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잘 풀릴 거. 나는 왜 멍청하게 계속 미뤘던 것일까? 아마도 레이무에 대한 불신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모미지를 공격 했던 때의 레이무의 모습이 본능적으로 무섭다고 느꼈기에 잘못된 편견을 가지게 된 어리석음. 그런 애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용서받지 못 할 거라 지례 짐작해 버린 탓이다.
이젠 정말 면목 없어졌다.
레이무는 내가 와준 것만으로도 저렇게 기뻐하는데 난 뭐난 말이야.
그래도 많이 늦어졌긴 했어도 만나서 조금이나마 응어리를 풀게 된 것이 다행이었다. 분노로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이 지금은 그 나이 때의 소녀처럼 부드러워진 것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그래. 이래야 하지. 아무리 환상향을 조율하는 하쿠레이 무녀라고 해도 아직은 소녀다. 바깥세계였다면 교복을 입고 등교를 할 나이. 그런 아이에겐 무표정이나 노기 서린 표정보다 해맑은 미소가 어울린다.
너무 늦어진 것에 대한 사과가 잘 전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레이무는 시선을 옮겨 내 엉덩이 부근을 쳐다보고 있었다. 불현듯, 나의 그 고질적인 버릇이 떠올린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돌려 꼬리를 봤다.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내 꼬리는 살랑살랑 열일 중이시다.
그런데, 아까부터 레이무의 시선이 내 살랑거리는 꼬리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것이 몹시도 흥미를 보이는 듯한 눈초리라 나는 권하는 말을 툭 던지듯 내뱉었다.
「만져볼래?」
레이무는 대답 없이 고개를 빠르게 두어 번 흔들어 강하게 긍정했다. 나는 그런 레이무의 모습에 어쩐지 감개가 무량해졌다. 처음 만났을 당시의 그 애로 돌아온 것 같아서.
나는 몸을 슬쩍 돌려 레이무에게 만져보라는 듯 꼬리를 내밀었다. 그것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레이무는 침이라도 삼키듯 한 눈치였다. 그리고 이내 손을 뻗어 내 하얀 꼬리를 부드럽게 쓸어 내렸다.
묘한 느낌이라 조금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소녀에게 무방비하게 꼬리를 만져지다니. 전에도 종종 이렇게 만지게 했었지만, 오랜만인데다 보는 눈이 있다는 사실이 나의 수치심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위험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구나.
나는 꼬리 삼매경에 빠진 레이무에게 그만 눈치 채라는 의미로 눈짓했다. 갑자기 꼬리를 쓸어내리던 손이 뚝 멈추더니 천천히 떼어진다. 레이무는 이제야 이곳에 있는 게 단 둘 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챘는지 그 상태로 돌처럼 굳어졌다.
그리고 얼굴이 잘 익은 홍시처럼 붉어졌다.
나도 덩달아 붉어졌다.
「우리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해도 돼.」
유카리님의 조소가 섞인 그 말이 결정타가 되어 내 수치심 게이지가 임계치를 넘어 MAX가 되어 버렸다. 레이무도 그런 나와 비슷한 기분인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듯 동공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약속이라도 했다는 듯 나와 레이무는 동시에 거리를 벌렸다.
「이.. 이런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니까!」
쪽팔림으로 혼돈의 카오스 상태에서 뱉어낸 변명은 자폭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상황을 되러 악화 시켰다는 것을 증명하듯 구경꾼들의 얼굴에 조롱하는 듯한 얄미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레이무가 수습한답치고 다급하게 외쳤다.
「아저씨 꼬리 따윈 별로 안 좋아하거든!」
저기, 레이무양. 그거 완전 아웃이거든.
츤데레의 전형 같은 대사에 마리사가 싱글벙글한 얼굴로 비아냥했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했던가? 어허, 아까 행복하다는 얼굴로 꼬리를 쓰다듬는 걸 다 봤는데, 이제 와서 왜 이러시나? 아니면, 내 눈이 옹이구멍이란 말이오?」
「그렇다면 내 눈도 옹이구멍이 되는 군요. 스이카씨는 어떠신지요?」
「니들 뭐 잘못 먹었어? 시답잖은 연기 그만두고 걍 솔직하게 말해.」
마리사와 유카리님의 나이 지긋한 어르신 연기에 이부키님이 짜증 섞인 투로 말했다. 그에 유카리님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솔직한 감상을 내뱉었다.
「너희 둘이 바깥세계에서 어떤 관계였는지, 잘 알겠어. 너희들 정말 사이가 좋았구나. 네가 왜 무녀 제안을 선듯 받아 들였는지 이젠 너무 잘 알 것 같아.」
「아.. 아니라고... 아까는 나도 모르게.」
「왜? 보기 좋은 걸? 난 남녀관계를 간섭할 만큼 고지식하지 않아.」
필사적인 변명을 입에 담는 레이무를 유카리님은 여유 있는 어조로 침몰 시켰다. 더는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게 된 레이무의 정수리에서 흡사 하얀 김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거기다 추격타를 더하는 미운 마녀가 있었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구! 너희 둘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아. 근데.. 나도 그 꼬리 만져볼 수 없을까? 레이무의 그 행복한 표정을 보고 있으니까, 궁금해져서 말이야.」
이젠 아예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는 레이무.
저 마녀 코스프레는 친구가 아니었던 건가. 레이무의 HP는 벌써 바닥을 드려내고 있는데, 꼭 그렇게 잔인하게 오버 킬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거냐고!
레이무는 흐느끼는 목소리로 「행복해 하지 않았어.」하고 사실을 극구 부정했다. 그러나 이미 다 보여 져 버린 이상, 그런 변명이 통할 리 없다는 것은 본인이 더 잘 알 터. 나 역시 무슨 말을 한 들 놀림만 받을 거란 것을 알기에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는 중인 것이다.
그때, 이부키님이 상황을 정리하려는 듯 「자! 자!」하고 모두의 이목을 자신에게로 끌어 모았다.
「레이무와 똥개가 극적으로 관계를 회복한 날이 아니냐. 이렇게 좋은 날에 놀리는 데에만 신경 쓰면 안 되지!」
웬일로 좋은 말씀을 하신 것 같았다.
가장 놀려먹을 것 같던 위인이 놀림판에 종지부를 찍으려 하다니. 나는 조금 의외라는 눈으로 이부키님을 쳐다봤다.
그랬는데, 그 뒤에 이어진 말이 나의 기대를 철저하게 배신하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둘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는 게 어떨까?」
「좋은 의견이야.」
「이의 없음!」
유카리님과 마리사가 기다렸다는 듯 동의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축하의 박수.
「축하해.」
「축하한다구!」
「경사 났네. 경사 났어!」
짝짝짝짝짝짝짝!
저 악랄한 세 명은 나와 레이무를 수치심으로 죽일 작정인가 보다. 놀림의 대미를 장식하는 지속성 정신 대미지에 나는 그만 정신이 혼미해져 갔다.
그런데, 잠깐.
저거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어디서 봤더라...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세 악동의 박수가 어딘지 모르게 낯익다는 느낌이 들었다.
「축하해.」
앗! 알았다.
이거 완전 에반게리온 tva판 엔딩이잖아!
이 상황에서도 그런 걸 떠올리고 마는 나는 바깥세계의 문명에 너무 물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이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지려는 찰나, 고개만 숙인 채 부들부들 떨고만 있던 레이무가 갑자기 큰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더 이상 못 참아!」
결국, 계속되는 놀림에 더는 참지 못하고 폭발해 버린 것이다. 순간, 박수 소리가 그치고 정적이 감돌았다. 급격히 싸늘해져 가는 분위기 속에 살기어린 레이무의 시선이 자신을 놀려먹는 데에 여념이 없던 자들의 얼굴을 차례대로 훑고 지나갔다.
「나 정말 화났으니까, 각오해!」
손을 소매 속에 집어넣더니, 손깍지 사이마다 기다란 봉침이 끼워져 나왔다. 그걸 본 유카리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저기, 레이무. 진심인 거니?」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어조로 묻는 유카리님.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대로
「당연히 진심이야.」
사납게 노려보며 레이무는 강한 의사를 내비쳤다. 유카리님은 곤란하다는 듯 검지로 볼을 긁적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미 아침에 맞았었는데, 좀 봐주지?」
「잘못 했으면 당연히 맞는 거지. 아침에 맞았다고 봐주는 건 없어.」
봉마침을 끼운 레이무의 손이 빠르게 휘둘려졌다. 손을 떠난 세 개의 봉마침이 유카리님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눈으로 보고 나서 반응하려면 절대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유카리님은 순식간에 틈새에 삼켜져 사라졌다. 혀를 내두를 정도의 반응속도. 대요괴 클라스는 어딜 가지 않는다는 걸까. 어느새 내 옆으로 틈새를 열고, 상반신만 쑥 내민 유카리님이 부채로 입을 가린 채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침때처럼 순순히 맞아 줄 생각 없어.」
그런데, 그 순간 평! 하는 파공음이 내 고막을 쌔게 때렸다. 그리고 시야를 가리는 연기. 타는 듯한 퀘퀘한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이어서 「꺅!」하는 유카리님의 짧은 비명이 들려왔다.
「흥. 널 상대로 내가 대충할 줄 알고.」
봉마침을 던졌던 손 말고, 비어 있던 다른 손에는 어느 사이엔가 한 장의 부적이 쥐어져 있었다. 아까의 파공음은 유카리님이 틈새로 피할 줄 알고, 미리 나타날 장소까지 예측해서 날린 부적이 폭발하는 소리였던 것이다. 유카리님의 뒤통수는 폭발의 여파로 황금색 머리카락 일부가 꼬불꼬불하게 말려져 있었다.
레이무의 부적 공격은 계속 되었다. 양 팔을 좌우로 펼치자 소매로부터 수를 샐 수 없는 무수한 부적들이 쏘아져 나갔다. 부적들은 흡사 호밍 미사일처럼 완만한 궤도로 유카리님을 향해 날아들었다. 유카리님은 그 부적들에게 피탄 당하기 직전, 혀를 살짝 내밀고 눈 밑살을 검지로 당겨 소위 '메롱'으로 약을 올리고는 틈새 너머로 사라졌다. 목표물을 잃은 부적은 실선이 되어 사라진 틈새를 지나치고는 힘을 다한 듯 땅바닥에 떨어졌다.
레이무의 입가가 일그러졌다. 당했다는 듯 치켜세워진 눈초리로 유카리님이 있었던 허공에 무섭게 쏘아본다.
그나저나 그 짧은 찰나에 메롱이라니. 내 안의 유카리님에 대한 이미지가 점점 안 좋은 쪽으로 굳어져 갔다. 이건 보통 약 오르는 게 아닐 테지. 갈 곳을 잃은 레이무의 분노가 돌연, 다음 타자에게 향했다.
마리사의 차례였다.
「음.. 너무 놀렸나?」
「그걸 말이라고.」
어색한 미소로 뻔뻔한 말을 하는 마리사를 레이무가 사나운 눈으로 노려봤다. 당장이라도 공격을 가해올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마리사는 슬그머니 발밑에 두었던 빗자루에 팔을 뻗었다. 바로 쓸데없는 움직임은 보이지 말라는 경고 사격이 이어졌다.
「오우!」
부적 한 장이 날아가더니, 마리사가 손을 데려는 빗자루에 착탄되었다. 퍽! 하는 작은 폭발이 일더니 빗자루가 뒤쪽 청마루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마리사는 그 상태로 굳어져 난감한 얼굴로 애원했다.
「레이무. 미안! 잘못 했어!」
신변에 위험이 닥치자, 바로 저자세가 된 마리사. 양손바닥을 맞대고 고개를 숙여 비는 모습이 참 뭐랄까. 뻔뻔해도 너무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리사의 사과에 레이무는 팔짱을 끼고 반개한 눈으로 그 소녀를 내려 봤다.
「쯧. 제대로 반성하는 거야?」
「물론! 하느님 부처님 천지신명께 맹세코 반성하는 중이라구!」
레이무는 마리사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싸늘한 시선으로 「흐응~」하고 콧소리를 냈다. 그런 레이무의 반응에 나는 저 마녀 코스프레 소녀가 얼마나 신용이 없는지를 알 수 있었다. 평소에 거짓말을 자주 하는 편인가?
그래도 이만하면 용서해 주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쟨 유카리님과 달리 인간이라서 자칫 잘못 했다간 다칠 염려도 있고.
괜한 간섭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의 경우를 생각해서 레이무에게 그만 용서하고 화를 가라앉히라는 말을 꺼내려 할 때였다.
갑자기 고개를 쑥이고 손을 싹싹 빌면서 비굴하게 용서를 구하던 마리사가 낮은 웃음을 흘리는 것이었다.
「후후후. 빗자루만 날려버리면 도망 못 갈 거라고 생각 했지?」
무슨 생각인 거지? 계속 빌어도 모자랄 판국에 웬 도발의 말을 꺼내는 거람? 마리사의 이해가 불가능한 행동에 레이무가 의아하다는 시선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로 그때, 고개를 쳐든 마리사가 품속에서 팔각형의 성냥곽 같은 걸 꺼내더니 구멍이 난 부분으로 레이무를 겨냥했다. 그리고 이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연부, 마스터 스-파크!」
엄청난 빛과 함께 고열의 줄기가 레이무를 향해 직선으로 뻗어나갔다. 세상이 온통 하얀 색으로 잠식 되는 가 싶더니, 황색 빛의 밝은 스타-별-가 주변을 수놓았다. 거대한 빛 줄기가 지나간 자리에 레이무는 없었다.
좌우를 둘러봐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더니, 상공에서 마리사를 요격할 준비를 끝내놓았다. 십 수 장의 부적이 그 아이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레이무가 손짓하자, 그 십수 장의 부적이 일제히 마리사를 향해 쏘아져 내렸다. 그리고 마리사에게 그대로 착탄되기 직전, 청마루 밑에 들어갔던 빗자루가 앞으로 빠르게 쏘아져 나오더니 주인을 태우고 그대로 하늘을 향해 대각선으로 날아올랐다.
간발의 차로 부적의 비를 피한 마리사는 레이무를 향해 작별을 고했다.
「그럼, 제군들. 작별이다!」
빗자루 끝부분에서 강한 빛이 방사되더니 별 가루를 날리며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상대가 레이무라도 추적을 허용치 못하는 신속한 후퇴였다. 또 다시 상대를 놓친 레이무는 천천히 하강하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화낼 기운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상대.
박수갈채를 유도했던 이부키님이 남아 있었다.
레이무는 감정 없는 눈으로 이부키님에게 기운 없는 어조로 물었다.
「너도 도망 갈 거지?」
「응. 두 쪽이가 되는 건 이제 사양하고 싶으니까.」
「그럼, 마음대로 해.」
어차피 작정하고 도망치면 절대 못 잡을 테니까.
중얼거리듯 이어진 뒷말.
이부키님은 머쓱한지 뒷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그리고 뒤늦은 지적이 이어졌다.
「근데, 너 왜 내 옷을 멋대로 입고 있는 거야?」
「그냥 무녀가 된 기분을 내고 싶어서.」
「나중에 제대로 세탁해서 돌려줘.」
「알았어.」
그렇게 레이무와 약속을 한 이부키님은 활짝 웃는 얼굴로 옅어져가더니 이윽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정말 신통방통하네.
우릴 실컷 놀려대던 세 명은 각자의 방식으로 레이무의 분노로부터 달아났다. 이제 신사에 남아 있는 건 나와 레이무 단 둘 뿐.
막상, 둘이 되고 나니 어쩐지 긴장이 되어졌다. 레이무도 나와 비슷한 심정인지, 제대로 쳐다도 보지 못한 채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무슨 말로 이 어색한 정적을 깨야할지, 딱히 적당한 화제 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가만히 서 있는 것도 뭐해서 청마루로 걸어가 거기에 엉덩이를 걸터앉았다. 그러자, 레이무가 이쪽을 돌아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 텐구들 보고 바보들이라고 한 거 취소할 게.」
「어.」
갑자기 자신의 말을 번복하다니. 무슨 심정의 변화일까? 하지만, 그것은 다소 얼빠진 이유에서였다.
「바보들은 다름 아닌 내 주변 녀석들인걸.」
「으음.. 그렇구나.」
확실히 그렇긴 한데,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의견이었다. 그 바보들 중 두 명은 나 따위가 감히 우러러 볼 수 없는 분들이니 말이다. 레이무가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는 양 다리를 번갈아서 까딱 거리며 물었다.
「아저씨.」
「응, 왜?」
「나 앞으로 아저씨네에 가끔씩 놀려 갈 건데, 괜찮지?」
「언제는 내가 오지마라고 해서 안 왔었나?」
「하긴 그러네.」
풉, 하고 레이무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에 나도 덩달아 작게 웃었다.
「나도 시간 날 때엔 가끔씩 신사에 찾아와 볼까하는데.」
「응. 그럼, 약속.」
「알았어. 약속할게.」
나는 소지를 내미는 레이무에게 똑같이 소지를 내밀었다. 그리고 새끼손가락끼리 얽혀 서로가 말한 것에 대한 약속을 다짐했다.
이로서 나와 레이무의 관계는 4년 전의 그때로 돌아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