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가 하늘과 땅 만큼 큰 두 요괴가 산을 내려와 어딘가를 향해 정처 없이 걷고 있던 때였다.
갑작스럽게 몰려든 검은 구름이 '우르르 쾅쾅!'하고 울어댔다. 곧 폭우가 쏟아질 전조에 나란히 걷던 코우와 센라의 발걸음이 바빠진다. 아무것도 없는 평지라 비를 피할 장소가 보이질 않아 물에 젖은 생쥐 꼴을 피할 수 없게 된 두 요괴. 이 놈의 비구름은 왜 이리도 갑작스럽게 몰려오는 것일까? 코우는 퉁명스러운 얼굴로 투덜댔다.
"아까까지만 해도 맑았었는데.. 이거 참 곤란하게 되었네요."
"별 수 있나. 빗물로 몸을 씻는다고 생각해야지."
하긴, 그렇게 생각하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씻은 지도 오래된 데다가 옆에 있는 선배의 몸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악취가 풍겨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더러운 행색의 둘에게 있어 비는 좀 씻으라는 하늘의 뜻이나 다름없다.
선배의 말 대로 불평은 그만하고 좋게 받아들이려는 코우의 머리 위로 한 방울 빗방울이 떨어졌다. 툭툭.. 이윽고 쏴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퍼붓기 시작하는 장대비. 시야를 일그러트린다.
땅바닥은 금새 진흙탕이 되어 걸을 때 마다 찰박 거리며 발목을 적셨다.
"와하하! 엄청 쏟아 붓는 구만."
강하게 쏟아 내리는 빗물을 안면으로 받아내며, 센라는 즐거운 듯이 웃었다.
"한동안 가물었으니, 고마운 단비로다!"
"그러게요. 인간이나 짐승들이 좋아하겠네요."
"요괴도 좋아하고."
비를 맞고 있는 우리도.
빗 속에도 개의치 않은 두 요괴는 그 동안 얼마나 씻지 않았던 것인지, 땟국물이 몸을 타고 발목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특히, 센라는 가관이었다. 비를 맞은 지 얼마나 됐다고 검게 그을린 것 같은 얼굴이 붉은 빛이 도는 얼굴로 탈바꿈했다.
정말로 좀 씻으라고 비를 내려 주신 모양이다.
쉴 새 없이 퍼붓는 비로 인해 점점 멀끔해지는 두 요괴의 앞에 돌연 민가가 한 채 나타났다. 마을과는 꽤나 동 떨어진 장소라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인가 싶지만, 그렇진 않았다. 누군가에게 관리되어지고 있는 듯, 폐가와는 거리가 먼 멀끔한 초가집(갓쇼즈쿠리).
도대체 누가 이런 외진 곳에 살고 있는 것일까?
집주인이 궁금한 두 요괴는 비도 피할 겸, 민가에 발을 들이기로 했다. 그러면서 집주인의 반응을 떠올리는 코우와 센라. 갑자기 요괴 둘이 들이 닥치면 필시, 놀라 자빠 지겠지.
끼익-. 센라가 생긴 것 답지 않게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실례 좀 하겠어."
집 안으로 발을 들이자, 타닥타닥 거리는 모닥불 소리와 함께 은은한 불빛이 감도는 실내. 뒤 이어 들어온 코우는 밖과는 확연히 다른 따뜻한 공기에 마음이 누그러지는 듯 했다.
그런데, 정작 집주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이라곤 방 한 가운데에 타고 있는 모닥불과 그 위에 올려져 있는 솥 정도. 솥 안에는 국이라도 끓고 있는 듯 했다.
방 주변을 둘러보던 센라가 혀를 찬다.
"불 위에 솥을 올려놓고 어딜 갔담?"
"그것도 이런 날씨인데 말이죠."
집주인의 부재에 의구심이 드는 것도 잠시, 센라는 자기 집 인양 모닥불 근처, 다다미에 편안한 자세로 앉았다.
"뭐, 어차피 집주인의 양해 따윈 구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상관없지."
무단 침입한 시점에서 이미, 집주인의 존재는 안중에도 없는 센라였다. 솥 안에서 흘려 나오는 국 냄새에 코를 킁킁대며 침을 삼킨다. 주인이 부재중인 집에 멋대로 들어와 앉아 있는 이들이 군침 도는 국을 마다할 이유란 없었다.
솥에 걸쳐져 있는 국자를 들어 올려 담겨져 있는 국물을 입에다 가져대 대는 센라. 뜨거운 김을 입으로 후후 불고는 그대로 한 모금 마셔 넘긴다.
"이거 아주 맛있구먼. 후배, 너도 한 입 먹어봐!"
센라에게 국자를 넘겨받은 코우는 역시, 입 바람으로 국을 식혀가며 한 입 삼켜 넘겼다. 뜨거운 국물이 입안에 머물다 식도로 넘어가 차갑게 식은 배를 따뜻하게 데웠다.
"오옷! 이거 뭡니까..!?"
그 맛에 화들짝 놀라는 코우.
평생을 쫒기는 생활을 해온 그가 처음으로 먹어본 제대로 된 음식이었다. 코우가 충격과 함께 감격에 젖어 있는데, 기척을 감지한 센라가 매서운 눈으로 시선을 돌린다.
벼락이 떨어지고, 그 찰나의 빛이 한 인영을 비추었다. 콰쾅-!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분명 아무도 없었을 그곳에 누군가가 확실히 존재하고 있었다. 문을 여는 소리도 없었고, 심지어 발걸음 소리도 없었는데, 어디에서 나타난 것인지 의문투성이인 인영은 검은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미모의 여인이었다.
코우는 여인을 의심하여 경계를 했으나, 센라는 달랐다.
"그쪽의 아리따운 아가씨는 누구신지?"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노골적으로 흑심을 드려내는 오니를 코우는 기가 찬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누가 봐도 명백히 수상해 보이는 여자에게 집적대는 선배가 어떤 의미로 대단하다고나 할까.
의문의 여인은 옅은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소노 미치루라고 합니다. 두 분은 비를 피하려 오셨는지요?"
"뭐.. 집이 보이길래, 비를 피할 겸, 잠시 쉬려고 들어오긴 했는데..."
센라가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설마, 이런 미모의 여성이 살고 있을 줄은 몰랐구려."
"후훗. 그런 말을 하시면, 부끄럽습니다."
옆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코우는 더 더욱 여자가 수상해 보였다. 갑자기 나타난 것도 수상한데, 요괴를 보고도 놀라긴커녕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다니. 아무래도 여자는 인간이 아닌 선배나 자신과 같은 요괴인 것 같았다.
의심의 눈초리를 느낀 것인지, 여자의 시선이 슬쩍 코우에게 향했다. 그때 아주 짧은 순간, 여자의 눈이 맹수와 같은 빛을 띠었다. 마치, 피식자를 노리는 포식자의 눈. 일순이었지만, 신변의 위협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저 여자는 위험한 여자다!
그렇게 직감한 코우는 여전히 여자에게 잘 보이려는 센라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 당겼다.
"응? 왜 그래?"
"선배, 저 여자 아무래도 위험해 보여요."
코우는 의아해하는 센라의 귓가에다 작은 목소리로 일렀다. 하지만, 후배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센라는 괘념치 않아했다.
"저 여자의 어디가 위험하다는 거야??"
"방금 저를 보는 눈이 진짜 위험했다니까요!"
"으이그.. 이래서 동정은! 너 임마. 그건 널 꼬시려는 눈일 거다. 이 부러운 자식!"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요!"
도무지 알아들을 생각을 않는 선배의 태도에 코우는 그만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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