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지마의 양팔 신카와·사카모토, ‘데스 스트랜딩’을 말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코지마 프로덕션을 대표하는 인물을 하나만 꼽으라면 코지마 히데오일 것이다. ‘메탈기어’ 시리즈로 잠입 액션 장르의 대중화를 이끈 천재 개발자. 세계관 구축부터 캐릭터 설정, OST 선곡까지 일일이 관여하며 자신의 철학을 투영시키는 작가주의 감독. 그러면서도 줄곧 ‘잘 팔리는’ AAA급 게임을 만드는 타고난 흥행사. 갑작스러운 코나미 퇴사 후 그 방식에 의문을 품는 이들도 많았으나, 신작 ‘데스 스트랜딩’으로 건재함을 과시한 사내. 이 모두가 코지마 히데오를 수식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코지마 프로덕션이 코지마 히데오의 ‘원맨아미’란 것은 결코 아니다. 코지마 감독이 코나미 시절부터 동고동락한 수많은 베테랑이 합류하여 프로덕션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특유의 감각적인 화풍으로 국내에도 두터운 팬층을 지닌 신카와 요지, 그리고 폭스 엔진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카모토 아키오가 그러하다. 이에 본지는 ‘데스 스트랜딩’ PC버전 출시를 기념하여, 지난해 말 코지마 감독 내한 당시 아쉽게 함께하지 못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서면으로나마 들어봤다.
● 반갑다. 한국에도 신카와 AD의 일러스트를 좋아하는 게이머가 굉장히 많은데, 혹시 알고 있나
신카와 요지: 한국은 ‘메탈기어 솔리드 피스워커’와 ‘메탈기어 솔리드 3 스네이크 이터’ 프로모션 당시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많은 분들이 크게 환대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 먹과 붓으로 그려낸 듯한 신카와 AD 특유의 화풍은 게임 업계에서 독보적이라 생각한다.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그리진 않았을 텐데, 어떻게 지금의 화풍을 추구하게 되었는지 듣고 싶다
신카와 요지: 처음부터…일지도 모르겠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개성’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개성 강한)터치나 스타일을 참고하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만화가 야스히코 요시카즈나 아마노 선생님이 붓으로 그린 작품의 영향을 받았다.
● 일전에 코지마 감독이 방한했을 때, 개발 초기 ‘데스 스트랜딩’ 기획에 대해 공유했을 때 개발팀 태반이 이해하기 힘들어했다고 들었다. 이처럼 독특한 세계관을 완전히 바닥부터 구축하는 것은 AD에게 대단한 도전이었을 듯하다. 당시에 어땠는지
신카와 요지: 첫 감상은 SF였다. 근미래이면서 어느정도 공포물로도 느껴졌다. ‘데스 스트랜딩’은 세계관부터 게임성까지 모든 것이 도전이었고 (AD로서도)새로운 아이디어를 여럿 시도했기에, 그만큼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 게임에 등장하는 BB나 감지기, 프래자일의 우산 같은 것들은 그 자체로 멋있기도 하지만 ‘데스 스트랜딩’ 설정과도 맞닿아 있다. 이런 소품들은 보통 구체적인 형태를 전달 받아서 그려내는 것인가, 아니면 디자인 과정에서 AD가 주도적으로 형태를 결정하는가
신카와 요지: (AD가 디자인을 결정하느냐는)어떤 것인가에 따라 다르다. 캐릭터의 개성을 표현하려면 세계관과 성격은 물론 소품이 굉장히 중요하다. 프래자일의 우산으로 말하자면 작업하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우산이란 기본적으로 구형이지만 또 곡선이 아닌 곳도 있어서 의외로 그리기 까다롭다. 그래서 제대로 데생을 하고 구조를 보기 위해 도화지를 잘라서 모형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 고생 덕분에 비주얼적으로 흥미로운 결과물이 나온 게 아닐까.
● ‘데스 스트랜딩’에 구현된 월드는 일견 황량하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풍부한 환경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고 느꼈다. AD로서 이러한 월드의 풍광까지 직접 관여하는지, 그렇다면 어떤 철학을 담아냈는지 듣고 싶다
신카와 요지: 가장 중요한 것은 게임이므로 ‘게임부터’라는 사고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제작 와중에도 코지마 감독이나 팀원들의 의견을 받아 재조립하며 더할 것은 더하고 뺄 것은 뺀다. 컨셉 자체가 여러가지 자연 환경을 거니는 것이었기에, 이런 식으로 개발하다 보면 자연스레 (‘데스 스트랜딩’과 같은)결과물이 나오게 된다.
● 신카와 AD가 그린 샘과 클리프 등의 초창기 컨셉 아트를 보면 이미 노먼 리더스와 매즈 미켈슨이 보이는데, 캐스팅에도 관여하는 편인가
신카와 요지: 대체로 그렇다. 특히 샘과 클리프, 그러니까 노먼과 매즈는 처음부터 내정되어 있었기에 컨섭 아트를 그릴 때도 그들의 이미지가 반영됐다.
● ‘데스 스트랜딩’에 나오는 모든 주조연 캐릭터 가운데 “아 정말 디자인 잘 뽑혔다!” 싶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누구인지 듣고 싶다
신카와 요지: 역시 샘 아닐까, 가장 고생하며 작업했으니까. 사실 초기에는 보다 SF적인 정장 스타일이었다. 그러다 타임폴로부터 보호받기 위한 강력한 아머 슈트였던 적도 있고. 하지만 너무 만화스러워져서 실제 게임에 적용해보니 납득이 가질 않는달까, 수긍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몇차례 수정을 반복하다 어느 날 겨우 현재 디자인에 가까운, 상하가 연결된 등짐이라는 기믹이 포함된 리얼한 모습이 나왔다. 마침내 배달부라는 컨셉을 표현해낸 것이다.
● ‘데스 스트랜딩’은 PS4로 11월 8일에 나왔고, PC로는 7월 14일에 나온다. 출시 간격이 꽤 벌어지는데, 그간 PC 포팅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
사카모토 아키오: 데시마 엔진의 PC버전은 이미 나와있었지만, PS4와 동등한 기능을 보다 좋은 퍼포먼스로 실현하기 위하여 새로이 조정한 부분도 많다. 특히 PC에서는 다이렉트X12 기능을 보다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두 사람이 보는 코지마 감독은 어떤 인물인지 궁금하다. 게이머 사이에서는 흔히 ‘천재’라는 이미지로 통하는데
신카와 요지: 코지마 감독은 자신만의 게임성과 세계관을 갖고, 제작 도중에도 계속해서 프로토타입을 플레이하며 세세하게 지침을 주는 타입이다. 가끔은 아직 전혀 최종적인 형태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어떤 것을 심거나 하는데, 그것이 나중에 굉장히 효과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런 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조금 무서워질 정도로 놀라곤 한다.
사카모토 아키오: 그야말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는 사람이다. 어떤 시스템이나 콘텐츠를 볼 때, 처음에는 왜 이걸 넣었을까? 싶은 것도 나중에는 딱 맞물려 돌아가는지라 과연! 하고 놀라는 일이 많다. 계속 아이디어를 주는 데다 퀄리티까지 높여가니 어쨌든 굉장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 최근 세계적으로 번진 코로나-19 사태로 ‘데스 스트랜딩’ PC버전의 마감이 난항이었을 듯하다. 개발 환경이 어떨지 궁금하다
사카모토 아키오: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으로 기본적으로 (재택으로 인한)원격 근무를 진행 중이다. 다행히 우리 팀은 강력한 관계를 구축하여 이러한 방식이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다. 때로는 너무 완고하여 포기하지 못한다는 게 문제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데스 스트랜딩’ PC버전을 개선하려 노력 중이다.
● 인터뷰에 응해주어 고맙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부디 한국에서 직접 만날 기회가 닿았으면 한다. 끝으로 코지마 프로덕션을 응원하는 한국의 게이머들에게 인사를 부탁한다
신카와 요지: “한국의 여러분, 일전에 방문했을 때 환영해주어 감사했습니다. 당장은 어려운 상황입니다만, 가까운 미래에 꼭 찾아가서 여러분과 만나고 싶습니다!”
사카모토 아키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데스 스트랜딩’ PC버전이 드디어 발매됩니다. 당초 60프레임으로 설계되었던 것이 PC에서야 실현되네요. 플레이하는 하드웨어 사양에 따라 그 이상의 프레임으로도 돌아갑니다. 꼭 즐겨주세요!”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