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흉하기 이를 데가 없는 센라를 마주하고도 퇴마사들은 섣불리 도망친다는 선택을 취하지 않았다. 여기서 등을 보였다간 그대로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에 공포에 떨며 쉬이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대로 있어봤자, 늦던 빠르던 흉악한 오니에게 죽임을 당하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덩치에 어울리게 땅이 흔들릴 정도의 발소리를 울리며 다가오는 센라의 모습에 모두들 침 삼키는 것도 잊은 채 굳어졌다. 싸워봤자 승산이 없고, 그렇다고 도망 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지 않는 상황은 그들을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사.. 살려줘! 부탁이야!!"
돌파구가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 살아남기 위해 일말의 기대를 안고 목숨 구걸에 나서는 퇴마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목숨을 오로지 오니의 자비에 기대는 구걸은 퇴마사 전원에게 전염처럼 퍼져나갔다.
처음 목숨 구걸을 한 자는 도복에 부러진 칼을 든 퇴마사였다. 그 뒤를 이어서 수염을 기른 퇴마사, 하늘하늘한 옷을 입은 홍일점 퇴마사, 민머리인 퇴마사, 쌍둥이 퇴마사 서로 앞다투어 무릎을 꿇고는 센라에게 용서를 구했다.
"저에겐 어린 자식이 있습니다. 부디.. 부디 자비를!"
"분수를 모르고 무례를 저지른 것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 죽을죄를 지었어요! 제발.. 죽이지는 말아 주세요.."
"흐어엉.. 살려만 준다면 뭐든지 하겠습니다아아!"
"저.. 저도 뭐든지... 몸을 원한다면 얼마든지!!"
그러나 흉흉한 센라의 붉은 안광은 일체의 자비도 없어 보였다. 처형을 위한 발걸음도 늦추지 않고 거리를 좁혀오는 그에게 퇴마사들은 아예 땅에다 머리까지 찧어대며 빌었고, 급기야 원망하는 목소리까지 들려왔다.
"저 변태같은 놈이 시켜서 그랬습니다!"
"마..맞아요! 저 얼굴을 허옇게 떡칠한 놈이 우릴 꼬드겨서 덤빈거 뿐입니다요!!"
"저희들은 목소리 오카마 같은 변태놈에게 속은 겁니다!"
"허.."
제 목숨 앞에서 동료 따윈 안중에도 없는 퇴마사의 모습에 센라는 기도 안 차다는 듯 낮은 한숨을 뱉어냈다. 그리고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불길하게 빛나는 붉은 동공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퇴마사들을 훑어본다. 졸지에 주동자로 몰린 변태에 오카마 목소리인 얼굴 허옇게 떡칠한 퇴마사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다른 퇴마사들의 치졸한 행태에 노성을 토해냈다.
"이..이이이..이잇-!! 네놈들이 그러고도 퇴마사냐아앗!"
그가 눈을 희번덕이며 그들을 쳐다보자, 도망치듯 시선을 피하는 퇴마사들. 그는 끓어오르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괴성을 내질렀다.
"끼야아아아앗! 이 비겁한 놈드으으을!!!"
반쯤 까뒤집힌 눈에 선명하게 새겨진 이마의 핏줄. 광분한 그에게 자신의 목숨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 자신을 모함하는 비열한 퇴마사들에게 분노를 쏟아내며 처참한 응징이 가해지는 것을 바랐다. 저 무시무시한 오니에 의해서 말이다.
그의 시선이 발을 멈춘 센라에게 향했다.
"저런 비겁한 놈은 살아 있을 자격이 없소이다! ...날 죽여도 좋소. 대신, 저 비겁하고 야비한 자들을 절대 살려주지 마십시오!!"
"오니한테 자비를 바랄 생각 마라."
낮게 중얼거리며 센라는 멈춰 섰던 걸음을 재개했다. 그것을 자비 따윈 없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죽음을 내리겠노라는 뜻으로 받아들인 퇴마사들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살아날 가망 따윈 없는 현실에 그들의 얼굴은 체념의 빛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런 그들의 낯짝을 흘겨본 희멀건 퇴마사는 꼴좋다는 듯 광인처럼 웃었다.
"히에.. 힛히히히히-! 우효옷 홋호-!!"
기괴하게 광소하던 그에게 네 발짝 앞으로 온 센라가 짜증난다는 듯 혀를 찼다.
"이거 아주 실성 했구먼."
센라는 희멀건 퇴마사가 아무리 봐도 제정신으로 보이지 않았다. 지나치게 흥분하더니, 결국 맛이 가 버린 건가. 이성을 잃은 듯 듣기 거북한 웃음을 흘리던 그에게서 시선을 돌려 모든 걸 체념한 듯한 퇴마사를 바라보았다. 목숨 구걸도, 책임 전가도 통하지 않으니 완전히 포기한 모양이군. 속으로 그리 중얼거리며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먼저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는 민머리 퇴마사에게 다가간 센라는 손아귀로 그의 머리 째로 잡아들었다. 그대로 공중으로 떠오른 그는 머리가 쪼개지는 통증을 호소했고, 센라를 향해 팔과 다리를 휘둘려 대며 저항했다. 그러나 센라는 간지럽지도 않은 듯 조용히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 사나운 귀신의 눈과 마주한 그는 얼어붙는 공포에 저항하는 것도 잊고 뒤집어진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리고 그는 센라의 손아귀에 머리가 터져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죽었다. 움켜쥔 센라의 손가락 틈 사이로 머리였던 살점과 뼈들이 즙처럼 터져 나왔다. 머리를 잃은 몸뚱이는 그대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채 늘어졌고, 그 위로 조각난 뼈와 뇌수, 그리고 눈알이 쏟아져 내렸다.
그 끔찍한 광경에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말을 잃고 얼어붙었다. 자신들의 죽음이 기정사실이 된 퇴마사들은 다음 차례가 자신이 아니기를 빌면서 흐느끼는 신음성을 흘렸다.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소리에 도복을 입은 퇴마사가 손에 든 부러진 검을 내팽개치고 뒤도 안 돌아본 채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등과 가슴팍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몇 발자국도 딛지 못하고 절명했다. 그 구멍 너머 일직선상에는 센라의 주먹이 위치해 있었다.
주먹으로 이루어낸 압도적인 폭력.
단지 앞으로 내지르는 행위만으로 사람의 몸을 관통하는 풍압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유린은 계속 이어졌다. 다음 제물이 된 자는 흰 수염을 길게 기른 자였다. 그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그저 손날에 목이 뜯겨져 나가 절명했다. 그 다음은 쌍둥이. 그들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부적을 날리고 칼을 휘둘렸지만, 굴강한 귀신의 몸에 생체기 하나 내지 못했다. 그리고 앞서 죽은 퇴마사들의 운명을 따랐다. 푹! 하고 복부를 관통하는 수도로 한 명이 죽고, 또 한 명 역시 수도에 가슴을 꿰뚫려 사망했다.
이제 남은 퇴마사는 하늘하늘한 옷을 입은 여자와 마로 같은 화장을 한 희멀건 남자.
그 둘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것처럼 초연했다.
차례를 기다리는 듯 말없이 앉아 있는 모습은 자신의 죽음을 앞둔 사형수와도 같았다. 이윽고, 거대한 그림자가 여자의 몸을 삼키듯 드리워졌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주마등이 지나쳐가는 여자는 마지막으로 못 다 이룬 꿈을 떠올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게 오니가 언제 자신을 끝낼지 긴장과 초조함으로 기다리고 있기를 한참. 아직? 하고 자신이 살았는지, 아니면 이미 죽었는지도 애매해지려는 그때, 그녀는 슬그머니 눈을 떳다. 그러자, 죽음의 공포와 긴장 속에서 시간이 길게 느껴져서 그런 가 싶었던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무섭지만, 어쩐지 헤프게 느껴지는 오니의 얼굴이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센라가 여자의 얼굴을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어째서 자신의 얼굴을 계속 쳐다보고 있는 건지, 여자가 의아하게 여기며 입을 우물거릴 때였다. 센라가 '흠!'하고 콧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
"제법 반반하게 생겼네."
품평하듯 내뱉은 말에 여자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센라는 자신의 감상을 이어갔다.
"몸매도 늘씬하니 괜찮은 거 같고. 흠흠.. 이 정도면 후식으로 안성맞춤이겠는 걸."
흉악하게 변했어도 색을 밝히는 것은 여전한 센라는 흡족해 하며 방긋하고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통나무 같은 팔로 여자를 감싸더니 그대로 자신의 어깨에다 들쳐 멨다.
"꺄아아악-!"
여자는 혼란해 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팔과 다리를 연신 휘젓지만, 센라의 어깨 위에서 그저 아등바등하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여자를 어깨에 걸친 상태로 걸어오는 센라의 전신으로부터 하얀 증기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풀었던 센라의 몸이 공기가 빠져 나가는 것처럼 점점 줄어들더니, 이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의 몸에서 새어나온 증기는 하늘 위로 뭉게뭉게 솟아오르더니, 곧 흔적도 없이 흩어졌다.
그렇게 원래대로 돌아온 센라는 어깨 위에서 날뛰는 여자의 엉덩이를 한 손으로 치면서 쾌활하게 말했다.
"어이쿠! 이년 기운 넘치는 거 봐라! 오랜만에 내 아들놈, 호강 하겠네!"
팡팡! 여자의 엉덩이를 연신 두 번을 치자, 짧은 비명과 함께 여자의 몸이 저항을 포기한 채 축 늘어졌다. 월척을 낚은 낚시꾼처럼 싱글벙글한 센라의 헤픈 얼굴에 코우가 한 소리 했다.
"선배는 정말 오니가 따로 없군요."
"칭찬 고맙다. 너도 날 본받아서 어엿한 오니가 되길 바라!"
"될 수 있을 리 없고, 되고 싶지도 않아요."
하지만, 선배의 저 당당함과 혜안이라면 본 받고 싶은 것이 코우의 본심이었다. 잔혹하고 방탕하기 이를 데 없는 힘의 화신과 같은 센라.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잔뜩 가진 그에게 끌리는 것은 요괴로서의 본성이리라. '아~ 목 말라!' 하고 갈증을 호소하며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기는 센라. 그런 그의 등을 바라보던 코우의 발아래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기 말이지. 이제 다 끝난 거지?"
아직도 두려움에 떠는 헤이치로가 웅크린 채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그리 물었고, 코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보다시피요. 그런데, 그쪽은 이제 어떡하려고요?"
"어쩌겠나. 마을 사람들이 날 오니와 한패라고 생각할 텐데."
"그럼, 마을 안에서도 저희와 계속 붙어 다닐 수밖에 없겠네요."
염려했던 일을 피하지 못하게 된 이상, 헤이치로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원래였다면 오니에게 사로잡힌 불운한 행상인 연기를 하며 적당한 기회를 봐서 따로 행동할 셈이었는데. 이렇게나 화려하게 저질러 버린 이상, 살아있는 자신이 의심 받지 않는 건 불가능했다.
그런데, 자신은 그렇다 쳐도 오니와 대적했으면서 살아남은 퇴마사가 있었다. 하늘하늘한 옷을 입은 여자 퇴마사는 오니가 색을 밝혀서 살았지만, 얼굴을 희멀겋게 분칠한 퇴마사가 무사한 건 왜일까?
헤이치로가 그런 의문을 가지던 찰나, 희멀건 퇴마사가 멀어져 가는 센라의 등을 향해 분통을 토하며 악을 질러댔다.
"왜 날 무시하는 겐가아아아!! 이 마로가 죽일 가치도 없다는 거냐!"
퇴마사로서의 자존심이 비참하게 짓밟힌 자의 외침.
우뚝 멈춰 선 센라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답했다.
"넌 징그럽고 기분 나쁜 변태지만, 뒈진 새끼에 비하면 살아갈 가치가 있으니까."
죽일 가치도 없어서 내버려 둔 것이 아닌 그 반대라는 말을 남기고, 센라는 여자를 어깨에 둘러맨 채 유유자적하게 가던 길을 걸어갔다. 그러다 문득, 뒤를 돌아본 센라가 코우와 헤이치로를 보며 말했다.
"뭐해? 한 잔 하려 안 갈 거야?"
그가 마을을 찾은 목적.
코우와 헤이치로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 말없이 센라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