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원통하도다!”
무엇이 그리 원통한지, 요시카는 마당 안에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외쳤다. 청아는 요시카의 청명한 외침을 듣고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오늘 따라 기운이 좋네, 요시카? 요시카는 청아의 말을 들었는지 청아를 바라보며 웃음을 띠었다. 청아는 요시카의 단화를 벗기고, 요시카를 방 안으로 들였다. 지금 대사묘엔 청아와 요시카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다. 태자와 모노노베의 일족은 분명 인기를 모은다고 했던가, 청아는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쪽으로 밀었다. 요시카는 어느새 청아의 품에 안겨 어느새 병든 병아리처럼 졸고 있었다. 새로운 부적을 써줄 때인가. 청아는 근처에 너부러진 지필묵을 잡고, 부적에 ‘대기’라고 적어두었다. 요시카는 기운이 빠진 인형처럼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곱게 눈을 감은 요시카를 보자, 청아는 새삼스레 요시카를 처음 만난 날을 떠올렸다.
2
선녀가 나타났다. 그 소문이 장안을 휩쓸게 된 건, 소문의 원인 곽청아가 사람들 앞에서 벽을 뚫는 것을 보여줬을 때부터였다. 소문은 폭포수처럼 흘러 마침내는 황궁의 벽까지 타고 흘러갔다. 이 괴이한 소문을 수상스럽게 여긴 궁은 즉시 청아를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렸고, 청아는 보란 듯이 경비병들을 피해 황궁의 담벼락에 구멍을 뚫어 궁의 명을 받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청아의 그런 모습에 기이함과 동시에 매력을 느낀 건 궁의 왕이었다. 왕은 심문을 포기하고 선녀가 방문한 기념으로 연회를 열었다. 나랏일을 하는 사람이 사사로운 감정으로 연회를 여는 건 분명 좋은 일이 아니다. 왕의 흐트러진 모습은 사관의 붓놀림으로 규탄을 당했으며, 뿐만 아니라 고위 관리직들로의 입방아가 다시 한 번 큰 소문이 되어 황궁의 담벼락을 구렁이처럼 슬그머니 지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바야흐로 나라는 선인의 등장으로 떠들썩했다. 팔선의 재림이다. 아니다, 팔선이 아니라 이젠 구선 (九仙) 이다. 그런 입방아 속에서도 청아는 왕의 총애를 받아 궁의 이곳, 저곳을 탐방했다. 청아가 요시카, 아니 방향공주를 처음 만난 것도 그때의 일일 것이다.
3
기억해 주세요.
부디 날 기억해 주어요.
나야 이대로
못 잊는 연보라의 물망초지만
혹시는 날 잊으려 바라시면은
유순히 편안스레 잊어라도 주어요.
4
“애달픈 시로군요.”
늦은 밤, 시를 외고 있던 공주가 갑자기 들린 말소리 덕분에 화들짝 놀랐다. 공주는 목소리의 행방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 정으로 구멍을 뚫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선녀가 보였다. 청아는 공주를 향해 얄궂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아아, 장안을 한참동안 달구고 있는 선녀님인가요. 공주는 청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청아는 고개만 살짝 끄덕여 대답했다. 달빛은 청아의 날개옷을 하늘하늘 비추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에 아바마마가 어째서 저 선녀를 총애하는지, 공주도 살짝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계속 낭송해주시겠어요?”
의외의 부탁이 들려왔다. 공주는 잠시 청아를 멍하니 바라본 다음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낭송을 시작했다.
5
나야 언제는 못 잊는 꽃, 이름의 물망초지만.
깜깜한 밤에 속 이파리 피어나는 나무들의 기쁨.
당신 그늘에 등불 없이 서 있어도
달밤 같은 위로 사랑과 꽃이
영혼의 길을 트고 살았을 적엔
미소와 도취만이 큰 배 같던 것
5
공주는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낭송을 멈췄다. 그렇지만 청아는 박수를 짝짝, 쳤다. 그리고 벽을 넘어 공주의 곁으로 다가왔다.
“전 깨끗한 사람을 좋아해요. 예를 들어 당신 같은 사람.”
“네?”
청아의 그 말과 함께 공주는 시야를 가리는 물체 덕분에 앞을 볼 수 없었다. 종이, 정확히는 무언가가 적힌 부적이었다. 강령술은 처음이지만, 한 번 해봐야겠어요. 이상한 주문과 함께 공주의 시야가 흐려졌다. 그리고 어느새 눈이 감기듯 공주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아아, 정말 완벽하게 멋져. 당신 같은 인간, 당신 같은 시체를 나는 찾고 싶었어. 당신 같은 공주를 이런 구석에다가 처박아 둔 왕은 참 멍청해. 당신에겐 그래, 미야코 요시카 (古宮 芳香) 이란 이름을 줄게.”
그 날 이후, 궁에서 선녀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선녀를 잃은 왕도 넋이 나가버리고, 우두머리가 넋이 나가자 곧 온 나라가 넋이 나갔다. 망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선인의 나라는 호사가들의 입방정 속에서만 살고, 현실에선 죽게 되었다.
6
“자, 요시카 밖으로 나갈 시간이야.”
대사묘 밖으로 나가기 위해 청아는 새 부적을 준비했다. 새 부적은 이전에 쓰던 종이보다 질긴 종이를 썼기에 더 튼튼할 것이다. 청아는 요시카가 딴 곳으로 방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새 부적에 ‘날 따름’ 이라고 적어두었다. 그리고 원래 붙였던 부적을 떼는 순간, 요시카는 바닥에 누운 채로 시의 구절을 읊었다.
7
당신이 간 후
바람 곁에 내 버린 꽃빛 연보라는
못 잊어 넋을 우는 물망초지만
기억해 주어요.
지금은 눈도 먼 물망초지만
8
그러나 이곳은 환상향. 일국의 공주였던 생전의 요시카를 아는 것은 지금의 곽청아 뿐이다. 그랬기에 청아는 미소를 띠었다.
너를 기억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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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썼던 글 재탕.
요시카가 읊는 시는 김남조 시인의 '물망초' 라는 '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