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총과 함께 질책이 이어졌지만, 스와코님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가슴을 피며 말했다.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신사에 남자는커녕 친구조차 데리고 온 적이 없는 애가 무려, 안면을 튼지 얼마 되지 않은 남자를 데러왔다고.」
슬쩍 바라본 사나에의 얼굴을 새빨갛게 붉어져 있었다. 그녀는 손을 휘저으며 극구 부인했지만, 스와코님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딸의 성장을 보는 심정이란 이런 걸까.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야.」
여운에 잠긴 눈을 하고 중얼거리는 것도 잠시, 불시에 날아든 주먹에 정수리를 강타 당한 스와코님은 그 충격에 비명을 질렀다.
「아우아─!」
그리고는 아픈 정수리를 양 손으로 부여 잡으면서 혹을 만든 장본인을 사납게 노려봤다. 하지만, 무어라 항의도 하지 못한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 보다 더 사납게 노려보는 시선에 압도 당한 것이다.
카나코님은 속으로 화를 삼키면서 내게 미안한 기색이 느껴지는 어조로 말했다.
「저 나이값 못하는 철부지의 말은 너무 담아두지 마시길 바랍니다.」
「네..네.」
겸연쩍게 웃어보인 나는 다시 사나에를 바라봤다. 사나에는 여전히 붉힌 얼굴로 수줍어하고 있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었다. 하지만, 너무 어색한 웃음이라 억지로 지어낸 티가 많이 났다. 나는 못 알아차린 척 태연하게 웃었다.
「하하.. 재앙신이라고 해서 사실 조금 무서운 감이 없지 않았는데. 스와코님은 실은 굉장히 유쾌하신 분이시네.」
「네.. 너무 유쾌해서 탈이지만요.」
사나에는 내 말에 적당히 맞장구 치고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카나코님이 불쑥 다른 화제를 꺼내 들었다.
「식사 전에 했던 얘기를 할까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네. 물론이요.」
식사 전의 얘기란 내가 많이 힘들어 보인다는 것에 관한 얘기였다. 화제가 바뀌자, 카나코님은 물론이고, 사나에와 스와코님까지 방금전과는 살짝 다른 눈빛을 했다. 카나코님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 눈에 소우지 씨의 요기가 많이 흐트러진 것이 보입니다. 요기는 정신에 영향을 받는 기운이라 혹시, 최근 곤란하거나 힘든 일이 있지 않은지 물어보고 싶군요.」
「에.. 그게.」
나는 사실대로 얘기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이거 얘기해도 되는 건지 고민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모미지에게 시달리고 있다곤 하나, 그건 내 자신이 해결할 일이지 신에게 고할 일이 아니니까.
선듯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있는 내게 카나코님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말씀하기 어려우시다면 안 하셔도 됩니다. 그저, 조금이라도 고민을 덜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을 뿐입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오히려 제 쪽이 괜한 오지랖을 부린 거니까요.」
믿을 수 없을 만치 겸손한 신님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모이는 가운데, 나는 작게 한숨을 쉬고 결심했다.
「그럼, 조금만 얘기하겠습니다.」
신님이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신경 써 주시는데, 어찌 입을 다물고만 있겠는가. 들려 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알려 주기로 한 것이다. 물론, 장본인의 실명은 미공개로.
「오랫동안 알고 지낸 동생으로부터 애정 공세를 받고 있는 중인데, 그게 기쁘기 보다는 부담이 된다고 해야하나... 아직 그럴 맘이 없는 저에겐 그 짐이 너무 무겁습니다.」
「흠..」
내 얘기를 끝까지 듣고 생각에 잠긴 듯한 카나코님. 그때 옆에서 사나에가 끼어 들었다.
「그런 거라면 딱 부러지게 거절하면 되지 않아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미지는 그 딱 부러진 거절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는게 문제였다. 나는 사나에를 향해 고개를 저어 보였다. 사나에는 의아하다는 얼굴을 했고, 나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 애는 날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큰 나머지 내 의사보다 자신의 감정을 우선시 하고 있거든. 그렇지 않다면 내가 이렇게 고민할 이유가 없지.」
그에 사나에는 놀란 얼굴로 대꾸했다.
「정말이에요? 아무리 오빠가 좋아도 그렇지. 오빠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다니요! 그런건 단순한 스토커잖아요?!」
그래, 스토커지. 그것도 엄청난 행동력을 갖춘 무서운 스토커. 나는 천리안으로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모미지를 떠올릴 때마다 몸서리가 쳐질 만큼 오한이 들었다. 여기라면 안전하겠지만, 다시 산 중턱, 텐구들의 영역으로 돌아온다면 그 감시로부터 안전하지 않겠지.
이야기게 진행될 수록 나를 포함해 카나코님과 사나에의 표정이 무거워져 갔고, 스와코님만 유일하게 흥미롭다는 얼굴로 실실대고 있었다. 방안은 내 문제로 심각한 공기가 감돌았고, 사나에가 결심에 찬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알겠어요! 그럼, 제가 그 스토커로부터 오빠를 보호해 드리겠어요..」
「너 무슨!?」
사나에의 입에서 폭탄 발언이 튀어나왔다. 모두가 깜짝 눈으로 쳐다보는 가운데 사나에는 가슴을 피며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고했다.
「귀중한 신도가 곤경에 처했는데, 도움의 손길을 주는 것이야말로 모리야 신사의 얼굴인 나. 카제하후리로서의 사명 아니겠어요?」
「말 잘했다!」
내가 무어라 따지기도 전에 스와코님이 잽싸게 말을 받아 거들었다. 마치, 이때다 싶은 것처럼 조금의 틈도 없는 맞장구였다. 이어서 고민하는 얼굴이었던 카나코님도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주억 거렸다. 뭔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이 이상 일이 골치 아프게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얼른 입을 열고 사나에의 결심을 돌릴 말을 뱉어냈다.
「이건 내 개인사야. 그것도 남녀간의 연애사. 마음은 고맙지만, 네가 끼어들만한 일이 아니야.」
「하지만, 곤란한 건 사실이잖아요? 그 스토커와 단판을 지어서 오빠에게 평온한 일상을 돌려 드릴 거예요.」
「스토커는 단순한 개인사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지.」
자신의 결심을 바꿀 생각이 없는 사나에와 그걸 또 거들고 나서는 스와코님. 나는 그녀를 설득할 자신이 없어졌다. 나를 제외한 다수가 그러기로 정했는데, 내가 무슨 수로 설득을 하겠어.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 되어 나는 절로 침울한 기분이 되었다.
「어.. 오빠?」
기분이 착 가라앉은 나를 사나에가 의아하다는 듯이 불렀다. 그녀는 내가 '왜?'하고 묻는 눈으로 쳐다보자, 호기심으로 찬 시선을 보내는 것이었다.
「저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아진 거예요?」
침울한 기분이 표정으로 드러난 것일까? 사나에가 그렇게 물었다. 그리고 호기심에 찬 시선은 그녀 하나만은 아니었다. 스와코님이 보내고 있는 그 시선은 장난기까지 내포하고 있어 날 당황하게 만들 정도였다. 스와코님이 입을 활짝 찢으면서 조롱하는 어조로 말했다.
「너 물에 젖은 강아지야?」
「네?」
「귀가 완전히 쳐져있네. 귀 쳐진 백랑이라니, 내 수 천년을 살았지만 너 같은 늑대는 처음본다!」
비아냥섞인 웃음이 울러 퍼졌다. 우하하하하, 하고 배를 부여 잡으면서 웃어대는 스와코님의 모습에 나는 너무 창피한 나머지 어디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이제야 이해가 된 사나에의 반응. 설마, 내 표정이 아닌 귀를 보고 알았을 줄이야. 으아! 개쪽팔려!! 얼굴이 후끈 거리면서 달아 올랐다.
카나코님 만큼은 여전히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아까부터 한쪽 입꼬리가 씰룩이는 건 기분 탓이겠지? 백랑으로서 엄청난 추태를 보여버린 나는 축 쳐진 귀를 어떻게든 원래대로 되돌리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놈의 귀는 내 기분에 맞춰서 움직이나 보다. 원래 백랑, 늑대의 귀는 개와 달라서 어떤 상태에서든지 쳐지는 일이 없는데 어째서 나만 이러는 걸까?
나 혹시, 백랑이 아니라 백견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 또다시 고개를 드는 순간이었다. 극도의 창피함으로 혼란스런 마음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가운데, 신사의 가장 윗 사람이신 카나코님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것도 사나에 너에겐 좋은 경험이다. 모리야 신사의 카제하후리로서 네가 소우지 씨를 스토커로부터 지켜주도록 해라.」
「네, 알겠어요! 카나코님.」
「그리고 소우지 씨.」
사나에에게 임무를 내린 카나코님은 이어 나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이것은 저희가 독단으로 한 행동이니 부담 가지시지 마시길. 그리고 저희 사나에가 미숙하더라도 잘 봐주셨으면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로서 사나에가 날 스토커(모미지)로부터 지키는 걸로 결정나 버렸다. 나중일이긴 하나, 모미지와 마주친 사나에게 어떤 식으로 행동할 지 벌써부터 걱정이었다. 과연, 모미지는 그런 사나에를 어떻게 대할지. 그 가운데에서 나는 도대체 어떤 식으로 중재를 해야할지 벌써부터 걱정이었지만, 지금은 신님이 정한 결정에 수긍하며 따르는 것외엔 아무런 방도가 없었다.
*
비번날이 지나고, 다시 평일이 되었다. 어제 있었던 일들이 불현듯 떠오르지만, 지금은 내 할 일을 할 뿐. 너무 신경 써봤자, 머리만 아프지 해결되는 게 없기에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평상시와 다른 없는 모습으로 초계 근무에 임했다.
이렇게 가만히 가을 산을 돌아다니다 보면 그간의 고민이 쓸데없이 느껴질 정도로 평온하다. 산책하는 기분이 드는 한가함이 매일 반복되는 근무의 유일한 장점이지만, 반대로 별 시답잖은 상념에 빠져들게 만들기도 한다.
「하아-.」
흐르는 물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 바위에 걸터 앉은 나는 작게 한숨을 뱉어냈다. 신경쓰지 않는다고 해도 절로 떠오르는 걱정은 어쩌지 못해서였다. 그런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나는 시선이 느껴지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그렇게 한숨을 푹푹 쉬는 거야?」
「그냥 요즘 고민거리가 많아서.」
하류에 위치한 현무의 계곡에서 올라온 치도리가 내 한숨 소리에 물었고, 나는 적당히 대답하며 다시 고개를 원래 위치로 되돌렸다. 치도리는 가까이 다가오더니 내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무슨 고민인지 조금 들어 보고 싶은데.」
「아쉽게도 너한테 털어 놓을 수 없는 고민이라서.」
내가 말할 수 없는 고민이라고 하자, 치도리는 「그렇구나.」하고 납득한 듯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왔던 길로 돌아갔다. 그녀는 계곡 하류로 돌아가는 와중에 문득, 뒤를 돌아보며 이렇게 얘기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나한테 꼭 얘기해줘! 할 수 있는데 까지 도와줄 테니까.」
그녀는 마지막으로 「친구 사이잖아?」라는 말을 덧붙이고는 그대로 계곡 물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친구 사이라. 나는 그 단어를 곰곰히 되씹으며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유우센 치도리. 그녀가 내 친구인 것이 이때 만큼 다행인 적은 없었다.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이렇게 든든할 줄이야.
덕분에 걱정으로 가라앉은 기분이 한결 나아진 듯했다. 나는 어지러웠던 마음을 다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위에서 내려와 다음 장소로 순찰을 이어나간다. 비록, 모미지로 인한 고민을 안고 있지만, 나에겐 도움을 주는 친구와 지인들이 있다. 치도리가 그런 친구였고, 토도키 역시 나를 걱정해 주는 친구다. 기자양반도 평소 행실이 좀 그렇긴 해도 종종 크고 작은 도움을 주는 조력자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야사카 카나코님을 비롯한 신님과 그 무녀인 사나에도 나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 그리고 레이무.
기자양반의 말대로 그 아이에게도 말해야 하나.
괜한 걱정을 끼치기 싫어 그 아이에게 만큼은 얘기하지 않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얼마 안 가 사실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말그대로 수라장이 벌어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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