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가옥의 절반은 이미 불에 타서 앙상한 뼈대만을 남기고 모조리 화염에 휩싸여있는 상태였다. 주변의 백랑 텐구와 카라스 텐구는 사지가 끊어진채 숨이 멎어있었다. 슈고키는 그런 백랑 텐구와 카라스 텐구의 시체들 틈에 서서 마지막 남은 카라스 텐구 하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쿠로누마. 그녀는 일전의 전투에서 백랑 텐구 마을 하나를 궤멸시킨 전적이 있었다. 카라스 텐구들은 마을의 주민들을 모조리 참살하고 그 시체를 불태워버렸었다. 마을의 주민들중에는 슈고키의 아내와 두 아들도 포함되어있었다.
"드디어...만나게 되었군"
가면 안쪽의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분명히 분노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가느다랗게 떨리는 목소리. 그것은 희열에 젖어들어 나오는 목소리일지 참을수 없는 분노에서 나오는 떨림인지 짐작할수가 없었다.
가슴은 두근대고 피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왠만한 장정보다 훨씬 거대했던 검을 잡은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려오기 시작했다. 양 팔을 붉게 물들정도로 생긴 수많은 상처가 아파서도 아니였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아니였다.
슈고키는 알 수 있었다. 기쁨이였다. 이 순간만을 기다려온 슈고키에게 있어서 이 상황은 더할나위 없이 기뻐해야할 순간일 것이다. 오로지 방해꾼 없이 두 요괴만 남아 복수를 한다. 슈고키가 바라던 최적의 상황이였다.
"누구...더라? 원한을 진 녀석이라면 한두놈이 아니라서 말이지?"
쿠로누마는 얼굴을 갸우뚱하며 고민에 빠졌다. 슈고키는 말없이 가면을 벗었다. 한쪽 눈동자까지 반쪽으로 갈라버릴정도로 깊게 패인 흉터, 얼굴에 남은 수많은 칼자국. 만약 듬성듬성 자란 수염이 아니였다면 흉터에도 불구하고 꽤나 젊어보인다는 평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쿠로누마는 슈고키를 한참 바라보다가 박수를 치며 그제서야 알았다는듯한 반응을 보였다.
"아!! 아아!! 그놈이구나! 그놈이야! 내 첫번째 전투의 희생양이 됬던 마을에서 본적있지!"
"..."
쿠로누마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다 죽였다고 생각했더니 한놈이 남아있었지! 용케 살아남았더니 또 죽으려고 달려들길래 완전히 없애려 했더만...이렇게 성장할줄이야!"
"그래...그 덕분에 하루도 편히 잠들수가 없었다. 네놈 목에 칼을 꽃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말이야!"
슈고키는 냅다 달려들더니 대검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잠깐 잠깐. 아직 이야기 안끝났어"
쿠로누마는 유연한 동작으로 슈고키의 검을 흘려버렸다. 검은 쿠로누마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쳐 땅바닥에 꽃히고 말았다. 돌 파편이 공중으로 살짝 튀어오르고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대단해! 만약 직격당했으면 반쪽이 되버렸겠는걸!"
"헛소리 집어치워!"
슈고키는 그대로 쿠로누마의 몸을 들이받고는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쿠로누마는 슈고키를 약올리며 계속 검을 피하기만 했다.
"네 가족들은 죽기 전에 울부짖었지!"
"아들의 혀를 자르지 못한게 천추의 한이 됬었는데!"
"그냥 네 아내는 카라스 텐구의 씨받이나 하게 할걸 그랬어!"
슈고키는 쿠로누마의 말을 무시한채 있는 힘껏 검을 휘두를뿐이였다. 하지만 쿠로누마는 그런 슈고키의 검을 이리저리 피하며 도발을 할 뿐이였다.
"이제 질렸다. 그만 놀자"
한동안의 일방적인 공격이 계속되던중 쿠로누마가 중얼거렸다. 슈고키가 움찔하는 사이를 놓치지 않고 슈고키의 가슴에 검을 꽃아넣어버렸다. 슈고키는 고통스런 신음을 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크으...아직..."
슈고키는 비틀거리며 일어서기 시작했고, 쿠로누마는 그런 모습을 보고는 감탄하고 말았다. 그러고는 미친듯이 검을 휘두르며 돌진해오는 슈고키의 공격을 다시금 피한후 왼팔에 있는 힘껏 칼을 휘둘렀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슈고키의 왼팔이 공중으로 피를 흩뿌리며 날아갔다. 슈고키는 검을 놓치고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가슴에서 피는 계속해서 배어나오고 있었다.
"아직...그만 둘수 없다..."
쿠로누마는 기를 쓰고 일어나려는 슈고키의 어깨에 칼을 꽃았다. 어깨에 꽃힌 칼을 힘껏 눌러 결국 슈고키는 무릎을 꿇은채 일어나지 못했다. 한동안의 저항이 멈춘후 쿠로누마는 어깨에 꽃힌 칼을 빼냈다.
슈고키는 움찔했지만 쿠로누마는 표정에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참으로 우습다. 늑대야"
쿠로누마가 완전히 무장해제가 되버린 슈고키를 바라보며 비웃었다.
"네놈은 나에게 가족도, 동료도, 검도 잃었다. 이젠 네 목숨마저 나에게 잃게 생겼구나"
"..."
"말해봐라. 이렇게 처참하게 구겨진 네놈에게. 무엇이 남아있지?"
"..."
"말해보래두"
쿠로누마가 귀를 가까히 가져다대자 슈고키는 나즈막히 중얼거렸다.
"늑대에게는...아직 이빨이 남아있다..."
슈고키는 목에 걸린 화살 모양 목걸이를 잡아 뜯어 그대로 쿠로누마의 목에 꽃아넣었다. 쿠로누마는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슈고키는 이빨로 옷덜미를 잡아챈 후, 있는 힘껏 목걸이를 옆으로 잡아당겼다.
살점이 뜯어지는 소리와 함께 쿠로누마의 목의 절반이 뜯겨져 나갔다.
"이...자식...커헉!"
쿠로누마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다 목에서 피분수를 쏟아내며 쓰러져버렸다. 완전히 죽어버린 쿠로누마를 보고는 슈고키는 눈을 감았다.
'가족들이...기다린다...'
피는 멈추지 않았다. 곧 자신도 죽을것이다. 하지만 괜찮았다.
가족들의 원한과 자신의 원한은 여기서 끝이 났다. 죽어도 여한은 없었다...
=====================================================================================================================
뒤늦게 마을로 달려온 이누바시리와 휘염조 일원, 그리고 나는 마을의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을수밖에 없었다. 카라스 텐구들이 저지른 만행에 기가 질릴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마을의 중앙에서 수없이 많은 카라스 텐구들의 시체와 그 가운데에 쓰러져있는 슈고키의 시체를 발견했다.
---------------------------------------------------------------------------------------------------------------------
등장인물 한 명 아웃.
(IP보기클릭)5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