쿠레이 레이무지, 유카리가 아니야."
"아니라니. 무슨."
마미조는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레이무는 다시 한 번 자신에 대한 배경설명을 할 필요를 느꼈고, 실제로 그리 행하기로 했다. 이야기를 들은 마미조는 검지와 엄지로 턱을 괴더니 턱을 엄지로 사근사근 쓰다듬으며 자신의 미묘한 감정을 표현했다. 그것은 고충이기도 하고, 자신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짓기도 한 것이었다. 수백 년간 해 온 둔갑과 그를 통한 식별을 자신의 자랑으로서 여겼는데, 그런 자존심에 흠이 나지 않았다는 소리였으니까.
"하지만 이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야. 널 찾아온 용건은 따로 있지."
"호오."
"정체불명의 소문이든 뭐든, 상관 없어. 모든 인요들의 이목이 쏠리게 될 정도의 큰 건을 원해. 할 수 있어?"
"그것을 무슨 조건으로?"
마미조의 미소는 짙어졌다. 당당히 조건을 내거는 마미조의 태도에 레이무는 양눈썹을 찡그리며 불만을 표했다.
"이미 괴담을 퍼트리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요괴인 너희에겐 큰 배려일텐데? 무슨 조건을 바라는 거야?"
"있지, 자네와 나는 거래로서 이어지는 관계인 것을 망각하면 안 된다네. 자네가 무엇을 하고자하고, 또 우리에게 무엇을 청하고자 하면 당연히 그 의도를 우리에게 밝혀야하는 바람이야. 숨기려드니 오히려 묻고싶어지는군. 하나만 묻지. 도대체 뭘 숨기려 들길래 마을에 정체불명을 퍼트리려 드는가?"
"……."
"불에 맞불이 효력있듯, 소문에는 소문이지. 그러니 의도야 쉬이 짐작할 수 있어. 그런데! 또 더군다나! 그 소문이 마을에 한정된 것뿐이면 몰라도 모든 인요? 스케일이 터무니없어도 너무 없군! 도대체 뭐를 숨기려 드는가? 자네가 하고자픈게 도대체 무엇이지?"
구겨지는 레이무의 표정에 둘을 지켜보던 누에가 학을 뗐다. 금방이라도 베여버릴 정도로 날카로운 분위기에 편승된 마미조는 숨조차 쉬는 것을 잊고 레이무의 답을 기다렸다. 그렇게 모두가 숨죽여 있는 동안 레이무의 입은 부동이어서, 전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은 하도 복잡해서, 지금은 단순히 반복되는 생리현상조차도 잊을 정도로 답답함에 감싸여있었다.
"마을에 사토리 요괴가 나타난 것. 그 사실을 숨기려고 해."
"사토리?"
"언니 쪽이 아닌, 여동생 쪽의 일이야. 난 그걸 숨겨야 해. 어떤 수를 써서라도."
결국에 레이무는 코메이지 코이시의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마을의 골동품 따위를 츠쿠모가미로써 사용하여 온 소문을 파악하는 마미조에게 더 이상 숨겨봤자 결국에는 들킬 것. 그러니까 조기에 차라리 협력을 부탁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목소리를 한껏 내려깔아 진중한 태도로써 레이무가 청을 하자, 마미조는 그제야 온 몸을 결박턴 분위기를 이겨내고 피식거리는 웃음을 지어낼 수 있었다. 그녀는 허리춤에서 긴 곰방대를 꺼내 연초를 피더니 연기를 한 차례 내뿜고 말했다.
"뭐야, 그건가. 뭐어, 알 것 같군."
뭘 알아? 레이무는 묻지 않았다. 스스로 설득시키려는지 고개를 끄덕거려대는 마미조를 긴장된 눈으로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이고, 곧 레이무의 눈은 동그랗게 떠졌다. 마미조가 지금으로선 생각치도 못한 말을 내뱉었기 때문이었다.
"해주지."
"뭐?"
"못 들었나? 해주겠네. 그렇지 않는가 누에?"
"엥? 갑자기 난 왜?"
"우리는 동병상련 아니었던가?"
"아니 너랑 친한거야 별개의 일이고, 나는 사토리랑 연관되기 싫은…."
"……."
"……."
말을 잇던 누에가 흘겨보는 둘의 눈치에 결국 입을 닫았다. 머리를 벅벅 긁어대가며 답답함을 표해봤지만 결과는 그대로여서, 나중에는 또 한숨이나 한참 내보내게 되었다.
조만간, 되도록이면 내일부터겠군. 착수하도록 하지, 라며 레이무를 설득하고 되돌려보낸 마미조는 킥킥 헛웃음을 터트리며 연기가 피어오르는 곰방대를 흘겨봤다. 항상 터무니없는 선택만을 하던 무녀이지만, 이번은 더욱 터무니없어서 헛웃음이 절로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못 지켰던 하나에 대한 미련이 남았던 걸까. 고작 그 하나를 위해 전부를 이변에 말려들도록 하게 하다니.
"뭐어, 답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나 진짜로 연관된 거야? 별로 땡기지는 않는데."
누에는 그런 마미조의 혼잣말 위에 불평을 덧씌웠다. 마미조는 연초를 한모금 빨더니 내뱉으며 말했다.
"걱정말게나 누에. 이번을 기회로 자네를 골탕먹였던 사토리나 한 번 골려주자고."
"아니, 안 해도…."
"내가 하고 싶어서 그렇다네. 친우가 괴롭힘 당했다는데, 내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
고맙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말려야 할지. 누에는 짜증 반 행복 반의 표정으로 입술을 우물거리며 고민하다가 말을 아꼈다. 어떻게 느껴지는 게 착잡함 뿐이었다.
마미조는 우물쭈물거리며 미묘함을 표하는 누에를 보고 피식거렸다. 열려서 말이 나오려는 자신의 입에 곰방대를 꽂아 마음으로 숨을 삼킨 마미조는 생각을 이었다.
'자, 해봐야지. 작은 복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