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다니? 그런 건 아니야.」
「싫은 게 아니라면 저보다 그 무녀가 좋으신 거군요.」
「그것도 아니야.」
「그럼, 왜 절 보자마자 나가신 거예요?」
얀데레 모드가 된 모미지의 추궁은 집요했다. 그냥 솔직하게 '네가 너무 무서워서 나도 모르게 도망쳐 나왔어!'하고 말 할 수도 없고,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너무 막막했다. 사실 지금도 무섭다. 저 죽은 동태 같은 눈이 무지 위험해 보인다고!
대충 둘러대 봤자, 금세 들통 날 게 뻔하고 그렇다고 이실직고 할 수도 없는 상황. 아직 서늘한 이른 아침인데도 이마에서 진땀이 베어 나오는 듯 했다. 무표정한 모미지가 실망한 어조로 말했다.
「말해주기 싫으신 거군요. 역시, 저 같은 끈질긴 여자보다 어린 무녀가 더 좋으신가 봐요. 그 무녀 귀여웠으니까요. 게다가 하쿠레이 무녀라 저 같은 말단 텐구는 상대도 안 되는 걸요. 이런데 어떻게 저 따위가 그 무녀를 이기겠어요.」
무표정했지만, 침울해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레이무와 비교해 무엇 하나 이기는 것이 없는 현실에 자신이 없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 아이는 여러모로 특별하니까. 비교 당한다면 모미지 뿐만 아니라 나를 포함한 모든 텐구가 같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아이를 좋아하는 건 – 이성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으로 - 그런 특별함이나 귀여운 외모 때문이 아니다. 당돌하면서 올곧고 노력가에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집념에 그러면서도 나이에 걸맡게 아이다운 면이 남아 있는 레이무이기에 좋아하는 거지.
그러나 지금의 모미지에게 그런 얘기를 꺼낼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행여 자신이 아닌 레이무를 택할까봐 초조해 하는 그녀에게 있어 결정타가 될 수도 있으니까. 자칫 완전한 얀데레로 각성하거나 아니면 재기불능에 빠질 염려도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궁여지책으로 격려의 말을 내뱉기로 했다.
「그래서 너 한테는 멀리까지 내다 볼 수 있는 천리안이 있잖아. 요리도 아마, 레이무 보단 네가 더 잘할 걸? 헌신적인데다 조신하기까지 하고. 내가 이런 말 할 자격이 없긴 하지만, 신부감으론 레이무 보단 네 쪽이 훨씬 더 낫다고 해야 하나..」
「정말요?」
「어.. 으응.」
좀 지나쳤나?
기운을 복 돋아준다고 한 말이 모미지를 완전 부활하게 만들었다. 그걸로 잘 된 게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 무표정한 얼굴에 생기가 돋아나 얀데레 같은 분위기가 없어지긴 했지만, 이번엔 부담스러울 정도로 기뻐하고 있었다.
싱글벙글 하면서 날 올려다보는 두 눈이 지나치게 초롱해서 마치, 오랜만에 귀가한 주인을 맞이하는 견공을 보는 듯 했다. 고고한 늑대를 그런 눈으로 보는 것은 같은 늑대로서 참 몹쓸 생각이긴 하지만, 이 보다 더 적절한 비유는 없었다.
「그.. 그그.. 그럼. 소우지 씨!」
「왜.. 왜?」
헥헥 거리며 날 부르는 모미지. 엄청난 기세에 얼떨결에 대답한 나는 뒤에 무슨 말이 이어질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 두려웠다. 모미지가 엉덩이를 뒤로 빼고 수줍은 듯 몸을 배배꼬며 말했다.
「당장, 결혼해요!」
「겨.. 결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암컷은!
경쟁 상대보다 신부감이라는 말에 기쁜 건 이해하지만 너무 나갔잖아!!
「저기, 모미지. 그건, 아무래도 너무 나간 건..」
「왜요? 저 보고 신부감이랬잖아요! 그 무녀 보다요! 그러니까 망설일 필요가 어딛어요?」
「잘 들어. 모든 건 순서가 있는 법이야. 아직 사귀지도 않은 나랑 결혼을 하는 건 너무 이르지 않니? 그리고 난 아직 그럴 맘이 없어.」
아직 솔로 생활을 만끽하고 싶으니까.
누가 들으면 사치를 부린다고 손가락질 하겠지. 그래도 본심인 것을 어떡하랴.
그런데, 초 데레데레 모드인 모미지에겐 씨알도 안 먹히는 모양이었다. 동공 안에 하트표가 새겨져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모미지는 나의 애정을 갈구하며 저돌적으로 밀어 붙였다.
「상관없어요! 소우지 씨가 그럴 맘이 없더라도 이쪽은 그럴 맘 가득인 걸요! 자자! 제가 그럴 맘 들게 만들어 드릴게요!!」
물리적으로.
그것도 압도적인 힘으로!
내 양 손과 깍지를 낀 모미지의 악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나는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지만 꽉 붙잡힌 손과 함께 상체가 점점 뒤로 꺾어 졌다. 그럴수록 모미지의 얼굴이 가슴이 나와 가까워진다. 발그레하게 상기된 모미지의 얼굴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험해 보였다.
「모미지! 자.. 잠깐. 뭐하려는 거야! 멈춰!!」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을 것 같은 위기에 나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폭주해버린 모미지를 멈춘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 이젠 완전히 동공이 하트 모양이 된 모미지가 뜨거운 숨결을 뱉어내며 말했다.
「이대로 기정 사실로 만들어 버리면 되는 거에요!」
「기정 사실이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설마!?」
불길한 예감이 현실로 되어간다. 상체가 아까보다 더욱 뒤로 꺾어진 상태에서 나는 모미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모미지는 보란 듯이 상체. 그리니까 자신의 그 풍만한 가슴을 내 가슴팍에 붙이면서 내 귓가에 소근 거렸다.
「그거 알고 있어요?」
「뭘?」
「강/간 당하는 사람은 평소에 3배의 힘으로 저항 한대요.」
「거짓말! 그러면 왜 내 쪽이 밀리는 건데!?」
내가 그렇게 묻자, 모미지는 내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얘기했다.
「왜냐하면 강/간하는 쪽이 평소의 7배의 힘이 솟아나기 때문이래요.」
후후후. 요염하게 웃으면서 혀로 제 입술을 츄릅, 핥는 모미지는 영락없이 포식자의 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뒤로 넘어진 내 몸 위에 모미지의 몸이 포개어졌다. 아! 이대로 모미지에게 강/간당하고 마는 걸까.
솔로였던 지난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7배의 힘으로 나를 제압한 모미지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 엉망진창으로 범해지는 미래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 미래에 절망하면서 정욕에 물든 모미지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요.」
「... 부탁이니까, 살살 해줘.」
성별이 바뀐 듯한 짤막한 대화를 끝으로 모미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내 상의를 확 하고 찢어 발겼다. 그러자 햇빛을 받지 않은 뽀얀 내 가슴살이 막 드려났다. 그걸 보며 모미지는 맛있겠다는 듯 흘려 내리는 군침을 손목으로 슥슥 닦아댔다. 나는 당장이라도 울어버릴 듯이 목을 울리며 끅끅거렸다.
그때였다.
「너희들 뭐하는 거야!?」
강/간의 현장을 목격한 토도키가 놀라하며 외쳤다. 방해꾼의 출현에 모미지가 신경질적으로 짧게 혀를 차며 토도키쪽을 돌아보았다.
「별 거 아니니까, 토도키 씨는 신경쓰지 말아 주세요.」
「별 거 아니긴.. 누가봐도 강제로 덮치고 있는 모습이잖아!」
「덮치긴요? 조금 격렬한 애정표현일 뿐인걸요?」
「애정표현으론 그런 몰골이 되진 않다고!」
세상이 끝난 표정으로 울먹이는 내 얼굴을 본 토도키가 그렇게 반론하자, 더는 궤변을 늘어놓을 수 없게 된 모미지가 사근사근한 태도를 집어 치우고 불쾌한 듯 인상을 썼다.
「쳇, 모처럼 좋았는데.」
뜻하지 않은 방해에 기분이 잔뜩 나빠진 모미지는 하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더니 내 살과 맞닿았던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는 아쉽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소우지 씨. 아쉽게도 방해가 들어와서 물러나게 되었지만, 다음 번에는 끝까지 사랑을 나누도록 해요.」
그렇게 얀데레에서 교미네이터로 진화한 모미지는 여운이 남는 듯한 얼굴로 멀어져갔다. 모미지로부터 겨우 해방된 나는 멍한 눈으로 거칠게 찢겨져 나간 내 상의를 내려다봤다. 토도키가 걱정이 되어 달려와 주었지만, 상태가 더 악화되어 버린 모미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제정신을 차리기 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과연, 나는 교미네이터가 되어버린 모미지로부터 정조를 지킬 수 있을까?
3배의 힘으로 저항하는 나를 무려 7배의 힘으로 덮치는 모미지를 떠올려 볼 때, 그것은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지금의 나로서는 그런 모미지를 감당해낼 자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